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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47화 (4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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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마켓의 경매는 좋은 물건이 나올 때도 있지만, 특이한 물건이 나올 때도 많다. 어떤 물건이 나오든 경매의 재미 하나는 보장되기에, 많은 사람이 관람을 목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웅성웅성.

사람들로 가득 찬 좌석. 여러 인종과 다양한 차림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암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법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경매가 시작되었다.

“블랙 마켓 정기 경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양복을 차려입은 사회자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관중의 웅성거림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분이 와주셨네요.”

사회자가 관객들을 둘러보며 싱긋 웃었다.

“아마 좋은 물건들이 많이 출품됐기 때문이겠죠?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요원이 무대 가운데로 카트를 끌고 왔다. 철제 책상 위에 경매 물품을 올려놓자 뒤쪽에 마련된 커다란 전광판 위로 경매품이 나타났다.

“첫 번째 상품은 아이티의 유명 주술사가 직접 제작한 몬스터 눈알 목걸이입니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예술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토테미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탐나는 물건이겠네요. 시작가는 1만 달러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1만 천, 1만 2천, 1만 3천.”

가격은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사람들의 손은 멈출 줄 몰랐고, 사회자의 입도 덩달아 바빠졌다.

입찰액은 순식간에 3만 달러를 돌파했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비싸냐.”

맨 뒷자리에 앉은 유현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영어로 떠드는 사회자의 말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광판 구석에서 올라가는 숫자와 화폐단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매니악한 건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

“세상에 참 신기한 사람들이 많아.”

눈알 목걸이는 5만 2천 달러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전신에 괴상한 장식을 한 사람이었다. 허공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기뻐하는데 몸에 달린 것들이 흔들거려 괴이했다.

“자, 다음은-”

경매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던전에서 발굴된 특이한 광물, 과거 유명 헌터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무기, 몬스터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정체불명의 열매 등.

그중에서 가장 흥미롭던 물건은 폭발 특성이 각인된 장갑이었다.

“25만! 30만!”

장갑을 끼고 주먹질을 적중할 때마다 각인된 폭발 특성이 발동하며 폭발하는 장갑. 충전식으로 마석을 글러브에 넣어 사용한다고 한다.

“저런 걸 팔아도 돼?”

“저게 되겠나? 애초에 무기에 특성을 각인하는 건 불법이다. 특성을 가진 사람을 죽여야 하고, 각인하는 아나 쓰는 아도 위험하거든.”

즉, 암시장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입찰을 이어갔다.

“비싸긴 더럽게 비싸네.”

가격은 계속 올라갔고, 최종적으로 두 사람이 경쟁했다.

“500만! 510만! 520만!”

억 단위를 넘어 십억 단위까지 이어진 치열한 싸움.

유현은 어느새 경매에 몰입한 자신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맛에 모이는구나.’

경매에 참여도 안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는 이유. 출품되는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진짜 재미는 이런 경쟁이었다.

“800만! 810만 없습니까!?”

줄곧 가격을 높이던 사람 중 하나가 결국 포기를 선언했다.

“800만에 낙찰되었습니다!”

“으아아아아아!”

낙찰과 동시에 무대 바로 앞에 앉은 덩치 큰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내 거다! 개자식아!”

조금 전까지 자신과 경쟁하던 상대를 가리키며 크게 웃는 남자. 남자의 얼굴을 본 유현은 문득 낯이 익음을 깨달았다.

“이야, 점마가 묵었네.”

“쟤 혹시 걔냐? 그 격투장 챔피언?”

“어떻게 알았나?”

그래서 낯이 익었군.

고작 몇 시간 전에 격투장에서 사진으로 봤었던 57연승 챔피언인 그 사람이었다.

“마스톨씨. 자리에 앉아주세요.”

“하하하! 알겠다고!”

진행요원이 와서 그를 진정시켰다.

보는 사람도 이렇게 흥분되는데, 당사자는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 심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행동이었다.

“자, 다음입니다!”

경매가 재개되었다.

마스톨이라는 남자는 무기나 방어구 등 전투력을 높이는 물건들에 집중적으로 입찰했다.

그와 경쟁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왔지만, 번번이 마스톨의 승리로 돌아갔다.

“쟤는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점마 집안이 재벌 집안이다.”

“재벌이라고?”

“어, 근데 자는 내놓은 자식이라 집에서 신경을 안쓴다카더라.”

생긴 것만 보면 던전에서 몬스터로 고기 파티를 열 것 같은데 재벌이라니.

“평소에도 저래 달리더만, 오늘은 더 달리네. 좋은 무기가 많아서 그런가.”

“무기만 사는 놈이야?”

“싸움에 쓸만한 건 다 사는 아다. 저렇게 사서 격투장에 쓰는 거다.”

“격투장에서 저걸 쓴다고?”

지금껏 마스톨이 낙찰받은 물건 중에는 정정당당한 싸움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도 여럿 있었다.

격투장에서 그런 걸 쓸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게 점마가 챔피언 자리 유지하는 비결이다. 점마는 기냥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다.”

“격투장이면 보통 주먹으로만 싸우는 게 정상아냐?”

“마, 여긴 룰이 쫌 다르다. 쥑이거나 링에서 나가지만 않으면 뭔 짓을 캐도 상관없다이가. 애초에 룰도 아이지. 심판도 없으니까.”

심판이 없는 대결. 상대를 죽이거나, 링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 싸움.

참으로 암시장다운 규칙이었다.

“자, 그럼 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물품입니다!”

그 뒤로 얼마나 더 지났을까.

드디어 유현이 고대하던 물건이 나왔다.

꿀꺽.

잔뜩 긴장한 채 무대 위 탁자에 올라온 팔찌를 주시했다.

카탈로그로 보던 것과 생김새는 똑같다. 다른 경매품들과 마찬가지로 투명한 상자 안에 들어가 있어 아티팩트 특유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물건이지만,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아쉬운 물건이죠. 마석을 부착하고 착용하면 마나를 더 쓸 수 있는 아티팩트입니다. 시작가는 10만 달러!”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마스톨도 그사이에 섞여 있었다.

‘역시 참여하는군.’

유현은 마스톨을 따라 손을 들었다.

놈이 참여할 거라고는 조금 전의 대화로 예상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든 양보할 수 없는 물건이다.

“마, 마, 미쳤나!”

한주석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유현이 직접 경매에 참여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건 내가 가져간다.”

“돈이 을만치 있다고 그러나?”

“돈이야 벌면 되지.”

시작가 50만 달러.

마석과 광석을 팔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대강 계획을 세웠으니까.

문제는 마스톨이다. 놈이 이번에는 얼마까지 가격을 높일지가 관건이었다.

‘자금이야 어떻게든 만들 수 있어.’

이미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 잘 되면 억만금을 손에 쥐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터.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걸 대비해서 2안도 세워두었다.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면 그냥 강탈해야지.’

상대가 누구든 물건 하나 훔치는 건 어렵지 않다. 하물며 그게 이런 암시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기에 가능하면 첫 번째 계획이 성공하길 바랐다.

“50만! 55만!”

50만 고지를 넘어 5백만. 5백만을 넘어 1000만까지 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 팔찌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유현과 마르톨 뿐이었다.

“마, 고마해라! 니가 저 돈을 우예 구하노!”

“가만있어봐.”

1300만 달러에서 유현은 다시 손을 들었다.

자그마치 150억이 넘는 금액.

유현의 거수를 확인한 사회자가 마스톨에게 시선을 돌렸다.

“1300만 달러 나왔습니다!”

“1350만!”

“1350만 달러! 아! 1400만 나왔습니다!”

마스톨이 눈가에 힘을 주며 뒤를 돌아보았다. 괴상한 가면을 착용한 애송이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빠직.

구릿빛으로 물든 마스톨의 이마 위로 핏줄이 돋아났다.

“1450만!”

“1450만! 바로 1500만 나왔습니다!”

“1550!”

“아, 1550! 1600만 나왔습니다!”

마스톨이 입술을 깨물었다.

장식된 피어싱이 짓눌리며 피가 새어 나왔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젠장, 이젠 돈이 없는데.’

오늘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희귀한 온갖 물건을 전부 손에 넣었으니까.

며칠 전부터 단단히 준비했다.

카탈로그를 보자마자 가용 가능한 모든 재산을 끌어모으고, 각각 얼마의 예산을 사용할지 책정했다.

‘근데 저 새끼는 대체 뭐야.’

애당초 그가 예상한 금액은 100만 달러. 저 팔찌에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그랬는데 예상 금액을 한참이나 초과했다. 여유자금이 있긴 하지만, 이미 그 금액도 넘어섰다.

‘이미 예산은 한계야.’

낙찰 후 24시간 이내에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안에 추가로 필요한 팔찌의 자금을 만들 방법이 요원하다.

빌리려면 쉽게 빌리겠지만, 그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저 팔찌를 탐하고 싶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마스톨이 살기를 잔뜩 담아 유현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압도적인 자금력을 목격하고도 싸움을 이어갈 줄이야.

‘뭐 하는 놈이지? 헌터? 사업?’

그때, 유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자신을 향한 명확한 비웃음. 마스톨의 이마에 핏줄이 늘어났다.

“1650만 없습니까!”

당장이라도 손을 들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고작 저런 애송이 하나 때문에 돈을 빌린다거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여 낙찰 자격을 박탈당하는 등 더 쪽팔리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1650만 없습니까!”

“......”

“1650만! 1650만 정말 없습니까!”

“......”

경매장은 잠잠했다.

다들 마스톨의 눈치를 살폈지만, 마스톨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1600만 낙찰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물건이 낙찰되고, 경매가 종료됐다.

성황리에 종료된 경매.

오늘 출품된 물건들도 하나같이 대단하고 재밌는 것들이었지만, 정작 경매가 끝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마스톨이 포기했다는 사실이었다.

“저 마스톨이 설마 치킨 게임에서 패배할 줄이야.”

“상대도 어지간하던데. 뭐 하는 미친놈이지?”

“낸들 아나. 저런 가면은 오늘 처음 보네. 동양쪽 인사 같은데.”

사람들이 유현을 훑어보며 경매장을 차례차례 빠져나가고, 물건을 낙찰받은 이들은 무대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유현 역시 한주석은 밖에 둔 채 홀로 무대 뒤로 움직였다.

“어이.”

유현이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스톨이 나타났다.

“와, 떡대 봐라.”

유현은 마스톨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자신 역시 작은 신장은 아니지만, 상대는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뭐라는 거야.”

“2미터는 되냐?”

“젠장, 말이 안 통하는군. ”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언어는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유현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마스톨은 한국말을 처음 들어봤다.

“거기 동양인. 이놈이 뭐라는지 알아듣나?”

“한국말 같은데 저는 일본인입니다.”

마스톨이 혀를 차고는 허리를 숙여 유현과 시선을 맞췄다. 말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할 말은 할 생각이었다.

“너 나랑 한 판 붙자.”

“파이트?”

“그래, 싸우자고. 그냥 싸우면 재미없으니까 오늘 낙찰받은 걸 거는 거야.”

마스톨이 내부에 놓인 물건 중 하나를 가리켰다.

유현은 그 의미를 곧장 깨달았다.

“내가 이기면 네 물건 가지고, 네가 이기면 내 팔찌 가지고?”

유현이 바디랭귀지로 팔찌를 표현하자 마르톨이 씩 웃었다.

“이 새끼 말귀가 빠르네.”

유현 역시 덩달아 웃었다.

본래 계획에 마스톨과의 싸움이 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

“내가 이기면 전부 가져간다?”

유현의 몸짓을 보며 마스톨이 인상을 찌푸렸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몸짓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충 전해졌다.

“전부 가져가겠다고? 미쳤냐?”

“크레이지? 크레이지 이즈 유.”

훈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유현의 제안은 마스톨을 향한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마스톨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 남자였다.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이 좆밥 새끼야.”

유현은 상대를 도발했다.

마스톨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유현의 표정과 손짓에서 그 뜻을 그대로 전달받았다.

“이런 개새끼가!”

유현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마스톨.

유현은 허공에 들리면서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 앵그리? 유 고우 다이.”

“......하하하하하!”

마스톨이 실성한 듯 웃더니 유현의 멱살을 놓았다.

“좋아! 그렇게 하지! 네가 이기면 내가 오늘 낙찰받은 물건들 전부 너한테 주마!”

마스톨은 제안을 수락했다.

평소라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거절했겠지만, 코앞에서 또다시 도발을 해오는데 참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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