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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45화 (4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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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이 제안한 거래는 성사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탑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창고에서 뭘 가져가려고?”

“책. 옛날 책이라 도서관이 아니라 여기에 보관하고 있대.”

“웬 책?”

서혜빈의 집에 책이 많긴 했지만, 고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옛날 소설 같은 거냐? 네 방에 있었던 것처럼.”

“아, 진짜! 넌 내가 그런 거만 보는 사람인 줄 알아?”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볼 수도 있지.”

“......말은 고마운데 내가 찾는 책은 마나 활용법에 관한 책이야.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마나를 다뤘는지 알고 싶어서.”

의외로 학문적인 내용이었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내가 그것까지 말해줘야 해?”

“하기 싫으면 말고.”

유현은 미련 없이 서혜빈을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야! 같이 가!”

창고가 있는 곳은 꼭대기 층.

두 사람은 한참을 더 오르고 나서야 굳게 닫힌 문 앞에 도착했다.

“헉, 헉.”

서혜빈이 숨을 헐떡이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그때, 느닷없이 녹슨 경첩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서혜빈이 고개를 돌렸다.

창고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뭐야? 어떻게 열었어?”

“비밀이야.”

“별게 다 비밀이네.”

“그럼 너도 알려주던가. 책이 왜 필요한지.”

“이번 달에 등급 테스트 있잖아. 그것 때문이야.”

서혜빈은 이번 등급 테스트에서 자신이 S반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걸 위해 수련은 물론이고, 몸에 좋다는 영양제나 기이한 음식들까지 챙겨 먹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첨탑에 책을 가지러 온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에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모두 들은 유현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되게 쓸데없는 짓 하네.”

“...뭐?”

“마나를 다루는 방식은 가장 효율적으로 진화 했을 거야. 근데 옛날 책을 읽어서 뭐 하게? 과거로 퇴화라도 하겠다는 소리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법을 알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유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

“혹시 모르잖아?”

“한 번 해보든가, 그럼.”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한 태도.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유현을 보며 서혜빈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진짜 재수 없어.”

어떻게 저렇게 재수가 없을까.

서혜빈은 한숨을 쉬고는 창고로 들어갔다.

“콜록.”

들어오자마자 기침이 나왔다.

먼지가 가득한 내부. 오래도록 관리되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서혜빈은 입과 코를 가린채 창고의 내부를 돌아보았다.

구석에 책장으로 추정되는 가구가 천에 뒤덮여 있었다.

‘이건가?’

서혜빈이 조심스레 천을 끌어당겼다. 가라앉았던 먼지가 허공으로 날렸다.

‘무슨 먼지가...’

천을 완전히 치우자, 그 아래로 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책장에 어울리는 오래된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서혜빈은 책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제목을 살폈다.

‘이건 아니고.’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하늘이 검푸르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몇십 권의 책이 그녀의 발치에 쌓여 있었다.

「마나 구조의 이해」

「마나 활용 기초」

「마나 탐구 기초」

「자연 속 마나 현상」

「마나학 기초」

“하아.”

「마나의 역사」

그녀가 막 덮은 책의 이름이었다.

기본 지식은 물론 역사와 관련된 내용까지 탐독했지만, 무엇하나 얻지 못했다. 책의 문법이나 다른 건 둘째 치고, 내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

책에서 나온 것들은 현대에서는 전혀 효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유현 말대로였네.”

이런 방법을 현대의 방식에 응용하겠다는 건 유현의 말처럼 과거로 퇴화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잖아.”

서혜빈은 바닥에 늘어놓은 책들을 다시 책장에 꽂아 넣었다.

“흐아~”

기지개를 켜며 굳은 몸을 풀었다.

천장의 좁디좁은 틈으로 달빛이 스며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서혜빈은 옆에 세워둔 랜턴을 들고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자물쇠를 잠그기 위해 열쇠를 찾다가 유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 갔지?”

“여기.”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등 뒤로 유현이 나타났다.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기에, 서혜빈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어우, 시끄러.”

유현은 귀를 쑤시며 태연하게 창고의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갔다.

“노, 놀랐잖아!”

“어떻게 됐냐?”

“......네 말대로였어.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더라.”

그 말에 유현이 활짝 웃었다.

“그치?”

“위로는 못 해줄망정 웃긴 왜 웃니?”

그가 웃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의 말이 맞아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네가 강해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도와줘? 어떻게?”

“다 방법이 있어. 어때? 끌리지?”

구미가 당기기보다는 의심부터 들었다.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자신을 도와준다는 걸까. 분명 원하는 게 있을 것이다.

“뭘 원하는데?”

“혹시 뒷거래하는 장소 아냐? 암시장처럼. 아니면 그런 사람이나.”

유현은 서혜빈을 돌파구라고 판단했다.

한서희와 서로 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배경을 지닌 사람.

꿩 대신 닭이라는 말처럼 한서희가 안 된다면 서혜빈 역시 충분히 사용해볼 수 있는 카드였다.

“그건 왜?”

“이유는 묻지 말고.”

“글쎄. 암시장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급격히 실망으로 물드는 유현의 표정. 서혜빈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나는 몰라도 한주석은 알걸?”

“한주석?”

“응. 예전에 한 번 본 적 있을 텐데. 뚱뚱한 애. 걔가 그런 쪽으로는 잘 알아.”

“아, 그 친구. 뭐 하는 놈인데? 학생 아니야?”

“......그건 비밀이야.”

단지 대화의 흐름상 물었을 뿐, 궁금한 건 아니었다.

“좋아, 그럼 바로 가자.”

“그 전에 방법부터 알려줘.”

“일 끝나고 알려줄게. 거짓말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걸 내가 어떻게 믿냐?”

“믿기 싫으면 말고.”

서혜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걸 믿어 말어.’

잠시 고민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은 한주석을 연결해주는 역할일 뿐. 유현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기분은 나쁠지언정 크게 손해보는 건 없었다.

두 사람은 탑을 나와 상위 클래스의 기숙사인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카페에서 미리 연락을 받은 한주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 가스나. 이 밤에 내는 왜 불렀나.”

“얘가 궁금한 게 있대서.”

“인마가? 어, 인마 유현 아이가. 와 둘이 같이 있노? 언제는 못 잡아묵어서 안달이드만.”

“일단 뭐 좀 먹자. 배고파.”

세 사람은 미리 주문해둔 커피를 들고 카페 테라스에 앉았다.

쪼로록 거리는 소리가 침묵을 대신다. 저녁을 먹지 않았던 유현과 서혜빈은 음료수에 집중했다.

“가스나야, 쳐뭇지만 말고 말을 해라 말을.”

마침 음료를 모두 마신 유현이 컵을 내려놓았다.

“혹시 암시장 알아?”

“암시장?”

“마석을 몰래 좀 팔고 싶은데.”

옆에서 듣고 있던 서혜빈이 화들짝 놀랐다.

“마석이라니? 너 마석 있어?”

“몇 개 주웠어.”

“줍다니. 마석을 누가 흘렸다고?”

“조용히 좀 해 봐. 얘랑 얘기 좀 하게.”

짜증을 내는 서혜빈을 뒤로하고, 한주석이 아까의 질문에 답했다.

“알긴 알제. 왜, 데려다주까?”

“오, 이 친구 말이 좀 통하네.”

“맨입으로 카기는 좀 그란데~ 거 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이다.”

서혜빈이 한주석의 팔을 꼬집었다.

“그냥 좀 해줘라.”

“이, 인마가 돌았나? 공짜로 해주라고?”

“내가 쟤한테 받기로 한 게 있어.”

“아하, 그라믄 상관없제.”

한주석이 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 짐 후딱 갔다 오자.”

“어딜 가요?”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테라스의 입구에 운동복 차림의 한서희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

운동 전 카페인 섭취를 위해 찾아온 카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어 2층으로 올라왔더니, 이런 광경을 목격할 줄이야.

“대체 왜 셋이서 모여있어요?”

“거기엔 아주 깊은 사정이 있지.”

“당신은 조용히 해요.”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빨리 말해봐요. 앉아서 담소나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한서희는 불안했다.

한주석. 제법 뒷배가 있는 남자다.

만약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유현을 영입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냥 등급 테스트 관련해서 이야기 좀 했어.”

유현의 말에 한서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등급 테스트 보게요?”

“아, 응. 시하한테 친구도 생겼고, 여기 시설도 마음에 들고. 이왕 졸업까지 지낼 거면 좋은 데서 있으려고.”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본인이 하겠다는데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게 다예요?”

그 대답은 서혜빈이 대신했다.

“그게 다야. 그리고 이 사람이 우리랑 뭘 하든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잖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기류. 그 흐름을 먼저 깬 건 한서희였다. 그녀는 남아 있던 의자 하나를 뒤로 빼서는 앉았다.

“거짓말하지 말고 하던 이야기 계속해요.”

“거, 거짓말이라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셋이 모일 이유가 없잖아요?”

정곡을 찔린 서혜빈이 유현을 돌아보았다.

얘 좀 어떻게 해보라는 듯한 눈빛에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감출 이야기는 아닌데.”

서혜빈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얘가 암시장을 찾고 있었어. 나는 한주석을 연결해준 거고.”

“암시장이요? 아, 설마….”

몇 시간 전에 거절했던 부탁이 떠올랐다. 그리고 후회했다. 거기서 부탁을 들어주었다면 이 자리가 생기는 일도 없었을 텐데.

“내가 해줄게요! 그깟 마석 얼마든지 팔아줄 수 있어요!”

“이제 안 해준다며.”

“마음이 바뀌었어요.”

물론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을 서혜빈이 아니었다.

여기서 한서희가 유현을 데려간다면, 유현과 했던 거래는 끝이다.

유현이 대가로 정확히 무엇을 해줄지는 몰라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안 돼! 이 사람은 이미 나랑 이야기 끝났다고!”

“부탁은 내가 먼저 받았거든요?!”

“넌 거절했다며!”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을 이어갔다. 아웅다웅 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유현은 실소했다.

반면 한주석은 질린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가스나들아. 쌈질좀 고마해라. 너거가 여기 전세냈나?”

두 사람 사이를 말리는 한주석.

한서희와 서혜빈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싸우면 끝이 없으니까 이렇게 하자. 너그 둘이서 내기를 하는거다.”

“내기? 무슨 내기를 해?”

“이번에 등급 테스트 있제? 어차피 둘 다 S반 노리고 있는거 아이가. 거서 떨어지는 사람이 지는 거다. 이긴 마는 인마 도와주고.”

한주석이 유현을 돌아보았다.

“니는 어떻나?”

“등급 테스트 한참 남았잖아.”

“그렇제.”

“안 돼. 급하단 말야.”

빨리 게임 캐릭터의 스펙을 원상복구해야 착실하게 자동 사냥을 돌릴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직접 손으로 사냥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귀찮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그때, 한서희가 끼어들었다.

“마음 넓은 내가 이번 한 번은 양보할게요. 고집부려서 당신을 난감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오, 고맙다.”

“대신 내기는 하는 거예요. 진 사람은 더 이상 유현에게 접근하지 않기.”

서혜빈의 눈이 번뜩 뜨이는 제안이었다.

“그, 그럼 너 이 사람이랑 쓴 계약서도 없애는 거지?”

“그렇죠.”

“아자! 바로 해! 내기해!”

서혜빈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유현은 여전히 길드에게 있어 매력적인 존재다.

비록 한 때는 영입을 포기했지만, 한서희가 빠진다면 다시 시도할 만했다.

‘본인은 한사코 거절하겠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다른 법이지.’

일단 물꼬만 튼다면, 언젠가는 영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작아도 유현이라면 도전할 가치가 있다.

“그럼 내기 성립이가?”

“네!”

“넌 상관없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사정이야 어떻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상관없었다.

“근데 둘 다 S반에 올라가면 무승부 아니야?”

유현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두 사람이 폭발했다.

“이 여자가요?”

“네까짓게 S반은 무슨!”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는 가운데 한주석이 일어났다.

“야들은 두고 가자. 급하다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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