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44화 (44/219)

44

어둠이 깔린 들판.

새벽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언제쯤 나올까요?”

“글쎄. 예상 시간은 10시간이었는데.”

“그럼 슬슬 나올 때 되지 않았어요?”

“언제나 예상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그때, 게이트 너머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C등급 던전형 게이트의 토벌을 성공적으로 마친 토벌대였다.

“나, 나왔다!”

그들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결과는요?”

길드 관계자가 선두로 나온 김한수에게 물었다.

김한수는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씩 웃으며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성공이다!”

“와아아아!”

길드의 관계자들이 토벌대원들을 얼싸 안고 방방 뛰었다.

그만큼 던전형 게이트의 토벌은 어려운 일이었고, 환영받을 일이었다.

“근데 문제가 몬스터 숫자가 너무 적었다는 거야.”

“헉! 손해 볼 정도인가요?”

“그 정도는 아니지.”

“그럼 됐죠!”

옆을 지나가던 유현이 뜨끔했지만, 다행히 누굴 의심하진 않는 것 같다.

“다들 나왔나?”

김한수가 토벌대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나왔습니다.”

마지막까지 인원을 체크하던 토벌대원이 김한수에게 알려주었다.

위이잉.

토벌대원들이 빠져나온 직후 외부에서 대기하던 중장비와 인부들이 내부로 투입되었다.

게이트는 클리어 이후 다섯 시간 뒤에 폐쇄된다. 처리반은 그사이에 던전의 광물과 사체의 회수를 끝마쳐야 했다.

“다들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달빛 아래로 토벌대원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토벌에 성공했다는 만족감, 이번에도 살아나왔다는 안도감 등. 여러 감정을 느끼며 토벌대원들은 서로에게 고생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자네도 고생했네!”

멍하니 앉아있던 유현에게도 토벌대원들이 모여들었다.

“살다 살다 그쪽 같은 짐꾼은 처음 봤어.”

“그러니까 말이야. 대체 어떤 짐꾼이 거기서 소리를 지르겠어?”

“그냥 한마디 한 건데요 뭐.”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유현의 등을 토벌대원 하나가 가격했다.

“어윽!”

“그 한 마디가 어려운 거라고!”

“맞아. 안 그랬으면 꼼짝없이 당했을걸? 난 그놈 생긴 거 보고 몸이 굳었다니까?”

유현이 소리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큰 피해 없이 던전을 클리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두들 그걸 알고 있기에 유현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거 이 정도면 마석이라도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대장!”

김한수가 곧장 몸을 돌려 이쪽으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그 역시 유현에게 할 말이 많은 까닭이었다.

“대장! 이 친구 뭣 좀 챙겨주자.”

“당연히 그래야지. 자, 내가 미리 몇 개 빼놨네.”

김한수가 유현에게 광석 두 개를 건넸다.

“......”

“사양하지 말고 받게. 자네는 받을 자격이 충분해.”

자격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양심에 찔려서 도저히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허허. 이 친구 너무 겸손하군.”

김한수는 유현이 끝까지 망설인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유현의 손에 마석을 쥐여주었다.

유현은 죄책감과 기쁨이 뒤섞인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네들 혹시 이 친구랑 더 할 말 있나? 없으면 둘이서 긴히 이야기를 좀 할까 하는데.”

“없어, 없어! 데려가!”

토벌대원들이 유현에게 손을 흔들었고, 유현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나름대로의 죄책감에 대한 속죄였다.

“그럼 잠깐 저쪽으로 가지.”

두 사람은 구석으로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수고 많았네.”

“아뇨.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던전형 게이트는 처음 들어가 봤어요.”

“처음이었군. 굉장히 침착해서 몇 번 들어온 줄 알았네.”

김한수는 아까 유현이 소리친 말을 떠올렸다. 쫄지말라고, 여기 C등급 게이트라고. 그런 말을 한 것도 놀랍지만, 처음 들어오는 사람치고는 수상하리만치 침착했다.

“내가 자네를 따로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정말 몬스터를 못 봤는지 물어보고 싶어서네.”

“못 봤습니다.”

“기절했던 짐꾼 하나가 깨어났어.”

한 놈이 깨어났나.

가끔 체질적으로 혈이 안 먹히는 놈들이 있다. 설마 짐꾼 사이에 그런 놈이 있었을 줄이야.

“그렇군요.”

“그 짐꾼이 말하길, 교복을 입은 괴물을 봤다고 했네.”

“......”

“정말 몬스터가 없던 게 맞나?”

짐꾼 중 하나가 사냥을 목격한 것 같다. 볼 틈도 없이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냥 물어보는 거네. 정말 몬스터가 없었는지.”

“없었습니다. 있었으면 제가 멀쩡할 수도 없었겠죠.”

“그럼 대체 그들은 뭣 때문에 그리 도망쳤고, 상처는 어디서 입은 거지?”

“글쎄요.”

전사는 말없이 유현을 응시했다.

그 역시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짐꾼들이 도망친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환각을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토벌이 이어지며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렸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카데미의 F등급 학생. 그는 너무나 이상했다.

“자네는 특이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F등급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과 체력. 그리고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의 침착함. 마지막으로 갑자기 터져나온 전격 기술. 내가 알기로는 스크롤 중에 전격 스크롤은 없어서 말이야.”

“......”

“다 핑계를 댈 순 있겠지. 그냥 인간 자체가 강하거나, 성격이 침착하다 못해 감정이 존재하지 않거나, 던전의 이상 현상으로 동굴에 갑자기 번개가 쳤거나.”

하나 같이 말이 되지 않는 핑계였다. 김한수는 유현을 지그시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겠네. 솔직하게 말해주게. 정말 몬스터를 보지 못한 게 맞나?”

“보지 못했습니다.”

유현은 고민도 없이 거짓말을 뱉었다. 유력한 증거는 없다. 모두 이 남자의 심증일 뿐.

‘절대 들키면 안 된다.’

들키면 오늘의 수입을 모두 몰수당한다. 몰수당하면 현질은 물 건너 가고. 어차피 직접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상 절대 들키지 않는다.

몬스터의 시체는 기계로도 쉽게 파낼 수 없도록 저 밑에 묻어두었으니까.

“그렇군.”

김한수의 묵직한 손이 유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히 의심해서 미안하네. 오늘의 에이스한테 말이야.”

“별말씀을요.”

“만약 자네가 없었다면 이렇게 순조롭게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김한수의 말은 진심이었다.

오늘 유현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적절한 활약을 해주었다. 모두의 사기를 돋우고, 짐꾼 여럿의 몫을 수행하고.

“여기, 이건 오늘 일당이네.”

“아이고, 이런 걸 직접 주시고.”

“개인적으로 조금 더 넣었네.”

예상보다 두꺼운 봉투.

유현은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군침을 삼켰다.

“이렇게 많이 주셔도 됩니까? 광석도 챙겨주셔 놓고.”

“사양 말고 받게.”

“감사합니다.”

본래 받기로 되어있던 짐꾼 일급의 열두 배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있었다.

“그럼 슬슬 돌아가게나. 아카데미에는 연락해놓았나?”

“......아.”

“미리 전화하지 그랬나. 던전형 게이트의 경우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길드가 허락했다는 조건으로 들어가도 되거든. 그래서 의뢰 시간 연장도 가능할 텐데.”

“제가 그건 몰랐습니다.”

“벌점 좀 받겠군.”

길드 짐꾼 의뢰는 어린이집 의뢰를 취소하고 현장에서 받은 일.

따로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지 않기에 이미 복귀 시간은 한참 지나있었다.

“가겠습니다!”

“나중에 또 보길 바라지.”

유현이 급히 사라졌다.

김한수는 그 뒷모습을 일별하고는 들판으로 돌아갔다.

토벌대는 어디서 회식 메뉴 선택으로 시끌시끌했다. 김한수는 곧장 토벌대에게 향하는 대신 구석에 앉은 짐꾼에게 다가갔다.

“뭐, 뭐랍니까?”

“본인 말로는 아니라던데.”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진짜 무슨 괴물처럼 싸웠다니까? 막 주먹질 한 방에 그놈들 머리가 터져나가는데….”

“아무래도 자네가 뭘 착각한 것 같아. 내일 병원에라도 가보라고.”

“......아, 진짜 잘못 본 건가?”

짐꾼은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가 직접 본 건지 꿈속에서 꿈을 꾼 건지 솔직히 조금 헷갈렸다.

“수고했네.”

김한수는 토벌대원을 토닥이고는 몸을 돌렸다.

‘이름이 유현이라고 했나.’

F등급이지만, 하위에 머물 아이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는 생각이 들었다.

***

현금 130만 원.

C등급 중소형 마석 14개. 중형 마석 1개. 던전 광석 3개. 그리고 벌점 20점.

어제 하루 유현이 얻은 것들이었다.

“하아.”

무단 지각.

유현에게 벌점 20점이 한 번에 쌓인 사유였다.

“해도 해도 끝이 없네.”

유현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행렬.

어제 쌓인 벌점 덕에 학교가 끝나고 내내 벌 청소를 하고 있다.

“뭔 놈의 건물에 계단이 이렇게 많아.”

청소하는 곳은 아카데미 구석에 있는 석조 첨탑이었다.

하늘을 향해 솟은 형태라 내부에는 계단이 많았다.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았는지 먼지도 잔뜩 쌓여 있었다.

“이런 건물이 여기에 왜 있는 거야?”

마치 중세시대 때 세워진 것 같은 건물로 현대의 지구보다는 판대륙에 더 어울리는 건물이었다.

“사람은 안 사는 것 같은데.”

유현은 대걸레를 내려놓고 계단에 주저앉았다. 감시하는 사람도 없으니 잠깐 게임이나 할 생각이었다.

“좀만 놀고 마법으로 싹 치워야지.”

대걸레질로 반 정도 청소했다.

나머지 반 정도면 지금 가진 마나로도 충분히 청소할 수 있을 거다.

“현질을 더 해야 하는데.”

어제 받은 현금은 ATM으로 입금해 벌써 게임 내 아이템으로 뒤바뀌었다.

하지만 조금도 강해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약해졌다.

이 빌어먹을 게임은 돈을 써도 약해질 확률이 있는 기이한 구조였다.

“마석이랑 광석도 돈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사냥도 제대로 못해.”

한서희에게 문자로 슬쩍 언질을 줘봤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실로 막막한 상황이었다.

‘어디 암시장 같은 곳은 없나?’

판대륙에도 존재했던 은밀한 장소.

지구라고 없을 리가 없다.

‘어느 세계든 뒷거래는 있고, 그게 이루어지는 장소도 있어.’

문제는 그걸 알아낼 방법이 요원하다는 점이었다. 한서희는 당연히 도와주지 않을 테고, 그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에 물어볼까?’

유현은 게임을 종료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유명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돌아오는 답은 하나 같이 비슷했다.

대가리가 빻았느니, 그딴 곳이 어디 있냐느니 등등. 온갖 잡다한 욕설이 쏟아졌다.

“이 새끼들이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이렇게 욕을 해대.”

유현은 욕만 잔뜩 먹은 채 커뮤니티를 종료했다.

역시 한서희의 도움을 받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하자.’

유현은 마법을 활용하여 남은 구간을 마무리했다.

어느덧 시간은 늦은 오후.

대걸레와 양동이를 챙겨 들고 오래된 첨탑의 낡은 문을 열었다.

“꺅!”

누군가 문에 밀렸다.

쿵-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뭐야.”

첨탑의 현관 너머. 무성한 잔디 위에 웬 사람이 주저앉아 있었다.

“아오, 아파라.”

익숙한 빨간 머리.

서혜빈이었다.

“문을 좀...”

상대에게 항의하려던 서혜빈은 그게 유현인 걸 확인하고는 말을 멈췄다.

“크흠. 다음부터는 조심해.”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 서혜빈. 그녀의 시선이 대걸레로 향했다.

“청소했어?”

“벌점 받아서.”

“몇 점이나 받았길래 창고 청소를 해?”

“20점.”

서혜빈이 혀를 내둘렀다.

웬만한 잘못이 아닌 이상 벌점은 쉽게 주지 않는데 그걸 20점이나 쌓았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운이 없었어.”

“난 아직 1점도 없는데.”

꼽주는 건가.

유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래?”

서혜빈은 큰 눈을 멀뚱거리기만 할 뿐 달리 비꼬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아냐. 볼 일 봐라.”

그대로 서혜빈을 스쳐 지나가려던 유현은 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창고라고?”

“응? 응. 예전에는 천문대로 쓰였다는데 요새는 이런 데서 별이 안 보인 다나 봐. 그래서 창고로 쓴대.”

천문대라.

비록 지금은 창고로 전락한 애물단지 신세지만, 한때는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던 장소였구나.

낭만 있는 생김새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활용이었다.

“그렇구만.”

“혹시 여기 열쇠 너한테 있니?”

유현이 주머니에서 열쇠 다발을 꺼냈다.

“그렇긴 한데, 이건 내가 빌린 거라서. 가져다 놓을 테니까 가서 다시 빌려 가.”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목소리를 높인 서혜빈이 흠칫하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지난번 방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나, 나한테 열쇠 주고 가.”

“안 돼.”

“왜?”

“내가 너한테 열쇠를 줬는데 네가 잃어버리면 내 책임이잖아. 선생님께 열쇠를 빌려 간 건 나니까.”

“그렇긴 한데….”

서혜빈이 말끝을 흐렸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네가 가서 다시 빌려 가.”

“......그, 그럼 같이 가면 되잖아.”

서혜빈이 작게 중얼거렸다.

듣지 못한 유현이 가까이 다가갔다.

“뭐라고?”

“같이 가면 되잖아! 어차피 물건만 가지고 나올 거니까 오래 안 걸린단 말이야.”

“귀찮은데.”

“아, 좀!”

유현이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이야.”

“뭐! 뭐가 필요한데!”

“저번에 보니까 집에 책 많더라? 그 무슨 이상한 제목…….”

“우아아아악! 어떻게 알았어!? 그 방은 잠가놨을 텐데.”

“베란다로 들어가니까 있던데. 아무튼, 그건 둘째 치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는 서혜빈에게 유현은 본 목적을 이야기했다.

“만화책도 많지? 그거나 좀 빌려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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