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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42화 (42/219)

42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넓은 공동.

거대한 몬스터와 토벌대 간의 치열한 전투가 한창이었다.

“좌측!”

전방 수비를 맡은 토벌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여 적의 공격을 차단했다.

뒤이어 쏟아지는 후방 대열의 공격.

불길이 날아들고, 수십 발의 푸른색 화살이 몬스터를 폭격했다.

“크아아!”

덩치에 맞는 벽력같은 포효에 몇몇 토벌대원들이 움찔했다.

샤우팅. 상대의 움직임을 멈칫하게 하는 기술이었다.

“정신 차려!”

선두에 선 김한수가 곧장 소리쳤다.

몬스터에게 밀리지 않는 고성이 아군을 일깨웠다.

“크어어!”

커다란 입에서 녹색 빛의 산성액이 뿜어졌다.

적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김한수가 전방을 향해 방패를 치켜들었다.

“모여!”

방패의 푸르스름한 마나가 어렸다.

다음 순간, 넝쿨 식물이 영역을 넓히듯 푸른 에너지가 방패를 기점으로 사방으로 뻗어갔다.

순식간에 완성된 거대한 뼈대.

뼈대 사이로 새파란 마나가 채워지며 거대한 방패가 완성되었다.

치이익!

방패에 닿은 산성액들이 표면에 닿으며 증발했다.

직후, 방패가 사라지며 방패 뒤에 모인 토벌대원들이 준비한 공격들을 내뿜었다.

콰광!

일제사격.

엄청난 포화에 몬스터가 순식간에 뒤로 넘어갔다.

지금껏 펼쳐졌던 깔끔한 전투와는 차원이 다른 과격함. 시체를 회수하는 것보다 쓰러뜨리는 게 최우선인 전투다웠다.

“한 번 더!”

굉음이 울리고, 다시 잠잠해졌다.

적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졌다.

처음 보고 받았던 중간급 보스의 사냥이 마무리됐다.

“선발 탐험대는 다시 출발하라! 대원들은 그동안 태세를 정비한다!”

스크롤에 담아온 바람 능력을 활용해 먼지를 몰아낸 뒤, 토벌대원들은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대장, 배고픈데 식량 먹어도 돼?”

“탐험대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간단히 해결해라.”

“오케이.”

스크롤처럼 가벼운 물건들 외에는 모두 짐꾼들이 들고 다닌다.

그런 짐꾼을 찾던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짐꾼들 없는데?”

“안 들어왔나?”

전투가 끝나면 알아서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사가 통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짐꾼들의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군.”

“뭐야, 뭔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땡땡이치나?”

“말이 되는 소리를.”

길드를 상대로 뒤통수를 치는 건 죽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제정신이 박혔다면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터였다.

“무슨 문제 생긴 거 아냐?”

“......”

김한수의 표정이 굳었다.

줄곧 몬스터의 숫자가 적다고 여겼기에 불안함은 증폭되었다.

혹시 어딘가에 숨어있던 몬스터가 나타난 건 아닐까.

“가봐야겠군.”

“나도 갈게.”

“몇 명 더 데려와라.”

김한수가 몸을 일으킨 그때였다.

“으아아악ㅡ!”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통로를 지나 공동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바탕 구른 건지 잔뜩 더러워진 옷.

누군가는 큰 상처를 입고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등에 메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들이 짐꾼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소요됐다.

“뭐야?”

“뭐가 나왔나?”

“그럴 리가. 아까 다 뒤져봤잖아.”

모두의 이목이 끌린 가운데, 김한수가 짐꾼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앞에 선 짐꾼이 무릎을 짚고 헉헉거리더니 죽을 것 같은 얼굴로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몬스터가, 몬스터가 나왔습니다.”

“몬스터가? 어디서 나왔나?”

남자는 숨을 헐떡이느라 더 말하지 못했다.

“몬스터가 어디서 나왔단 말이냐!”

김한수는 옆 사람으로 타겟을 바꿔 물었다.

그 사람의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사색이 된 낯빛. 복부에서 혈흔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 기습…….”

“기습? 기습을 어디서 당했나?”

말하려던 짐꾼이 기우뚱하며 쓰러졌다. 김한수가 짐꾼을 받쳐 바닥에 눕혔다.

“힐러! 부상이다!”

구석에 쉬고 있던 서포터가 후다닥 달려와 짐꾼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러는 사이 김한수는 짐꾼들을 살폈다. 하나 같이 파리해져서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없어.”

아까 전,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던 아카데미의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야단났군.’

만약 짐꾼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학생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탈출 스크롤을 제공하긴 했지만, 기습을 당했다면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살아있다면, 제발 버텨다오.’

김한수는 곧장 움직였다.

만약 죽는다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책임부터 배상까지.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직 죽기에는 학생의 나이가 너무 젊었다.

“모두 따라와!”

어느새 전사의 뒤에는 토벌대의 정예들이 뒤따랐다. 그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다들 왜 이렇게 다쳤어?”

“나도 몰라. 일단 따라와라.”

전사가 통로를 내달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광!

통로의 암흑 너머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키에에에에엑!

이윽고 들려온 괴성에 전사는 뜀박질을 멈췄다.

‘......’

통로에서 나오던 몬스터들과는 격이 다른 울음소리. 고막을 파고드는 하울링에 전사는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꼴깍였다.

‘지금까지 만났던 놈이 아니야.’

통로에서 쓰러뜨렸던 놈들과는 전혀 다른 개체.

이제는 학생을 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의 정체를 모르고,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나아갔다가는 전멸할지도 몰랐다.

“대, 대장.”

“......”

김한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었다.

토벌대 모두와 짐꾼 하나의 목숨.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명했다.

“학생은 포기한다. 돌아가지.”

김한수는 혼자 남아 끝까지 어둠 너머를 쳐다보다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

“돈이 굴러들어오네.”

적들은 땅이나 벽을 뚫고 착실하게 유현을 공격해왔다.

중간중간 여러 마리서 기습을 하기도 했지만, 모두 유현의 손에 터져나갔다.

“흠흠~”

콧노래를 부르며 시체에서 마석을 꺼내고 깊숙이 땅을 파 시체를 묻었다.

일련의 과정을 마친 유현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등에는 짐꾼들이 놓고 간 짐들이 산더미처럼 들려 있었다.

“키에에에에에엑!”

통로 저편에서 커다란 형체가 빠른 속도로 기어왔다.

대지를 울리며 순식간에 다가온 녀석이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지네처럼 흉측한 몸체. 다른 녀석들과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크기가 1.5배는 더 컸다.

‘대장 같은 건가.’

머리에 달린 집게가 남다르게 반짝거렸다.

“키에에엑!”

분노 어린 포효를 내지르며, 녀석이 공격해왔다. 수십 개의 다리가 길게 늘어나며 유현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홰액!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하고.

수없이 날아드는 공격을 유현은 춤을 추듯 가볍게 피해냈다.

가방이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서서히 적과 거리를 좁혔다.

“키에에!”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놈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집게가 유현을 두동강 낼 기세로 쇄도했다.

‘같은 패턴.’

크기만 클 뿐, 공격 패턴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과 똑같았다. 노림수가 들어맞은 유현은 미소지으며 제자리에서 점프했다.

쾅!

적의 공격은 애꿎은 땅을 갈랐고, 높이 뛰어오른 유현은 녀석의 머리 위로 착지했다.

그리고 주먹에 마나를 가득 담아 머리를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차례의 공격이 이어지며 이전보다 더 큰 소음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머리가 꿰뚫린 채 발버둥 치던 거대한 몸체가 서서히 얌전해졌다.

“후우.”

옅은 호흡을 내쉬며 유현이 손을 빼냈다. 아귀에 들어온 마석은 지금껏 얻었던 마석들 보다 좀 더 크기가 컸다.

“색깔은 똑같네.”

마석의 등급은 동일했다.

유현은 마석을 품속에 넣고는 몬스터를 묻었다. 혹여나 티가 나지 않도록 바닥을 다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근데 이 새끼들은 왜 안와?”

짐을 두고 도망친 짐꾼들.

도망간지 한참 됐으니 토벌대원 몇 명 정도 데리고 다시 짐을 되찾으러 돌아올 법도 한데.

‘뭐, 그 덕에 재미 좀 봤지만.’

중간에 돌아왔다면 이렇게 품속 가득 마석을 모으진 못했을 것이다.

유현은 다시 통로를 한 바퀴 돌며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몬스터를 묻은 흔적이 조금이라도 도드라지지는 않았는지 체크 했다.

그 흔적을 발견하면 다시 땅을 다져서 흔적을 완벽히 지웠다.

“좋아, 이 정도면 절대 안들키지.”

유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진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장까지 등장했으니 아마 남은 적은 없을 것이다.

***

공동.

토벌대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짐을 잃었고, 짐꾼으로 들어온 학생 하나가 죽었으며, 뒤쪽에는 적이 있다.

분명 모두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튀어나온 적들. 언제 어디에서 적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그뿐 아니었다.

미탐구 지역의 정보 파악을 위해 떠난 선발 탐험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피칠갑을 한 채 돌아왔다.

은신과 도주에 특화된 탐험대 중 두 사람이 죽었다. 토벌대의 사기는 점차 바닥으로 치달았다.

“여기서 물러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후방에 어떤 적이 있을지 모르잖아. 무턱대고 나가는 게 답이 아닐 수도 있어.”

이야기를 듣던 전사는 미간을 짓눌렀다. 이성적으로 내릴 수 있는 최적의 판단은 후퇴다. 다친 사람들이 있고, 죽은 사람도 있다. 토벌대원의 피해는 없지만, 지금처럼 사기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나아가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다들 주목.”

전사는 고민 끝에 입술을 떼었다.

“뒤에도 앞에도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짐을 모두 잃었다. 이대로 나아갔다가는 모두 죽을지도 몰라.”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공동 내로 울려 퍼졌다.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겠다. 하나는 탈출 스크롤을 사용해 외부의 지원을 데려오는 것. 물론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공동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죽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두 번째는 뒤로 돌아가 짐을 되찾고 토벌을 재개하는 것이다. 몇 명은 부상자들을 옮기기 위해 게이트를 나가야 해.”

토벌대원들이 그의 말에 집중했다.

“문제는 후방에 어떤 적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 짐꾼들 역시 그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하며, 어떻게 공격을 당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만큼 무척 위험하다.”

토벌대 사이로 긴장감이 흘렀다.

가슴에 유서 한 장씩 품고 사는 직업이라지만, 그들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너희의 의견은 어떤가?”

“대장이 정해.”

토벌대원들은 그 말에 호응했다.

“맞아, 대장이 정해.”

“어차피 다들 대장 믿고 들어온 거잖아.”

김한수는 깊이 침음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위험이 동반되는 무거운 선택이었다.

“다들 내 선택을 신뢰하나?”

“그러니까 대장이지!”

“맞아요! 대장이 왜 대장인데요!”

김한수가 토벌대원들을 훑었다.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겁을 집어먹은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좋아.”

김한수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팔을 휘둘렀다.

쿵!

건틀릿과 방패가 맞부딪히며 큰 소음이 났다. 이내 김한수가 소리쳤다.

“우리는 헌터다! 짐을 되찾아서 토벌을 속행한다!”

짧고 굵은 한 마디였지만, 사기를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와아아아!”

“가자아아아악!”

김한수가 홱 몸을 돌렸다.

그 뒤를 따라 토벌대원들이 몸을 일으켰다. 휴식은 충분했고,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있었다.

척.

김한수가 긴장감을 삼키며 통로 앞에 멈췄다.

통로에는 어둠이 드리웠다.

중간중간 광물이 박혀 있긴 했지만, 초반부보다 양이 턱없이 적어 밝지 않았다.

“횃불 들어!”

뒤로 늘어선 대열로 붉은 색 횃불이 타올랐다.

김한수도 횃불을 손에 들었다.

말은 안 했지만, 김한수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침착하게 가자.’

어떤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침착하면 활로는 보인다.

김한수가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통로 너머로 발을 내디딘 그 순간.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김한수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홱 돌렸다.

“지금 누가 노래를….”

“대, 대장. 앞쪽이에요.”

앞쪽이라고?

김한수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돌아가고, 두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실루엣을 발견했다.

크고 거대한 형태. 그런데 조금 이상하게 생겼다. 상체는 기이할 정도로 크지만, 하체는 평범한 인간의 다리였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실루엣이 가까워질수록 노랫소리도 커졌다.

‘사람인가?’

하지만 대체 누가?

짐꾼들은 모두 이곳에 있다.

쫓아오지 못한 학생은 죽었을 게 틀림없다.

설령 살아있다고 해도 몬스터들에게 처참하게 당해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 지원이라도 온 건가?’

지원을 요청한 적도 없는데?

꿀꺽.

전사가 어둠을 직시했다.

곧 전등 아래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등에는 커다란 가방을 잔뜩 메고 있었다.

“엥.”

“허.”

전사와 유현의 시선이 교차했다.

맥이 풀린 김한수는 그만 휘청거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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