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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앙~”
“학생! 여기 좀 도와줘!”
학교가 끝나고 유현은 의뢰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어린이집.
첫 의뢰는 어린이집 야간 교사였다.
“예~ 갑니다~”
교복 위에 앞치마를 매고, 유현은 어린이집 곳곳을 뛰어다녔다. 자다가 깬 아이들을 달래고, 놀다가 싸운 아이들 사이도 능숙하게 중재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수고했어요~ 학생 너무 잘한다~”
“하하, 감사합니다.”
“나중에 야간반 선생님 출근 못 하면 또 부탁해도 될까요?”
“돈만 주신다면 언제나 환영이죠.”
의뢰는 밤이 되어서야 종료됐다.
유현은 어플을 통해 의뢰의 보수가 들어왔는지 확인했다.
아카데미의 학생 계좌에 현금 6만 원이 추가되었고, 복지 포인트도 3포인트가 늘어있었다.
“음~ 돈 냄새~”
유현은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처박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총 네 시간의 근무로 얻은 6만 원.
거기에 복지 포인트도 얻었으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내일은 뭘 할까.”
유현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코를 떼고 어플로 의뢰 목록을 확인했다.
어린이집 땜빵이나 공사장 보조 같은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의뢰도 있는 한편, 던전 짐꾼처럼 능력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하나 같이 단순한 일밖에 없네. 등급이 낮아서 그런가.”
유현은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내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의뢰를 잔뜩 수주했다. 오늘 했던 어린이집 야간 교사처럼 일반적인 의뢰들이었다.
“그래도 돈은 적지 않게 주네.”
하나 아쉬운 건 재미가 없다는 점.
던전 사냥의 서포트를 한다거나, 짐꾼 같은 거라면 좀 더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런 의뢰면 돈도 더 주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아쉬움은 더 깊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 등급 테스트에서 최대한 위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의뢰도 많이 받고, 돈도 많이 벌지.
‘좀만 기다려라, 발칸.’
부모의 마음으로 키운 자신의 게임 캐릭터 ‘발칸’.
언젠가는 높이 비상할 발칸의 모습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 * *
“쌀이요!”
대전의 한 물류센터.
바쁘게 돌아가는 레일 위로 크고 작은 수화물들이 움직였다.
진한 땀 냄새가 풍기는 공간, 유현은 트럭 안에서 레일이 보내오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시발.”
조금 전 들어온 쌀 수십 포대를 쌓고 나니 저절로 숨이 턱 막혔다.
잠시 숨을 돌리고 싶었지만, 짐칸 내부까지 이어진 긴 레일은 계속해서 물건을 실어 왔다.
“존나 빡세네.”
뭣 모르고 선택한 상하차.
설마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아까 보니까 저쪽은 두 명이서 하더만.’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더 부려먹는 건가. 하여간 씹새끼들.
‘여기는 그만 와야겠다.’
혼자 이 짓을 계속했다가는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혼절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힘겹고, 고된 일이었다.
분명 마나를 사용하여 신체를 강화했음에도, 트럭 몇 대를 채우다 보니 몸에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후.”
결정을 내린 유현은 마지막 트럭을 가득 채운 뒤 곧장 튀었다. 어차피 돈은 시간이 지나면 계좌로 알아서 들어온다.
‘내일은 어린이집.’
지난 몇 주 동안 유현은 착실히 의뢰를 수행했다.
어린이집, 백화점, 공사장, 물류센터 등등.
일손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갔고, 어떤 일이든 확실하게 해냈다.
그 결과, 그의 평가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고작 F등급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지명 의뢰가 들어올 정도였다.
어린이집 역시 그를 지명하여 들어온 의뢰였다.
‘중간에 시간이 비는군.’
어린이집의 근무 시간은 늦은 저녁.
학교가 끝난 후 두세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쉬긴 아까운데.’
유현은 휴대전화를 꺼내 의뢰 목록을 뒤적거렸다.
그사이에 잠깐 할 수 있는 의뢰가 없을까.
아카데미로 이동하며 한참을 찾아보던 중, 의뢰 목록이 업데이트됐다.
그중 하나가 유현의 시선을 끌었다.
“던전 토벌대 짐 운반?”
던전 토벌대의 짐을 옮기는 단순한 일이었다.
유현은 내용을 찬찬히 훑어본 뒤 의뢰를 수주했다. 보수도 괜찮고, 무엇보다 시간대가 좋았다.
‘끝나고 바로 어린이집으로 가면 되겠다.’
***
하루가 지나고, 유현은 언제나처럼 학교를 나왔다.
의뢰가 있는 던전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산을 넘고 들판을 달리니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카데미 학생?”
“예.”
“빨리 왔네. 좀만 기다려.”
게이트는 들판 한가운데서 일렁거렸다. 테두리의 도형은 세모. 던전형 게이트라는 증거였다.
‘던전형 게이트는 처음 보네.’
던전 앞 팻말에 C라는 알파벳이 적혀 있다. C등급 게이트라는 뜻이었다.
‘토벌하는 사람들은 길드겠지?’
유현이 게이트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갖 중장비는 물론이고, 던전 토벌을 위해 모인 사람들까지.
갑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고, 평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외형만으로도 각자의 역할이 확실하게 구분됐다.
‘저 사람은 몬스터 조사관이고, 저 사람은 던전 기록관인가? 저 사람은 서포터고.’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사람들을 더 세밀하게 구별하던 사이, 짐을 가득 실은 1.5톤 트럭 몇 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짐 도착이요!”
“짐꾼 알바들 모이세요!”
대기하고 있던 짐꾼들이 우르르 트럭에 모여들었다. 유현도 그 뒤를 따라 이동했다.
트럭에는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실려 있었다.
마석을 담기 위한 커다란 가방부터 던전 내에서 사용할 온갖 종류의 물약과 투척 무기까지.
그뿐 아니었다. 타인의 특성이 담긴 특성 주문서에 던전 내부의 상태를 관측할 최첨단 장비까지 모두 동원되었다.
‘많긴 엄청 많네.’
아카데미에서 배우기를, C등급 던전형 게이트는 중상위 게이트로 분류되어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한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규모가 생각 이상이었다.
‘던전형 게이트는 토벌과 연구를 동시에 한다더니 진짜였네.’
던전형 게이트는 탐구의 대상이다.
내부의 환경이나 등장 몬스터들이 게이트마다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탓에 던전을 토벌하는 길드는 정부 기관과 연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빨리빨리 옮겨요!”
짐들은 빠르게 트럭 아래로 옮겨졌다. 유현 역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적당히 움직였다. 물론 그의 적당한 움직임은 타인이 보기에 괴물 같은 속도였다.
“이야~ 젊은 게 좋네!”
“아카데미 학생이야? 팔팔한데~”
“하하! 남는 게 힘입니다!”
얼마나 옮겼을까.
관리자가 소리쳤다.
“한 대 남았습니다!”
유현은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마지막 트럭을 가득 채웠던 짐들은 순식간에 게이트 근처에 정리됐다.
“쟨 뭐야?”
“되게 빠르네.”
멀찍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토벌대원들이 수군거렸다.
“아 씹. 쟤 때문에 출발 빨라졌다.”
“인마, 조용히 해. 대장 들을라.”
유현의 활약 덕분에 예정보다 빠르게 종료된 짐 정리. 그건 즉, 토벌대의 출발도 빨라짐을 뜻했다.
“집합!”
리더로 추정되는 갑옷 차림의 전사가 토벌대원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말한 내용은 짐 정리가 빨리 끝났으니, 빨리 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몇몇 토벌대원들은 유현에게 아쉬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유현은 구석에 앉아 게임만 할 뿐이었다.
“대장!”
그때, 보급을 담당하는 길드원이 토벌대의 리더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지?”
“그게…….”
작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
전사의 굵은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한 명이 없다고 진행 못 할 수준은 아니지 않나.”
“짐을 나누면 되긴 하지만, 단장님께서는 가능하면 최대한 기존 계획과 똑같이 가라고 하셔서요.”
“흠.”
토벌의 변수는 최소화하는 게 좋다.
전투 인원뿐만 아니라 그들이 데려가는 서포터 인원(짐꾼 등)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있나?”
“오늘 지원 온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볼까요?”
“몇 배든 원하는 대로 맞춰준다고 이야기해보게.”
보급 담당이 일용직으로 온 짐꾼들에게 뛰어갔다.
“혹시 내부짐꾼 지원하실 분 계십니까?!”
그 말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내부짐꾼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최후방에서 따라가지만, 던전에 들어간 이상 안전하다고 장담할 순 없다. 특히나 C등급의 던전형 게이트라면 더더욱.
“보수는 원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에라이, 몇 배를 준대도 사지로는 안 갈 거요.”
“맞아, 맞아. 누가 그 돈 더 벌자고 목숨까지 거나?”
일당을 더 준다고 해도 섣불리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입술을 깨무는 보급 담당.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그때.
“진짜 얼마든지 줍니까?”
휴대전화를 손에 쥔 유현이 보급 담당의 앞을 막았다.
“아, 예! 상식적인 선이라면 얼마든지 드립니다!”
“열 배 가능?”
“여, 열 배요? 무, 물론입니다!”
“열 한 배로 갑시다.”
“왜 더 올라가는...... 아, 아무튼 하신다는 거죠?”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배로 갑시다.”
“......예! 근데 혹시 학생이십니까?”
“학생은 안 됩니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보급원이 대장에게 소식을 알리러 뛰어갔다.
“학생이라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예, 혼자 지원했습니다.”
“혹시 아까 짐 잘 옮기던 그 학생인가?”
“예, 그렇습니다.”
대장 역시 유현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짐꾼들보다 몸놀림이 탁월했다.
“데려오게.”
“와 있습니다.”
대장의 시선이 보급원의 뒤로 향했다. 어느새 유현이 거기 서 있었다.
“자네군. 등급은 어떻게 되나?”
“F등급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몸이 굉장히 빠르던데.”
“운동을 좀 했습니다.”
대장은 운동 좀 한다고 그게 되나 싶었지만, 대충 넘겼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후방대에 속하니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하게.”
“예. 걱정 마십쇼.”
“혹시 모르니 내 탈출 스크롤을 주지. 이걸 찢으면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걸세.”
“대, 대장?”
탈출 스크롤의 가격은 비싸다.
당장 보급품에도 몇 장 없는 물건이었다.
“왜 그러나?”
“그걸 주면 대장은 어떻게 나옵니까?”
“나야 줄행랑 스크롤이 있잖나. 다들 그건 하나씩 가지고 있고.”
줄행랑 스크롤. 이동 속도 증가, 방어력 상승, 생명력 증폭 및 회복 등. 탈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효과가 담겨 있다. 말 그대로 달아나기 위해 만들어진 스크롤이었다.
“그, 그래도 탈출 스크롤이 없는 건….”
“오늘 짐꾼이 부족한 건 우리의 실책이네. 내가 이 정도 책임은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알겠습니다!”
대장이 유현에게 탈출 스크롤을 건넸다.
“저쪽 짐꾼 대열로 합류하게.”
“감사합니다.”
유현은 스크롤을 받아들고는 몸을 돌렸다.
‘멋있는 사람이네.’
책임감이 있는 리더였다.
갑작스레 참가하게 된 짐꾼의 목숨을 본인보다 더 소중히 하다니.
“어린이집은 취소해야겠다.”
유현은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고 의뢰를 취소했다. 급한 건 아니었는지 그럼 다음에 부탁하겠다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짐꾼 여러분들도 들어가겠습니다!”
대열의 후방. 짐꾼들이 저마다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큰 가방을 들고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유현도 가방을 등에 메고는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