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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37화 (3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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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하는 그간의 설움과 끔찍한 과거를 모두 부숴버렸다.

금태양의 외형은 회복 마법 덕분에 비교적 멀쩡했지만, 정신은 온전치 못했다.

폭력이 멈출 때까지 그는 온갖 말들을 지껄였다.

살려달라, 제발 그만 때려라, 내가 잘못했다 등등.

주시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주먹질에 박차를 가했다. 되려 성질만 돋운 셈이었다.

“좀 풀렸냐?”

“응!”

대답하는 주시하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그간 표정이 좋지 않았던 건 역시 금태양 때문이었다.

“잘했어. 더 참으면 병 된다.”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전이라면 이런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고마워, 현아. 다 네 덕분이야.”

“말로만?”

“뭐,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유현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아까 금태양을 살벌하게 패던 주시하는 어디 가고 또 평소의 순한 양으로 돌아왔다.

“농담이야.”

“아, 농담…… 그것보다 수행평가는 어떻게 됐어?”

“잘 끝났지. 몬스터 잡았고, 순서도 우리가 마지막이었으니까.”

두 사람은 금태양을 두고 보건실을 나섰다. 늦은 오후.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각. 복도는 고요했다.

미리 가방을 챙겨왔기에, 교실로 가는 대신 기숙사로 걸음을 옮겼다.

“너 능력은 이제 쓸 수 있는 거야?”

“바뀐 능력 말이지?”

주시하는 아까 전 몬스터의 공격을 막았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능력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듯 다른 느낌. 그 느낌을 다시금 재현했다.

주시하의 손바닥 위로 작은 검은색 구체가 나타났다.

“오. 다른 것도 한 번 만들어봐.”

두 사람은 기숙사로 걸어가며 여러 가지를 실험했다.

주시하가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크기, 거리 등. 그 결과. 몇 가지를 더 알아낼 수 있었다.

“마나가 흩어져서 너무 멀리까지는 안 되고. 마나 양이 부족해서 너무 크게도 못 만드네.”

“응. 맞아.”

“앞으로 열심히 연습해. 그럼 분명 상위 클래스에도 갈 수 있을 거야.”

“정말 가능할까?”

“당연하지.”

주시하의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나만 충분하면 어떤 형태든 만들 수 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으니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 기숙사로 갈 거지?”

“응? 그래야지.”

하위 클래스 기숙사와 상위 클래스 기숙사가 갈리는 갈림길.

유현이 주시하에게 자신의 가방을 내밀었다.

“그럼 이것 좀 가져가줘.”

“왜? 어디 가게?”

“응. 잠깐 들릴 곳이 있어서.”

유현은 평소처럼 오른쪽이 아닌 왼쪽 길로 향했다.

***

상위 클래스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고급 아파트 단지.

단출한 듯 세련되게 꾸며진 미니멀한 디자인이 단지 입구부터 돋보였다.

“A동 1102호였나.”

유현은 입구의 호출 시스템을 이용해 상대를 불렀다. 그냥 통과하려고 했으나 출입 시스템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와요.

입구를 차단하던 마나 실드가 사라졌다. 상당히 간단한 보안 시스템이었다.

‘굳이 이런 게 있을 필요가 있나?’

헌터 아카데미, 대한민국의 헌터 유망주들을 모아놓은 장소.

여긴 아카데미에서도 최강이라고 불리는 상위 클래스의 아이들이 모인 곳이다. 이런 곳에 침입할 만큼 간 큰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A동이... 어디야?”

비슷한 디자인의 높고 낮은 건물들.

단순히 거주용으로 건설된 건물 외에도 여러 시설이 있었다.

유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오락실과 영화관 등의 문화 시설들이 운영되는 건물이었다.

‘안 오면 알아서 찾으러 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유현은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적한 내부. 사람은 없는데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마치 유령 도시 같았다.

‘사람들이 여길 안 쓰나?’

1층을 돌아다니던 유현은 요란하게 번쩍이는 화면들에 시선이 끌려 오락실로 들어갔다.

오락실. 살면서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공간. 그냥 이런 곳이 있고 뭘 하는 곳인지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

홀린 듯 화면을 바라보던 유현은 주머니에 쑤셔둔 만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처음 느껴보는 이색적인 경험을 위해서라면 일주일 용돈쯤이야 얼마든 희생할 수 있었다.

“동전 밖에 안 들어가네?”

유현은 동전 자판기에서 동전을 바꿨다. 지폐를 넣고 동전이 잔뜩 나오는 것마저도 유현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뭘 해볼까.”

유현이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오락기를 물색했다. 양손에는 500원짜리 동전 20개가 들려 있었다.

‘총 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패스.

‘레이싱? 차라리 말 타는 게 재밌지.’

패스.

‘이건 나 혼자서 못하는 거고.’

패스.

이것저것 따진 끝에 유현이 선택한 건 인형 뽑기였다.

돈을 넣으면 재미 이외에 보상을 얻을 가능성이 있고, 다른 게임과 달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인형 뽑기 기계들 앞에서 유현은 어떤 인형을 뽑을지 고민했다. 작은 인형은 작아서 만족스럽지 않고, 큰 인형은 뽑기 어려울 것 같다.

‘이게 좋겠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동물 인형 뽑기. 다른 기계에 비해 가격 역시 합리적이었다.

‘500원에 2번.’

유현은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기계에 넣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감정과 함께 뽑기 기계의 스틱을 조작했다.

위잉-

“오오오!”

유현에게 인형 뽑기 기계는 신문물과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놀이. 그저 뒤에서 바라만 보며 부러워하던 게 전부였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조작감 죽인다.”

유현은 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버튼을 눌렀다. 인형 하나가 집게의 끄트머리에 걸렸다.

“오, 오!”

집게가 올라가며 일어난 반동.

아슬아슬하게 걸친 인형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아니 이게 왜...!”

파삭.

잠깐 힘을 줬을 뿐이다.

정말 약하게 힘을 줬을 뿐이었다.

그런데 스틱이 부서졌다.

“......”

유현이 멍하니 손을 내려다보았다.

반으로 부러진 조작 스틱.

즐겁던 마음이 순식간에 심란해졌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형 뽑기 기계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

유현은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흠칫.

바로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거기서 뭐 해요?”

편안한 차림의 한서희가 유현에게 다가왔다.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타이밍을 원하진 않았는데.

유현은 황급히 손을 뒤로 숨기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별거 아니야.”

“온다고 해놓고 여기서 뭐 해요? 너무 안 와서 길이라도 잃은 줄 알았네. 전화도 안 받고.”

“해, 핸드폰을 시하한테 주고 와서.”

코앞까지 다가온 한서희가 유현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요? 왜 그렇게 땀을 흘려요?”

“더워서 그래.”

그때였다.

위이잉.

뽑기 기계의 제한시간이 다 되어 집게가 자동으로 내려갔다.

“어? 뽑기 했어요?”

“......조금.”

“아직 소리 나오는데 기회 남아 있죠? 나도 해봐도 돼요?”

유현이 말릴 새도 없이 한서희가 뽑기 자리로 몸을 들이밀었다.

옅은 웃음기가 머물러 있던 그녀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뽑기 스틱이 있던 자리에 어색하게 머물러 있었다.

“......”

“내가 안 했어.”

유현이 주먹을 꽉 쥐어 스틱을 가루로 만들었다.

우수수 바닥에 떨어지는 스틱의 흔적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한서희의 예민한 신경까지 피해갈 수는 없었다.

“외부인은 물어내야 해요.”

“내가 안 했다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대신했다고 할 수 있어요. 기숙사 학생은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고요.”

“내가 부러뜨렸어. 그냥 탁 꺾었는데 팍하고 부러지더라.”

한서희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말 바꾸는 게 너무 빠르지 않아요?”

유현은 한서희와 함께 관리 사무실에 파손 신고를 했다. 그녀의 말대로 기숙사 거주 인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물론 도의적인 책임은 뒤따랐다.

한서희는 짧은 반성문을 적음으로 거짓말의 대가를 치렀다.

“고마워.”

“더 놀고 싶으면 놀아요.”

“나중에 또 오면 되지.”

두 사람은 함께 기숙사로 올라갔다.

유현은 바깥에서 말해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한서희는 기어코 그를 집안까지 이끌었다.

“정말 밖에서 이야기해도 상관없는데.”

“언제 어디서 누가 들을지 몰라요.”

“들어도 별문제 없는 이야기야.”

“어떤 정보든 누설돼서 좋을 건 없어요.”

그냥 전화로 이야기할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유현은 소파에 앉았다.

상위 클래스의 기숙사는 하위 클래스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와, 그냥 벽지도 그렇고 가구도 그렇고 죄다 고양이 천지네. 여기 다른 사람은 안 데려와?”

“네. 딱히 올 사람도 없는데요, 뭘.”

“역시 없구나.”

친구가.

유현은 뒷말을 삼켰다.

“차 마실래요?”

“아침 햇살.”

“그건 없어요.”

“안 마실래, 그럼.”

두 사람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한서희의 앞에 놓인 찻잔에서 뜨거운 연기가 피어올랐다.

“너 혹시 서혜빈이라고 알아?”

“......”

서혜빈의 이름이 나오자 한서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사람은 왜요? 또 만났어요?”

한서희는 서혜빈이 유현을 찾아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때 시원하게 차였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아주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훈련장에서 봤었는데 막 울더라고.”

“울어요? 왜요?”

“그건 모르겠고. 근데 네 이름이랑 내 이름이 그 친구 입에서 나온 건 기억난다. 엄청 소리 지르던데?”

한서희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훈련장에서 그랬다면 아무래도 그 날인 것 같았다.

자신이 서혜빈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던 그 날.

“미안해요. 내가 한 소리 했거든요.”

“뭐라고 했길래 그래?”

“그냥…… 똑바로 좀 살라는 식으로요.”

그 말에 유현은 자연스레 수긍했다.

서혜빈을 잘 알진 못하지만, 한서희의 말이 이해가 갔다.

“혹시 그 여자가 무슨 짓 한 건 아니죠?”

“했지. 사실 그것 때문에 왔어.”

유현은 아까 있었던 사건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는 범인인 건 확실하진 않은데 가장 유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단순한 사고는 확실히 아니죠?”

“흔적이 남아 있었어. 누가 개입한 건 맞고, 내 생각에는 그게 서혜빈 같아.”

“그럼 범인은 서혜빈 맞겠네요.”

“어떻게 확신해?”

“상대가 서혜빈이니까요.”

그리 논리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서희가 이렇게까지 확언하니 유현도 그 말을 믿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지? 자칫하면 다른 애들이 죽을 수도 있는 건데.”

“그 사람은 원래 그래요. 자기 기분 때문이라면 어떤 짓이든 할 사람이에요.”

유현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그럼 어떡하지?”

“일단 평소처럼 지내요.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상황을 지켜보죠.”

“오늘 일로 소용없다는 걸 알았으니 안 까불지 않을까?”

“그럴까요?”

유현이 팔짱을 끼며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나잖아.”

“......”

“그리고 만약에 또 그러면 반 죽여놔야지.”

한서희는 유현의 말이 농담이나 장난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서둘러 말했다.

“아뇨. 웬만하면 저한테 말해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차라리 그편이 덜 피곤할 거라고, 한서희는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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