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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36화 (3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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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고막을 강타하는 굉음에 주시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곧바로 눈을 떴지만, 시야는 여전히 눈을 감은 것처럼 어두웠다.

“뭐, 뭐지?”

주시하는 눈앞의 어둠을 응시했다.

우글거리는 작은 입자들.

경화를 이루던 그 입자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요동치던 입자들이 서서히 허공으로 흩어졌다. 주시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막았어……?”

멍청히 서 있던 주시하가 뒤늦게 밀려오는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마나 코어가 위치한 심장 부근이 조여오듯 아파 왔다.

전투의 영향으로 안 그래도 부족했던 마나가 한계까지 빠져나간 탓이었다.

“우으으-”

주시하가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몬스터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서 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

주시하가 털썩 쓰러졌다.

도망쳐야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기적처럼 발현한 새로운 능력.

그 한 번에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도와줘, 현아.’

몬스터의 육중한 손이 자신을 쥐어 잡으려는 듯이 다가왔다.

‘제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금태양을 향해 더 소리 지르고, 얼굴을 때리고,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모든 설움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혹여 반항한다면 더 철저하게 짓밟아 버릴 것이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할 수 있다.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몸이 기억하고 있다. 이 능력이라면 금태양의 반항 따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

그런 생각을 하니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몬스터의 손이 몸을 붙잡았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뭘 실실거리냐, 인마.”

눈앞은 눈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은 확실히 들렸다.

주시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와줬구나.”

“고생했다.”

몸을 감싸는 따뜻함 속에서, 주시하는 정신을 잃었다.

***

마법으로 주시하를 잠재운 유현은 게이트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몬스터가 뛰쳐나온 직후, 유현은 계단을 타고 콜로세움으로 진입했다.

그때 몬스터가 나오는 게이트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우어으.”

유현은 짓누르고 있던 몬스터의 팔근육을 더 강하게 압박했다.

손가락이 벌어지며 주시하가 땅 위에 떨어졌다.

“시하야!”

컨트롤 센터에 있던 안칠성이 뒤늦게 콜로세움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주시하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마법을 사용하려던 유현은 손을 거두어 몬스터의 가슴 팍에 쑤셨다.

푸확!

그대로 몬스터의 심장을 움켜쥐고, 터뜨렸다.

쿵.

뒤따라온 진행요원들이 끼어들 새도 없이 C등급의 몬스터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괘, 괜찮냐?”

안칠성이 어색하게 유현에게 물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선생이니 걱정을 안 할 수도 없고.

“시하는 괜찮아요?”

“일단 숨은 쉰다.”

“그럼 바로 돌아가요.”

안칠성이 자리를 뜨고, 진행요원들이 수군거리며 몬스터의 시체를 치웠다.

“C등급 아니야?”

“마, 맞아.”

“근데 어떻게 한 방에 죽어?”

“쟤가 걔잖아. 유현.”

그들은 유현을 돌아보았으나 유현은 줄곧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몬스터가 뛰쳐나온 출입구.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던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람이 있었나?’

유현은 진행요원들에게 물었다.

저곳에 원래 사람이 있는지.

“아뇨, 저긴 입고할 때 아니면 컨트롤 센터에서 관제하는 곳이라 웬만해서는 사람이 없어요.”

“그럼 잠깐 봐도 될까요?”

“네, 뭐.”

유현은 부서진 출입구를 통해 콜로세움의 내부로 들어갔다.

냉기가 흐르는 어두운 실내. 곳곳에서 몬스터의 냄새가 풍기고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의 눈이 푸른 빛을 발했다.

천천히 실내를 돌아다니며 흔적을 찾는 유현.

조사 끝에 몇 가지를 발견했다.

바퀴가 끌린 자국, 그리고 누군가가 능력을 사용한 듯 마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역시 누군가 있었군.’

더 추적하고 싶지만, 마나의 흔적이 중간부터 끊겨있다. 아마도 직접 지워버린 것 같았다.

‘흔적을 지울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야.’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벌인 사건.

하지만 왜?

그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자신이라면 몰라도 왜 주시하와 금태양을 노린 걸까.

‘누가 그런 걸까.’

곧장 떠오르는 사람은 없다.

학교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교내 인사라는 뜻인데, 학교에는 딱히 적이 없었다.

“흠.”

온갖 추측과 예상이 머릿속에서 난무했지만, 무엇하나 명쾌한 건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이유는 하나.

단순히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

‘그런 유치한 목적으로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한다니.’

만약 그런 거라면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

막 과제를 위한 훈련을 시작했을 때, 훈련장에서 마주치고 자신을 향해 소리쳤던 여자.

이름이 서혜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나마 그 사람이 유력하군.’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한서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

“......”

“아가씨.”

“......”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콜로세움 관중석의 구석.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공간에서 서혜빈은 벽을 바라본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하성진이 그녀의 등을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거,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

“그렇겠죠. 아가씨가 누구 죽일 정도의 위인은 아니니.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럼 네가 말리던가.”

“제가 말렸으면 제 말대로 하셨을 겁니까?”

서혜빈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건 아니지.”

“그럼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아, 몰라! 됐어! 이야기하지마!”

서혜빈이 머리 위로 손을 크게 휘둘렀다. 이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차라리 좀 다치는 게 나았어. 그래야 유현도 마음고생 좀 했을 테니까.”

“다치는 수준이 아니잖습니까.”

“너 자꾸 말대꾸할래? 조용히 해.”

“죄송합니다.”

하성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그래도 역시 조금 약한 놈으로 할 걸 그랬나.”

“차라리 그게 나았을 겁니다.”

“아니다. 그냥 더 강한 놈을 내보낼 걸 그랬어.”

“예? 아가씨?”

“결국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었잖아!”

하성진은 곧장 주시하를 떠올렸다.

몬스터의 주먹에 얻어맞으려는 순간 허공에 나타난 커다란 방패.

기존 정보에는 없었던 능력이다.

“대체 그놈은 뭐니? 그냥 적당히 얻어맞고 다치면 되는 건데 갑자기 이상한 능력을 쓰고 말이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능력이 경화라고 안 그랬어? 그리고 다른 애 능력도 이야기랑은 다르던데.”

과제 당일이 되어서야 깨달은 변수들. 거기서부터 이 계획은 틀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조사합니까?”

“됐어, 이제 생각 안 할래.”

“그럼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만약 일이 커진다면 아가씨 혼자 책임지는 거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서혜빈이 홱 고개를 돌렸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희번덕였다.

“자꾸 선 넘을래?”

“선 넘어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흥.”

***

오후의 햇살이 창살에 갈라지며 실내 곳곳으로 번졌다.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빛에 주시하가 눈을 찡그렸다.

“끄응.”

눈꺼풀이 조심스레 올라갔다.

여기가 어디지.

새하얀 천장, 새하얀 커튼, 새하얀 침대와 이불까지.

‘병원?’

주시하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기억을 되짚었다.

‘......붙잡혔을 때 현이가 와줬어.’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아마도 기절한 것 같았다.

“금태양.”

이름 석 자를 짓씹듯 되뇌었다.

그를 향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쁜 새끼.”

여전히 그놈을 생각하면 긴장된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덜했다.

이제는 그놈이 전처럼 무섭지 않다.

왜냐면 내가 더 세니까.

‘만나기만 해봐. 진짜 패버릴 거야.’

주시하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손의 떨림을 진정시켰다.

“일어났냐?”

그때, 커튼이 열리고 유현이 들어왔다. 손에는 빵과 우유가 들려 있었고, 손목에는 왜인지 밧줄이 묶여 있었다.

“현아!”

“몸은 어때?”

“괜찮은 것 같아. 딱히 다친 데도 없고.”

유현이 들고 있던 음식을 주시하에게 건네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잘했어. 그대로 맞았으면 전치 몇 십주는 나왔을 거야.”

“다 네 덕분이야.”

현이가 없었다면 자신은 무엇하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금태양에게 휘둘리고, 두려움에 휩싸여 메일을 보냈겠지.

“정말 네가 없었으면…….”

“내가 있어서 잘된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다 네가 노력한 거다.”

그 말에 주시하가 울컥했다.

“진짜 고마워.”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을 억지로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주시하를 보며 유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게 자신의 영향이라면 더더욱.

“야, 들어와라.”

유현이 손목에 묶었던 팽팽한 밧줄을 당기자 밧줄이 서서히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곧 커튼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밧줄에 상반신이 꽁꽁 묶여 간신히 다리만 움직이는 금태양이었다.

“......”

울컥거리던 주시하의 감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무기질적인 갈색빛 눈동자가 금태양을 응시했다.

“아, 안녕.”

금태양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이어지는 침묵. 유현은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건 주시하의 일. 자신이 끼어들 관계가 아니다.

‘표정 봐라.’

주시하의 얼굴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저럴 만도 했다. 자기 대신 죽으라고 밀어버렸으니까.

‘내가 알던 시하랑 다른 사람 같네.’

화나더라도 그걸 밖으로 표출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유현은 주시하의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그, 그렇게 보지마. 너였어도 나처럼 했을 걸? 솔직히 누가 그 상황에서 죽고 싶겠냐?”

“그래서 밀었어? 살고 싶어서?”

“당연하지!”

“난 죽어도 상관없고?”

이전과 다른 주시하의 태도에 금태양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조소를 머금었다.

“야,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이라도 했냐?”

“......뭐?”

“난 그냥 본능에 따른 것뿐이야~ 너였어도 그랬을걸?”

유현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것만은 세상의 진리였다.

“야, 내가 사과하랬지 남탓하라고 데려왔어?”

“아니, 씨빨~ 저 새끼가 꼴 받게 하잖아~”

유현이 웃음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뭘 잘못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야, 뭘 또 정색하고 그러냐? 사과하면 될 거 아니야.”

금태양이 허리를 굽히며 주시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야, 미안하다. 됐지?”

귓가에 속삭이는 시늉뿐인 사과.

버티고 있던 주시하의 인내심이 뚝하고 부러졌다.

빠각!

주시하가 금태양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있는 힘껏 박치기했다.

유현이 눈을 크게 떴다.

“야, 야, 무슨......”

“이 개새끼 내가 가만히 안 둬.”

휘청거리던 금태양이 바닥에 쓰러졌다. 당황한 유현을 뒤로한 채, 주시하는 침대에서 내려와 금태양의 몸을 깔아뭉갰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으아…….”

주시하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분노의 감정이 아드레날린을 폭주시켰다.

“이 천하의 나쁜 새끼! 하수구 시궁창 같은 새끼! 쓰레기장에서도 안 받아줄 새끼!”

“푸흡.”

주시하의 욕설에 유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도덕적인 욕설이라니. 주시하 다웠다.

“흐하하하하!”

온갖 욕설을 내뱉은 주시하가 크게 웃었다. 욕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한 바가지씩 사라졌다.

여전히 주먹은 떨렸지만, 거기 담긴 건 두려움이 아니었다.

희열(喜悅).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던 상대를 흠씬 두들겨 패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빠각!

폭력이 시작됐다.

유현은 말리는 대신 손목의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금태양에게 약한 회복 마법을 걸었다.

‘오래오래 패라, 시하야.’

주먹질과 발길질은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꽂혔다.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멍이 생겼다. 회복 마법 덕에 그 과정이 수없이 반복됐다.

금태양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온종일 맞았다.

보건 교사가 돌아오기 전까지, 양호실에는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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