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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35화 (35/219)

35

“와아! 잘한다!”

“죽여버려!”

F-3반의 조별 과제가 한창인 콜로세움. 한 남자가 관중석의 그림자에 숨어 장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재밌어 보이네.”

수준 낮은 몬스터인데도 불구하고, 그 싸움이 제법 치열하다.

하성진은 한동안 그들의 전투를 구경하다가 몸을 돌렸다.

그는 계단을 통해 콜로세움의 내부로 들어갔다.

불이 어둡게 켜진 복도.

특성인 그림자를 활용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콜로세움의 몬스터들을 관리하는 인원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하성진은 태연하게 그림자에 숨어 그들의 옆을 스쳤다.

‘여긴가?’

하성진이 미리 준비해 온 카드키로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내부.

온갖 몬스터의 냄새가 한 곳에 뒤엉켜 악취가 되었다.

“크르릉.”

사방에서 몬스터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성진은 몬스터가 잠들어 있는 울타리 하나를 끌었다. 바퀴가 부착되어있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가 걸음을 멈춘 건 F반의 과제를 위해 모아둔 몬스터 울타리 앞이었다.

남은 몬스터는 두 마리. 다섯 개 조가 테스트를 마치고 이제 두 개 조가 남은 상황이다.

하성진은 마지막 울타리를 장치에서 빼낸 뒤, 끌고 온 울타리를 장치에 장착했다. 울타리에는 ‘C’라는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외부에서 신호가 오면 곧장 몬스터가 뛰쳐나갈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걸까.”

하성진이 울타리의 카드키를 해제하며 중얼거렸다.

일단 명령을 받았기에 군말 없이 수행했지만,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

***

조별 과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유현은 생각보다 고전하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F반의 수준을 체감했다.

평범하게 특성을 활용해 죽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온갖 전략과 술수를 동원해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치고 빠지기는 기본이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연막탄 같은 것들을 활용하기도 했다.

규정상 문제는 없으니 상관없었다.

다만 웃음이 나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재밌네.”

다섯 번째 조의 전투가 실패로 끝나고, 관리 인원 몇 명이 나와 경기장을 깨끗이 치웠다.

다음으로 여섯 번째 조가 내려갔다.

반대편 입구에서는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린, 대형 견 크기의 몬스터가 네발로 기어 나왔다.

“둘 다 슬슬 준비해라.”

금태양과 주시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슬슬 몸에 약효가 도는지 금태양의 표정이 아까보다 좋아졌다.

“어제 말해준 거 다 기억하지?”

“쟤가 탱하고 내가 딜한다. 맞지?”

“그래.”

주시하의 능력은 경화가 아니다.

정확히는 마나의 고체화.

단순히 피부만을 단단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마나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은 제대로 못 다루니 이전처럼 방어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최대야.’

훈련 기간동안 최대한 설명하고 가르쳤지만, 발전은 없었다. 기껏해야 허공에서 검은 입자가 잠깐 모였다가 사라진 게 다였다.

‘공격은 금태양, 방어는 주시하.’

중간중간 어그로가 금태양에게 튀겠지만, 그때마다 어그로를 되찾는 게 주시하의 역할이다.

“시하.”

“......”

“야, 뭐해?”

“어, 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주시하가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은 눈가를 좁혔다. 요새 주시하는 지금처럼 넋을 놓는 일이 잦았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

“아, 아니. 그냥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뭔데?”

지금이라도 말할까. 잠시 망설이던 주시하는 이내 얼버무리며 웃었다.

“별거 아니야.”

“그래, 알았다.”

미심쩍었지만, 본인이 말하고 싶지 않아 하니 유현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단,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갔다.

“네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게 오늘 시험에 영향이 가면 안 돼.”

“응.”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진짜 괜찮아.”

말은 괜찮다고 하나 표정은 심각하다. 유현은 주시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힘들지?”

주시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유현은 어느 상황에서든 해줄 수 있는 말이자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로 했다.

“능력은 바뀐 것 같지, 뭔가 되는 것 같다가도 안 되지. 많이 힘들 거야.”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당장은 변화가 없어도 노력하면 어느 순간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냥 계속 해. 포기하지 말고, 하기만 해.”

“노력...”

허탈한 웃음이 주시하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노력한다고, 무조건 바뀌는 건 세상에 없다.

당장 자신만 봐도 그렇다.

그간 밤낮으로 노력했지만, 바뀐 능력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니.

금태양에게 반항? 그건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못 할 걸 아니까.

“그래. 노력 해볼게.”

주시하는 생각과는 다른 말을 뱉었다. 거짓말이었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금태양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변화한 능력을 다룰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노력은 언제나 무의미했다.

“......”

어딘가 일그러진 주시하의 미소.

많은 것이 감춰진 웃음에 유현은 조용히 속삭였다.

“한심한 새끼.”

또박또박한 음절이 주시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뭐, 뭐?”

당황한 주시하가 말을 더듬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보며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너 대체 뭐가 문제냐?”

“......”

과제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여섯 번째 조는 이전 조들보다 빠르게 몬스터를 공략하고 있었다.

경기장의 상황을 확인한 유현은 손을 크게 휘둘러 주시하의 어깨를 내리쳤다.

“윽!”

“귓구멍 열고 잘 들어.”

주시하의 고막에 유현이 잔소리를 때려 박았다.

설교는 한참 동안 이어졌고, 여섯 번째 조가 성공적으로 적을 죽이고 나서야 유현이 주시하의 귓가에서 고개를 들었다.

“너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자신 없으면 나를 믿어. 나는 네 가능성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너를 믿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주시하가 입술을 달싹였다.

대답하고 싶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야, 가자.”

금태양이 주시하를 끌고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곧 돔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 사람. 주시하의 등은 유달리 초라해보였다.

‘잘하려나.’

온갖 쓴소리를 다 했지만,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건너편 출입구의 어둠 속에서 몬스터가 걸어 나왔다.

오버헤드 홉 고블린.

다른 고블린에 비해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F+ 등급의 보스급 몬스터였다.

“힘내라.”

지금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이제는 두 사람의 선전을 바랄 뿐이었다.

***

고요한 장내.

주시하는 긴장한 눈빛으로 적을 마주했다. 격한 심박이 전신에 울렸다.

“야, 탱킹 잘해라.”

금태양이 주시하와 거리를 벌렸다.

주시하는 경화를 활용해 양팔의 피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걸어 나가자 투 헤드 홉 고블린이 주시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양손에는 커다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정신 차리자.’

넓은 보폭으로 달려오는 고블린을 보며 주시하가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잡생각을 떨쳐내고는 유현과 함께했던 훈련들을 떠올렸다.

요동치던 심장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크어어!”

주시하가 왼팔을 들어 고블린의 몽둥이를 막아냈다. 강한 충격, 통증은 없다.

곧장 두 번째 공격이 날아들었다.

마찬가지로 반대편 팔을 들어 공격을 방어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수없이 반복한 수련의 결과였다.

빠각!

공격을 방어하는 사이 사각지대에서 파고든 금태양이 공격을 성공시켰다.

묵직한 가시가 달린 주먹이 그대로 옆구리에 적중한 것이다.

“크어!”

고블린이 모로 꺾이며 떨어져 나갔다. 금태양의 주먹에 초록색 피가 묻었다.

“우웩.”

금태양이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야, 한 번 더 간다.”

주시하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금태양이 뛰쳐나갔다.

고블린이 막 몸을 추스르고 페이스를 되찾은 상황.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아오, 등신아. 시하가 먼저 가야지, 네가 먼저 가면 어떡하냐.”

나동그라지는 금태양을 보며 유현이 이마를 짚었다. 주변에서 비웃음이 터졌다.

그럴 줄 알았다느니, 저래서 게임이 되겠느냐느니 하는 둥, 온갖 비꼼이 뒤따랐다.

“그래도 둘이서 저 정도면 선방 아냐?”

사이사이에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주위의 비난 속에 묻혔다.

‘빨리 일어나라.’

바닥에 쓰러진 금태양은 복부를 부여잡은 채 뒹굴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아픈 공격은 아니었는데 엄살이 심하다.

“태양아! 일어나!”

고블린은 몽둥이를 들고 금태양에게 향하고, 주시하가 급히 달려와 그사이를 막아섰다.

쿵!

주시하가 공격을 방어하자 고블린이 그 반동에 오히려 나가 떨어졌다.

시간을 번 주시하는 빠르게 몸을 돌려 금태양을 일으켰다.

“아오, 아파라.”

“괜찮아?”

“야, 맞기 전에 퍼뜩 튀어 와야지. 맞고 나서 튀어 오면 무슨 소용이냐? 하여간 멍청해서는.”

“아, 아니. 네가 갑자기 뛰어갔잖아…….”

“그래서 뭐. 내 잘못이라고?”

금태양이 주시하의 어깨를 붙잡으며 살벌하게 말했다.

주시하의 등뒤로 고블린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금태양의 시선은 오직 주시하에게만 향했다.

“묻잖아! 내 잘못이냐고!”

금태양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날아오는 고블린의 공격.

무방비하게 서 있던 주시하는 그대로 몽둥이에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커헉!”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듯한 격통.

눈앞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밝아졌다 어두워 졌다를 반복했다.

주시하는 한참을 구르다가 멈췄다.

힘겹게 들어 올린 눈꺼풀 너머로 금태양이 쫓기는 게 들어왔다.

“......개자식.”

주시하가 저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사람이 저 정도로 이기적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대체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저런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진짜 짜증 나.”

그동안 금태양이 자신에게 했던 모든 일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교복에 담배 자국을 내던 일, 단체로 몰려와 경화(硬化)를 부숴보겠다며 때리던 일, 빌려 간 만화책을 선생님한테 뺏긴 일 등등.

“야! 뭐해, 등신아! 빨리 와서 도와줘!”

금태양의 고성에 주시하가 움찔했다. 조금 전 일었던 짜증이 다시 사그라들었다. 몸과 정신에 새겨진 두려움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의 사고를 컨트롤했다.

“한심하다….”

주시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더 생각했다가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크윽.”

고통을 참고 적을 향해 뛰어갔다.

옆구리의 상처로 제법 많은 피를 흘린 고블린. 달리는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퍽!

뒤로 따라붙은 주시하가 주먹으로 고블린의 등을 때렸다. 어그로가 다시 주시하에게 돌아갔다.

“크어어!”

전황은 다시 계획대로 되돌아왔다.

주시하가 방어하고, 금태양이 공격했다. 번번이 튀는 어그로도 주시하는 자신에게 다시 가져왔다.

“나이스!”

이어지는 전투 끝에, 두 사람은 고블린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고했다.”

“......”

주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과제는 성공적으로 끝마쳤지만, 마음은 좋지 않았다.

“......금태양.”

우물쭈물대던 주시하가 입을 열었다.

“왜?”

“...아니야, 아무것도.”

변하는 건 어렵다. 아니, 힘들다.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그냥 이대로 살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과거를 모두 잊으면 금태양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참으면, 나만 참으면 다 편하다.

그때였다.

쾅!

굉음과 함께, 콜로세움의 입구가 부서졌다. 지금껏 등장했던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 몇 배나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가 경기장에 난입했다.

“뭐, 뭐야?”

당황하던 것도 잠시.

두 사람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몬스터가 대지를 울리며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시하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속도가 빠르다. 도망치기 전에 붙잡히든 부딪치든 할 것이다.

-무조건 당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주시하의 몸이 거칠게 앞으로 밀렸다. 힘 없이 바닥을 구르는 주시하.

간신히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니 금태양이 달아나고 있었다.

주시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경악은 곧 분노가 되었다.

“너는… 진짜…….”

조금 전 자신의 생각을 후회했다.

과거를 잊으면 친구가 될 수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저딴 놈과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친구는커녕, 조금이라도 가까이에 있고 싶지 않았다.

저주하고 싶다. 욕하고, 때리고 싶다.

“......시발.”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저런 새끼한테 아무런 말도 못 한 채로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주시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이성을 뒤로한 채 소리쳤다.

“이 씨발새끼야아아아아!”

쿵! 쿵!

지금 들리는 게 심장 소리인지 몬스터의 발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주시하는 거친 호흡을 반복하며 몸을 돌렸다.

“우워어어어어!”

온몸이 두려움으로 벌벌 떨려왔다.

하지만 이렇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버티자. 버텨보는 거다.

바깥에는 사람들이 있다.

선생님이 있고, 그보다 강력한 자신의 친구 유현이 있다.

현이라면 분명 녀석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을 터.

한 번만 버틴다면, 무사할지도 모른다.

‘버텨보자.’

최후의 배짱. 죽음의 문턱에서 쥐어 짜낸 마지막 용기.

오롯이 적과 마주 선 채 유현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네 능력은 어떤 형태로든 구축할 수 있어. 단순히 피부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아까 유현이 했던 말들도 뇌리에 스쳤다.

-너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자신 없으면 나를 믿어.

주시하는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 수 있어.”

노력했다. 고작 2주라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 시간 만큼은, 전 세계의 누구보다도 노력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막는 거야.’

여기서 새로운 능력을 발현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막을 수 있다. 막아야만 한다.

“우어어어어!”

코앞까지 다가온 적.

눈앞으로 몸통만한 주먹이 날아든다.

그 순간, 사고가 가속하고,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찰나 속, 주시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맞는다.

─막는다.

두 가지 사고가 겹치는 순간.

스위치가 켜지듯 본능이 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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