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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몸에 땀이 흐르고만 마는 더위였다.
그 정도의 열기 속에서는 특성 훈련조차도 고되고 힘들었다.
참다못한 금태양은 결국 훈련장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왜 주말에 훈련장에 나와 있는가─ 하는 처지의 비관부터.
왜 주말 훈련장에서는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으며, 왜 여름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리도 더울까- 하는 주변 환경의 원망까지.
“......”
하지만 금태양은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뒤통수로 쏟아지는 유현의 시선이 너무나 따가웠다.
“쉬어?”
“아, 아니. 너무 힘들어서 잠깐-”
“푸쉬업.”
금태양이 작게 한숨을 쉬며 바닥에 엎드렸다. 이 이상의 호소는 소용이 없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악마 같은 놈.’
훈련을 시작하고 일주일.
그 시간은 온전한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마나 코어의 단련으로 비롯된 마나 양과 밀도의 증가, 거기에 능력 자체에도 발전이 있었다.
주먹에서만 돋아난다고 생각했던 가시가 다른 부위에서도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유현의 설명과 상세한 교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금태양은 푸쉬업을 끝내고 유현을 돌아보았다. 오늘도 주시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시하 역시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피부 위에 단단한 갑옷을 만드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갑옷이 입자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유현이 주시하에게 몸에 무언가 달라진 게 없냐고 의미심장하게 물어본 지 며칠 만의 일이었다.
‘그게 뭘까?’
어떤 형태를 이루려는 듯이 허공에서 꿈틀거리던 까만색 작은 알갱이들.
결국에는 대기 중의 마나로 산화했지만, 변화가 생긴 건 분명했다.
그게 긍정적인 변화일지, 아니면 하등 쓸모없는 변화일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었다.
“둘 다 이리 모여봐.”
유현은 두 사람을 불러모았다.
“오늘부터는 전투 훈련을 할 거야.”
앞으로 조별 과제 당일까지 일주일 남짓.
여전히 마나의 수준은 부족하지만, 언제까지고 마나 단련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마나보다 급한 건 실전 감각을 익히는 일. 아카데미에서도 실전 훈련을 하긴 하나 그걸로는 턱도 없다.
“내가 몬스터 역할을 할 거야. 너희는 날 상대로 싸우면 돼.”
훈련 로봇의 움직임은 단순하다.
그런 수동적인 움직임으로는 기간 내로 몬스터에 대항할 힘을 기를 수 없다.
“둘이서 날 쓰러뜨리면 돼. 간다.”
“자, 잠깐…….”
준비되지 않은 두 사람을 향해 유현이 파고들었다.
웃옷을 벗은 금태양의 상반신에 가시가 솟아났다. 등과 팔에 작은 크기로 돋아난 가시들.
“속도가 너무 느려.”
유현의 주먹이 금태양의 복부를 강타했고, 금태양은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발은 멈추지 않고 주시하에게 향했다. 적당한 힘이 실린 발차기가 흑색 입자에 둘러싸인 복부에 닿았다.
갑옷이 충격을 흡수하고 주시하는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반응 속도 굿.”
물 흐르듯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주시하의 복부에 머물던 입자가 사라지고 팔뚝에 갑옷이 생겼다.
퍽!
유현의 주먹이 주시하의 팔에 막혔다.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특성의 발현 속도. 훈련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압!”
주시하는 방어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갑옷을 주먹에 두르고 유현을 공격했다.
공격은 빗나갔지만, 공방의 전환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했다.
─휘익!
회피 직후, 유현이 한 번 더 몸을 틀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주먹이 그대로 몸을 스쳤다.
“쳇.”
기습이었는데 통하지않다니.
금태양은 주먹의 가시를 거두었다.
“이번엔 진짜 맞을 뻔했는데?”
“아직 한 방 남았어.”
금태양이 여유롭게 웃는 유현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유현은 거리가 있어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갑자기 주먹에서 커다란 가시가 솟구쳤다.
유현이 황급히 몸을 던졌다.
생각지도 못한 변칙적인 공격이었다.
‘제법인데.’
그 뒤로도 전투는 계속됐다.
2:1의 전투였으나 두 사람은 유현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네.”
훈련이 종료된 뒤, 유현이 총평했다. 처음치고는 잘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둘이 마무리 운동하고 있어. 가서 음료수 사 올 테니까.”
유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던 금태양이 주시하에게 말했다.
“뒤질래?”
“......어?”
“내가 들어가면 너도 뒤에서 들어와야지, 왜 쉬고 있냐?”
“아, 아니 쉰 게 아니라 잠깐 힘들어서 숨을…….”
“힘들어서? 나중에 힘들다고 나 뒤지게 내둘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뭐가 그런 게 아니야 시발새끼야! 예전에 좀 괴롭혔다고 이러냐? 어? 사과했잖아!”
주시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야기하면 좀 들으라고 소리치고 싶다. 욕만 나불거리는 주둥이에 주먹을 꽂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없다.
그에게 당했던 과거가 여전히 행동을 주저하게 했다.
‘변하고 싶다.’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려왔다.
조금의 용기가 있다면, 생각한 대로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몇 번을 생각해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현이한테 말할까?
그러면 손쉽게 해결해줄 텐데.
‘......그건 싫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다. 당장은 방법이 없어도 언젠가는 생기지 않을까.
“야, 씹냐?”
“......”
“하하. 이 새끼 봐라. 너도 내가 좆으로 보이지? 어?”
“......미안해.”
“하, 이 새끼 사과해서 괜히 나 예민한 사람으로 만드네. 됐어, 새끼야.”
주시하는 푹 고개를 숙였다.
며칠 전 유현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능력이 변했을 수도 있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달라진 게 없냐고 물었다. 그때는 달라진 게 없었다고 답했지만, 어제 느닷없이 변화가 생겼다.
언제나 피부 위에만 생기던 검은 입자들이 허공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듯, 변화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는 걸까.
그렇다면 자신도 언젠가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갑자기 능력에 변화가 생긴 것처럼, 이전에는 없던 용기가 갑자기 생기기를, 주시하는 간절히 소망했다.
***
시간은 착실히 흘러 수행평가 당일이 되었다.
전날까지 고된 훈련을 겪은 금태양과 주시하는 지친 얼굴로 집합 장소에 들어왔다.
먼저 등교한 학생들이 두 사람을 보며 수군거렸다.
“뭣 하러 저렇게 열심히 하나 몰라.”
“그러니까~ 어차피 두 명이잖아? 힘도 못 쓰고 끝날 게 뻔한데.”
소란스러운 훈련 덕에 17번 조는 훈련장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단순히 고성이 오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 훈련 과정이 지나치게 거칠다는 점 또한 유명세에 박차를 가했다.
오죽하면 누군가는 훈련이 아니라 고문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하, 저 새끼들.”
금태양이 주변 아이들을 돌아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훈련을 시작하고 난 이후로 금태양의 심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지금 그야말로 자신감에 가득 찬 상태였다.
이전에는 비루했던 능력이 더욱 강해졌으니 지금은 반의 누구와 싸우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전처럼 괴롭힘에 겁먹고 저자세로 나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괜히 말썽 일으키지 마라.”
교실에 들어선 유현이 금태양의 머리를 짓눌렀다.
유현을 돌아보며 금태양이 투덜거렸다.
“몸이 너무 힘든데 오늘 제대로 할 수 있는 거 맞아? 내가 이래서 전날은 쉬자고 했잖아.”
유현이 손을 오므려 금태양의 금색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힘들 단 놈이 새벽에 염색하고 자빠졌어?”
“이건 내 시그니처야. 금색 없는 금태양은 죽은 몸이랑 다름없다고.”
금태양이 염색을 마무리 짓는다고 새벽까지 버티는 바람에 유현 역시 숙면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잠든 사이에 신체 피로 해소에 탁월한 성능을 가진 물약을 먹이려 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먹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효과가 나타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머리카락 쥐어 뜯어버리고 싶네.’
근래 조금 붙어 있었다고 친근하게 대하는 게 꼴같잖다.
당장 시하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머리털을 싸그리 뽑아버려도 모자라다.
참고 있는 건 단순히 과제 때문이었다. 이 과제가 끝나면 다시는 말도 섞지 않으리라.
“다들 왔냐? 왔으면 바로 가자.”
곧 안칠성이 들어와 미리 몸을 풀던 아이들을 인솔했다.
셔틀을 타고 도착한 곳은 아카데미 내에 마련된 특수 시설이었다.
‘저번에 왔던 곳이네.’
지난 번 테스트 심사 당일, 힘을 증명하기 위해 왔던 그곳이었다.
이름은 콜로세움.
원형으로 된 경기장의 중앙에는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커다란 투명 돔이 씌워져 있었다.
“다들 착석.”
돔과 가까운 관중석. 안칠성이 학생들을 앉혔다.
“시작에 앞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주마.”
처음으로 겪는 몬스터와의 실전.
학생들 사이로 고양과 기대와 걱정이 섞여 흘렀다.
“상대는 E-등급 보스 몬스터고, 17조는 F+등급이다.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하겠다고 외쳐라. 시험을 중단할 테니까.”
시험 순서는 앞번호부터 차례대로였다. 아이들이 저마다 방어구를 입고, 무기를 챙겼다.
“다들 방심하지 말고. 그리고 이제야 실전 수업을 한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라. 불만이 있으면 등급 테스트에서 상위 등급을 노려.”
2학년 중반부에나 시작된 실전 수업.
다른 클래스의 학생들에 비하면 아주 늦은 시기였다.
이는 클래스별 수업 커리큘럼이 다르기에 생기는 일이었다.
“슬슬 들어가라. 반대편 출입구를 통해서 몬스터가 나올 거야. 아, 참고로 죽이면 만점이고, 못 죽이면 빵점이다.”
첫 번째 조 아이들이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안칠성 역시 경기장을 컨트롤 하는 컨트롤 부스로 이동했다.
머지않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묵직한 종소리가 실내에 울리는 것과 함께 반대편의 출입구가 열렸다.
“우으으─”
경기장 위로 걸어 나오는 몬스터.
[레드 허니 윙]
두 발과 두 날개를 가진 E-등급의 보스급 몬스터. 닭이 인간이 되면 저런 모습일까.
레드 허니 윙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달려간다. 미리 움직임을 정해놓았는지 아이들이 제각기 다른 움직임을 펼친다.
선두에 하나, 중간에 하나, 후방부에 하나.
그렇게 선두와 적이 격돌하며, 조별 과제가 비로소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