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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33화 (33/219)

33

훈련을 시작한 다음 날.

정규 수업이 끝난 직후 세 사람은 훈련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하냐?”

금태양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어제 훈련장 폐쇄 시간이 될 때까지 체력 훈련을 반복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다. 온몸에 남은 근육통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걱정 마. 오늘은 특성 위주로 훈련할 거니까.”

특성 훈련이라고 해봤자 별 것 없다.

능력의 정확도를 높이거나 마나 코어를 단련하는 것뿐이다.

아카데미까지 올 수준이니 기본은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혹시 몰라. 특성의 새로운 활용법을 알게 될지.’

지금까지는 몰랐던 특성의 새로운 활용. 자신이라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가능성은 적지만.’

움직이기 쉬운 옷으로 갈아입은 뒤, 유현은 두 사람을 앞에 세웠다.

“일단 능력부터 써봐.”

“그게 다야?”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들은 의아했지만, 유현이 시키는 대로 했다.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유현의 눈동자를 보며 금태양은 능력을 사용했다.

유현은 두 사람을 응시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기저에 깔린 마나를 찬찬히 훑었다.

[관통의 눈]

피사체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법. 대상이 생물일 때는 엑스레이처럼 신체의 내부가 보이며, 마나의 움직임 역시 확인할 수 있다.

서클의 범위를 초월한 마법이지만, 최적화가 잘 되어있어 마나의 소모량은 많지 않다.

‘우선 통로와 코어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파악해야지.’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훈련해도 결과는 나아지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니까.

가만히 두 사람을 살피던 유현이 눈을 빛냈다.

둘 다 통로의 형태가 기이했다.

특히 주시하가 눈에 띄었다.

‘무슨 마나 통로가 저렇게 생겼냐.’

능력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통로는 깨끗하지 않고, 마나의 움직임 역시 일정치 않다.

어느 구간에서는 지나치게 빠르고, 어느 구간에서는 지나치게 느렸다.

그것 외에도 온갖 문제가 산재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한 가지였다.

‘통로의 뒤틀림.’

일반적으로 마나 통로는 혈로처럼 체내에 존재한다. 그러나 핏줄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형태는 아니다.

하나의 통로가 길게 이어지는 형태.

그 형태가 뒤틀린 탓에 여러 장애가 일어났고, 마나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다.

‘이건 손을 써야겠는데.’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다. 문제를 수정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당장 할 순 없으니 일단 내버려 두고.’

다음은 금태양.

녀석의 마나 통로도 주시하만큼은 아니지만 이상하다. 보통 마나 통로는 전신에 두께가 균등한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금태양은 유독 상체의 통로가 두꺼웠다.

“야, 금태양. 너 다른 곳에는 가시 안 생기냐?”

“다른 데, 어디?”

“뭐, 등이나 팔.”

“안 돼. 어렸을 때 해봤어.”

“한 번 해봐, 다시.”

“안 된다니까 그러네…….”

금태양이 유현의 말대로 마나를 움직여 보나 외적인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유현은 그 순간 문제를 포착했다. 마나가 잠깐 꿈틀거렸을 뿐 체외로 빠져나오지 않은 것이다.

“제대로 한 거 맞아?”

“맞는데?”

“......이 새끼는 대체 학교 다니면서 뭘 배운 거야.”

“뭐?”

“아니, 하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너무나 기본적이고 지극히 기초적인 문제였기에 유현은 오히려 막막했다.

“귓구멍 열고 잘 들어.”

유현이 설명을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알아들었다고 입으로 나불댄 것과는 달리 설명이 끝난 이후의 재시도도 허사로 돌아갔다.

“진짜 멍청하네.”

“......”

“뇌가 있으면 좀 써라, 새끼야.”

설명을 못 알아듣는 게 주시하였다면 이렇게 거칠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금태양.

자신의 절친을 괴롭혔던 요주의 인물. 지금이야 조금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다지만, 살갑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네 능력은 상체라면 어디에서든 가시가 돋아날 수 있어. 그럴 마나도 충분히 있고.”

“근데 왜 안 되지?”

“설명해준 내용대로 계속해봐. 오늘 안에 안 되면 좀 거친 방법을 쓸 거니까.”

금태양이 능력을 지금보다 다채롭게 쓸 수 있다면 전력에 도움이 될 터.

우선 제대로 된 능력을 발현하는 게 우선이다.

“시하, 넌 우선 훈련용 로봇이랑 싸워.”

“알겠어!”

공용 훈련장 구석에 있는 훈련용 로봇. 허수아비처럼 제자리에 고정된 형태지만, 제법 날카로운 공격을 날리기도 하고, 공격도 잘 피한다.

주시하의 훈련 상대로는 적합했다.

‘일단 이 정도만 해둘까.’

유현은 그 뒤로 훈련을 지켜보았다.

사실상 감시였다.

금태양이 쉬려고 하면 옆에 가서 다시 그를 몰아세웠고, 주시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마나가 고갈되었다고 쉬면 훈련의 의미가 없다. 코어는 근육과 같은 존재. 고갈 났을 때 쥐어짜서 고통을 줘야 더 성장하는 것이다.

“나 죽을 것 같아.”

“나도.”

“안 죽어.”

두 사람의 엄살과 함께 둘째 날의 훈련도 종료됐다.

그날 새벽.

하위 클래스의 기숙사.

2층 침대 세 개가 놓인 6인실에서 유현이 눈을 떴다.

“......”

모두가 잠든 걸 확인한 유현은 조심스레 2층 침대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녹슨 철제 사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로 아래 침대에는 주시하가 있다.

반복된 훈련으로 고된 일과를 보낸 탓에 주시하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유현은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했다.

체내의 마나가 퍼지며 지정된 영역에 소리를 차단했다. 혹여나 발생할지 모르는 소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음으로, 옷장에 손을 넣어 조끼 속 아공간을 뒤적였따. 거기서 각기 다른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회색빛 탁한 액체가 담긴 약물.

여러 효과가 있지만, 쉽게 효능만 설명하자면 마나 통로를 완전히 초기화할 수 있다.

온갖 약초와 희귀한 재료들을 모조리 혼합하였으며, 유현 역시 몇 병 가지고 있지 않다.

출처는 엘프. 본래는 마법사를 죽이기 위하여 만든 약물이지만, 해독제와 함께 복용하면 안전하다.

‘하여간 엘프 새끼들. 별 걸 다 만들어.’

유현은 커다란 병에 해독제와 약물을 혼합했다. 회색 액체가 빛을 내더니 곧 초록색 액체로 뒤바뀌었다.

그 액체를 주시하의 입을 벌려 먹였다. 막힘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액체. 곧 목구멍 깊숙이에서 옅은 빛이 뿜어졌다.

약물이 성공적으로 흡수되었음을 의미했다.

“흐으…….”

주시하가 작은 신음을 토해냈다.

해독제를 이용해 중화했지만, 미세한 고통이 수반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좀만 버텨라.’

유현이 주시하의 몸에 손을 올렸다.

마나 통로가 융용에 들어간 유리처럼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체내에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다.

서로 다른 마나가 물과 기름처럼 평행선을 그리길 잠시.

서서히 약물이 퍼지며 두 마나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진다. 그리고 온갖 방향으로 뒤틀렸던 마나 통로가 차츰 제자리를 되찾아갔다.

‘좋아.’

굳어지지 않은 마나 통로가 쉼 없이 꿈틀거렸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마나 통로의 모양을 제대로 잡아줘야 한다.

“후.”

유현이 정신을 집중해 마나 통로의 모양을 다잡았다. 융용 뒤 유리를 성형하듯 서서히 마나 통로를 굳혔다.

뚝.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이불 위로 떨어졌다.

만에 하나 집중이 흐트러져 통로의 형태를 잘못 잡는다면, 통로는 그 상태로 굳어져 평생을 간다.

잘못 형성된 통로는 주시하에게 이전보다 심한 마나의 간섭을 초래할 수 있다.

‘천천히.’

유현은 호흡을 최소화하고 통로의 컨트롤에 심혈을 기울였다.

손길이 닿은 부분을 시작으로 불완전하던 통로가 굳기 시작했다.

“으으.”

주시하가 신음을 흘렸다.

통로가 굳어질수록 통증은 더 강해질 것이다.

유현은 마나 통로에 신경을 집중한 채 고통을 덜어 줄 경감 마법을 사용했다.

주시하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끝났다.”

창밖으로 들어오던 달빛의 각도가 바뀌었다. 침대를 비추던 그림자도 어느새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큰 변화가 있으면 좋으련만.’

유현은 깊은숨을 내쉬며 바닥에 앉았다. 줄곧 참아왔던 호흡을 한 번에 들이쉬고 뱉었다.

***

같은 시각.

헌터 아카데미 부지에 세워진 최신식 아파트. 상위 클래스의 기숙사로 쓰이는 아파트의 최고층에서 누군가의 고성이 빠져나왔다.

“아아아아아아! 진짜 짜증나!!”

서혜빈이 침대에 누워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소리 지르고, 이리저리 뒹굴다가 결국에는 손에 들린 인형에 폭력을 행사했다.

퍽-

곰인형의 눈가가 움푹 패이고.

퍽-

복부의 실밥이 터졌다.

테디베어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서혜빈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헉, 헉.”

곰인형과 한바탕 씨름을 벌인 그녀는 땀을 잔뜩 흘리고 나서야 폭력을 멈췄다.

“둘 다 가만히 안 둘 거야.”

그녀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건 며칠 전 훈련장에서 있던 일 때문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계속.

반드시 복수해서 두 사람이 울상짓는 모습을 보겠다고, 서혜빈은 다짐했다.

‘지들이 그렇게 잘났어?’

유현을 생화로 영입하겠다는 계획은 안중을 떠난 지 오래였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서혜빈은 유현을 포기했다. 가질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줘도 안 가져.’

자신에게 해괴한 말을 지껄이는 그런 몹쓸 녀석 따위, 얼마나 강하더라도 필요 없다.

어차피 한서희에게 갈 생각도 없어 보이니 굳이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나를 골려놓고 멀쩡히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해?’

괘씸하다.

괘씸하기 그지없어서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그놈을 이 학교에서 내보내고, 무릎을 꿇려 싹싹 빌게 만들 것이다.

잘못했다고, 제발 다시 학교에 다니게 해달라고.

‘그러면 얼굴을 걷어차 줘야지.’

너 같은 놈은 학교에 다닐 가치가 없다며 매도하고 삶의 나락까지 떨어뜨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스스로 깨닫겠지.

자기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꺄하하하하하!”

잔뜩 구겨진 얼굴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슬슬 연락 올 때가 됐는데.’

훈련장에서 유현과 만난 이후, 하성진에게 유현의 정보를 모아오라고 시켰다.

단순히 학교 데이터베이스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개인의 사사로운 것들까지.

누군가를 괴롭히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다.

‘일단 가볍게 시작해볼까.’

등급 테스트까지는 두 달 정도 남았다. 그리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촉박하지도 않다. 가볍게 골려주는 것쯤이라면 얼마든 할 수 있다.

-띠링!

스마트 워치의 알람이 울렸다.

손목을 흔들어 작은 화면에 담긴 내용을 홀로그램으로 띄운다.

하성진에게서 도착한 유현의 정보였다.

‘조별 과제?’

서혜빈은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F반에서 곧 조별 과제가 있고, 거기에 몬스터가 나온다는 것.

유현 역시 참가하지만, 몬스터와 마주하지는 않는 듯하다. 밸런스가 맞지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유현과 함께 참가하는 건......’

금태양과 주시하.

‘주시하는 유현이랑 친해?’

하. 그런 남자에게도 친한 친구가 있다니.

그녀에게 도착한 정보는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담고 있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들까지 말이다. 시험이 어디서 이루어지고,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등.

그것들을 모두 읽은 서혜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면 되겠네.”

직접적으로 피해가 가지는 않지만, 충분히 효과적인 작전이 생각났다.

작은 데미지라도 차근히 누적시킨다면 결국에는 무너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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