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31화 (31/219)

31

“흐아.”

일요일. 그 다음은 월요일.

지구로 돌아와 다시금 깨달은 요일의 개념.

처음에 기억해냈을 때는 좋은 체계라고 생각했다.

판대륙에서는 없었던 효율적인 날짜 관리 시스템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구에서의 생활이 이어질수록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빌어먹을 월요일.”

일하는 날에 이름을 정해놓은 건 왜일까. 그날의 고통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일까.

아직 찾아오지 않은 고된 순간을 왜 진작부터 인식하고 괴로워해야 하는지 유현은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요일의 개념이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그때 찾아올 고통을 상상하며 괴로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들 미친 게 틀림없어.’

유현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교문을 통과했다.

학교 밖에서 이틀을 보내고 온 탓인지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에 다 들었다.

“현아!”

“여.”

클래스 건물 앞에서 주시하와 마주친 유현은 함께 교실로 올라갔다.

“잘 보내고 왔어?”

“그래. 잘 보냈지.”

여기저기 반강제로 끌려다녔던 스펙타클한 주말이었다.

“참, 현아. 이거.”

주시하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유현에게 건넸다.

“뭔데 이게?”

“저번에 보고 재밌었다는 만화책 다음 권이야.”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수업시간에 주시하의 만화책을 빌려 읽었다.

판대륙에서 일어날 법한 일 같으면서도 이질적이고 신선한 내용이라서 재밌게 봤었다.

‘엘프도 나오고, 드워프도 나오고 그랬었지.’

그때는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판대륙을 다녀온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판대륙에 갔다왔다기에는 디테일이 부족했다.

엘프들은 하나 같이 성격이 좋고, 인자하다. 게다가 드래곤이 인간의 수발을 들기도 했다.

정말 판대륙에 다녀왔다면 이런 식의 묘사를 할 리가 없겠지.

‘인간의 상상력이란.’

가본 적 없는 세계까지 얼추 비슷하게 묘사하다니.

“고맙다, 잘 읽을게.”

“응! 나중에 그거 말고 다른 것도 가져 올 테니까 읽어봐.”

유현은 만화책을 가방에 넣었다.

이미 가방에는 소설을 비롯한 이런저런 책들이 들어 있었다.

‘세상에는 참 재밌는 게 많아.’

판대륙에서 즐기던 오락과 문화와는 차원이 다른 재미.

소설, 만화, 음악, 게임 등.

유현은 판대륙에서 보낸 천년 동안 그것들을 잊고 지냈다는 게 몹시도 안타까웠다.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곳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지구에서 기막힌 역작 하나를 만들어냈을 텐데.

“맞다, 현아. 다음 달에 하는 등급 테스트 오늘부터 신청받는다던데 신청할 거야?”

교실로 들어온 두 사람.

주시하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등급 테스트?”

“응. 나는 신청 하려고.”

“뭐야 그게?”

“선생님이 설명한 거 안 들었구나.”

주시하가 친절하게 등급 테스트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등급을 바꾸는 시험이었다.

“다들 할 것 같은데 너도 해봐.”

“흐음.”

F반 아이들의 테스트 신청 비율은 교내 최고 수준이었다.

최하위 등급인 F등급.

등급 테스트에서 아무리 나쁜 결과를 낸다고 해도 떨어질 곳이 없다.

따라서 실력이 되지 않는 아이들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신청하는 것이다.

“할까?”

“당연히 해야지! 너는 하면 무조건 올라갈걸?”

“그럼 다른 반 되겠네?”

“내가 못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유현은 고민했다.

굳이 다른 교실로 갈 생각은 없었다. 등급이 올라간다고 해도 똑같이 졸업하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주시하와 멀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자신을 제외하면 친구가 없는 주시하. 또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좀 더 고민해볼게.”

“그래!”

두 사람은 대화를 끝내고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유현은 만화책을, 주시하는 게임기를 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F-3반의 담임 안칠성이 교실로 들어와 조례를 시작했다.

“자, 오늘은 전달사항이 하나 있다.”

화이트보드 위.

거친 손이 투박한 글씨를 적었다.

-조별 수행 평가-

“수행평가가 돌아왔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졌다.

안칠성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 수행평가는 실전이야. 작년처럼 PPT 만들고 그런 짓은 안 해도 된다.”

탄식은 환호가 되었다.

실전. 줄곧 이론에 관해서만 공부해왔던 아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조는 3인 1조. 우리 반이 스물하나니까 딱 7조가 나오겠군. 자 하나씩 나와서 번호 뽑아라.”

안칠성이 가져온 상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설명에 따르면, 서로 같은 번호를 뽑은 학생들끼리 짝이 되는 방식이었다.

“쌤~ 이러면 유현이랑 같은 조 애들은 완전 날먹 아니에요~?”

“그건 걱정하지 말고 뽑아라.”

유현의 존재는 F반의 이레귤러였다.

다들 유현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같은 조가 되기를 소원했다.

“번호는 전부 뽑고 맞춰볼 거니까 미리 종이 펼치지 마. 그리고 현아, 넌 마지막에 뽑아라.”

모두의 차례가 지나가고, 유현의 앞에 상자가 도착했다.

그가 상자에 손을 넣었을 때,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다들 열어봐.”

아이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친한 친구 혹은 전투 특성을 가진 아이와 같은 조가 된 이들은 환호했고, 그 반대는 침울했다.

“유현 너도 펼쳐봐라.”

교실의 소란이 순간 잦아들었다.

“17번이요.”

“뜨아아악!”

“아악!”

17번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절망했다.

“17번 뽑은 사람?”

안칠성이 아이들을 훑었다.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각각 하나의 손이 올라왔다.

“헤헤.”

한 명은 유현의 앞자리, 주시하.

“......”

다른 한 명은 맨 뒷자리에 쥐죽은 듯 박혀 있던 금태양이었다.

유현에게 당한 이후, 무리에게 완전히 배척당한 금태양.

유현과 같은 조가 된 게 금태양과 주시하라는 걸 확인한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모두 교실의 주류를 벗어난 존재였다.

“선생님~ 쟤네 두 명은 점수 공짜 아니에요~?”

“맞아. 유현이 주먹 한 번 휘두르면 몬스터 다 죽겠다!”

안칠성이 손뼉을 쳐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내가 다 생각이 있다.”

안칠성이 세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17번 조는 주시하와 금태양 두 사람만 참가한다.”

“저는요?”

“넌 제외야.”

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애들은 셋이서 하는데 우리는 둘이서 하란 소리예요?”

“대신 더 약한 몬스터를 보내주마. 그리고 너도 완전히 뺄 순 없으니 새로운 역할을 주마.”

“새로운 역할이요?”

“넌 두 사람을 가르쳐라. 그게 제일 합리적이잖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라면 할 수 있다.”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유현의 귓가에는 확실히 들렸다.

-차라리 유현 없는 게 나았네.

-주시하랑 금태양 둘이면 좆박겠는데?

-병신 둘이 끼리끼리 놀겠네.

-구병신이랑 신병신, 병신 파티네 킥킥.

-둘이 싸우나 안 싸우나 내기할래?

사방에서 들려오는 험담과 비웃음.

유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조별 과제까지 D-14.

방과 후.

유현은 주시하와 금태양을 데리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순순히 따라오네.’

연신 싱글벙글 웃는 주시하와 달리 금태양은 내내 어두웠다.

웃지도 않고,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는다. 보고 있으면 표정이 사라진 것 같다.

“시하야, 너 쟤랑 같이해도 정말 상관없냐?”

금태양의 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같아 불안했다.

“괜찮다니까?”

“정말?”

“응!”

주시하는 모두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괴롭힘은 없었고, 예전처럼 무언가를 빌려달라고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럼 상관없는데.”

왠지 불안하단 말이지.

유현은 말없이 따라오는 금태양을 돌아보았다.

시선은 바닥에 둔 채 좁은 보폭으로 걷는다. 무표정한 얼굴은 혈색이 빠지면 죽은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후.”

유현은 한숨을 쉬며 금태양에게 다가갔다.

좋든 싫든 일단 같은 조가 됐다.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안한 마음은 있지만, 계속 저렇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야, 금태양.”

“......응.”

“너 아까 다 들었지?”

“......”

뒤에서부터 들려오던 뒷담화들.

주시하라면 몰라도 금태양이라면 들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는 건, 금태양의 마음이 완전히 꺾였다는 뜻이었다.

“그거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

“......딱히 상관없어.”

유현이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허세 부리던 놈이 한 번 당한 걸로 이 꼴이 나다니.

머리도 갈색으로 염색하고 얼굴 곳곳에 있던 피어싱도 모두 사라졌다.

예전처럼 불량한 기색은 없고 이제는 소심하고 수수하게 변해버렸다.

“답답하네.”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잖아.”

“닥쳐.”

“미안.”

이런 와중에도 남탓하는 걸 보면 본성은 확실히 되먹지 못한 놈이다.

다만 주위의 시선에 짓밟혀 자신을 감추고 있을 뿐.

“너 혹시 시하한테 복수한다거나 그럴 생각은 없지?”

“없어.”

“진짜?”

“또 그러면 너한테 죽을 거 같거든.”

“잘 아네.”

셋은 탈의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뒤 공용 훈련장으로 향했다.

넓은 실내. 게이트에서 나온 특수한 광물로 내부가 처리된 훈련장에는 이미 여러 학생이 능력을 다루고 있었다.

유현은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과제 내용은 들었다시피 둘이서 몬스터를 잡는 거야. 아마 다른 애들보다 약한 몬스터면 F+등급 수준의 보스 몬스터가 나오겠지.”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천진하게 묻는 주시하를 보며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로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론에 따르면 같은 등급의 보스 몬스터를 잡는 데 적합한 인원은, 이상적인 구성원이 모인 파티라는 가정하에 4인이다.

아슬아슬하게 3인까지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17번 파티의 구성은 두 사람.

‘서포팅 되는 놈만 있었어도 해볼만 하겠는데.’

주시하의 능력은 피부를 단단하게 만드는 경화.

공격적인 활용도 가능하지만, 방어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넌 능력이 뭐였지?”

“가시.”

“아, 고슴도치. 똥 싸는 선인장.”

금태양은 주먹에서 가시가 돋는다.

이쪽은 공격 쪽이 좀 더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글렀네.”

어중간한 전투력을 가진 두 가지 특성. 전략을 짜기에는 모호한 특성이었다.

무작정 공격적으로 나가기에는 공격력이 부족하고, 방어를 취하며 상대의 틈을 노리기에는 방어력이 부족하다.

‘어쩐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 유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예 답이 없는 건 아니다.

아공간에는 판대륙에서 모아온 신비한 물건과 먹을 것들이 아주 많으니까.

정 안 되면 그런 식의 도핑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후폭풍.’

사용하고 찾아올 반사작용을 이들이 버틸수 있을지 의문이다. 후유증이 적은 것들은 큰 효과가 없으니 줘봤자 크게 의미가 없고.

“일단 너희 수준이 어떤지부터 파악해보자. 마나 탈탈 털어서 특성을 최대한 사용해봐.”

주시하의 한쪽 팔이 두꺼워졌다.

새까만 갑옷을 착용한 듯한 모양새.

이내 다시 본래의 팔로 돌아왔다.

‘한쪽 팔, 지속시간은 5초.’

좋게 말해도 형편없다.

1초씩 끊어서 방어에 활용한다고 해도 다섯 번이 한계. 이것저것 다 따져보면 방어에 쓰기에는 어렵다.

“다음, 금태양.”

금태양의 양손에 뾰족뾰족한 가시가 서서히 돋아났다. 원뿔 형태의 적당한 크기. 공격하다가 부러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이게 최대야?”

“응.”

가시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지속시간은 대략 15초 남짓인가.

경화 능력과는 달리 즉발이 아니기에 1초씩 끊어 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15초 역시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좆됐네.”

전투 특성을 가졌지만, 전투에 활용하기에는 아주 형편없는 수준.

이걸 전투에 쓸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어지간한 계획으로는 불가능했다.

“너네 이번 조별 과제 통과하고 싶어?”

“당연하지!”

“나는 뭐, 딱히.”

열정이 넘치는 주시하와 달리 금태양은 힘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쥐어박고 싶지만, 주시하를 위해서라도 참았다.

“태양아, 보기 좋게 성공해서 너 욕한 애들 엿 먹여야지.”

“별로 생각 없어.”

유현에게 깨진 이후 삶이 바뀌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놈들은 더 이상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비웃고, 욕하고, 때리며 자존심을 짓밟았다.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그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오던 일이라는 걸 깨달은 뒤로는 반항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쥐죽은 듯 살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생각난 김에 말해야겠다.”

금태양이 주시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미안했어.”

“어…… 어? 뭐, 뭐가?”

“만화책이나 게임기 빌려 가서 늦게 준 거, 아무 이유도 없이 욕하고 때린 거. 얼마나 힘든지 당해보니까 알겠더라”

주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유현을 향해 도움의 눈빛을 보내지만, 유현은 어깨만 으쓱였다.

“괘, 괜찮아!”

“때리고 싶으면 때려도 돼. 난 맞아도 싼 놈이야.”

“아, 아, 아니야! 정말 괜찮아!”

금태양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때는 날카로웠던 눈매가 아래로 축쳐져 있다.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너 정말 착한 놈이구나.”

“그, 그래?”

“그런 놈한테 나는 이상한 짓이나 하고. 미안하다. 정말로.”

주시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쩔쩔거리다가 어색하게 금태양을 토닥였다.

“허허.”

유현은 금태양을 응시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남에게 하던 몹쓸 짓을 자기가 당했다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건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세상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그래도 일단은 그냥 넘어갔다.

저게 겉치레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진다면 환영이다.

2인 1조로 치러야 하는 시험.

능력의 강함이나 활용은 둘째치고 팀워크가 우선되어야 했다.

물론 팀워크가 좋아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아직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야, 금태양.”

“......왜.”

“너 진짜 아무 생각 없냐?”

“뭐가?”

금태양이 고개를 돌렸다.

“계속 욕 처먹으면서 어영부영 살 거야?”

“말했잖아. 상관없다고.”

“아닌 것 같은데.”

“진짜야.”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바뀌어.”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너보다는 잘 알지. 너 지금 그냥 무서워서 숨고 있는 거잖아.”

금태양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것뿐. 다음은 없었다.

분노 어린 눈동자를 보며 유현은 피식 웃었다.

“봐. 내 말이 맞지?”

“......”

“계속 그렇게 도망만 칠 거냐?”

“그럼 안 되냐?”

“그게 되는지 안 되는지를 왜 나한테 물어봐?”

금태양은 입을 다물었다.

유현의 말 대로였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정말 상관없나?’

솔직히 말해서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한때 친구였던 이들이기에 괴롭힘은 더욱 괴로웠다.

그렇지만 참았다.

참을 만했고, 언젠가는 모두 끝날 일이니까.

‘......앞으로 1년 반.’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이어질 괴롭힘을 자신은 정말 참을 수 있을까. 조금 더 깊이 있게 고민해 본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괴롭힘은 더 심화될 것이다. 그것들을 정말로 다 참아낼 수 있을까.

“......”

참을 수 없다. 참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주먹을 휘두를 수도 없다. 보나 마나 자신이 질 게 뻔하니까.

“갚아주고 싶어.”

“어떻게?”

“.......모르겠어. 근데 녀석들이 말하는 것처럼 허무하게 끝나고 싶진 않아.”

달라진 눈빛을 보며 유현은 입꼬리를 올렸다.

대화의 중간중간 나오던 금태양의 가시 돋친 언어들.

거기서 주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을 가두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사람이란 게 쉽게 바뀔 리가 없지. 특히 너 같은 놈이.’

생활 양식이나 습관이라면 주변의 영향을 받아 바뀔지 몰라도 그 인간의 본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특히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놈이 그렇다.

‘일단은 봐준다.’

언젠가 다시 본성을 드러낼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그걸 확실히 짚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일단은 한배를 탄 셈이니까.

그리고 금태양 역시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생각 없이 행동하진 않을 것이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이걸로 금태양의 의욕까지 되찾았다. 앞으로 남은 건 훈련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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