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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8화 (28/219)

28

주말 저녁.

아카데미의 일과가 끝나고 유현은 짐을 챙겨 교문을 나섰다.

하이패스 테스트로 획득한 복지 포인트와 한서희에게 빌린 포인트를 합하여 주말 2박 3일의 외박권을 구매했다.

“지금 시간이면 어머니는 가게에 계실테고.”

외박을 나온 건 가족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왕 나간 김에 해결까지 하면 좋고.

유현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어머니의 가게로 향했다.

텅 빈 식당, 어머니가 어지럽힌 내부를 치우고 계셨다.

바닥을 나뒹구는 깨진 병과 곳곳에 보이는 혈흔. 척 보기에도 문제가 심각했다.

“......”

유현은 어머니의 청소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저런 모습을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참 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청소가 끝났다. 줄곧 기다리던 유현은 그제야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그를 발견한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뜬다.

“아들, 웬일이야?”

“외박 나왔어요. 주말동안.”

어머니가 다가와 유현과 포옹했다.

“바로 집으로 가지 가게에는 왜 들렀어?”

“시간이 많이 늦었잖아요. 같이 들어가려고 왔죠.”

어머니의 손이 유현의 등을 두드렸다.

“우리 아들 착하네. 바로 갈까? 어차피 슬슬 문 닫으려고 했는데.”

“네. 근데 손 다치셨어요?”

유현이 어머니의 손을 살폈다.

아까 병을 치우다가 다친 건지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그것 외에도 군데군데 상처가 많았다.

“주방에서 베였나보다.”

어머니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뱉었지만 유현은 곧장 눈치챘다.

어머니는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은 분이셨다.

“줘보세요.”

어머니의 손을 맞잡은 유현이 마법을 사용했다.

[회복]

마나가 체내를 빠져나와 손에 있는 상처 부위들에 스며들었다.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었다.

그것 외에도 흉터들이 조금씩 옅어졌다.

“와, 이게 그 마법이라는 거구나? 우리 아들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대단한데?”

“별 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기는. 고마워~”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아셨죠?”

어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 뒤에 자신은 모르는 고통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에 유현의 가슴이 미어져 왔다.

“밖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을래? 금방 정리하고 나올게.”

유현은 식당을 나왔다.

자정이 지난 시간.

재개발 구역과 접경한 곳인 탓에 거리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유현은 그 어둠속에서 수많은 시선을 느꼈다.

골목길 사이, 빈 건물의 창가, 재개발 공사 현장 안쪽 등.

가로등조차 제대로 비추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적어도 열 명은 넘는 인원.

이유가 뭘까. 왜 어머니를 감시하고 있는 걸까.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어쩌면 저들이 가족들이 처한 모든 문제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갈까?”

그때, 어머니가 나왔다.

유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한 놈 잡아서 심문하면 좋으련만.’

어머니와 함께 있는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저들을 그냥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유현은 상대를 쫓기 위한 마법을 사용했다.

[추적]

몸에서 빠져나간 마나가 투명한 형태로 뒤바뀌며 그들 중 하나에게 달라붙었다.

***

어머니와 함께 집에 돌아온 유현은 어머니가 잠든 뒤, 동생의 방에 들어가 몰래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에 대해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한서희에게 들은 것보다 더 자세했다.

‘어머니의 가게에는 웬 깡패 같은 놈들이 자꾸 찾아오고, 아버지는 몇 번이나 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리고 동생은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했고.

한두 번이라면 몰라도 모두에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딱히 요구하는 건 없다고 했어.’

돈이 필요했다면 돈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면, 그들이 원하는 건 하나. 가족들의 일상이 망가지는 것.

‘후환을 남길만한 일은 없었는데.’

돈을 빌렸던 조폭은 모두 시체가 되었다.

적어도 그들은 아닐 터.

그렇다면 누구일까.

생각해보지만, 예상 가는 사람이 없었다.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어두운 새벽.

유현은 베란다를 통해 집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집 근처의 노외주차장이었다.

“여긴가.”

추적 마법을 쫓아온 유현이 주차장을 두리번거렸다.

멀찍이서 비춰오는 가로등이 전부인 어둑한 주차장.

구석에 승합차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앞창은 가림막으로 가려두었고, 다른 창문은 짙게 선팅되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똑똑.

유현이 운전석의 창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아래로 창문이 내려갔다.

“뭐야?”

험악한 인상의 대머리가 유현을 향해 불량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유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차내를 살폈다.

의자에 앉아 잠든 여러 명의 사내. 모두 검은 양복을 입은 채였다. 그들 사이로 각목이나 쇠파이프 같은 연장들도 눈에 띄었다.

“너 뭐냐고 새끼야.”

사내가 유현을 거칠게 밀었다.

하지만 되려 밀려나는 건 사내였다.

‘무슨 사람 힘이….’

사내가 유현을 응시했다.

곧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 할 말 없으면 가지?”

눈을 피하는 사내.

유현이 씩 웃었다.

“너 나 아는구나.”

“......”

“누구야? 누가 시켰어?”

유현은 아무런 답도 듣지 않았지만, 그들이 가족들을 괴롭혔음을 확신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사내는 태연한 척 연기하며 창문을 다시 올리려 했다.

하지만 유현의 손이 올라가려는 창문을 억지로 붙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을 것 같아?”

대머리가 침을 꼴깍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압박감. 최대한 비밀스럽게 뒤따라왔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대체 언제 들통난 거지?’

이유는 상관없다.

어찌 됐든 미행을 긍정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길이 겹친 것뿐이겠지.”

대머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듬지 않고 말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단순히 길이 겹쳐?”

“그래. 우리가 애초에 당신을 따라다닐 이유가 없잖아?”

사내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넘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상대의 이름은 유현.

형님의 동생을 망친 장본인.

이 사람에게는 걸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라고 들었다.

설령 들키더라도 발뺌하라고 명령받았다.

‘강한 사람이라고 했어.’

등급은 F지만, 최근 헌터 아카데미에서 치러진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길드 사이에서도 유명한 걸 보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일 것이다.

“이제 가지? 잠 좀 자게.”

사내가 말했지만, 유현은 창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사내는 긴장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유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네가 여기에 있는 게 단순한 우연이라는 거지.”

“그, 그래.”

유현이 코웃음 쳤다.

“최근 들어 우리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

대머리는 유현의 기세에 짓눌려 입을 다물었다.

눈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저 눈을 피하면 금방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것 같다.

“식당에서 깡패놈들이 행패를 부리거나, 공사장에서 평소에는 생기지도 않던 사고가 반복되거나, 너희처럼 양복을 입은 놈들이 동생 하굣길을 뒤따라온다거나.”

“......”

“누군가 사주한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어. 그런 와중에 내가 너희를 만난 게 정말 우연일까?”

차내에서 뒤척임이 느껴졌다.

유현이 풍기는 흉흉한 기운에 잠들어 있던 사내들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대머리의 사내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워, 워, 원래 우연이라는 게 그런 거지.”

“그게 우연이라면, 너희가 여기서 죽는 것도 우연이겠군.”

“...뭐?”

유현이 창문을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기이한 소리와 함께 차의 문짝이 조금씩 뜯어졌다.

“선택해라. 누가 시킨 짓인지 말할 건지. 아니면 죽을 건지.”

“......”

사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죽는다는 말에는 진심 어린 살기가 담겨 있었다.

‘...진짜 죽는다.’

목전에서 죽음을 느낀 대머리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음지의 발을 들이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지금껏 겪었던 어떤 상황보다 더 원초적인 공포를 선사했다.

인지를 초월한 아득한 존재가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듯한 느낌.

대머리의 전신이 공포감으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형님?”

그때, 뒤쪽에서 뒤척이던 사내 하나가 일어났다.

그 목소리에 도화지처럼 하얘졌던 대머리의 머릿속에 이성이 돌아왔다.

겁먹어선 안 된다. 아니, 겁을 먹을 수는 있지만, 명령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애들 깨워.”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그게 이 바닥이지.”

득실보다는 자존심을 생각하는 곳.

법은 안 지켜도 형님의 말은 곧 죽어라 받아드는 세계.

그게 바로 음지의 생활방식이었다.

“연장 챙겨서 내려라!”

차내에서 고성이 울렸다.

잠들어 있던 사내들이 재빨리 일어나 연장을 챙겨 들고 하차했다.

숙련된 군인처럼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

“입 닥치고 있어.”

동료들과 함께 선 대머리는 두려움을 털어냈다.

아카데미의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

애초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지만, 싸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발뺌해봤자 상대는 계속해서 파고들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형님이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진다!”

대머리가 소리쳤다.

옆에 선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긴장한 얼굴로 무기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형님이 준비할 시간을 벌어라!”

“예!”

“당식이! 형님한테 문자 보내 놨지?”

“하차 전에 보내고 내렸습니다.”

“좋아! 그럼 다들 전력을 다해 싸워라!”

“와아아아아!”

사내들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는 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내들을 보며 유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꼭 내가 나쁜 놈이라도 된 것 같네.’

조금 전 녀석들의 대화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형님이라고 불리는 배후가 있다는 것.

분명 그 녀석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일 것이다.

“죽어라아아!”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의 마나가 일렁였다. 상대 역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이들이었다.

누군가는 쇠몽둥이에 가시를 둘렀고, 누군가의 이마에는 커다란 뿔이 자라났다.

그 외에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능력들이 보였다.

‘봐줄 필요는 없겠지.’

유현은 소음이 주차장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소음 차단 마법을 사용했다.

[사일런스]

바람 소리조차 잠잠해진 주차장.

당황하는 사내들 사이로 유현이 파고들었다.

“커헉!”

유현의 주먹이 최전방에 선 사내의 복부를 강타했다.

아우성을 내지른 사내가 그대로 주차장 벽에 부딪혔다.

‘마법은 최대한 아껴두자.’

대머리의 반응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놈들의 보스는 자신의 신상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가족들을 건드렸다는 건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전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개새끼가!”

유현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패거리들. 전투는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상대는 유현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하지 못한 채 모두 기절했다.

“이런 씨X.”

유현은 차에 기댄 채 쓰러져 있는 대머리에게 다가갔다.

“계속 싸울 거냐?”

대머리가 유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설령 지더라도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형님 말씀대로 강하군….”

“그놈은 어디에 있지?”

“......”

“말하랄 때 곱게 말해.”

유현이 대머리의 목을 붙잡았다.

아귀가 천천히 경동맥을 압박했다.

“커, 커헉!”

“이대로 부러뜨릴 수도 있어.”

그때였다.

사내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다.

띠링!

유현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 위로 누군가 보낸 문자가 출력됐다.

“문자가 왔군.”

“...!”

“데려오라는데.”

유현이 손의 힘을 풀었다.

남자가 거칠게 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형님이 데려오라고 했다고?”

“혼자 갈 테니까 어딘지 말해.”

“그건 안 돼. 형님이 데려오라고 했다면 같이...”

유현이 다시 목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하자 사내가 흠칫했다.

이내 한숨을 쉬더니 유현에게 주소를 말해주었다.

‘설마 형님이 데려오라고 할 줄이야.’

이럴 거면 뭐하러 시간을 벌겠답시고 싸운 걸까.

사내가 슬픈 눈으로 쓰러진 동료들을 훑어보았다.

“사실 구라야.”

“...뭐?”

유현이 씩 웃으며 사내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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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확인한 사내가 경악했다.

“이런, 시발.”

“다음부터는 확인 잘해.”

주차장에서 묵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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