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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1화 (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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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은 그대로 학교를 나왔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높이 점프하여 조용히 빠져나왔다.

이제 이 학교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다.

“새로 학교를 구해야겠네.”

이왕이면 집 근처로.

돈이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겠지.

“끄응.”

그때, 유희연이 깨어났다.

건물의 옥상 사이를 뛰어다니던 유현은 작은 빌딩 위에서 도약을 멈췄다.

“일어났냐?”

게슴츠레하게 뜬 눈이 곧 휘둥그레진다.

“오, 오빠?”

유희연이 고개를 돌리더니 비명을 질렀다.

“여기 어디야?!”

“좀 가만히 있어 봐. 떨어진다.”

떨어진다는 말에 유희연이 움직임을 멈췄다.

유현은 옥상에 동생을 내려주려고 했으나 유희연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야, 씨! 다른 데로 가서 내려줘!”

“싫은데.”

“아, 진짜 무섭다고!”

유현이 웃으며 다시 동생을 업었다. 빌딩 옥상에서 훌쩍 점프하여 인적이 드문 공원 구석에 착지했다.

유희연은 그제야 등에서 내려왔다.

“설명해봐.”

“뭘?”

“학교는? 나 왜 여기 있어?”

“그게 제일 궁금해?”

유희연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다 봤어?”

“응.”

“......걔네는 어떻게 됐어?”

“혼내줬어. 그것도 엄청 심하게. 그러니까 너는 그냥 잊어.”

유희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왜 그랬어! 왜 혼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왜 좋아하냐?”

“머리로는 폭력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기분은 좋아서.”

유희연의 표정이 한결 후련해졌다. 마음속에 있던 짐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나 이제 학교 어떻게 다녀?”

“전학 가야지. 어차피 친구도 없잖아.”

“이, 있었거든!”

“아, 그러시군요~ 친구가 있으셨군요~”

유희연이 유현의 어깨를 가격했다.

“오빠 혹시 걔네 때린 건 아니지?”

“때리진 않았어.”

“그럼 어떻게 혼내줬는데?”

“비밀이야.”

유희연은 더 묻지 않았다.

비밀이라는데 굳이 더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그 녀석들이 어떻게 됐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신고하면 어떡해?”

“절대 못 해. 만약 신고하면 너도 신고하면 되지.”

“그런가?”

유현은 유희연의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유희연은 얌전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왜 그동안 말 안 했어?”

“엄마 아빠 힘들게 하기 싫어서. 어차피 나만 참으면 다 편해지잖아.”

유현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나한테라도 말했어야지.”

“말하면 어떡하려고 했는데?”

“학교 밖에서 어떻게든 했겠지. 어머니 아버지 몰래.”

“......그럼 말할 걸 그랬네.”

유현이 피식 웃었다.

“너도 참 미련하다.”

“나도 알거든.”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혼자 참고 견디는 건 결국 괴롭힘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었다는 것을.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말할게.”

“그래. 무조건 말해. 부모님이면 몰라도 오빠한테는 말해도 돼.”

“...왜 재수가 없지?”

동생의 말에 유현은 웃었다.

저렇게 심술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생각해보면 자신뿐이었다.

‘그런 것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주마.’

유현이 유희연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동안 고생했다.”

“.......응.”

그동안 학교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괴롭힘도 괴롭힘이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혼자였다는 점이다. 외톨이의 삶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우냐?”

“......그래, 운다. 울어.”

유희연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러움은 점점 커져 곧 흐느낌이 되었다.

‘에휴.’

유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이라도 끝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까 전 화장실에서 봤던 모습을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려왔다.

“너 근데...”

유현은 가만히 서서 우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눈물은 물론이고 콧물까지 흘러나왔다.

그걸 보니 슬픈 생각이 싹 사라졌다.

“우니까 진짜 못생겼다.”

“흐이잉! 저리 꺼져!”

“적당히 울어 둬. 학교 알아보러 갈 거니까.”

***

달동네 꼭대기에 위치한 골동 고등학교.

인근에서 꼴통 학교로 유명한 그곳에는 주기적으로 경찰차가 찾아왔다. 동네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중 대부분은 이곳의 재학생들이 원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경찰차에 이어 구급차까지 도착했다. 경찰차도 평소보다 몇 대는 더 많았다.

“말 해봐. 누가 그랬냐니까?”

경찰의 물음에 남학생은 그저 고통에 울먹일 뿐이었다.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아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 마리의 살인귀를 앞에 둔 것 같은 느낌. 그 소름끼치는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경고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말한다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쪽은 뭐라냐?”

경찰이 다른 경찰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경찰은 고개를 저었다.

경찰의 앞에 앉은 여학생 역시 고통에 신음을 흘릴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끄아악!”

한편, 구급차 속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으으!”

황중성이 고통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잠시나마 복수를 생각했지만, 그 마음가짐은 고통 앞에서 바람 앞의 촛불과 다름없었다.

“으으윽!”

“흐아아!”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건 황중성 하나뿐만이 아니다.

구급대원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별다른 외상이 보이지 않는데 다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고통을 호소한다.

“젠장, 빨리 출발해!”

구급차 몇 대가 학교를 떠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남아 있었다.

***

그날, 집 근처에 있는 사립학교 세 곳을 돌아본 뒤, 진로에 맞게 학교를 선택했다.

그 뒤로 며칠에 걸쳐 유현은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의 전학절차를 밟았다.

전학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유희연의 중학교 당시 성적은 최상위권. 학구열이 뛰어난 지역의 학생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었다. 그 덕에 빠르게 전학절차를 밟는 게 가능했다.

‘문제는 학비.’

애초에 부모님이 감당할 수 없는 학비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학비가 적어서 다닐만한 곳이라고.

-오빠, 진짜 대책 없다.

유희연 역시 처음에는 유현을 말렸지만,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대책이 없는 행동이었다.

‘어쩌지.’

요 며칠 고민해봤지만,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한서희한테 또 부탁할까?”

게이트야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거기서 얻은 마석을 한서희가 돈으로 바꿔준다면 학비는 금방 해결된다.

“자꾸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한데.”

유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책상 위에 올려 둔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되게 빨리 받네?”

-고양이 영상 보고 있었어요.

그놈의 고양이. 그게 그렇게 좋을까.

“그게 다른 게 아니라….”

유현은 그녀에게 용건을 말했다.

저번처럼 마석을 구해서 처분하려고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냐.

-돈이 왜 필요해요?

“동생 학비 때문에.”

-얼만데요? 보내줄게요.

유현은 거절했다.

그런 식의 도움을 받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냥 마석 처분만 도와주면 돼.”

-알겠어요. 그럼 그쪽으로 사람 보낼게요.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유현은 화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을 보내? 지금?”

지금 바로 게이트로 가서 마석을 가져오라는 소린가?

그렇게 알아듣고 채비를 갖추려는 데, 집의 벨이 울렸다.

유현은 인터폰을 통해 아파트 로비 현관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한서희의 수행원인 이성욱이 서 있었다.

***

고급 승용차가 경기도 외곽에 있는 게이트 앞에 멈췄다.

외곽지역이지만 D급 사냥형 게이트가 있는 탓에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제각기 다른 차림의 헌터들.

누군가는 로브를 착용했고, 누군가는 묵직한 철갑옷을 입었다.

‘저번에 들어갔던 게이트랑은 다르네.’

게이트의 형태는 같지만, 사냥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달랐다.

F급 게이트에서 보던 조잡한 장비들과는 때깔이 다른 장비를 착용한 헌터들. 그만큼 강한 몬스터들이 출몰한다는 뜻이었다.

“유현님. 바로 들어가시죠.”

“예, 알겠습니다.”

유현은 이성욱과 함께 게이트 앞에 섰다.

평상복 차림으로 게이트에 입장하려는 그를 보며 주변에서 수군거렸다.

“저 사람은 뭔데 무기도 없고 방어구도 없어?”

“마법사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들어갔다가 시체로 나올 텐데.”

유현은 품속 아공간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주변의 관심은 달갑지 않다.

그것도 이렇게 불법적인 일을 할 때는 더더욱.

“그건 왜 쓰십니까?”

“일단 불법이니까 얼굴 팔려서 좋을 거 없으니까요.”

이곳 게이트는 소나무 길드가 관리하는 곳이다.

유현은 한서희의 배려로 오늘 이곳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마석을 얻고 그 자리에서 넘기면 돈으로 바꿔준다는 게 이성욱의 설명이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그런데 들킬 일은 없을 겁니다.”

“왜요?”

“유현님은 누가 보기에도 노련한 헌터 같으시니까요.”

칭찬인가, 욕인가.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근데 그 조끼는 뭡니까? 수납공간이 있어 보이지는 않은데 가면이 나오네요.”

“생각보다 속이 넓어요.”

얼마 전, 유현은 마법을 사용해서 아공간 의복의 형태를 현대식 조끼로 바꿨다.

착용하기 편하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럼 들어갈까요?”

게이트 앞에서 잠시 기다리던 두 사람은 곧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뒤바뀌는 주변의 환경.

유현은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게이트를 통과하는 느낌은 영 좋지 않다.

“같이 들어오셔도 돼요?”

“저도 한때는 헌터였습니다. 제몸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습니다.”

유현은 들어온 공간을 살폈다.

지난번에 들어갔었던 초원 필드와는 전혀 다른 지역이었다.

하늘은 검붉고, 지평선까지 불타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지옥을 실제로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곳은 화전의 대지라고 이름 붙은 게이트입니다. 사냥형 게이트는 대부분 넓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곳은 특히나 더 넓습니다.”

“내부 공간에도 한계가 있어요?”

“모르셨습니까? 어느 정도 가면 유리 벽이 막고 있는 것처럼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건 처음 들어보는 정보였다.

유현은 새롭게 얻은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럼 먼저 가시죠. 저는 뒤에서 촬영하며 따라가겠습니다.”

한서희가 유현의 부탁을 들어주며 내건 조건은 하나.

유현의 전투를 촬영하는 것이었다. 한서희라면 딱히 문제 될 게 없기에 유현은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럼 갈게요.”

유현이 앞장섰다.

이성욱이 스마트폰을 꺼내며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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