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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0화 (20/219)

20

유희연은 상담실을 나온 직후 화장실로 향했다.

대충하고 끝내려 했던 진로 상담이 생각보다 길어져 소변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저렇게 진지하대.”

유희연은 애당초 진로 상담에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 없었다.

적어냈던 진로 역시 현실적으로 고민하지 않은 진로였다.

길드 마스터.

이루고 싶은 목표라기보다는, 망상에 가까운 꿈이었다.

여의치 않은 가정 사정으로는 그 꿈을 목표로 만드는 조금의 시도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네.’

꿈을 향해 계획들을 세워가는 건 의외로 재밌었다.

한 번 진지하게 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과거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오빠도 집에 돌아왔고, 좋은 집도 생겼으니까.

‘내가 무슨 길드 마스터야.’

하지만 길드 마스터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목표였다.

자신 같은 일반인이 노력한다고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

‘제일 문제는 돈이지.’

사금융에서 빌린 빚은 사라졌지만, 아직 은행권의 대출은 남은 상황.

거기에 앞으로 동생인 하연이가 커가며 필요한 돈들을 생각하면 역시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

‘괜히 엄마 아빠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유희연은 아까 유현이 선생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선생에게 맞서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는 모습.

멋있었고, 진심이 느껴졌지만, 오빠의 말처럼 하기에는 현실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고맙네.’

설마 오빠가 그런 말을 해줄 줄이야.

오빠가 사라졌던 그 날 이후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그 시간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 유희연. 어디 가냐?”

그때, 계단으로 여학생 둘이 내려왔다.

“잠깐 화장실.”

“화장실? 수업 안 가고?”

“상담 중이라서.”

“아, 맞아. 누구야? 되게 잘 생겼다며? 소문 다 퍼졌어.”

유희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 때문에 중식이 개빡쳤던데?”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황중식. 끊임없는 괴롭힘의 시작이 된 녀석이었다.

“가자. 나 지금 중식이가 불러서 양호 간다고 구라치고 가는 중이거든.”

“아냐. 나 상담 중이라 금방 가봐야 해.”

“에이, 금방 가서 사과만 하고 오면 되지.”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

거기에 이유는 필요치 않았다.

그건 단지 핑계일 뿐이니까.

“빨리 가자!”

불량 여학생 둘이 유희연의 팔짱을 끼고 억지로 데려갔다.

“이거, 놔...!”

유희연은 발버둥 쳤지만,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살집 있는 두 사람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끌려온 여자 화장실.

그 안에는 황중식을 위시한 일진 무리가 있었다.

“콜록!”

화장실 안은 메케한 연기로 가득했다. 저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어? 얘는 웬일로 데려왔냐?”

“앞에서 만났어. 우리 중식이 화나서 사과하라고 데려왔지~”

여학생이 유희연을 밀었다.

유희연은 힘없이 바닥에 넘어졌다.

“내가 화나?”

“응. 나 아까 얘 남자친구 봤거든.”

“남자친구?”

“되게 잘생겼던데?”

황중식의 표졍이 일변했다.

그가 피우던 담배를 끄고는 일어났다.

“남자친구 아니야.”

유희연이 부들거리는 무릎을 짚으며 일어났다.

해명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치의 떨림도 없었다.

“그리고 너희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되니? 그것도 학교에서?”

“뭐래.”

“또 바른 소녀 유희연 나왔네.”

“네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 꼰대년아.”

그녀가 자신을 끌고 온 여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친구가 없는 건 너희가 자꾸 괴롭히니까 그런 거야. 나랑 친하게 지내면 똑같이 만들어준다고 협박하고 다니잖아. 좀 그만해줄래?”

“아니거든?”

“다 알아. 너희 이야기하는 거 내가 직접 들었어.”

“미친년이 뭐래?”

“욕하지 마. 왜 제대로 해명은 못 하고 욕부터 하고 그래?”

그때, 그녀의 뒤로 남학생이 다가왔다. 어깨 위로 손이 올라가자 유희연이 몸을 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황중식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네. 우리는 그런 적 없어.”

“아, 아파…!”

“아파?”

황중식의 손이 유현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윽!”

“어때. 여긴 좀 덜 아프지?”

“중식이 완전 매너남~”

“와, 스윗 중식 뭐야~”

황중식이 씩 웃으며 유희연의 턱을 붙잡았다.

“듣자 듣자 하니까 못 하는 얘기가 없더라. 쟤네가 너한테 뭐하러 그런 짓을 해?”

“이거 놔!”

“뒤지기 싫으면 아가리 다물어.”

“안 놓으면 소리 지른다? 너희 다 퇴학당할 거야!”

황중식이 아귀에 힘을 주었다.

턱이 붙잡힌 유희연은 강한 압박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를 수 있으면 질러 봐.”

“......”

“양동이에 물 담아와.”

곧 화장실 중앙에 물이 가득찬 양동이가 놓였다.

“꿇어.”

다른 남학생이 유희연의 몸을 눌렀지만, 유희연은 끝까지 거부했다.

그러자 남학생은 유희연의 뒷무릎을 걷어찼다.

얇은 다리가 접히며 철퍽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오늘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줄 거야.”

유희연이 소리를 내기 위해 열심히 입을 움직였지만, 턱의 압박은 약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똑똑히 기억해. 다음에 똑같은 잘못 하면 진짜 뒤져.”

황중식이 유희연의 머리를 양동이에 들이밀었다.

거부하는 몸부림도 강력한 힘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푸확!

“어푸!”

순식간에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유희연.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첫 번째. 자기가 정답인 것처럼 소리친 행동.”

물 고문 속에 유희연은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확실하게 들려왔다.

“두 번째.”

유희연의 머리가 다시 물속에 담가졌다 나온다.

“선생님처럼 꼰대짓 한 거.”

물고문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세 번째. 사실 이게 제일 큰 잘못이야. 남자친구 사귄 거.”

이전과는 달리 유희연의 머리가 더 오랜 시간 물에 잠겼다.

몸부림이 한층 거칠어지자 황중식은 그제야 머리를 빼냈다.

“콜록!”

“보호자랍시고 남친 데려오니까 좋냐?”

“허억, 허억.”

“가난해서 애미애비는 올 시간도 없지. 그래서 데려온 게 남친이야?”

유희연은 억울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 시작은 소문이었다.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아이가 있다는 소문.

그게 자신으로 특정되고, 온갖 이야기로 부풀려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였기에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기와 질투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그걸 간단히 넘기지 않았다.

끊임없이 가공하고 만들어내서 결국에는 모두와 멀어지게 만들었다.

“너, 너 내가 고백 거절했다고 이러는 거야?”

유희연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황중식은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양동이에 머리를 넣었다 뺐다.

“걔는 되고 왜 나는 안 되냐?”

“......우리가 사귈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잖아.”

“그래?”

“그리고 진짜 나를 좋아하면 이런 짓은 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힘겹게 말을 잇는 유희연을 보며 황중식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게 정상이긴 한데 난 이게 더 좋아. 내가 널 마음대로 다룰 수 있잖아.”

그때 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황중식은 개의치 않고 유희연의 머리를 양동이에 들이밀었다.

더 깊숙이, 더 오래도록.

몸부림이 거칠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가만히 있어, 씨발련아.”

“야.”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황중식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서 있었다.

***

“뭐, 뭐야.”

“몸이 이상해.”

다들 몸이 굳은 가운데, 황중식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유희연은 기절한 건지 양동이에 그대로 머리를 처박고 있다.

“아저씨, 이거 청소년 폭력이라 더 크게 들어가는 거 아시죠?”

뚜벅뚜벅 걸어온 유현은 말없이 여동생을 양동이에서 꺼냈다.

혈을 짚어 맥박을 확인하고 전체적인 상태를 파악했다. 심박이 거칠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무시해?”

“가만히 있어.”

유현의 한 마디가 단번에 황중식의 걸음을 사로잡았다.

황중식은 처음으로 살기를 느꼈다. 그게 무슨 감각인지 정확히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그 말을 따라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현은 유희연을 눕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내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유현은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마주했다.

“다들 끔찍한 짓을 했구나.”

유현은 어느 때보다도 가라앉은 심정으로 말했다.

예상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광경이었다.

“왜… 괴롭혔냐.”

“......”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냐.”

누구도 유현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풍기는 살벌한 기백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래, 말하지 마라. 어차피 결과는 똑같으니까.”

학생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목에 칼날이 들어온 것처럼, 포악한 맹수를 눈앞에 둔 것처럼, 공포가 숨을 옥죄여왔다.

[사일런스]

유현은 나지막이 마법의 구동어를 뱉었다.

소음 차단 마법이 화장실을 뒤덮었다.

“너희의 비명은 이제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을 거야.”

유현이 아이들을 훑었다.

공허한 시선이 마지막에 멈춘 곳은 황중식이었다.

황중식은 자신도 모르게 벌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눈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폭력의 고통은 당사자가 평생을 안고 살아가.”

심각한 피해는 한 사람을 그 시간대에 영원히 머물게 한다.

마왕으로 인해 피폐해진 세상에서 유현은 그런 사례를 숱하게 목격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늘 생각했어. 당사자만 그 고통을 짊어지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하고.”

유현이 황중식에게 다가갔다.

황중식의 사타구니로 노란 액체가 새어 나왔다.

“이 자리에 있는 연놈들, 너희는 평생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야.”

유현이 검지를 세웠다.

저주 마법은 사용할 수 없다.

조금 전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하며 꽤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고 싶을 거야. 하지만 한순간의 고통은 너희에게 너무 달콤해.”

유현의 손가락이 황중성의 몸을 강하고 빠르게 찔렀다.

천돌, 고방, 운문, 한중.

황중성의 몸이 경직되더니 이내 뻣뻣해지며 뒤로 넘어졌다.

입에는 거품을 물었고, 동공은 뒤집혀 흰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쥐어짜듯 아플 거다. 죽을 것 같겠지만, 죽지는 않아.”

침술.

판대륙에 있었을 당시 동쪽 대륙의 은둔 고수에게서 배운 기술이다.

단기적인 전투력 상승이나 피로 해소 등 버프 용도로도 사용했고, 전투에도 사용했다.

다만 마법만큼 전투력이 강하지는 않기에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마나가 없어 저주를 내리지 못할 때는 침술이 적합했다.

혈자리만 잘 짚어 준다면, 평생이 가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유현은 몸을 돌렸다.

곳곳에서 지린내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고 행동을 이어갔다.

폭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흔적을 남겨봤자 좋을 게 없었다.

“끄으으으으.”

“으으으으!”

벌써 반응기 오기 시작했는지 고통에 찬 신음들이 들려온다.

유현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화장실에 있는 모두의 혈을 짚었다.

이제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함구해라. 입밖으로 한마디라도 내면, 어떻게든 찾아서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줄 거야.”

누구도 입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유현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었다.

그들의 눈에 담긴 공포심.

정신 깊이 새겨진 두려움은 몸에 남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절대 극복할 수 없으리라.

유현은 동생을 안아 들고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곳곳에서 억제되었던 숨이 터져 나왔다.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 사이로 고통 어린 울음이 섞였다.

“아파, 아파.”

“끄으으으ㅡ”

바닥에 누워 온몸을 뒤척이는 학생들.

유현이 그들의 몸에 새긴 혈의 뒤틀림이 그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바늘이 피부를 깊게 찌르는 느낌, 칼날이 살갗을 도려내는 고통.

높고 낮은 통각의 사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누구 하나 크게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유현이 남기고 간 압도적인 공포감. 그가 심은 두려움은 그가 떠나서도 학생들의 정신을 압박했다.

이들 중 누구도,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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