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고급 아파트 단지의 출입구로 운동복 차림의 유현이 걸어 나왔다.
“날씨 좋네~”
유현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어딜 가든 차를 타는 것보다 뛰는 게 빠르겠지만, 굳이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또 도심에서는 뛰는 게 여의치 않기도 했다. 도로 사정도 그렇고, 사람들의 시선도 그랬다.
“한 30분 걸리려나.”
곧 버스가 도착했다.
유현은 자연스럽게 교통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았다.
목적지는 동생이 재학 중인 고등학교. 집은 옮겼지만, 학교는 옮기지 못했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전학 기준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성적은 될 것 같은데 등록금 낼 돈이 없네.’
돈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전학절차를 밟고 싶었다.
과거에 살던 동네는 골목도 많고 재개발 때문에 동네의 분위기가 어둡다.
안 그래도 흉흉한 세상에 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쩌면 이미 당했을지도 모르고.’
유현은 얌전히 앉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도로가 뻥 뚫려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학교에 도착했다.
유현은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올랐다. 학교는 언덕 정상에 있었다.
“더럽게 높네.”
경사가 상당하다. 미리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빠른 걸음으로 언덕 정상에 도달한 유현은 교문을 통해 학교 안쪽을 살폈다. 점심시간인지 운동장에 학생들이 많았다.
‘왜 잠겨있지?’
담을 넘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중 교문 옆 경비실에서 사람이 나왔다.
“어쩐 일로 오셨수?”
“진로 상담 때문에 왔습니다.”
“워낙 수업시간에 나가는 애들이 많아서 잠가놨수다. 일로 오쇼.”
유현은 경비실에 방문 일지를 적은 뒤 방문객 목걸이를 목에 걸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유현에게 향했다.
“와, 누구야?”
“존나 잘 생겼네.”
지나가던 학생들도 앉아서 쉬던 학생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유현을 돌아보았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외모였다.
“연예인 같아.”
“여긴 왜 왔지?”
“운동 잘할 것 같다. 3대 몇 치냐고 물어볼까?”
“그런 걸 왜 물어봐, 또라이야.”
유현은 학생들 사이를 지나 건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인 탓에 건물 내부 역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곧 그 소란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유현에게 꽂혔다.
“와.”
“누구지?”
“말 걸어 봐.”
학생 하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유현에게 다가갔다.
“저기….”
“예?”
“무슨 일로 오셨어요?”
“진로 상담하려고요. 어디로 가야 하죠?”
“아,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길을 알려준 여학생이 주먹을 불끈 쥐며 친구들에게 되돌아갔다.
“이쪽인가?”
유현이 나아가자 복도를 채우고 있던 학생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유현은 그렇게 상담실 앞에 도착했다.
“상담하러 왔대.”
“애 아빤가?”
“에이, 설마. 삼촌이겠지.”
유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유희연에게 문자했다. 곧 괴상한 답장이 도착했다.
[ffwwefqwe]
“...뭐야?”
유현은 휴대전화를 넣고는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평소라면 잠잠했을 상담실 복도는 그를 뒤따라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울렸지만, 유현은 그게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오빠!”
그때, 인파를 뚫고 유희연이 튀어 나왔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머리칼이 찰랑이며 땀방울이 흩어졌다.
“문자 뭐라 보낸 거냐?”
“빨리 들어가!”
유희연이 상담실의 문을 열고 유현을 안으로 들이밀었다.
쾅.
상담실의 문이 거칠게 닫혔다.
유현을 쫓아왔던 학생들이 그걸 보고는 웅성거렸다.
“지금 들어간 애 유희연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그럼 설마 남자친군가?”
“에이, 설마 저런 가난한 애랑 사귀겠어?”
그 외에도 그녀를 아는 이들은 수많은 악담을 쏟아냈다.
상담실 안쪽에 있던 유현은 그 험담들을 모두 들었다.
오랜 시간 단련해온 신체의 감각이 그 작은 소리들을 포착했다.
“올 거면 모자라도 쓰고 오지. 괜히 어그로 끌렸잖아.”
“......”
유현은 말없이 동생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저런 말을 듣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느 때와 같은 표정이다.
‘이건 생각보다 충격적인데.’
쏟아지는 욕설들에는 도저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도 있었다.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한다기에는 너무나 더럽고 추잡한 이야기들이었다.
“뭘 그리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아냐. 앉자.”
유현은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곧 있으면 온다고 한다.
“학교는 다닐만해?”
“그럭저럭.”
동생에게 쏟아지는 괴롭힘은 알아냈다. 단순한 폭언이었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다. 그중 누군가는 폭력을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누구냐인데.’
직접 물어봐도 알려줄 리는 없고, 선생님한테 물어봐도 아마 모를 가능성이 크다.
가장 좋은 건 현장을 직접 포착하는 것. 그게 안 되면 동생의 교실이라도 둘러봐야 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네요.”
그때, 상담실에 선생님이 들어왔다.
유희연의 담임 선생이었다.
“희연이 삼촌분이시라고.”
“네, 맞습니다.”
“집안 유전자가 대단하네요. 희연이도 예쁜데 삼촌분도 되게 잘생기셨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상담 시작할게요.”
선생이 파일철에서 유희연의 서류를 꺼냈다. 그녀가 일전에 적어 냈던 진로 희망서였다.
“희연이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는 음… 길드 마스터네?”
“......길드 마스터요?”
“네. 삼촌분도 모르셨구나.”
길드 마스터.
헌터들이 모이는 길드의 수장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희연아. 이거 진짜 되고 싶어서 적은 거야?”
“네.”
“일반인이 길드 마스터가 되려면 꽤 힘들 텐데. 학교도 우리 학교보다는 전문학교로 다니는 게 나을 거고.”
“알아요.”
유희연의 답은 짧았다.
선생님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유현을 돌아보았다.
“삼촌 생각은 어때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인데 제가 끼어들 필요 있나요?”
“일단 보호자시고 성인이잖아요. 조금 현실적인 관점에서 말씀해주세요.”
선생님이 원하는 말은 잘 말해서 포기하게 하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유현은 그 의도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다.
당장 자신이 마왕 살해라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으니까.
“못할 건 없다고 봐요.”
“진심이세요?”
“예.”
“너무 이상에 빠져 사는 건 아닌가 싶네요. 길드 마스터가 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유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선생이면 학생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최대한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요.”
“현실적으로 포기하라는 게 선생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목표를 만들고 단계를 형성하도록 학생을 도와야죠.”
길드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어떤 학교에 가야 하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선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상담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유현의 조언에 힘입어 길드 마스터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논했다.
그렇게 여러 대화가 오가며 유희연의 진로에 대한 윤곽이 조금씩 잡혀갔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너무 늦지 말고.”
유희연이 상담실을 나갔다.
유현은 문을 돌아보더니 선생에게 물었다.
“희연이 학교에서 잘 지내요?”
“아마도요? 친구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붙어 다니는 애들은 몇 있어요.”
“괴롭힘 당하거나 그런 건 없죠?”
“희연이가 혹시 그런 말 해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딱히 제가 알고 있는 건 없어요. 그래도 아마 질투하는 애들은 많을걸요?”
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질투요?”
“희연이가 워낙 예쁘장하게 생겼잖아요. 고백을 많이 받나 봐요. 지나가면서 들었는데 어떤 여학생은 자기가 좋아하던 오빠가 희연이한테 고백했다면서 희연이를 엄청 싫어하더라고요.”
“아하.”
유희연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남자나 여자에게 적이 많다, 남자 쪽의 이유는 고백을 거절해서, 여자 쪽의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던 남자가 고백해서.
유희연이 바란 건 아니지만, 그녀는 어느새 학교 안에 적을 많이 두게 되었다.
“참 고등학생답네요.”
“그렇죠? 근데 한편으로는 그 애들이 선을 넘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유현은 유심히 선생의 표정을 살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유희연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선생님, 만약 학생이 괴롭힘당하는 걸 알게 되면 어떡할 거에요?”
“음…. 글쎄요. 학교 측에서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으니 최대한 학폭위로 해결하지 않을까요?”
“학폭위는 뭔가요?”
선생이 유현에게 학폭위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유현은 속으로 결심했다.
‘역시 직접 나서는 게 낫겠어.’
선생님에게 맡길까 생각도 해봤지만, 대책이 너무 안일하다. 강제 전학이나 정학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나저나 희연이가 좀 늦네요?”
“제가 찾아보고 올게요.”
유현이 교실을 나섰다.
수업 시간이라 복도는 고요했다.
그래서 그럴까. 어디선가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유현은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는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이어졌다.
문을 열어보려던 유현은 안쪽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멈칫했다.
-걔는 되고 나는 왜 안 되냐? 어?
한 차례 첨벙이는 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고통에 들끓은 목소리였다.
-남자친구 아니라고.
유현은 곧장 화장실의 문을 열었다. 매캐한 연기가 허공에 가득했다.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요.”
“비켜.”
망을 보던 남학생이 유현의 따귀를 맞고 기절했다.
유현은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뭐야?”
누군지 모를 남학생이 한 학생의 머리를 물이 가득 찬 양동이에 담그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그 주변에 구경하듯 모여있었다.
“야, 괜찮아?”
“아저씨 뭐예요?! 뭔데 갑자기 얘 때려요?!”
유현은 자신을 건드리는 학생들은 신경도 쓰지않은 채 말없이 양동이를 바라보았다.
양동이에 머리가 처박힌 사람이 고통스러운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씨발련아.”
유현의 시선이 천천히 신발로 움직였다. 오래되고 낡은 짝퉁 브랜드의 운동화. 유희연이 5년째 신던 신발이었다.
“야.”
유현의 살기어린 목소리가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위압감을 느꼈다.
“뭐, 뭐야.”
“몸이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