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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8화 (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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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를 나온 유현은 집으로 가는 대신 마나의 밀도가 높은 곳으로 향했다.

판대륙에서 마나의 밀도가 높았던 곳은 자연의 한 가운데.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일수록 좋다.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곳은 인구 밀도가 적은 지역의 고산이다.

유현은 곧장 고속도로를 따라 달렸고,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음이 편해지는구만.”

고산의 정상에 앉아 자연을 굽어보았다. 부는 건 바람이고, 흐르는 건 물이고, 날아다니는 건 새였다.

몸도 마음도 편해지는 이곳이 진정한 극락 아닐까.

“마나도 많고 딱 좋네.”

유현은 천천히 심호흡했다.

살아 숨 쉬는 생태계와 그 속에 머무는 자연의 정기.

평범한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에너지가 드넓은 자연 곳곳에 존재했다.

“이 정도면 하루만 있어도 꽤 되겠는데?”

마나 코어 속, 느리게 움직이던 마나가 가속하는 게 느껴졌다.

몇 배는 빨라진 재구조화의 속도.

잔량에 비하면 여전히 굼벵이 같은 속도지만, 만족스러웠다.

‘학교에서 연락 오기 전까지는 여기에 죽치고 있어야겠군.’

한동안 명상을 이어가던 유현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걱정이 우려스러워 거짓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사실대로 말했다.

어머니는 생각 외로 평범하게 반응하셨다. 간 김에 잘 쉬고 오란다.

‘걱정 안 하셔서 다행이야.’

전화를 끊은 유현은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무아지경의 상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 채 마나코어에 신경을 기울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벌써 이렇게 됐군.”

체내에 소량의 마나가 흐른다.

재구조화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나였다.

아주 간단한 마법 한 번은 사용할 수 있는 양.

유현은 가장 먼저 자신의 교복을 조절했다.

[재단]

코어에서 빠져나온 마나가 옷에 스며들었다.

옷의 테두리가 파랗게 반짝이더니 서서히 크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매와 기장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교복에 여유가 생겼다.

“훨씬 낫네.”

유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마나를 회복하는 데 잠을 자는 시간 따위는 사치다.

테스트가 있을 며칠 동안 최대한의 마나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

유현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산에서 며칠을 보내긴 했지만, 산을 오르던 관광객의 신고로 강제 귀가 조처됐다.

‘억울하네.’

옷 벗고 산 좀 탄 게 대체 뭐가 그리 못 볼 일이라고 신고까지 할까.

누구나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현 역시 며칠 간의 명상이 답답하여 잠시 기분전환 차 알몸으로 산을 달렸을 뿐이었다.

“현아.”

“네, 어머니.”

“많이 힘드니?”

“...아니요.”

“엄마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

“정말 괜찮아요.”

“근데 왜 옷을 벗고 산을 탔을까?”

“...답답해서요.”

“답답했구나.”

어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후볐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너무 걱정이 심한 건 아니지?”

“아뇨. 저라도 제 자식이 옷 벗고 등산한다고 전화 받았으면 걱정했을 거예요.”

“그렇지? 엄마가 과한 거 아니지?”

“네. 죄송해요.”

“혹시 힘들면 엄마한테 말 해야 한다?”

“알겠어요.”

어머니가 미소를 보이고는 방을 나섰다.

유현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마른세수를 했다.

“하아.”

창피한 감정은 다 잊은 줄 알았건만, 가족 앞에서는 여전했다.

그래도 소식을 들은 게 어머니라 다행이다. 만약 유희연의 귀에 들어갔다면….

“오빠! 오빠! 오빠!”

벌컥 문이 열리며 유희연이 뛰어 들어왔다.

“꺼져.”

“태백산에서 옷 벗고 뛰어다니다 경찰한테 걸렸다며?”

“제발 좀.”

“태백산 원숭이라고 인터넷에 글 올라왔는데 그거 오빠야?”

“야!”

“하하하하하하!”

유희연이 바닥에 드러누운 채 배를 붙잡고 웃어댔다.

그 모습에 유현은 진심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꾸 나를 자극하지마.”

“아니, 웃기잖아. 오빠도 솔직히 생각해봐. 내가 옷 벗고 뛰어다니다 걸렸으면 놀렸을 거지?”

“동네방네 소문 다 냈지.”

“봐! 나도 그런 거라니까? 나는 그나마 동네에 소문은 안 내잖아.”

유현이 입술을 꽉 깨물며 동생에게 옥베개를 던졌다.

배게에 맞은 유희연이 윽 소리를 내며 고통을 흘렸다.

“자꾸 매 벌래?”

“아프잖아!”

“세게 안 던졌어. 엄살은.”

“베개가 딱딱하니까 아프지!”

유희연이 팔뚝을 붙잡은 채 눈물을 그렁거렸다.

그 모습에 문득 얼마 전에 있던 일이 생각난 유현이 몸을 일으켰다.

“어디 한 번 봐봐.”

“자, 진짜 멍들었으면 십만 원이야.”

유희연이 팔을 내밀었다.

유현은 긴 옷소매를 살짝 걷는 척하며 어깨까지 확 올렸다.

“......”

시원하게 드러난 유희연의 팔.

유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팔뚝을 보라니까 왜 거기까지 걷고 그래.”

유희연이 황급히 소매를 내렸다.

“왜 내려. 다시 줘봐. 멍들었잖아.”

“오빠가 배게 던져서 그래.”

“그건 팔뚝이고. 내가 본 멍은 어깨 쪽인데?”

“그거 그냥 친구들이랑 장난치다가 그런 거야.”

“무슨 장난을 치는데 팔이 그렇게 돼? 신체 개조라도 하냐?”

“아 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아니, 안 돼. 팔 줘봐.”

유현이 팔을 붙잡으려고 하자 유희연이 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

유현은 조금 전 봤던 동생의 팔을 떠올렸다.

어깨 쪽이 얼룩덜룩한 멍으로 가득했다. 유희연은 잘못봤다고 했지만, 잘못 볼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저번에 잡았던 건 오른팔. 이번에는 왼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걸까.

얼버무리는 것도 그렇고,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벗겨서 제대로 확인해 봐야 하나.’

단순히 팔이 아니라 복부 같은 곳을 보면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팔 같은 경우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치기에 좋은 부위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정도가 심해.’

제일 좋은 방법은 벗겨 보는 것.

하지만 그랬다가는 뺨 맞는 건 고사하고 몇 달동안 이야기도 안 할 테니 차라리 다른 방법이 나을 것이다.

‘추궁해볼까?’

물어봐서 알려주면 좋겠으나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유희연은 남에게 짐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끌어안고 있으려는 사람이었다.

유현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가족한테는 죽어도 말 안 하겠지.’

남은 방법은 하나. 직접 학교에 가서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걸 위해선 그럴듯한 계기가 필요하다. 다른 학생들의 눈에 수상하게 보이지 않아야 하며, 유희연에게 들키지도 않아야 한다.

“현아, 밥 먹어라~”

한창 방법을 고민하던 중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현은 방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이미 두 동생이 앉아 있었다.

“오빠! 안녕!”

“안녕.”

유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은 유현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고요한 식사 자리, 식기가 접시에 부딪히는 청명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엄마.”

그때, 조용히 밥만 먹던 유희연이 입을 열었다.

“왜?”

“혹시 내일 학교 올 수 있어? 내일 보호자 동반 진로 상담 있거든. 근데 안 와도 괜찮아.”

“내일이 며칠이지?”

달력을 확인한 어머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지? 내일은 힘들겠는데... 다른 날에는 못 가?”

“에이, 괜찮아. 안 와도 돼.”

“그럼 엄마 마음이 불편한데...”

“제가 갈게요.”

유현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거라면 누구에게 수상하게 보여도 상관없고, 유희연에게 들킨다는 위험 자체가 사라진다.

“아, 싫어.”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해라.”

“음……. 싫어. 됐지?”

숟가락을 든 유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머니만 없었으면 유희연의 이마에 딱밤이 날아갔을 것이다.

“오빠는 왜 싫어? 엄마는 오빠가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빠 나랑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잖아.”

“누가 보면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아마 삼촌이라고 생각할 거야~”

유현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성숙하다는 걸까, 노안이라는 걸까.

“그래도 오빠가 보호자라는 건 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흐으으으음…….”

“야, 싫으면 하지 마. 나도 싫어.”

그 말에 유희연이 배시시 웃었다.

“오빠가 싫어하는 거 보니까 데리고 가고 싶어졌어.”

“진짜 자기 멋대로네.”

아무리 한 살 차이라지만 유독 심술이다.

“오빠아 내일 언니 학교가아~?”

“응. 오빠가 내일 언니 학교 온대.”

“우리 유치원은 왜 안 와~?”

“거긴 갈 이유가 없잖아.”

“우리 유치원에 예쁜이 선생님 짱 많은데!”

유하연의 말에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유현 역시 미소지으며 유희연을 슬쩍 살폈다.

‘내일 확실히 알아봐야겠어.’

동생에게 어떤 일이 있던 건지.

몸에 멍은 왜 든 건지.

아직 하이패스 테스트의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스케줄이라고 해봤자 인근 산속에 앉아 있는 것뿐. 동생을 위해 투자할 시간은 충분했다.

“맞다 오빠.”

“왜.”

“내일 올 때는 알몸으로 오면 안 된다?”

유현이 쥐고 있던 숟가락을 반으로 구겼다.

“어머.”

어머니는 당황했지만, 유희연은 그걸 보고서도 쿡쿡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농담이야, 농담~”

“농담 두 번 하면 내가 뒷목 잡고 쓰러지겠다.”

“한 번 더?”

“하지 마라.”

유현은 새 수저를 꺼내와 식사를 재개했다.

매일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가족이다. 아직 범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만약 범인이 있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선생이든 학생이든 상관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게 문제를 벗어날 유일한 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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