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잠시 주목해주시죠.”
선생들이 다시 유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원칙적으로 테스트 참가는 누구나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현은 교칙을 무기로 삼았다.
원칙적으로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테스트. 거기에 등급의 기준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죠.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참가 신청을 거절할 수 있기도 합니다.”
“정확히 어떤 경우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대표적으로는 참가자의 심각한 부상이 우려될 경우입니다.”
“그 말은 테스트 이전부터 어떤 등급은 배제하고 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그때, 기한경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선생이 끼어들었다.
“얘, 너 말투가 왜 그러니? 싸우자는 거야?”
“의견을 제시하는 것뿐입니다. 애초에 낮은 등급을 배제하는 건 원칙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이건 엄연한 우롱 행위입니다.”
“허, 얘 말하는 것 좀 봐라.”
“윤혜경 선생님. 가만히 계세요.”
박정숙의 개입에 윤혜경이 혀를 차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식으로 학생의 테스트를 제한할 거라면 그냥 애초에 어떤 등급 미만은 안 된다. 못 박아두면 되는 것 아닙니까?”
“......”
“근데 그렇게 하기에는 외부의 눈치가 보이겠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그렇다고 테스트를 전부 허락하자니 그것도 싫고.”
유현은 선생들을 쭉 훑었다.
“왜 싫을까. 그것도 생각해봤습니다.
학생의 부상이 우려되기 때문에?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만...”
잠시 뜸을 들인 유현은 박정숙을 응시했다.
“불필요한 지출을 낭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죠. 찾아보니 하이패스 테스트라는 게 제법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줄곧 듣기만 하던 박정숙은 유현을 보며 웃었다.
“그걸 다 조사해보고 온 건가요?”
“예. 이런 상황을 예상한 건 아닙니다만, 도움이 됐네요.”
“학생의 말이 맞습니다. 완전히 정곡을 찔렸네요.”
박정숙은 유현에게 하이패스 테스트의 구조를 설명해주었다.
경기장에 세트를 직접 만들어 진행하는 방식으로, 애당초 입학 시에만 테스트가 가능한 것도 그래서였다.
한 번 여러 개의 세트를 설치하면 입학시험 기간에는 철거 없이 계속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게 부당하다는 논란이 커졌다. 이유는 몇 달 또는 한 학기 동안 이루어질 성장 가능성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기 중에도 누구든 하이패스 테스트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세트의 설치와 철거가 반복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용 경기장을 만들면 되지 않나요?”
“그것도 예산이 많이 들어요.”
“기존 경기장을 하이패스 전용으로 이용하는 건요?”
“경기장은 여러 행사에 쓰여서 독점할 수 없어요.”
“그냥 아무 공터에나 설치하는 것도 당연히 안 되겠죠?”
“세트의 구성상 문제나 시험의 특성상 어려워요.”
수많은 논의 속에서 아카데미가 선택한 해결책은 심사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테스트 자체의 숫자를 줄여 예산 지출을 아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현의 예상은 적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제게도 기회를 주시죠.”
“정말 미안하지만 그건….”
“안 주면 언론에 제보하겠습니다. 아카데미가 이런 원칙을 정해놓고 돈 아끼려고 학생의 앞길을 막는다고.”
“어머! 너 웃긴다? 길을 막긴 누가 막니?”
윤혜경이 유현을 향해 소리쳤다.
다른 선생들도 유현에게 좋은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다.
“현아. 그만하자.”
“아뇨. 저는 꼭 해야 합니다.”
안칠성도 만류했지만, 유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학생. 그 정도로 테스트를 보고 싶은 거요?”
“예.”
“죽을지도 모르는데?”
“안 죽습니다.”
“넌,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니?”
“그만. 결정은 제가 하겠습니다.”
선생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뿐. 실질적인 결정권은 교무부장인 박정숙에게 있었다.
“지금까지 심사하며 만났던 어떤 학생보다도 진심이 느껴지네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파고든 것만으로 그의 간절함은 증명되었다.
“유현 학생의 말대로 원칙적으로는 테스트 신청을 거부할 수 없어요. 그동안은 암묵적으로 무시해왔지만, 그걸 학생이 직접 짚고 넘어간다면 우리는 허가를 내줘야만 합니다.”
유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 통과라는 말은 없었지만, 이 정도면 다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유현 학생의 테스트를 허가하겠습니다. 다른 의견 있으신가요?”
선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몇몇은 그녀의 판단이 못마땅하였지만,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없군요.”
유현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의심이 들었던 부분을 공략한 게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유현 학생. 일정은 잡히는 데로 통지하겠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요.”
“네, 감사합니다.”
“혹시 궁금한 건 없나요?”
“없습니다.”
“그럼 심사는 여기서 종료하겠….”
그때, 박정숙의 맞은편에 앉은 선생이 손을 들었다.
“이의 있습니다.”
“뭔가요?”
유현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소영이라는 이름패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다 된 밥에 재만 뿌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 학생, 체내에 마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소영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이야기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유현 학생에게서는 마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유현의 표정이 굳었다.
마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지?’
불현듯 아까 전 느꼈던 마나가 담긴 시선이 생각났다.
왜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나 싶었는데, 저 신소영이라는 선생에게 상대의 마나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면 이해가 됐다.
“에이, 신소영 선생님. 이번엔 잘못 본 거 아니에요? 아카데미 학생이 마나가 없다뇨.”
“아뇨. 제 간파는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특성 – 간파.
대상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특성이다. 이처럼 마나의 여부를 파악할 수도 있었다.
“마나가 없다니. 그게 가능해?”
“그럼 대체 입학은 어떻게 한 건가?”
신소영이 확신을 담아 말하자 선생들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유현 학생? 이게 무슨 말이죠?”
“......”
또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만약 여기서 마나가 없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면, 테스트는커녕 아카데미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헌터의 기반은 결국 특성. 그 특성은 마나에 의해 발현되고 강해진다.
마나가 없다면 곧 특성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헌터가 되지 못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유현 학생? 저 말이 사실이에요?”
유현의 두뇌는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회전했다.
말을 고르고,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고, 최적의 결론으로 향하는 방향을 계산했다.
“사실입니다.”
이상적인 결론으로 도달하는 첫 번째 선택지는 인정이었다.
“저는 마나가 없습니다.”
신소영이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과연 마나가 필요할까요?”
“그게 무슨 헛소리야?”
“얘~ 마나 없는 헌터는 팥빵에서 빵을 뺀 거랑 똑같아~”
선생들의 반응은 당연히 회의적이었다. 유현의 말은 그저 궤변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만약 마나가 없어도 혼자 몬스터를 죽일 수 있다면 헌터라고 인정하실 겁니까?”
“풋, 그러면 보디빌더들도 헌터 하게? 그게 가능이나 하겠어~?”
유현은 윤혜경의 비꼼을 한 귀로 흘렸다.
“일반인이 혼자서 어떻게 몬스터를 잡아?”
“총이나 탱크가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런 거야? 그런 거면 되지.”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주어진 무기는 오직 몸 하나뿐입니다.”
“맨몸으로 몬스터 사냥이라….”
“솔직히 불가능할 것 같긴 한데 만약이라고 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선생들은 곧 답을 내놓았다.
“헌터라고 인정해야지.”
“그치. 결국, 몬스터를 잡는 건 똑같으니까.”
“저는 반대요. 연속성이 없잖아요. 한 번쯤은 운 좋게 잡을지 몰라도 그다음에도 그럴까요?”
유현은 교무부장을 돌아보았다.
선생들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정권자인 박정숙의 의견이었다.
“교무부장님도 답해주세요.”
그녀는 유현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의도가 뭔지 알 것 같네요.”
“그런가요?”
“한 번 해봐요. 나도 유현 학생의 의견에 동의하겠습니다.”
유현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못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럼 여러분.”
교무부장의 동의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포석이 마련되었다.
“제가 직접 몬스터를 잡아보겠습니다.”
유현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선생들의 반응이 즉각 터져 나왔다.
“너 미쳤어?”
“자네 지금 몬스터가 누구 집 개 이름인 줄 아는 건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안칠성은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유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한 번 해봅시다.”
안칠성의 말에 선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뜻밖의 지원군에 유현도 조금 놀랐다.
“선생님?”
“거, 뭐야. 부장 쌤도 무슨 의도인지 알고 동의하신 것 같은데. 맞죠?”
박정숙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리 한 번 시켜주자고. 어차피 우리가 손해볼 거 없잖아요?”
안칠성이 선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다들 고민이 많은 것 같으니 제가 대신 확실하게 정해드리겠습니다.”
박정숙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만약 유현 학생이 몬스터를 잡으면 헌터가 될 자질이 있다고 판단, 하이패스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잡지 못하면….”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박정숙이 입을 열었다.
“헌터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퇴학 조치하겠습니다.”
***
콜로세움처럼 커다란 원형 경기장에 유현과 선생들이 들어섰다.
감탄하며 경기장을 둘러보던 유현에게 안칠성이 다가가 속삭였다.
“너 이거 퇴학빵이야. 잘해라.”
“당연히 잘 해야죠. 우리 집안의 미래가 달렸는데.”
“난 네가 뭘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몸 좋고 싸움 잘한다고 해도 마나 없이 몬스터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유현은 피식 웃었다.
“그럼 아까는 왜 믿어주신 거예요?”
“내가 안 믿으면 누가 믿냐. 그래도 담임이었는데.”
“부장 선생님이 동의 안 했으면 아무 말도 안 했을 거죠?”
“......크흠.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리 따져.”
선생들은 관중석에서 경기장 안으로 진입했다. 유현도 그 뒤를 따랐다.
“유현 학생. 앞으로 나오세요.”
박정숙의 부름에 후방에 서 있던 유현이 앞으로 선두로 나왔다.
“학생의 등급을 고려하여 F등급 몬스터를 준비했습니다.”
아카데미에서는 실전 훈련이나 수행평가를 위해 항상 몬스터를 구비하고 있다.
“몇 마리요?”
“...한 마리 상대하기에도 벅찰 텐데요?”
“괜찮아요. 한 다섯 마리 정도 넣어주세요.”
뒤쪽에 서 있던 윤혜경이 기가찬다는 듯 코웃음 쳤다.
“저러다 된통 깨져야 정신 차리지.”
“불합격이겠죠?”
“당연하죠~ 마나도 없는데 제깟 놈이 몬스터를 어떻게 잡아?”
몇몇을 제외한 선생들의 의견은 실패로 기울었다. 상식적으로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몬스터가 죽으면 스피커로 벨이 울릴 거에요. 알아둬요.”
유현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면 바로 나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박정숙이 뒤로 물러나 선생들의 무리로 합류했다.
곧 저 멀리 위치한 경기장의 게이트가 열리는 게 보였다.
거기서 걸어 나온 건 유현이 지구에 와 처음으로 목격했던 초원 고블린이었다.
‘두 마리군.’
저 숫자면 제자리에서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