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유현은 금태양 무리가 식사 중인 테이블 옆에 있었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던 금태양은 조용히 숟가락을 놓았다.
“뭐냐?”
“게임기 돌려줘.”
그 옆에 앉아 있던 패거리 하나가 숟가락을 식판 위에 던졌다.
“넌 개념이 없냐? 밥 먹는데 와서 지랄이네.”
“그럼 니들이 게임기 빌려 가서 안 돌려주는 건 개념이 있는 짓이고?”
“야, 우리 게임기 빌린 지 하루도 안 됐어.”
“이틀 지나면 돌려줄 거냐?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말지. 별 등신 같은 변명을 하고 있어.”
금태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 그랬냐? 등신?”
“얌전히 게임기 줘라. 괜히 일 크게 만들기 싫으니까.”
그 말에 패거리들이 피식거렸다.
금태양도 비웃음을 흘렸다.
“따라와. 돌려줄 테니까.”
금태양은 지그시 유현을 노려보다가 식판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패거리들도 그 뒤를 따라 이동했다.
“하아.”
잔반을 비우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유현은 다시 한번 마음속에 참을인을 새겼다.
저들의 행패는 지나가는 똥개가 오줌 싸는 것만큼이나 하찮게 여겨졌다.
보는 눈만 없었더라면, 이미 상황은 끝났을 것이다.
‘좀만 더 참자.’
유현은 금태양 무리를 따라 식당을 나섰다.
***
금태양 무리가 도착한 장소는 건물 뒤쪽의 으슥한 공간이었다.
학생들의 비밀 장소인지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게임기는?”
“우리가 그거 주려고 데려온 줄 아냐?”
인기척을 느낀 유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열댓 명은 족히 넘을 법한 인원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자신의 패거리 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애들까지 데려온 것 같았다.
“걔는 아직 안 왔어?”
“금방 올걸?”
“아악!”
말하기 무섭게 모퉁이 너머로 비명이 들려왔다.
다른 이들보다 키가 컸던 유현은 바닥을 구르는 주시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 왔네.”
주시하가 다른 학생의 손에 붙잡힌 채 질질 끌려왔다.
그리고 그대로 유현의 옆에 던져졌다.
“혀, 현아.”
“괜찮냐?”
“으, 응. 근데...”
주시하가 두려운 눈으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뭘 꼬라 봐, 새끼야. 눈 안 깔아?”
“미, 미안.”
주시하가 급히 시선을 내렸다.
패거리들이 그 모습을 보며 킥킥거렸다.
“시하야. 오늘 네가 맞는 건 다 네 친구 때문이야. 알겠지?”
금태양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그의 시선은 잠시 주시하에게 머물렀다가 유현을 향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깝쳤...”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유현의 눈빛에 금태양은 말문이 막혔다.
귀찮음이 잔뜩 묻은 얼굴.
지금 상황에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꼴깍.
몰려드는 두려움 속에서 금태양이 마른 침을 삼켰다.
‘......쫄지 말자.’
이쪽은 인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괜히 겁을 집어먹을 이유가 없었다.
“누, 눈 깔아.”
금태양의 말에도 유현은 꿋꿋이 그를 바라보았다.
고작 눈빛이었지만, 금태양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곳에는 금태양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야! 눈 깔라고!”
“눈알 좆같이 뜨네.”
“태양아. 뭘 기다리냐.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끝내자.”
패거리들이 유현을 압박하고 나섰다. 저마다 손목을 돌리거나 목을 꺾는 등 몸을 풀었다.
금태양도 아군의 지원에 힘입어 큰 소리를 냈다.
“그, 그래! 조지자!”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오는 이들.
유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경꾼도, 감시 카메라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잡...”
잡으라고 소리치려던 금태양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중앙에 서 있던 유현이 순식간에 다가와 그의 멱살을 붙잡고 허공에 들어올린 탓이었다.
“뭐, 뭐야?”
“어, 언제 저기까지 갔어?”
눈으로 포착할 수도 없을 만큼, 유현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놔! 내려 놓으라고!”
금태양은 허공에 들린 채 발버둥쳤다. 하지만 유현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냥 게임기만 주면 안 되냐.”
“새끼들아! 뭐해! 이 새끼 잡아!”
패거리가 주시하는 뒤로 한 채 유현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금태양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모습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무섭냐?”
유현은 씩 웃더니 멱살을 놨다.
금태양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으으….”
엉덩이를 문지르는 금태양.
아프기도 아팠지만, 창피한 게 더 컸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이 새끼가 진짜 쳐 돌았냐!”
“내가? 아니면 상황파악 못 하는 너?”
“이런 씨발놈이!”
금태양이 주먹을 쥐었다.
곧 주먹 위로 뾰족한 가시가 나타났다. 금태양의 능력, 이른바 고슴도치 주먹이었다.
유현의 기세는 아까보다 더 강해졌지만, 분노로 눈이 뒤집힌 금태양에게 그런 걸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오늘 뒤졌다고 복창해라! 개새끼야!”
“무슨 선인장이냐?”
“아가리 물어! 씨발놈아!”
“너 혹시 대지몬 알아? 거기에 선인장 캐릭터가 나오는데….”
유현은 방금 막 새롭게 기억해낸 사실을 신나서 떠들었다.
하지만 금태양은 듣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가시 돋친 주먹이 유현의 얼굴을 향해 위협적으로 날아갔다.
“혀, 현아!”
주시하가 소리쳤다.
다음 순간, 그의 걱정과 달리 쓰러진 건 유현이 아니었다.
“끄, 끄으으으윽….”
금태양이 명치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누구 하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저래?”
“맞은 것 같은데?”
“계속 가만히 있었는데 뭐에 맞아?”
F등급 학생들이 알아차리기에는 유현의 공격이 지나치게 빨랐다.
“으으으...”
유현은 쭈그려 앉아 고통에 신음하는 금태양의 볼을 콕콕 찔렀다.
“게임기 누구한테 있냐?”
“흐으으….”
유현은 금태양의 몸을 뒤졌다. 곧 교복 속주머니에서 게임기를 발견했다.
“또 지랄하면 이걸로 안 끝나.”
주먹이 그대로 금태양의 얼굴을 가격했다. 신음하던 금태양은 죽은 듯이 기절했다.
유현이 후- 하고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싼 패거리들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너그들도 똑같아. 알아들었냐?”
패거리는 유현의 말에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그들을 공포로 몰아세웠다.
“알아들었으면 꺼져 이제.”
유현의 한 마디에 아이들이 빠르게 공간을 벗어났다.
금태양은 그대로 버려졌다.
“자, 받아.”
“고, 고마워.”
주시하는 게임기를 받아들며 유현을 살폈다. 자신이 알던 유현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너 현이 맞지…?”
유현은 주시하의 옆에 앉아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내가 그동안 보고만 있어서.”
주시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한편, 과거의 자신에게 화도 났다.
그토록 소중한 친구가 이런 꼴을 당하는데도 그냥 보고만 있었다니.
왜 나서서 말리지 못했을까.
왜 스스로 강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미, 미안하다니! 그런 말 하지 마! 그때 학교 끝나면 많이 위로해줬잖아! 너 없었으면 나 학교도 못 다녔을걸?”
유현은 쓰게 웃었다.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고마운 건 나지! 고마워!”
그때, 멀리서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참, 아까 안칠성 선생님이 점심 끝나면 교무실로 오랬잖아. 빨리 가보자.”
“그랬었지. 잠깐만.”
유현은 기절한 금태양의 상태를 확인했다. 뺨을 탁탁 두드리니 작게 신음했다.
“태양이 괜찮을까?”
“너는 이 와중에도 얘 걱정이 되냐?”
“헤헤.”
“멀쩡해. 한 시간 누워있으면 일어날 거야.”
두 사람은 금태양을 뒤로하고 교무실로 향했다.
***
타원형의 책상이 중앙을 차지한 넓은 회의실.
선생 몇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F등급이 무슨 테스트야.”
“적당히 담임 선에서 설득하지. 심사까지 할 필요있나.”
하이패스 테스트 신청 승인을 결정하는 자리에 모인 선생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칙적으로는 이게 맞으니까요.”
“그래도 F반은 너무하잖아.”
현재까지 F반의 테스트 성공률은 0%. 애초에 하이패스 제도 도입 이후로 F등급이 테스트를 신청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
그런 만큼 선생들에게는 이 자리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대충 반대 투표하고 빠르게 끝냅시다.”
“예, 그러죠.”
끼이익.
잡담 사이로 경첩 소리가 울렸다. 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들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심사 회의의 총 책임자 교무부장 박경숙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등장에 선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앉아요.”
박경숙이 착석하자 선생들도 다시 앉았다.
“오늘은 안칠성 선생님의 요청으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요청 사유는 하이패스 테스트의 승인 여부에요.”
“당사자들은 어디있나요?”
“마침 왔네요.”
문이 열리고 안칠성과 유현이 함께 들어왔다.
“쟤야?”
“몸은 튼튼해 보이네.”
유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개중에는 실력을 가늠해보려는 듯 마나를 담은 시선 역시 존재했다.
“다들 정숙하세요.”
소음이 잦아들었다.
박경숙은 곧장 회의를 시작했다.
“안 선생님.”
“예. 오늘은 이 친구의 하이패스 테스트 승인을 허가할지 거절할지를 논의하기 위해 학급 위원회 회의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대표가 나왔다.
“기한경 선생님. 섣부른 투표는 자제하세요.”
“F등급은 결과가 너무 뻔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유현을 슬쩍 흘겨보았다.
“몸 좋고, 싸움 잘하는 거. 그건 알겠어. 근데 몬스터 잡는 게 헌터지 격투기 선수는 아니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너무 위험해요.”
“저도 반대요~”
쏟아지는 반대표. 안칠성이 유현을 돌아보았다.
“봤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칠성이 미리 이야기해줬기에 그 역시도 반대가 많을 거라는 건 예상했었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준비했다.
“혹시 여기서 제가 발언할 권리가 있습니까?”
“말해보세요.”
박경숙의 허락에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 집이 많이 가난합니다.“
“......?”
“그래서 저는 빨리 졸업하고 헌터가 되고 싶어요.”
가정 사정으로 서두를 연 유현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슬픔을 연기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감성팔이였다.
“부모님이 매일 뼈 빠지게 일하시며 돈을 버시지만, 아직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1년간 휴학한 이유도 단순 가출이 아닙니다. 저는 돈을 벌기 위해 부모님 몰래 타지에서 일을 하고 왔습니다.”
유현은 진실에 과장을 살짝 붙여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애매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그건 아주 잘못된 행동이죠. 하지만 저는 부모님이 제게 관심이 없는 줄 알고, 무턱대고 집을 나섰습니다. 내가 돈 벌어서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조금이라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어느 정도 돈을 모아 1년 만에 돌아온 날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던 선생들도 진지하게 유현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제게 관심이 없던 게 아니라 관심을 표현할 시간이 없었다는 걸요. 제가 없어지고 난 이후로 부모님이 저를 찾기 위해 정말 엄청난 노력을 하셨더라고요.”
몇몇은 유현의 감정에 깊이 공감했는지 눈시울이 빨개졌다.
“또, 제게는 어린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그 아이만큼은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다시 아카데미에 돌아온 것도, 하이패스 테스트를 신청하여 빨리 졸업하려는 것도, 다 헌터가 되어 부모님에게 여유를 되찾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유현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돌아보니 안칠성이 눈가를 닦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선생님한테 말하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슬픔.
유현은 당황스러웠다.
‘왜 이 사람이 울어?’
곰 같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니 그건 또 상당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예. 제가 테스트에 실패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기회 정도는 주십쇼.”
“근데 했다가 죽거나 다치면 오히려 손해 아니야?”
기한경이 산통을 깼다.
유현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곧장 다른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러게요. 오히려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사정이 딱해서 내가 C등급 정도만 돼도 찬성하겠는데 F는 너무 낮다….”
곰곰이 다른 방법을 생각하던 유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