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카데미의 건물은 경기도에 위치했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은 걸릴 거리였지만, 유현은 직접 뛰어 10분만에 도착했다.
“푸훕.”
“와, 옷 봐.”
“터지겠는데?”
아카데미에 도착한 유현은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주변을 지나는 학생들이 그런 유현의 옷차림을 보며 킥킥거렸다.
‘올 때가 됐는데.’
유희연이 며칠 전 미리 연락했다던 자신의 유일한 친구. 주시하.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로 단순한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그에게는 여러 번 은혜를 입었고, 가능하다면 평생을 이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인연이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낼 수 있으려나.’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옛날처럼 지낼 수 있을까?
아무리 소중한 친구라지만, 가족이 아니기에 유현은 쉽게 확신할 수 없었다.
“유현!”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 유현을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멀리서 보기에도 작은 신장. 가까이서 보니 더 왜소했다. 거기에 앳된 외모가 더해지니 모르는 이가 본다면 중학생이라고 착각할 수준이었다.
“와아아! 이게 누구야! 진짜 오랜만이다!”
유현은 반갑게 자신을 껴안는 친구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얼굴을 보니 주시하에 대한 옛기억들이 하나둘 살아났다.
그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남잔지 여잔지 구분 안 되는 건 예전이랑 똑같군.’
목소리 톤도 그렇고 외형도 그렇고 주시하는 전체적으로 중성적인 느낌이 강했다.
“내가 희연이한테 연락 받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잘 지냈냐?”
“당연히 잘 지냈지! 너도 되게 잘 지낸 것 같네. 가출한 거 맞아? 무슨 몸이 이렇게 커졌어.”
“운동 좀 열심히 했지.”
유현은 싱글벙글 웃는 주시하를 보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인고의 시간을 뛰어넘어 재회한 오랜 절친. 가족과의 재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꼭 전장에서 동고동락하던 전우와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 된 느낌이랄까.
“괜찮아? 눈이 빨개졌는데.”
“괜찮아. 너 요즘도 게임 좋아하냐?”
“당연히 좋아하지! 너도 할래?”
“나중에 시켜줘.”
“와, 정말? 맨날 안 한다고 하더니. 알겠어!”
잘 지낼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은 기우였다.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대화했고, 우정은 여전했다.
“너 없어졌다고 처음 전화 왔을 때, 나도 엄청 돌아다녔어. 그때 진짜 힘들었다. 아저씨 아주머니도 많이 힘들어하시고.”
“...미안하다.”
“됐어, 사과하지마. 이렇게 돌아와준 게 얼마나 고마운데!”
교문의 경비 시스템을 지나 학교로 들어갔다.
곧장 보인 것은 셔틀 정류장이었다.
넓은 아카데미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셔틀은 필수였다.
“너 근데 옷이 많이 작다. 새로 사야 하는 거 아니야?”
“응, 조만간 바꿀 거야.”
“그것 때문에 다들 너 보면서 웃는 것 같은데?”
유현은 그제야 자신을 향한 웃음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게 그렇게 웃긴가.
“참, 너 1년만인데 혹시 뭐 까먹은 건 없어?”
“다 기억하지.”
아카데미에 관련된 정보는 인터넷과 한서희를 통해 미리 예습했다.
잊었던 것들은 다시 기억했고, 애초에 몰랐던 정보들도 새롭게 습득했다.
“그래도 혹시 궁금한 거 생기면 나한테 물어봐. 내가 이래뵈도 선배니까.”
“아, 너 2학년이지.”
“넌 1학년~”
놀리듯 말하는 주시하를 보며 유현이 피식 웃었다.
“찾아보니까 하이패스 테스트라는 게 있더라.”
“에이, 야. 그거 위험해. 하지마.”
하이패스 테스트.
아카데미의 조기 진급 시험이다.
유현은 그 테스트를 볼 생각이었다.
그게 조금이라도 졸업을 앞당길 방법이었다.
“위험해도 해야지.”
“그거 하다 실려 가는 애들도 많아. 나도 여러 명 봤어.”
“괜찮대도.”
하이패스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1학년을 스킵하고 2학년부터 시작할 수 있다.
본래는 처음 입학할 때만 신청할 수 있는 테스트였지만, 이런저런 논란이 많아서 1학년이라면 학기 중에도 얼마든 신청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
“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데...”
“나 혼자 1학년에 박혀 있으라고?”
“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위험하니까….”
유현은 주시하의 뒷덜미를 붙잡고 허공에 들었다.
“으아악!”
“안 위험해. 너 위로 던져서 받을 수도 있어.”
“아, 알았으니까 내려줘!”
주시하가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너 그 특성으로 진짜 할 수 있겠어?”
“......특성으로는 힘들지.”
유현의 특성은 비루하고 쓸데없었다. 이름하여 [소화가속]. 마나를 사용하여 소화를 빨리 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사실상 전투에 별 쓸모가 없는 능력이라서 유현은 아카데미 실기 시험도 간신히 통과했다.
‘이딴 것도 능력이랍시고.’
먹고 소화시키고 싸고.
사실상 똥 제조기다.
“셔틀왔다.”
두 사람은 셔틀을 타고 하위 클래스 단지 정류장에 내렸다.
“우선 2학년 교무실로 가자.”
“웬 교무실?”
“너 하이패스 테스트 신청한다며. 그건 우리 담임하셨던 안칠성 선생님 담당이야.”
유현과 주시하는 우르르 내린 학생들 사이를 지나 교무실로 움직였다.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인 만큼 건물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F반이 몇 개나 있더라?”
“한 10개는 있을걸?”
“더럽게 많네.”
그래서 나 같은 놈도 들어올 수 있었구나.
유현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가 교무실이야.”
유현은 주시하를 따라 교무실로 들어갔다. 주시하는 칸막이 사이를 지나 안쪽으로 향했다.
“안칠성 선생님.”
안칠성이라 불린 남자가 몸을 돌렸다. 짙은 다크서클과 졸린 눈. 얼굴에 살이 올랐지만, 특유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어, 시하구나.”
“현이도 왔어요.”
“현이?”
안칠성의 시선이 자연스레 유현으로 돌아갔다.
“얘가 현이라고?”
“네.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아니, 이야기는 들었다만... 내가 알던 현이는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좀 잘 먹었습니다.”
안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현과 자신의 키를 비교했다. 머리 하나가 차이 났다.
“인마. 너는 가출해놓고 얼마나 잘 먹고 잘 잤길래 키가 이렇게 크냐?”
“그러게요.”
유현에게 안칠성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고작 두 달 정도 본 게 다였고, 딱히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기에 당연했다.
“잘 돌아왔다. 괜히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여기도 난리 났던 거 알지?”
“어느 정도는요.”
부모님은 아카데미에도 도움을 청했고, 아카데미는 아카데미 나름대로 유현을 찾아다녔다.
“여기는 왜 왔어? 넌 1학년으로 가야지.”
“그게 현이가 하이패스 테스트를 신청하고 싶다고 해서요.”
“뭐? 네가?”
하이패스 테스트는 1학년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신청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입학 당시 테스트에서는 실패했던 아이들이 재신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들의 등급은 대부분 B나 A같은 상위 등급이었다. 그런 아이들도 실패하는 게 다반사인데 F등급이 테스트에 도전하겠다는 건 자살 예고나 다름 없었다.
“제가 하면 안 됩니까?”
“안 된다.”
“원칙상으로는 누구나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안칠성은 잠시 고민하더니 유현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게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지?”
“죽지는 않잖아요.”
“구조팀이 들어가기까지 버틸 수 있다면 죽진 않겠지. 하지만 못 버티면 죽을 수도 있어. 정말 괜찮겠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어요.”
안칠성은 침음하더니 입을 열었다.
“허…. 이건 너무 특이한 경우라 회의를 해봐야 알 것 같구나. 이따 점심 시간 끝나면 교무실로 와라.”
***
유현이 교무실에 가 있던 그 시각.
하위 클래스 단지에 셔틀이 도착했다. 그 셔틀에서 내린 건 고작 한 사람뿐이었다.
‘위치는 2학년 건물.’
한서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옷은 사복이었고, 얼굴과 머리도 모자와 마스크로 가린 상태였다.
그녀는 연신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2학년 건물로 들어갔다.
곧 수업이 시작하기에 복도는 조용했다. 몇 학생들이 지나갔으나 그녀를 흘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왜 누가 쳐다보는 것 같지?’
주위를 둘러봤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의 시선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
한서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누군가의 위치 신호가 깜빡이고 있었다. 한서희는 그걸 확인하며 복도를 서성였다.
“아쉽네. 바로 될 줄 알았는데.”
“회의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낯익은 목소리에 한서희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바로 앞에 있던 교무실에서 유현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저기요…!”
한서희는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작게 유현을 불렀다.
유현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요?”
“네. 저에요. 한서희.”
한서희가 마스크를 내리자 유현이 그제야 그녀를 알아보았다.
“건물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당신 찾아온 거 맞아요. 왜 스마트폰 아직도 개통 안 했어요?”
“연락할 사람도 없는데 뭐하러 개통하냐? 돈 아깝게. 그 돈이면 마트가서 장바구니 가득 채울 텐데.”
“그럼 들고다니긴 왜 들고 다녀요...”
“게임하려고.”
순간 한서희는 할 말을 잃었다.
연락하려고 사준 휴대전화가 어느새 게임기로 전락해버렸다.
“근데 왜 왔어?”
한서희가 조심스레 유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고양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알겠죠?”
“겨우 그거 때문에 온 거야?”
“겨우 그거라뇨. 저 같은 사람한테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그녀에게 단순한 인플루언서의 이미지만 존재한다면 모를까, 언젠가는 기업인이 될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외부의 공격 대상이 될 만한 작은 사항이라도 누설되어서는 안 됐다.
“알겠다, 알겠어.”
“약속한 거예요?”
“계약서라도 써주랴?”
“아뇨.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돼요.”
한서희는 복도를 벗어나는 내내 계속 유현을 돌아보았다.
그럴 때마다 유현은 빨리 가라며 손을 휘저었다.
“혀, 현아. 저, 저 사람 하, 하, 한서희 마, 맞지?”
유현의 옆에 서서 조금 전의 상황을 목격한 주시하가 말을 더듬었다.
“맞는데, 왜?”
“아, 아, 아니. 너, 대, 대체 어떻게 저 사람을 알아?”
유현은 아차했다.
자신의 동생도 알고 있는 한서희다.
학교에서도 유명한 건 당연지사였다.
‘고양이 이야기는 못 들었겠지.’
소곤거렸으니 못들었을 것이다.
괜히 들어서 소문 퍼지면 또 찾아와서 왈가왈부하리라.
“저번에 도서관에서 봤어. 서로 도움을 좀 주고받았지.”
“계, 계약 이야기는 뭐야?”
“그걸 들었어?”
“그건 크게 말했잖아.”
“비밀이야.”
주시하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비밀... 알겠어. 비밀이면 어쩔 수 없지.”
실망은 금세 사라졌다.
주시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미소를 되찾았다.
“그럼 일단 우리 교실로 가자.”
두 사람은 함께 2학년 F-3반으로 향했다. 테스트 허가가 결정되기 전까지 유현은 주시하와 함께 있으라는 안칠성의 명령이 있었다.
“잠깐만.”
“응? 왜?”
“누가 있는 것 같아서.”
유현은 문득 시선을 느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확인해두고 싶었다.
‘이쪽이었는데.’
그가 향한 곳은 활짝 열린 중앙 계단의 문 뒤였다.
“혀, 현아. 무섭게 왜 그래...”
그곳에 서서 유현은 문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이곳에서 시선이 느껴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깨끗이 사라졌다.
‘착각인가.’
유현은 다시 몸을 돌렸다.
겁먹은 주시하가 계속 물어봤지만, 대강 얼버무렸다.
딩댕동-!
두 사람이 복도를 떠나고, 곧 수업의 시작종이 울렸다.
사람 하나 없이 완전히 텅 빈 복도.
아무도 없던 구석의 그림자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키는 줄 알았네.”
남자는 땀 맺힌 남색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이윽고 그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