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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2화 (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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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이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한서희였다.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단정한 옷 스타일은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들어와.”

뒤쪽에서 가족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유현은 뒤를 힐끗 쳐다보고는 한서희에게 작게 말했다.

“대충은 설명했어.”

“그래요? 그럼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진짜 대충 설명했으니까 네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

한서희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눈을 크게 뜬 채 미어캣처럼 한서희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서희라고 합니다. 사정은 다 알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세 사람 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그녀에게 홀린 것 같았다.

유현은 손뼉을 쳐 가족들의 의식을 환기시켰다.

“다들 정신 차려요.”

먼저 말문이 트인 건 유희연이었다.

“와... 진짜 한서희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유현 동생이에요. 나이는 한 살 어려요….”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반가워요~”

유희연이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본 유현은 어이가 없었다.

“너 지금 되게 어색한데 평소처럼 해라.”

“조용히 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한서희가 싱긋 웃었다.

“이쪽은 아버님이랑 어머님이시죠? 안녕하세요~”

부모님은 한서희와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살면서 대기업의 후계자와 함께 있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평범하게 살았다면, 평생 한 번도 겪지 못할 일이었으니 어색한 게 당연했다.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대해주세요.”

“아이고, 알겠어요.”

“존댓말 안 쓰셔도 돼요.”

“내가 이게 편해서 그래요.”

“우리 이러고 있지 말고 저기 앉아서 이야기 할까요?”

어머니의 제안에 세 사람은 거실 소파로 이동했다.

“넌 안 가냐?”

유현이 동생을 돌아보았다.

왜인지 유희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오빠, 혹시 저분한테 무슨 짓 한 거 아니지?”

“안 했어.”

“협박도?”

“너는 애가 어떻게 된 게...”

“아니면 말고. 아무튼 진짜 예쁘다. 친구 해달라면 해줄까?”

“가서 친한 척이라도 해보든가.”

유희연이 후다닥 거실로 달려가 대화에 합류했다. 저러다 진짜 친구라도 먹는 거 아닌가 몰라.

‘쓸데없는 소리만 안 하면 좋겠는데.’

옆에 부모님이 있으니 헛소리는 어느 정도 필터링해줄 것이다.

“그게 정말이에요~? 어머~”

“이야~ 대단하네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초면인데도 대화를 저렇게 이끌다니. 과연 대기업의 후계자다운 처세술이었다.

‘부르길 잘했네.’

자신이 빠져도 상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유현은 거실을 벗어났다.

그의 걸음이 향한 곳은 유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방이었다.

“하연아, 뭐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잠에 빠진 유하연이 보였다.

유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경치 하나는 좋네.”

침실에도 창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 너머로는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졌다.

유현은 한참 동안 그 풍경을 구경했다. 날아다니는 새들과 흐르는 구름과 흔들리는 나무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

‘사실 이렇게까지 좋은 집은 필요 없었는데.’

애초에 아파트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작은 빌라정도면 만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처음에 계약서를 받았을 때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가족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한서희를 향한 고마운 마음이 커졌다.

‘인테리어도 나름 신경 많이 쓴 것 같고.’

어떤 방은 커다란 책상이 있고, 어떤 방은 장난감들이 많았다.

아마도 구성원의 특성에 맞게 방을 꾸며준 것 같았다. 대단한 노력이었다.

‘어떻게 가족들 정보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되는 사람이니 누굴 시켜서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겠지. 크게 상관은 없었다.

“우우웅... 오빠...?”

곤히 자던 유하연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눈꼽 때문에 제대로 눈도 뜨지 못했다.

“더 자.”

“알게써….”

유하연은 다시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자란다고 진짜 다시 자냐.

유현은 피식 웃고는 방을 나왔다.

거실에서는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이쯤 되니 한서희도 한서희지만 가족들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내 정신 좀 봐. 바쁠 텐데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었네요.”

“아니에요! 재밌었어요~”

한서희가 짐을 챙겨 들고 현관으로 나왔다. 가족들도 우르르 그 뒤를 따라왔다.

“가냐?”

“네.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가라.”

그렇게 인사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어머니가 유현의 팔을 툭 쳤다.

“얘, 너는 친구가 가는데 배웅은 해야지.”

“......”

“서희 양. 잘 가요. 나중에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또 놀러와요.”

“네, 어머님~”

유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뭔가 한 시간 남짓한 시간 사이에 한서희와 자신의 위치가 뒤바뀐 것 같았다.

“잘 가! 서희야!”

“나중에 봐~”

유현은 한서희와 함께 현관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잘도 구워삶았네. 둘이 친구라도 먹었냐?”

“안 될 것 있나요. 나이도 같은데. 그리고 예쁘잖아요. 난 예쁜 사람이 좋더라.”

“......돌았네.”

“네?”

“아니, 아니야.”

여자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걸까.

유현은 동생이 예쁘다는 한서희의 말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다.

“무슨 이상한 소리는 안 들었지?”

“전혀요. 다들 다정하셔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나중에 또 와도 되죠?”

“사실상 네 집이나 다름없는데 뭐.”

중간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는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들어가도 돼요.”

“어머니한테 잔소리 듣고 싶진 않아서.”

“후훗. 효자네요.”

작게 웃던 한서희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메고 있던 핸드백을 뒤적였다.

“제가 설명은 다 했거든요? 다들 바로 믿으시는 것 같았어요.”

“유희연도?”

“네. 바로 믿던데요?”

“허허, 나쁜 년.”

멈췄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현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네? 아, 고마우면 혹시...”

그때까지 핸드백을 뒤적거리던 한서희는 핸드백에서 웬 종이를 하나 꺼냈다.

“고마우면 여기에 서명 좀 할래요?”

“뭔데 이게?”

“길드 갈 생각 생기면 바로 우리 길드로 오겠다는 계약서.”

“......무슨 계약서까지 써.”

“해주세요. 상환이 조건이긴 하지만, 제가 집도 드렸잖아요.”

한서희의 말투는 좀 전과 달리 딱딱했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금세 냉정해지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는데 이거 해봤자 별 소용 없을 거야.”

“그래도 써놓는 게 덜 불안하잖아요.”

“줘봐.”

유현은 계약서를 빠르게 훑고는 서명했다. 깊게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어차피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고마워요.”

한서희는 흡족한 표정으로 종이를 핸드백에 넣었다.

“여러 장 복사해서 코팅할 거니까 나중에 훔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럴 일 없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예요. 참 그리고 이건 조금 외람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한서희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더니 잠깐 뜸을 들였다.

“희연이 말이에요.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그건 왜?”

“아까 실수로 옆구리를 건드렸는데 엄청나게 아파하더라고요. 근데 아무런 티를 안 내요. 표정도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고요. 수상하지 않아요?”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막 지구로 돌아온 터라 아는 게 없었다.

“나중에 물어보지 뭐.”

“물어보면 퍽이나 대답하겠다. 혹시나 말하는데 억지로 옷 들춰보거나 그러지 말아요. 알겠죠?”

“그게 제일 빨라.”

“걔 열일곱 살이에요.”

“너도 열일곱이잖아.”

“아, 적당히 말하면 좀 알아들어요. 자꾸 이상하게 토달지 말고.”

한서희가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에서 손가락을 뗐다.

“그럼 나중에 봐요.”

유현은 귀찮은 얼굴로 손을 들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

헌터 아카데미.

대한민국의 유일한 헌터 교육기관이자 헌터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등용문이었다.

오늘은 유현이 1년간의 휴학을 끝내고 아카데미로 복학하는 날이었다.

“며칠이나 지났지.”

그동안 학교 측에 이런저런 절차를 밟다 보니 꽤 시간이 걸렸다.

오늘로써 유현은 지구에 돌아온 지 2주가 되었다.

“오빠, 오늘 학교 가는 날 아니야?”

“맞아.”

“근데 왜 아직도 그러고 있어.”

“금방 가니까.”

교복을 입은 유희연이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유현은 그런 동생을 유심히 살폈다.

저번에 한서희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그 이후로 쭉 주시하고 있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너 학교에서 무슨 일 없지?”

“없는데?”

“진짜 없어?”

유희연이 신발끈을 묶고는 몸을 일으켰다.

“응. 없어.”

말투가 평소와 다른 건 왜일까.

미세한 차이였지만, 유현은 분명히 느꼈다.

“잘 갔다와라.”

유현은 배웅하는 척 유희연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반응이 왔다.

“아, 아!”

“아프냐?”

“당연히 아프지! 아, 진짜 왜 아침부터 때리고 그래?”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유희연이 역정을 내며 집을 나갔다.

유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별로 세게 치지도 않았고만.”

지난번 한서희가 옆구리를 건드렸다는 점을 참고하여 팔뚝을 두드렸다.

반응이 왔다는 것은 그의 예상이 적중할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뜻이었다.

‘......에이, 설마.’

유현은 동생이 따돌림 당하는 모습이 좀처럼 상상되지 않았다.

그야 소심하지도 않았고, 어디 하나 모난 구석이 없었다. 가끔 짜증나게 하는 걸 빼면 말이다.

물론 어떠한 이유에서든 따돌림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통념상으로 볼 때 유희연은 따돌림과 거리가 멀었다.

‘나중에 한 번 찾아가봐야 하나.’

부모님에게 말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특히 본인이 감추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최대한 조용하게 해결하는 게 상책이었다.

“일단 학교부터 가야겠다.”

유현은 방으로 가 교복을 입었다.

여전히 옷의 크기가 맞지 않았다.

빨리 마나가 사용할 수 있도록 재구조화되어야 크기도 바꿀 텐데.

이 상태로 계속 입었다가는 얼마 안 가 교복을 버려야 할 것이다.

‘나중에 잠깐 산이라도 들러야겠어.’

마나의 재구조화는 마나의 밀도가 높은 곳에 머물수록 빨라진다.

판대륙에서는 사람이 적은 산골짜기나 깊은 바닷속이 특히 마나의 밀도가 높았다.

‘재단 마법은 마나가 많이 안 드니까 몇 시간이면 충분해.’

유현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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