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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11화 (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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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유현이 혼자 머물던 모텔에 이성욱이 찾아왔다.

“부동산 서류입니다. 법인 소유의 물건으로 공과금과 관리비 등은 모두 저희 쪽에서 지불합니다.”

서류를 받아든 유현은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혹시 계약서 수정 할 수 있나요?”

“뭔가 마음에 안드는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그건 아닌데...”

유현은 이 집을 그냥 받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조금씩 집값을 상환하고 싶었다.

‘그게 마음이 편해.’

그래야 언젠가 집을 빌미로 약점을 잡힐 일도 없으리라.

“아가씨께서 동의하셨습니다.”

이성욱은 즉석에서 계약서의 내용을 수정했다. 유현의 요청대로 상환 의무가 추가되었다.

“서명했습니다.”

“이틀 뒤부터 입주가능하시니 참고 바랍니다. 아, 그리고 혹시...”

이성욱이 주머니에서 웬 스마트폰을 꺼냈다.

“휴대전화는 있으십니까?”

“...그것도 제 거에요?”

“예. 아가씨가 없을 거라고, 하나 가져가라고 하셔서 준비하긴 했습니다만….”

“없습니다. 주세요.”

유현은 기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받았다.

“개통은 직접 통신사 가서 하셔야 합니다.”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이성욱은 계약서를 들고 떠나갔다.

혼자 남은 유현은 이성욱이 주고 간 스마트폰 패키지를 살폈다.

송진전자에서 생산한 최신형 스마트폰. 생긴 것만 해도 비싸 보였다.

“이건 또 어떻게 쓰더라.”

그가 지금까지 써왔던 휴대폰은 피쳐폰이 전부였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손에 직접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유현은 스마트폰을 정리하고,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계약서를 다시 읽었다.

집의 위치는 서울의 중심지.

집값이 비싸다는 수도권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곳이었다.

‘비싸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설마 이런 곳을 구해줄 줄은 몰랐다. 나중에 고맙다고 말이나 해야겠다. 언젠가는 모두 갚아야 할 돈이지만, 지금 당장 이런 집이 생긴 게 어딘가.

“가장 큰 문제는 해결됐네.”

마석도 처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건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계획.

유현이 바라는 건 그저 평범한 삶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은 아주 단순했다.

‘그냥 잘 먹고 잘사는 거.’

이곳에는 목숨의 위협도 세계를 멸망으로 끌고 갈 재앙도 없다.

그러니 그냥 직업을 정하고, 일하며 먹고 살면, 그게 평범한 삶이었다.

“우선 학교부터 다시 나가야겠어.”

직업은 헌터로 선택했다.

잔머리는 좀 굴리지만, 공부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었다.

게다가 이세계에서 죽도록 구르고 얻은 건 힘 하나뿐이다. 힘이 곧 돈과 권력이 되는 세상에서 그걸 방치하는 건 자원낭비이자 시간을 버리는 짓이었다.

“이사하고 복학하면 되겠군.”

마침 이틀 뒤는, 마지막까지 입원해 있던 아버지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다 같이 데리러 가기로 했으니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곧장 새로운 집으로 향하면 될 것 같았다.

***

“오빠, 우리 어디가~?”

“가보면 알아.”

“어디 가는데에에~”

둘째 여동생 유하연의 재촉에 유현은 그냥 웃기만 했다.

“희연아.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니?”

“나도 몰라.”

뒤에서 따라오던 가족들 역시 목적지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긴 집들이 다 크다.”

모여있는 아파트들을 올려다보며 유희연이 말했다.

그저 지나가듯 읊은 감상이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미안해, 희연아.”

“엄마 아빠가 못나서 우리 예쁜 딸 고생만 시키네.”

고개를 갸우뚱하던 유희연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냐! 그냥 신기해서 말한 거야!”

과거에 했던 사업들이 하나라도 잘 되었더라면 이렇게 애들을 고생시키지 않았을 텐데.

그런 미안함이 표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오빠 저기서 기다린다! 빨리 가자!”

유희연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저 앞에 서 있는 유현을 향해 뛰어가며 다음에는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뛰어와?”

“그런 이유가 있어.”

유현은 부모님이 따라오시는 걸 확인하고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왜 들어가?”

“부모님 데리고 따라와.”

유희연이 의아함을 표했지만, 유현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들어가도 이 타이밍에 여길 들어가냐...”

유희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부모님을 향해 손짓했다. 두 사람은 좀 더 걸음에 속도를 냈다.

“오빠는?”

“여기로 들어갔어.”

“여길 왜?”

“일단 따라 가보자.”

부모님은 들어가야 할지 말지 잠시 망설이다가 유희연을 따라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왔다.

뉴스나 신문으로 한 번쯤은 읽어봤던 유명한 고급 아파트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유현은 가장 안쪽에 있는 동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현아. 여긴 왜 온 거야?”

“맞아. 이렇게 쓸데 없이 돌아다닐 거면 짐은 왜 가져오라고 했어?”

줄곧 캐리어를 끌고 왔던 유희연은 유현을 향해 툴툴거렸다.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에요.”

“......”

다들 멍청히 유현을 바라만 봤다.

그만큼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엄마. 오빠 진짜 병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냐?”

“현아.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집이라니?”

역시 다들 쉽게 믿지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유현은 다음 계획을 행동에 옮겼다.

“들어가요.”

못 믿으면 직접 보여주면 될 일.

유현은 문자로 받았던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을 열었다.

그가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가자 가족들은 경악했다.

“어, 어떻게 들어간 거야?”

“현아. 이거 벌금 같은 거 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병원비로 돈이 많이 나가 어머니는 더 초조해했다.

“우리 집인데 벌금을 왜 물어요?”

유현은 밖으로 나와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요.”

“엄마! 언니! 아빠! 빨리와!”

유하연이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막내는 그저 새로운 장소에 왔다는 사실에 즐거울 뿐이었다.

“어, 엄마. 일단 가보자.”

가족들은 유현을 따라 현관을 통과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꾸며진 로비. 고급 호텔의 로비와 비슷했다.

“우와.”

다들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온통 처음보는 것 투성이였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한쪽 벽에는 폭포 같은 인공 구조물이, 바로 정면에는 동 전용 데스크까지 있었다.

“타요.”

그들이 주변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유현은 먼저 들어가 가족들을 기다렸다.

“와, 무슨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커?”

다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여기까지 온 이상 유현을 따라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 해줄 거지?”

“네. 들어가서 말 해드릴게요.”

엘리베이터는 15층에서 멈췄다.

유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으로 틀었고, 가족들은 의문을 품은 채 그 뒤를 따랐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유현은 빠르게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여기가 왜 우리집이냐며 반문하려던 유희연은 문이 벌컥 열리자 입을 다물었다.

유현과 가족들은 실내로 들어왔다.

곧장 보인 건 커다란 통창 너머로 펼쳐진 한강의 풍경이었다.

“와...”

감탄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유현은 신발을 벗었다.

운동장처럼 넓은 거실. 바닥에는 때깔 고운 대리석들이 깔려 있다.

유현 역시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내부부터 둘러보았다.

‘가구도 다 있고, 식기 같은 것도 다 있네.’

한서희가 해준다길래 대충 부탁했더니 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우와.”

그 뒤로 한동안 실내에는 감탄 밖에 들리지 않았다.

가족들은 넓은 집안을 구석구석 다 돌아봤으며, 한 시간 뒤가 되어서야 거실에 모였다.

“오빠, 이제 설명해 줘.”

마치 청문회를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유현은 어떤 잘못을 해명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별 거 없어. 그냥 산 거야.”

“돈이 어디 있어서 이런 집을 사니?”

“당장 돈은 없죠. 근데 능력은 되잖아요?”

아버지의 물음에 그리 답하고는 부동산 서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유희연이 곧장 서류를 가져와 내용을 읽었다.

“뭐야. 계약자가 송진그룹인데?”

“자세히 읽어봐. 내가 성인되면 나한테 양도된다는 내용이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여기 대기업 아니야? 여기서 왜 오빠한테 집을 줘?”

“정확히는 빌려 준거라니까. 나중에 갚아야 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유희연과 함께 서류를 정독했다.

고요한 실내. 저쪽에서 유하연이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안 돼.”

서류를 모두 읽은 유희연의 감상평이었다.

“오빠 그냥 사실대로 말해. 여기 모델하우스지? 오빠는 그냥 집주인한테 비밀번호 들은 거고?”

“집주인이 퍽이나 알려주겠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송진그룹이 오빠한테 이런 일을 왜 해주는데? 이거 따지고 보면 30년 무이자 대출이랑 똑같잖아.”

유희연의 추궁에 유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는 내가 용사였다는 것도 믿으면서 이건 못 믿어?”

“그, 그건 증거가 있었잖아!”

“여기도 증거 있잖아. 계약서.”

그렇게 말하니 유희연은 할 말이 없었다.

“현아. 계약서가 문제가 아니라 왜 이런 계약서를 작성했는지를 알려줘. 그래야 다들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논리적인 아버지의 접근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아마 한서희가 이따가 와서...”

“한서희?! 그 한서희?!”

유희연이 호들갑을 떨었다.

한서희가 확실히 유명하긴 한 것 같았다.

“한서희가 누구니?”

“이 집을 구해준 사람이요.”

“하하! 한서희가 무슨 오빠한테 집을 구해주냐?”

유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유희연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부모님의 앞이기에 억지로 참았다.

“이따 한서희 오기로 했다.”

“자꾸 구라칠래?”

“야, 너 그냥 방에 박혀 있어.”

“흥. 이상한 거짓말 하지 말고 설명이나 해봐.”

유현은 한숨을 쉬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녀와 만났고,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고, 도와줬고, 어찌어찌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오빠 드라마 찍어?”

“......”

“드라마에서도 그러면 개연성 없다고 욕먹어. 오빠가 무슨 도서관을 가?”

그게 문제였냐.

유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차피 이따가 한서희가 친히 행차하기로 했다.

유현은 안 와도 된다고 했지만, 가족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이유를 댔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러니 굳이 유희연과 입씨름하며 피곤해질 필요는 없다.

“희연아. 너도 적당히 오빠 말 좀 믿어라.”

“아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지구 말고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고?”

“아니, 그거랑 이거는….”

“다를 것 하나 없어. 차라리 지금 이게 더 현실적이지.”

아버지의 말에 유희연은 꼼짝도 못 했다.

“현아. 혹시 그분이 몇 시에 오신다고 했니?”

“한 시간 정도 뒤요.”

부모님 두 분은 유현의 말을 믿었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자식의 말을 부모가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냐는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방이 참 넓고 좋다. 화장실도 엄청 크고.”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나네.”

“앞으로 익숙해질 거예요.”

어머니는 촉촉한 눈으로 유현을 바라보며 그 손을 붙잡았다.

“아들 덕분에 엄마가 눈물이 다 날 것 같네.”

“뭘 이런 걸 가지고요.”

“해준 것도 없는데 어쩜 이렇게 잘 자라줬을까.”

“어머니 아버지 없었으면 이렇게 자라지도 못했을 거예요.”

두 분에게 다정함을 배웠고, 근성과 의지를 알게 됐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세계에 가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진즉에 멘탈이 부서져 거리의 부랑자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들 덕에 산다. 아들 덕에 살아.”

“아빠! 딸은!?”

“어이구, 우리 딸도 예뻐~”

그 뒤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일터로 출근은 어떻게 하고, 등교는 어떻게 할지, 마트나 주변 편의시설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

딩동!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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