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살기가 뒤섞인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울려 퍼졌다.
박동칠의 등줄기에 소름이 차올랐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새까만 눈동자.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포악한 맹수를 앞에 둔 것 같았다.
“네가 그놈이냐?”
김두루미가 유희연의 머리채를 놓고 유현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헬스로 몸 키운 애송이들이 허세 부리는 거야 이 업계에 발을 들이고 지겹도록 봤으니까.
“우리 동생 때렸다며.”
“그걸 또 그새 가서 꼰질렀어?”
“걔가 내 왼팔이었거든. 왼팔이 하는 일을 팔 주인이 모르면 되겠냐?”
유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안일한 판단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냥 입도 뻥긋 못하도록 처죽여놨어야 하는데.
‘설마 뒤에 조직이 있었을 줄이야.’
그걸 알았다면, 절대로 쉽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자, 그럼 계산을 한 번 해보자. 우리 동생 깽값. 그리고 네가 갚아야 할 빚, 거기에 명예 훼손으로 1억 추가. 기타 등등 다 합쳐서 한 5억으로 퉁치자.”
유현은 대답 대신 집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산이 박살난 가구와 벽.
밖에서 툭 건들면 집이 폭삭 내려앉을 것 같았다.
“잠깐만.”
유현이 김두루미를 지나쳐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 건 유희연 하나였다.
“오, 오빠.”
“많이 다쳤어?”
“나, 나는 괜찮아. 근데 아빠가….”
유현이 아버지를 살폈다.
뒤통수에서 흐르는 혈흔.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잠깐 쉬고 있어.”
유현이 지그시 유희연의 뒷목을 눌렀다. 손가락이 혈을 압박하자 기절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떨궜다.
“뭐야? 어떻게 했어?”
김두루미가 히히덕거리며 물었다.
“툭 치니까 팍하고 쓰러지네?”
유현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수라가 도사리는 눈빛에 김두루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무슨 사람 눈이...’
유현은 천천히 김두루미에게 다가갔다. 김두루미는 마른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쳤다.
“뭐, 뭐해! 빨리 잡...”
소리치려던 김두루미가 목을 부여잡았다. 무엇인가 목을 때린 것처럼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켁, 케엑!”
“형님! 왜 그러십니까?!”
김두루미는 말 대신 손을 흔들었다.
빨리 저놈 잡으라고, 잡아서 족치라고. 눈치 빠르게 알아챈 박동칠은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이 새끼 잡아!!”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직원들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잡아아아!!”
고통에 눈물짓던 김두루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어떻게 목을 가격했는지는 몰라도, 저 수적열세를 극복하진 못할 것이다.
허세 부리는 놈을 잡아다 족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다.
“커헉!”
“크악!”
하지만 그 웃음이 사라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직원들 몇 십명이 동시에 들려들었건만, 유현은 태연하게 모든 공격을 받아쳤다.
피하고, 반격하고, 막고, 반격하고.
우당탕!
김두루미의 눈빛이 흔들렸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조직원들.
파죽지세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빠르지?’
눈에는 보이지만, 도저히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김두루미는 두 눈에 힘을 줬다.
그 역시 D급 헌터 수준의 능력을 가진 각성자. 조폭의 길을 선택했지만, 단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보여라.’
눈에 실린 마나가 유현의 움직임을 좀 더 확실하게 포착했다.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미, 미쳤어.’
마치 미래를 읽는 것 같은 회피력.
중간중간 급소만을 노리는 주먹 솜씨도 일품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절로 이어지는 일격이 아니라, 단숨에 숨통을 끊는 필사의 공격이었다.
‘......좆됐다.’
상대를 골라도 한참은 잘못 골랐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이기는 건 둘째치고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부터 의문스러웠다.
‘이 집에 저런 놈이 있다는 건 듣도보도 못했는데.’
어느새 백명에 달하는 조직원 대부분이 쓰러졌다.
김두루미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애초에 이곳에 온 게 잘못이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나라도 도망쳐야 해.’
슬쩍 현관으로 걸어가는 김두루미.
이미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기서 도망쳐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게 현명하다.
“......”
그런 김두루미의 앞을 유현이 막아섰다.
김두루미가 부들부들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서있는 조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무섭냐.”
유현은 김두루미를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넘쳐있던 눈동자에는 두려움만이 남아있었다.
“사, 사려줘, 제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애써 쥐어짜냈다. 잔뜩 쉬어버린 목. 통증의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이미 기회는 한 번 줬어.”
“......”
“그걸 듣지 않은 건 너희야.”
유현의 손이 움직였다.
김두루미의 목이 180도 돌아갔다.
서서히 기울어지던 몸뚱이가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감기지 못한 눈이 천장을 바라봤다.
***
도심 대학병원 응급실.
응급실 베드에 가족들이 누워있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현아, 대체 어떻게 된 거니?”
유현은 가장 먼저 깨어난 어머니와 유희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조폭들이 쳐들어왔고, 자신이 싸워서 그들을 다 내쫓았다는 식이었다.
경찰을 불러서 쫓아냈다고 둘러댈까 싶었지만, 거짓말인게 들킬 가능성이 커지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모, 몸은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네. 괜찮아요.”
“혹시 모르니 검사라도 받아보자.”
“진짜 괜찮아요.”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 어린 눈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경찰에 신고는 했어?”
“하려고 했는데 다 도망갔어요. 어차피 이제 못 올 거예요. 그렇게 당했는데.”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악독한데.”
“또 오면 그때 경찰 부르면 되죠.”
어머니는 여전히 탐탁치 않아 했지만, 더 이야기하진 않았다.
“엄마 나는 걱정 안 해줘?”
“우리 딸은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내가 얼마나 튼튼한데.”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도 출혈이 심했을 뿐 검사 결과 이상은 없었다.
그래도 유현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엄마는 기억도 안 나. 너희가 걱정이지.”
“나 진짜 괜찮다니까? 그 아저씨한테 침 뱉으려다가 참았어.”
“한 번 뱉어주지 그랬어. 속 시원하게.”
어머니의 부추김에 유희연은 씩 웃었다.
“알았어. 다음에 그 아저씨 또 오면 한 번 해볼게.”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다들 사건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서 유현은 진심으로 안심했다.
“근데 오빠가 정말 그 사람들을 다 때려눕혔어?”
유희연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응. 내가 다 때려눕혔어.”
“아까 그 뚱뚱한 아저씨도 오빠가 때렸다며. 어떻게 했어? 오빠 싸움 못 하잖아.”
“지금도 못할 것 같아?”
유희연은 고개를 저었다.
“몸만 보면 싸움꾼인데.”
“현아. 괜찮으면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니?”
“맞아. 나도 궁금해.”
키가 큰 거야 성장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격이나 분위기 같은 것들은 아니었다.
특히나 그 많은 사람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야기는 믿기가 어려웠다.
“제가 하는 말 다 믿으실 수 있어요?”
“엄마는 다 믿어.”
유현은 턱을 매만졌다.
이걸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면, 적당히 둘러댈까.
적당히 둘러대는 게 가장 편하겠지만, 왠지 그 선택지는 끌리지 않았다.
‘가족들만큼은 내가 겪은 일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저 사실 가출한 거 아니에요.”
실종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유현이 쌓아온 천년의 역사를 모두 읊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중간중간 건너뛴 이야기가 많았지만,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끝냈을 때, 어느새 시간은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어 있었다.
“헐.”
“......”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괜히 말했나.’
믿고 말고를 떠나서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다면 정신 상태를 걱정할 것이다.
동생이라면 몰라도 어머니에게까지 그런 걱정거리를 선사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역시 너무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사실 거짓...”
“엄마는 현이 말 믿어.”
어머니의 말에 유현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믿는다니. 대체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왜 믿어요?”
“우리 아들이 한 말이니까.”
“......”
“많이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어머니는 유현을 껴안았다.
따뜻한 포옹에 고된 과거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믿어줄까?”
순간 울컥했지만, 유희연의 말에 감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믿기는 어려워.”
“그래. 그게 정상이야.”
“근데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세세하단 말이야. 나는 오빠가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지어낼 정도로 똑똑하다고는 생각 안 하거든?”
유현이 동생의 이마를 살짝 쥐어박았다.
“아 씨, 왜 때리는데.”
“매를 벌지 말던가.”
“아까는 껴안으려고 했으면서.”
“기간 지났다. 까불면 바로 응징할 거야.”
유희연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어머니가 미소지었다.
“어머니. 진짜 믿으세요?”
“엄마는 믿는다니까?”
“왜 믿지 대체?”
“엄마, 오빠 이상하다. 믿어준대도 저래.”
믿어준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한편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가족이라는 걸까.
새삼스럽지만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근데 진짜 신기하다. 게이트 때문에 왠지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있었을 줄은 몰랐어.”
유희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유현이 이야기한 내용은 책이나 영화로만 접하던 완벽한 판타지 세계였다.
처음에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마치 자신이 그곳에 간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졌다.
“오빠, 혹시 마법 보여줄 수 있어?”
“지금 마법은 못 쓰는데. 대신….”
유현은 의복 속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가 꺼낸 건 품속에서 나온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크기의 물건이었다.
“뭐, 뭐야 이게?”
“마법 지팡이.”
“와, 짱이다.”
저 옷 속에서 저런 큰 망토가 나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다른 건 더 없어?”
유현은 지팡이를 집어넣고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이번에 꺼낸 건 장검이었다.
“우와!”
유희연에게 남아 있던 조금의 의심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진짜로 믿어줄게.”
“인심 쓰듯 말한다?”
“가족이니까 이 정도로 믿어주는 거야~”
장난스럽게 웃는 유희연을 보며 유현도 피식했다.
“현아. 혹시 또 거기로 가고 그런 일은 없지?”
“완전히 끝났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안심한 얼굴로 유현을 껴안았다.
“다행이야.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어머니의 품속에서 유현은 눈물을 흘렸다. 훌쩍이는 걸 들었는지 유희연이 귀신 같이 달라붙었다.
“뭐야. 울어?”
옆에서 유희연이 기웃거렸다.
“운대요~ 나이 먹고 운대요~”
유현이 손을 뻗어 깝죽거리던 유현의 얼굴을 붙잡았다.
손바닥을 통해 혓바닥이 느껴졌지만, 유현은 끝까지 얼굴을 놓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 아들편이니까, 무슨 일 있으면 꼭 엄마한테 말해야 한다?”
“네. 알겠어요.”
유현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속에서 깊이 다짐했다.
어떻게든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