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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이 도로를 보고 떠올린 건 달리기였다.
관리원은 일반인이나 낮은 등급의 헌터일 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 들어가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
“가자.”
유현은 직선 경로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발을 튕겼다.
사라진 유현의 모습. 그가 지나간 자리로 흐릿한 잔상만이 남았다.
삐삐삐!
통행을 인식하는 게이트의 보안 검색대가 경고음을 냈다.
“뭐야? 왜 울리지?”
“몰라. 수리 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러냐.”
유현의 달리기는 바람 같았고, 관리원 중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유현은 게이트 출입구에서 한참을 멀어진 뒤에야 멈춰 섰다.
출구쪽에 있는 직원들 역시 전혀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나갈 때도 이렇게 나가면 되겠네.”
유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필드에는 여러 헌터들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유현은 의복의 아공간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괜히 얼굴 팔려봤자 좋을 게 없었다.
“어디 보자.”
유현은 초원을 돌아보며 주변을 파악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몬스터는 초원 고블린. F등급 사냥형 게이트에 어울리는 약체였다.
“어려운 몬스터는 아니고.”
문제는 따로 있었다.
“넓긴 더럽게 넓네.”
초원인 만큼 필드는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잘못하면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유현은 이곳까지 온 길을 되뇌었다.
방향을 틀지 않고 달려왔으니,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일직선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좀 가야겠다.”
유현은 다시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주변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적당히 속도를 냈다.
“키리릭!”
한참 움직이던 도중, 몇 마리 고블린이 유현의 앞을 막아섰다. 손에는 다들 돌도끼를 들고 있었다.
“수입원은 사체와 마석.”
마석은 몬스터의 근원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물건이었다.
마나 에너지가 담겨 있어 지구에서는 다양한 자원으로 쓰인다고 한다.
판대륙에도 마물의 근원이라는 비슷한 물건이 있어서 쉽게 기억해냈다.
‘사체는 별로 돈이 안 될 것 같은데.’
고블린의 외형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녀석의 사체는 가져가봤자 큰돈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석 위주로 찾자.’
그런데 마석은 어디 있지?
멀뚱히 고블린을 응시하던 유현은 일단 죽이고 보자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홱!
유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직후, 고블린들의 목이 떨어졌다.
다시 나타난 유현의 손에는 초록색 피가 묻어 있었다.
“고기 써는 느낌이군.”
유현은 고블린의 피를 털어내고는 시체에게 다가갔다.
고블린이 입은 거적데기에서는 돌멩이나 나무 열매가 나왔다.
“하나 같이 쓸모 없는 물건 투성이네.”
유현은 시체 수색을 포기하고 마석이 어디에 있을지 고민했다.
마나가 있다면 금세 찾아내겠지만,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은 시체를 토막내어 뒤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좀 그런데.”
고블린이라고 해도 시체를 자르는 건 영 꺼림칙했다.
‘저 사람들한테 물어볼까.’
조금 먼 곳에 한 파티가 사냥 중이었다.
저들이라면 마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저 사람 우리한테 오는 거 같은데?”
“뭐, 뭐지? 튈까?”
“기다려봐. 혼자잖아.”
한창 휴식 중이던 파티는 다가오는 유현을 보며 속닥거렸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
“위험해 보이는데? 가면 무섭게 생겼어.”
“아, 씨. 튀어?”
그들은 유현을 경계했다.
게이트 내부는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
만약 누군가 악의를 품고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은 공간이다.
실제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거나, 실종되는 등 여러 사례가 존재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의 접근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게 수상한 가면을 착용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 어떡하지?”
“몰라 나도!”
그들은 생태계 최하위 F급.
유현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저기.”
“으아아아악!”
그 두려움은 결국 몇 사람을 도망치게 만들었다.
“뭐, 뭐야.”
유현은 멍청히 도망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이들.
꼭 괴물이라도 본 것 같은 반응이었다.
“왜 도망가지?”
유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아직 몇 사람이 남아 있었다.
그들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무, 무슨 일이세요?”
그들 중 하나가 유현의 가면을 보며 물었다.
“고블린은 마석이 어딨습니까?”
“예? 아, 혹시 그걸 물어보시려고….”
“네.”
“아…. 괜히 걱정했네.”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은 심장이나 머리 부근에 있어요. 고블린 뿐만 아니라 다른 몬스터들도요.”
판대륙의 마물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되게 기본적인 걸 물어보시네요. 이건 헌터 아카데미 졸업하면 무조건 아실 건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아요?”
“아, 네. 얼마든지요. 어차피 오늘 사냥은 여기서 끝인 것 같아요.”
남자가 파티원들이 도망간 방향을 보며 웃었다.
“근데 저 사람들은 왜 도망간 겁니까?”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남자는 뒷말을 아꼈다.
괜한 말을 해서 상대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 눈 뒤집혀서 달려들지 몰라.’
아직 상대의 의도를 모른다.
초보자인 척하다가 방심했을 때 뒤를 노릴 수도 있다.
쪽수는 이쪽이 많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힘을 숨겼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완전히 떠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초원 고블린들 사체도 돈이 됩니까?”
“아뇨. 얘네는 쓸 게 없어서 마석 빼고는 돈이 안 돼요. 사냥형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대부분 처지가 비슷해요. 그나마 등급 높은 애들이나 사체 가져가면 돈 좀 되고 그러지.”
남자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유현은 자신이 모르던 정보를 차곡차곡 저장했다.
유현은 그 뒤로 몇 가지를 더 물어봤고, 남자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고맙습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남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유현이 물어보는 질문들. 그것들은 정말 초보자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질문들이었다.
‘연기? 진짜 초보자?’
남자는 헷갈렸다.
유현이 뒤통수를 칠 사람일까.
아니면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들을 완전히 까먹고 뒤늦게 게이트에 입문한 초보 헌터일까.
얼굴을 가린 것도 나이 먹고 던전에 들어온 게 창피해서 그런 게 아닐까?
‘가면만 없었어도 다들 도망치진 않았을 텐데.’
암살자가 임무를 할 때 착용하던 흉악한 가면. 죽음에서 돌아온 도깨비를 형상화한 가면으로 처음 보는 이라면 자연스레 침을 꼴깍일 수밖에 없는 생김새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멀어져가는 유현을 바라보았다.
정말 질문하는 게 목적이었나.
괜히 긴장했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 도망간 놈들은 어쩌지.’
저들끼리 붙어서 도망갔으니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다.
‘저 사람은 저렇게 혼자 다니면 위험할 텐데.’
남자의 눈에 이제 유현은 그저 뭣 모르는 초보자로 보였다.
“우리 저 사람 도와줄까?”
그가 남아 있던 파티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헌터 선배로서 초보자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왜 도와줘?”
“초보자 같아서.”
“그럴까? 그리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우리 옛날 생각도 나는데.
파티는 자신들이 처음 게이트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배웠고, 실전도 몇 번 겪었지만, 모든 위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다른 파티에게 도움을 받으며 위기를 벗어났다.
이는 초보 파티들이 겪는 대부분의 일이었다.
“그러자. 우리도 도움 많이 받았었으니까.”
파티원들이 짐을 챙겨 급히 유현의 뒤를 따랐다.
그 잠깐 사이에 상당히 멀어졌다.
“저기요!”
철퍽.
뛰어가던 남자의 발치에 무언가 채였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밑을 보았다. 고블린의 시체였다.
“엥?”
남자의 눈이 자연스레 전방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그래? 갑자기 멈추고.”
뒤따라 도착한 파티원들이 남자의 옆에 멈춰섰다.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시, 시체.”
파티원들 역시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유현이 지나간 경로에는 고블린의 시체가 잔뜩이었다.
“으아아악!”
갑작스러운 비명에 유현이 몸을 돌렸다. 왜인지 조금 전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도망치는 게 유행인가?”
유현은 부리나케 달아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사냥을 재개했다.
고블린의 목을 자르고, 단숨에 심장에서 마석을 도려냈다.
마나를 품은 이 돌은 판대륙에서 마법사의 돌이라고도 불렸다.
‘순조롭구만.’
유현은 마석을 주머니에 넣었다.
모두 탁한 빛깔의 작은 마석들이었다. 그리 비싸게 팔리지는 않을 것 같다.
‘더 비싼 마석을 얻으려면 더 높은 게이트에 들어가야겠지.’
하지만 다른 게이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나중에 찾아보던가 해야지.
“근데 이건 어디다 팔아야 하지?”
정작 가장 중요한 정보는 기억나지 않았다.
판대륙에서는 주로 마법사의 탑에서 매입했었는데, 아마 지구에도 그런 곳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것도 나중에 찾아봐야겠어.’
유현은 다시 사냥을 개시했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고블린들.
준비운동도 되지 않는 몬스터들이었다.
“좀 멀리 가볼까.”
더 강한 상대를 찾을 요량으로 유현은 속도를 높였다.
넓은 초원에는 단순히 풀떼기만 있지 않았다.
나무 몇 그루가 자라있기도 했고, 언덕 아래 동굴 같은 구덩이가 파여 있기도 했다.
유현이 다른 몬스터를 마주한 건 그 언덕 아래 동굴 앞이었다.
“크르르.”
덩치 큰 고블린이 커다란 짐승 위에 올라탄, 조금 색다른 몬스터였다.
그 이름은 초원의 왕. 홉 고블린 렉스. 초원 필드의 보스급 몬스터였다.
“키리리릭!”
렉스가 울음소리를 내자, 구덩이 안에서 고블린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많이도 나오네.”
유현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
동족의 피 냄새를 맡은 것인지, 눈동자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키리릭!”
홉고블린의 명령에 초원 고블린들이 유현과의 거리를 좁혔다.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고블린들.
유현은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다음 순간, 그가 있던 자리를 기점으로 반경 내의 고블린들이 쓰러졌다.
그 범위는 서서히 넓어졌고, 고블린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전장은 순식간에 정리 되었다.
남은 건 렉스와 그의 탈 것 뿐이었다.
“크아아앙!”
렉스는 유현을 향해 달려드는 대신 뒤로 거리를 벌렸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새총과 돌덩이가 들려 있었다.
“새총?”
렉스가 돌을 새총에 장전했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고무줄.
“키리리릭!”
렉스가 울부짖으며 고무줄을 놓았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돌덩이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유현은 피하는 대신 앞으로 손을 뻗었다. 날아들던 돌덩이가 얌전히 유현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키, 키리릭!”
그 모습을 본 렉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울었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다시금 새총을 장전했다.
하지만 유현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돌덩이를 들고 있떤 팔을 휘둘렀고, 손을 떠난 돌덩이는 그대로 렉스의 머리에 적중했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쓰고있던 투구가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렉스도 바닥을 굴렀다.
“크르릉...”
짐승이 렉스에게 다가가려는 유현을 막아섰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쳤다.
“꼴에 주인이라고 지키는 거냐?”
“컹! 컹!”
“꺼져.”
유현이 발길질하자 짐승은 그대로 꼬리를 말고 달아났다.
“키리리릭!”
혼자 남은 렉스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싸움에 대비했다.
손에 든 건 다른 고블린과 달리 제법 태가 나는 검이었다. 보아하니 다른 헌터에게서 빼앗은 물건 같았다.
“싸우려고?”
“키리리릭!”
그 순간, 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렉스는 당황하여 허두지둥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다.”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렉스가 몸을 돌렸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언덕에 판 땅굴 뿐. 유현은 없었다.
“사실 여기다.”
목소리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렉스의 목이 땅 위로 떨어졌다.
유현은 손을 털었다.
데구르르 구른 렉스의 머리가 유현의 발치에 닿았다.
“그걸 속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