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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아? 집에 가야지?”
6살 유하연은 선생님의 뒤에 숨어 낯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어린 그녀의 눈에 바뀐 오빠의 모습은 남처럼 느껴졌다.
“하연아, 왜 그래? 오빠 보고 싶어 했잖아.”
“언니, 이 사람 우리 오빠 아니야.”
유희연은 말없이 웃었다.
얼굴에는 변화가 없지만, 다른 것들이 전부 변했으니 저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빠 맞아, 봐봐.”
유희연이 유현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웃어.”
“윽!”
움찔하며 몸을 오므리는 유현.
유희연은 멈추지 않고 유현의 옆구리를 간지럼 피웠다.
“뭐 하는 짓이야?”
“웃어보라니까?”
유희연이 저쪽을 눈짓하며 소곤거렸다. 유하연의 두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맺혀있었다.
“크흡!”
유현이 간지럼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과 동시에 유하연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오빠!!!”
유하연이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 유현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유희연도 간지럼을 멈추고는 씩 웃었다.
“오빠 어디 갔다 왔어~! 보고싶었짜나!”
유현은 동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이 그동안 얼마나 자신을 그리워했을까. 그 마음을 생각하니 괜스레 또 가슴이 아파졌다.
“흐에엥~”
허벅지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바지가 눈물로 축축해졌다.
유현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동생의 등을 토닥였다.
“하연이, 울어?”
유희연의 물음에 유하연은 울음을 멈추고는 코를 삼켰다.
“안 울어!”
“하연이 울보네~”
“안 운다니까!”
“눈이 빨간데~?”
유희연의 놀림에 유하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언니 미워!”
후다닥 어린이집 밖으로 달려 나가는 유하연. 유희연이 급히 그 뒤를 쫓았다.
“하연아! 신발 신고 가야지!”
***
집에 돌아온 유현은 곧장 방에 틀어박혔다.
‘돈이 얼마나 필요하지.’
게이트에 가서 몬스터를 얼마나 죽여야 할까.
필요한 액수도, 몬스터의 가치도 모르니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냥 되는대로 때려잡으면 되려나.”
무식하게 적을 죽이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물론 마구잡이로 죽여서는 안 된다.
돈이 되는 건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
사체가 멀쩡할 수 있게 신경을 써야 한다.
“그건 쉬운 일이고. 문제는 게이트에 어떻게 들어가냐는 건데.”
골몰하던 유현이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누워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게이트 근처를 살피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확인 못 했어.’
유현은 판대륙의 의복으로 갈아입은 뒤 얇은 외투를 걸치고는 집을 나왔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가로등도 없네.”
밤의 폐허 단지는 어둡기 그지없었다. 하늘에 밝은 달이 떴지만, 달빛으로 거리의 암흑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별도 안보이고.’
판대륙은 사는 게 뭣 같아도 밤하늘만큼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하늘을 볼 때면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밤하늘은 그 빌어먹을 곳에서 그나마 삶의 활력을 주는 요소였다. 여기서는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다들 잘 지내겠지.’
문득 그곳에 두고 온 이들이 생각났다.
마왕과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던 이들.
첫 번째 동료들처럼 가족과 비슷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중한 동료인 건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실종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쉽군.’
그들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 쌀쌀맞게 대했는지, 왜 그토록 말을 아꼈는지 등.
영원을 사는 몸뚱이다.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언제나 남아서 고통을 받는 건 자신이었다. 그게 싫어서 그들을 매몰차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서는 어떻게 될까.’
이곳에서도 나이를 먹지 않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지구에서의 삶도 판대륙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남겠지.
‘그런 건 싫은데.’
얼마나 걸었을까.
유현은 아까 전 경찰에게 연행되었던 게이트 인근에 도착했다.
‘게이트 테두리의 동그라미. 사냥형 게이트였나?’
세상에는 사냥형과 던전형, 총 두 가지 형태의 게이트가 존재한다.
사냥형 게이트는 게이트 내부 필드에 몬스터들이 꾸준히 리젠된다.
보스급에 해당하는 몬스터가 있지만, 그 몬스터가 죽는다고 게이트가 사라지진 않는다.
던전형 게이트는 게임 속 던전과 비슷한 곳이다.
한 번 죽은 몬스터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보스 몬스터를 죽일 시 일정 시간 이후 게이트 자체가 사라진다.
‘게이트의 구분은 테두리의 도형으로 한다고 했지.’
게이트는 둥근 테두리 안에 포탈이 생기는 형태다.
사냥형 게이트의 테두리에는 동그라미가 빼곡하고, 던전형 게이트에는 세모가 빼곡하다.
‘또 뭐가 다르더라.’
몬스터는 던전형 게이트가 더 강하다. 같은 등급이더라도 최소 두 배에서 몇 십 배까지도 간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A등급이어도 던전형 게이트의 수준이 더 높다.
‘생각나는 건 이 정도.’
유현은 상념을 치우고 게이트의 주변을 살폈다.
내부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사람들이 신분증을 검사받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자신의 신분증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저건 뭐지?’
유현은 유심히 그 광경을 살폈다.
신분증을 가져다 대면, 잠시 뒤에 화면 위로 사진을 비롯한 간단한 인적 정보가 나타났다.
관리원들이 그걸 헌터의 얼굴과 대조하고는 헌터를 통과시켰다.
‘저게 사람 대신이라는 건가.’
외부의 출입은 내부보다 편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유는 게이트 바깥에서는 인터넷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몰래 들어갈 수 있을까.’
상자에 숨어서 들어간다?
바로 들킬 게 뻔하다.
위장? 이것도 마찬가지다.
“흐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무력은 쓰고 싶지 않았고,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어쩐다.”
고민하던 유현의 귓가에 자동차의 경적음이 들려왔다.
도로를 빠르게 달려가는 자동차들.
유현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거다.”
***
“맞았다고?”
“예.”
“돈은?”
“갚은 걸로 치겠답니다.”
일대를 주름잡는 조직 김두루미파.
조직 보스 김두루미는 조직 산하 대부업체 여우와 두루미의 총괄 담당 김찬호를 내려다보았다.
빚을 갚은 셈 치겠다니. 심지어 그런 놈에게 오히려 처맞고 오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에라이, 모질이 새끼야.”
“히, 히익!”
김두루미가 망치를 들어 올리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안 때려, 새끼야. 쫄지마.”
“죄, 죄송합니다.”
빠각!
망치가 김찬호의 어깨에 작렬했다. 무릎을 꿇고 있던 김찬호가 어깨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끄아아아악!”
“하아. 등신 같은 새끼.”
김두루미는 다른 조직원들에게 고갯짓했다. 줄지어 서 있던 조직원 몇이 앞으로 나와 김찬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아, 안됩니다 형님! 그 새끼 존나 위험합니다!”
김찬호가 고통 속에서 소리쳤다.
그가 본 유현은 위험한 사람이었다.
조직원이 전부 몰려가도 제대로 대항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야, 우리 찬호. 진짜 병신 됐네.”
김두루미가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김찬호의 이빨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데리고 가.”
그가 손짓하자 조직원들이 김찬호를 끌고 바깥으로 사라졌다.
“야, 동칠이.”
“예, 형님.”
“형님은 등신아. 사장님.”
“죄송합니다, 사장님.”
“찬호 일은 이제 네가 해라. 못 갚는 놈들은 필요한 거 빼서 갈아버리고.”
“알겠습니다, 사장님.”
김두루미가 상석에서 일어났다.
그의 기상에 조직원들 사이로 긴장감이 흘렀다.
“자, 다들 주목.”
“주목!”
“오늘 고기 파티는 취소다.”
오늘은 조직의 회식이 있던 날이다.
하지만 조직이 누군가에게 우스꽝스러운 꼴을 당했는데 마음 놓고 고기나 먹을 수는 없었다.
“다들 연장 챙겨라.”
“예!”
보스의 말에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망치를 휘두르며 몸을 푸는 김두루미에게 조직의 오른팔 박동칠이 다가왔다.
“사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무리. 즉,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래봤자 싸움 좀 잘하는 일반인 수준이거나 하위 능력자일 텐데,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연장을 들고 찾아가는 게 과연 현명한 건지 의문이었다.
“그럼 넌 나보고 참으라는 거냐?”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인원이면 누가 민원이라도 넣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 죽이시려는 생각은….”
“아가리.”
“......”
“동칠이 많이 컸다? 머리 위에도 서겠어?”
“죄송합니다.”
김두루미가 박동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걱정 덜어라. 거기 다 무너졌는데 누가 있겠니? 패도 죽기 직전까지만 팰 거야. 그래도 돈은 갚아야 하니까.”
목표가 되는 건 김찬호를 두들겨 팬 한 명.
다른 구성원은 심하게 건들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돈을 가져다 바쳐야 하니까.
“그리고 인마. 내가 괜히 애들 다 데려가는 줄 알아?”
“그 말씀은….”
“이번에 건설사에서 의뢰 들어왔어. 그 집 좀 치워달라고. 겸사겸사 가는 거지.”
“일석이조군요.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내가 언제 생각 없이 움직이는 거 봤냐?”
연장을 챙긴 조직원들이 다시 자리에 모였다.
김두루미는 그들을 죽 둘러보았다.
쇠파이프와 각목을 비롯한 온갖 무기들이 손에 들려 있다.
“야, 저 새끼 저거 칼은 왜 들었어.”
김두루미가 지적하자 주변에서 후다닥 칼을 치웠다.
“다 부셔라. 사람은 기절만 시키고.”
“예!”
“그리고 그 집 아들내미는 내 앞에 가져다 놔. 면상 한 번 보자.”
“예!”
김두루미가 손을 휘젓자 조직원들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김두루미도 박동칠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