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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뭐시여.”
유현은 사내를 살폈다.
딱 보기에도 좋은 목적으로 찾아온 손님은 아니었다.
“왜 또 집까지 찾아오셨어요!”
어머니가 유현을 뒤로 잡아끌며 앞으로 나섰다.
“여~ 이 고삐리는 누구야?”
“아, 아들이에요.”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실종됐다던? 아닌가, 가출이랬나?”
“......”
“아쉽네. 5년인가 지나면 사망처리 할 수 있다던데, 그걸로 보험금이나 타지. 그러면 빚도 빨리 갚고 응? 그랬을 거 아냐.”
“어, 어떻게 그런 말을...!”
유현은 지그시 남자를 응시했다.
빚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대금업자인 모양이었다.
‘돈놀이하는 놈들은 거기나 여기나 비슷하군.’
멸망이 다가온 세상에서도 남들 뒤에 붙어 고혈을 빨아먹는 놈들이 있었다.
유현은 그런 놈들을 보이는 족족 족쳤다.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건 예삿일이었고, 그 정도가 심한 녀석들은 죽였다.
‘아쉽군.’
마음 같아서는 패버리고 싶지만, 지구에는 법이라는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가족들에게 도리어 피해를 끼치게 되리라.
“벌써 몇 달째 밀리는 거야?”
“......”
“전화했더니 멋대로 끊어버리고 말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집에 찾아오지~”
“며칠만 기한을 주시면 꼭 드릴게요.”
사내가 신발을 신은 채 집안으로 들어왔다.
“벌써 몇 번째지? 왜 매번 밀리는데?”
“죄송합니다. 돈 들어갈 곳이 많아서...”
“그러니까 돈도 없으면서 무슨 애를 그렇게 많이 낳아. 꼭 없는 놈들이 더 그런다니까.”
사내가 피식 웃으며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흘 준다. 사흘 안에 입금 안 하면 빨간 딱지 들고 올 거야.”
사내는 그대로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돌려 말을 이었다.
“정 안되면 우리는 사람도 받아. 알지? 딸이 올해 고1이랬나?”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꼭 마련할 테니까요.”
“흐흐. 알았다고.”
사내가 현관을 빠져나가자 어머니가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으세요?”
“으, 응. 괜찮아~”
유현은 어머니를 부축하여 방으로 이동했다.
바닥에 깔린 이불과 책상 하나 만이 작은 방을 이루는 전부였다.
“조금 누워 계세요.”
“미안해. 엄마가 이럴 때일수록 힘내야 하는데.”
어머니는 유현을 보며 힘없이 웃었다.
“조금 있으면 희연이 올 거야. 막 짜증 내도 오빠니까 조금 양보하고 그래. 알겠지?”
“네. 걱정마세요.”
유현은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유희연...”
이름을 중얼거리자 동생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 살 터울의 첫째 여동생.
그리 친하진 않았었다.
그게 가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다.
‘말은 지지리도 안 들었었지.’
말을 안 듣는 건 예사였고,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오빠를 불렀다. 소심한 모습이 답답하다며 이따금 한숨을 쉬기도 했다.
‘지금은 좀 달라졌으려나.’
동생도 자신을 1년간 못 봤으니 나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유현은 동생이 아주 그리웠다.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었으니까.
“엄마. 집 앞에 저 아저씨...”
급하게 뛰어 들어온 유희연은 거실에 선 유현을 발견하고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오, 오빠?”
“......달라진 게 없네.”
“지, 진짜 오빠야?”
유희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오빠다. 너의 하나밖에 없는...”
“이 개자식아아아아!”
유희연은 가방을 내던지고는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복부를 향해 날아드는 발차기.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유현은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이 나쁜 새끼! 개새끼!”
“진정해.”
“너 같으면 진정하겠냐!”
유희연이 인상을 쓰며 유현의 팔뚝을 때렸다.
“아파.”
“아프라고 때리는 거야!”
“목소리는 좀 낮추자. 어머니 방에 누워계시니까.”
그 말에 유희연이 놀라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저씨 때문이지?”
“그래.”
“그 아저씨 아직 앞에 있어.”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갔다 올게.”
“어딜 가?”
유현은 말없이 현관을 나섰다.
곧장 대금업자가 대문 앞에서 흡연 중인 게 보였다.
유현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고, 곧 대금업자가 유현을 발견했다.
“어디 가냐?”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말이 좀 짧다?”
유현은 사내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사내가 유현을 올려다보더니 혀를 찼다.
“요즘 애새끼들은 왜 이렇게 키가 커.”
“내 나이가 천 십팔살이다.”
“뭐?”
“너보다 많다고.”
사내가 손가락 사이에 끼워든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이 새끼가 돌았나? 교복 입고 뭐라는 거야.”
“넌 몇 살이지?”
“올해로 이십팔살이다. 시팔놈아.”
얼굴에 잔뜩 붙은 살집, 풍선처럼 부푼 뱃살. 외형으로 나이를 파악하기에는 지방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저 지방을 전부 근육으로 바꿔도 스물 여덟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에 양심을 팔아 먹네.”
“뭐, 뭐? 양심을 팔아?”
“그래, 인마. 내가 볼 때 네가 팔 건 그 지방덩어리 밖에 없다. 정육점 한 번 가봐라.”
“이런 씨발놈이!”
사내가 다짜고짜 유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기습이었지만, 유현은 가볍게 주먹을 피했다.
“지방이 많으면 속도를 낼 수 없어. 주먹도 마찬가지야.”
“닥쳐 개새끼야!”
사내가 자세를 더 잡고 더 맹렬히 주먹을 휘둘렀다.
유현은 주먹의 경로를 보며 간단히 몸을 틀었다. 주먹은 모두 허공을 갈랐다.
“넌 오늘 내가 팔 다리 다 조진다.”
“해볼 수 있으면 해봐라.”
후웅!
사내의 주먹은 계속해서 허공을 강타했다.
정신없이 주먹을 휘두르던 사내는 시간이 지나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한 대도 안 맞지?’
지금이야 살쪘지만, 과거에는 나름 격투기 판에서 활동했다.
준프로와 비슷한 수준. 하지만 왜인지 눈앞의 애새끼에게는 단 한 대도 닿지 않았다.
‘프로 준비라도 하나?’
의문은 곧장 사그라졌다.
이 집 아들은 분명 평범한 학생이라고 들었다.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긴 하나 그 수준은 가장 낮은 F급.
자신 역시 낮은 축에 속하는 E등급이지만, F등급은 그보다도 한 단계 아래였다. 한 대도 때리지 못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헉, 헉.”
사내가 주먹을 멈추고 거칠게 숨을 쉬었다.
“끝?”
“잠깐, 잠깐 타임.”
무릎을 짚고 호흡을 고르는 사내.
잠시 상황이 진정되고 나서야 사내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너 근데 왜 나온 거냐?”
“왜 나오긴. 복수하려고 나왔지.”
어머니를 쓰러지게 만든 복수.
그리고 다른 용무도 있었다.
“빚은 갚은 걸로 치자.”
“......”
“싫으면 몇 대 맞고.”
“드루와, 씨발람아!”
사내의 고함에 유현이 한숨을 쉬었다.
“이 새끼는 뇌에도 지방이 꼈나. 좋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듣냐?”
“뭐?”
“꼭 맞아야 정신 차려?”
사내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더는 자신의 신경을 긁어대는 헛소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아가리 닥쳐!”
사내가 이를 악물고는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먹을 피한다면 온몸으로 부딪히면 될 일이었다.
‘어디서 복싱 좀 배웠나 본데, 그라운드 포지션에는 못 당할 거다.’
사내는 자세를 낮춘 채 유현의 허리를 노렸다.
이대로 쓰러뜨려서 다시는 저 주둥이를 나불거릴 수 없도록 패버릴 생각이었다.
빠각!
그러나 사내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진 유현의 어퍼컷. 사내의 몸이 허공을 날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
벼락같은 일격에 사내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뒤늦게 턱에서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뭐야.”
“갚아야 할 돈이 얼마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사내의 눈앞에 유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까부터 그 난리를 피웠건만, 조금의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2, 2억.”
“2억? 원금이 얼만데?”
“천만원.”
“원금 천만에 이자가 1억 9천이야? 에라이, 미친 새끼들.”
유현은 사내가 버린 담배를 짓눌러 불을 꺼뜨렸다.
“그거 갚은 걸로 치자. 문제 없지?”
“아, 아니 그건 안 되는데.”
“안 되는 게 어딨어?”
유현이 쓰러진 사내의 멱살을 잡았다. 사내는 유현의 살기 어린 눈빛과 마주했다. 숨통을 조여오는 살벌한 기세. 질식할 것 같은 공포에 사내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 찾아오면 죽인다.”
사내가 마른 침을 삼켰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지금처럼 진심이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이 새끼 싹수없게 대답도 안 하네.”
“아, 알겠습니다….”
유현이 사채업자의 뺨을 툭툭 건드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즈려밟은 담배꽁초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 새끼 뭐야, 대체.”
사내는 하늘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
집에 들어온 유현은 평상복 차림의 유희연과 마주했다.
“밖에서 큰 소리 들리던데 뭐야?”
“아무 것도 아냐.”
유희연은 자신의 오빠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봤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 전체적으로 몸이 커졌고, 분위기도 긍정적인 쪽으로 달라졌다. 고작 1년의 변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동생아.”
“......왜 그렇게 느끼하게 불러?”
“한 번 안아보자.”
팔을 벌리며 다가가는 유현.
유희연은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꺼, 꺼져! 뭐하는 짓이야!”
“이 오빠가 보고싶지 않았니? 나는 네가 참 그리웠어.”
“겨우 1년 가지고 무슨.”
유현에게는 천년이지만, 유희연에게는 고작 1년이다. 그리움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오빠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동생이기도 했으니까.
“그래…. 그게 너답지.”
“......뭘 또 그렇게 실망하냐?”
유희연은 볼을 긁적이더니 유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고맙다.”
옆구리 찔러 절받는 기분이었지만, 그게 어딘가. 그 토닥임 만으로도 그리움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자, 그것보다 우리 중요한 이야기를 해볼까?”
“무슨 이야기?”
“오빠가 왜 가출했는지. 엄마 아빠는 안 물어봤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다 너무 배려심이 넘쳐서 탈이야. 물어볼 건 물어봐야 하는데.”
“궁금한 건 다 물어봐라.”
“왜 가출했어?”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다른 세계로 끌려가서 천 년동안 거기서 살았지. 세계를 구하고 돌아왔고.”
“......정신과 비싼가?”
역시 안 믿는군.
그럴 줄 알았다.
“그냥 마음이 답답해서 어디 좀 갔다 왔다. 그게 다야. 바다도 보고, 산도 돌고, 빙하도 구경하고.”
“여행? 오빠 진짜 개쓰레기다.”
유희연이 자신의 유현을 향해 한심한 눈빛을 보냈다.
“화났냐?”
“너 같으면 화 안나냐?”
곰곰이 생각한 유현은 화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1년의 공백. 가출이라고 생각하셨을테니 그동안 부모님도 놀고 계시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의 성격을 보면, 안 그래도 없는 형편에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을 게 분명했다.
“희연아. 싸우는 거 아니지…?”
그때 방문이 열리며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희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그런 거 아니야, 오빠 오랜만에 봐서 이야기 좀 하고 있었어.”
“그럼 다행이고. 오빠 잘 챙겨줘. 엄마 좀만 누워있을게.”
“응, 걱정하지 말고 쉬어.”
어머니가 다시 방으로 사라지자 유희연의 표정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따라와. 가면서 얘기해.”
“어디 가는데?”
“하연이 데리러 가야지. 걔 이제 유치원 다녀.”
둘재 여동생 유하연.
이름을 듣자 또 기억이 되살아났다.
무척이나 귀엽게 생겼고, 유희연과는 달리 말을 잘 들었다. 아마 나이 차이카 크기 때문이겠지.
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하늘은 밝았지만, 철거된 동네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신발은 그게 뭐야? 운동화는 어디다 팔아먹고 그런 걸 신고 다녀?”
유희연이 신발을 보며 쏘아붙였다.
“좋은 신발이야. 왕실의 장인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특급 신발이지.”
“...오빠 진짜 머리 다친 거 아니지?”
유현은 사실을 말했지만, 유희연에게는 가출하고 돌아온 오빠의 헛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신발부터 사. 이상한 거 신지 말고.”
“이게 이상하다고? 이렇게 멋있는데?”
앞코가 코뿔소의 뿔처럼 위로 솟아있는 형태의 신발이다. 별다른 장식은 없지만, 그게 오히려 신발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게 멋있어? 진짜로?”
“네가 이 멋을 모를 뿐이야.”
“나 참. 그렇게 멋을 잘 아는 사람이 몸에 맞지도 않는 교복을 입고 다니냐? 터지겠다, 터지겠어.”
“...벗는 걸 까먹었어.”
유희연이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이상한 소리는 그만하고. 엄마 아빠가 그동안 우리 집에 무슨 일 있었는지 이야기 해줬어?”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막 돌아왔으니 아마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빚이 많이 생겼어. 아까 그 남자 봤지?”
“그래.”
“그 빚이 왜 생겼을까? 다 오빠 찾으려고 빌린 돈이야. 안 그래도 없는 마당에 여기서 빌리고, 저기서 빌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걸어갈수록 도심이 가까워졌다.
“무당도 찾아가고, 흥신소에 의뢰도 맡기고, 전단지도 엄청 뿌렸어. 그러니 돈이 남아나겠어?”
유희연은 그간 오빠에게 쌓였던 울분을 모조리 토해냈다.
“이사 자금도 다 날리고, 잘못하면 집도 없이 거리에 나앉게 생겼어. 오빠 때문에 다 이렇게 됐다고. 엄마 아빠나 나는 괜찮아도 하연이는 어떡해? 하연이 그 어린애한테 고생이란 고생은 다 시키고 싶어?”
유희연이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유현을 노려보았다.
“미안하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억울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무의미했다.
“......됐어. 사과받으려고 한 이야기 아니야.”
유희연이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그냥 예전처럼 소심하게 징징거리기라도 한다면 몇 대 때리고 말 텐데, 바로 사과를 해버리니 괜스레 무안해졌다.
“오빠답지 않네.”
“그래?”
“오히려 좋아. 이제야 좀 사람다워진 것 같아.”
죽은 동태처럼 힘이 없었던 눈동자에는 총기가 흘렀고, 굽어있던 어깨도 반듯하게 펴졌다. 언제나 위축되어 있던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빠. 혹시 돈 벌 생각 없어?”
“갑자기?”
“아니, 나 요새 엄마 아빠 몰래 편의점에서 알바 잠깐 하는데, 오빠도 일이나 해서 가계에 보탬이나 되라고.”
옛날의 믿음직하지 못했던 유현이라면 권하지 않았을 일.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생각 좀 해보고.”
유현은 신중히 고민했다.
자신 때문에 생긴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히 돈을 벌긴 벌어야 한다. 하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넌 무슨 알바 하는데?”
“친구 아빠가 운영하는 편의점.”
“돈은 잘 받지?”
“날 뭘로보고. 당연히 제대로 받지.”
참 똘똘한 동생 다웠다.
“하고싶으면 말해. 내가 야간으로 이야기 해볼게.”
“생각 있으면 말할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바 생각은 없었다. 좀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그 남자한테 연락해볼까.’
게이트에서 만났던 유튜버.
귀찮아질 것 같아 피했는데, 이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안 좋다는 걸 알았으면 제안을 받아들일 걸 그랬다.
‘마음 바뀌면 다시 연락해달라고 했었는데.’
하지만 명함은 이미 게이트 안에서 버렸다.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가만있어봐. 그러고 보니 게이트에 들어가면 되잖아?’
게이트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고, 그 몬스터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
그게 바로 헌터가 하는 일이었고,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어.’
자격증 없이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불법이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걸리지 않을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과거의 자신도 걸리지 않고 몰래 들어갔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통과하느냐인데.’
유현이 걸음을 늦추며 고민하던 그때. 유희연이 갑자기 뛰어나갔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빠! 빨리와! 늦으면 하연이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