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드넓은 초원 군데군데 크고 작은 바위들이 솟아 있다.
그사이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병장기를 들고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었다.
“키릭! 키리릭!”
“키리리리릭!”
초록색 피부를 가진 괴이한 생명체, 초원 고블린.
그들의 손에는 돌도끼를 비롯한 무기들이 들려 있었다.
“야, 그거 가지고 퍽이나 싸우겠다.”
반면 그들과 대치하는 인간들의 무구는 하나 같이 살벌했다.
날카로운 검, 돌 따위로는 흠집도 낼 수 없을 것 같은 철갑옷.
누가 보더라도 싸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전장의 분위기는 진중했다.
“준비하고, 찍습...”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내가 말을 멈췄다.
고블린들의 뒤쪽 하늘에 무언가 나타난 탓이었다.
“혀, 형님. 저거 뭡니까?”
“왜? 뭐?”
“저, 저기 뒤에...!”
카메라맨이 소리치자 그제야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뭐 UFO라도….”
남자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초원의 허공. 둥그런 틀을 가진 게이트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저게 왜 저기에 열려있어?”
“저도 모르죠.”
그때, 게이트 속에서 무언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쾅!
마치 운석이 충돌한 듯한 엄청난 파괴력. 일대에 먼지가 일며 파티의 시야를 가렸다.
“뭐, 뭐야?”
“형님! 튀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파티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 남자가 먼지 속을 걸어 나왔다.
***
초원에는 뜨거운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쬈다.
조금 전까지 어두운 실내에 있던 유현은 밝은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밝아.’
유현이 의복의 아공간에서 가면을 꺼냈다. 암살자였던 동료의 유품인 가면이었다. 반쯤 부서졌지만, 햇볕을 가릴 정도는 되었다.
“흐음.”
태양을 가린 유현은 차분하게 목소리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가족이 살아있다.’
무려 천년이나 지났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살아있을 수 없는 시간.
목소리의 뜻을 해석하면 두 가지다.
시간이 판대륙과 다르게 흘렀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있거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이런 건 아니겠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지금 가진 단서로는 무엇하나 특정할 수 없었다.
‘직접 찾아보자.’
우선 여기가 어딘 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유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년 만에 돌아온 지구.
생각했던 것만큼 가슴이 떨리지는 않았다.
“판대륙과 큰 차이는 없는데.”
초록빛 초원. 초원 위를 거니는 몬스터들.
판대륙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이곳은 몬스터가 있어도 평화로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잠깐. 왜 몬스터가 있지?”
지구에 마물이 존재하는 곳은 제한적이다. 수없이 되뇌었던 기억이니 틀리진 않았을 터.
곰곰이 생각하던 유현은 혹시 이곳이 게이트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곧 확신이 되었다.
“사람이 있군.”
유현의 시선이 한 무리의 인파에서 멈췄다.
전장에서나 볼 것 같은 옷차림.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있는 겁먹은 괴물들.
척 보기에도 마물을 사냥하는 전사들의 모습이었다.
“역시 게이트가 맞았어.”
이곳이 게이트라는 걸 인식하자 유현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뭐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서서히 뚜렷해지는 기억들. 잊어버렸던 과거가 그의 머릿속에 다시 그려졌다.
‘......내가 게이트에 빨려들어갔던 장소.’
몰래 들어와 사냥하던 사냥형 게이트의 초원 필드.
자신은 분명 이곳에서 몬스터를 죽이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게이트에 빨려들어갔었다.
“...이런 건 다 잊었을 텐데.”
설마 이런 식으로 관련된 정보를 접하면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까?
조금 전의 현상을 보면 그런 것 같았다.
“다행이다.”
매일 고향에 대해 생각하긴 했지만, 모든 걸 기억하진 못했다.
지구로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나저나 다시 돌아올 때도 게이트라.”
엄밀히 말하면 여긴 지구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여기서 나가면 지구이니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걸까.
‘일단 나가야겠어.’
유현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 기억이 되살아나며, 게이트를 나가려면 출구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 기억났다.
길까지 생각난다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상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근데 어떻게 물어보지?’
생긴 게 동양인 같아도 다른 나람일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들어온 게이트는 한국에 있으니 한국인일 확률이 높지만, 그 나라가 아직도 한국일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일까?
유현은 일말의 의문을 가진 채 파티 앞에 섰다. 밑져야 본전, 일단 말이라도 걸어볼 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
어색하게 건넨 인사말. 상대방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모국어로 말을 걸어 보는 건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된 일. 매일 연습했지만, 상대가 답이 없자 자연스레 잘못 말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어를 쓰는 이들이 아니라는 건데.
유현이 고개를 갸웃할 즈음.
무리 중 선두에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모국어에 유현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의 가슴이 오랜만에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한국인입니까?!”
“예, 예?”
“한국인이냐고 물었습니다.”
“아, 맞습니다.”
상대방의 대답에 유현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일단 이들이 한국인이라면 아직 한국이 존재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저기 근데 그쪽은 누구신지…?”
“아, 나는 유현이라고 합니다. 막 판대륙에서….”
판대륙에서 넘어온 용사.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려던 유현은 말을 멈췄다.
천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단순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건 아니었다. 이들에게 판대륙이니 용사니 운운해봤자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사람입니다.”
“...예?”
“그냥 사람이라고요.”
명쾌하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남자는 받아들였다. 헌터 중에는 특이한 사람이 많으니, 이 사람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겠지.
“저기 근데, 아까 게이트에서 나오신 거 맞죠?”
뒤쪽에 있던 무리 중 하나가 유현에게 물었다. 다른 짓을 하던 파티원의 시선도 유현에게 쏠렸다.
“......보셨습니까?”
“네! 막 하늘에서 게이트가 열리더니 운석처럼 쾅!”
“마술이에요.”
“마술이요?”
“예.”
유현이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대답이었지만, 달리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대단한 마술사시군요.”
“오, 오빠는 저 말을 믿어요?”
“쉿! 조용히 하고 있어.”
남자가 여자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유현에게 명함을 건넸다.
유현은 그 명함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그게 명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자신을 증명하는 신분패 같은 것.’
유현은 명함을 확인했다.
컨텐츠 크리에이터 김현식.
기묘한 단어들의 조합에 유현의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몇 가지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유튜버시군요?”
“예, 예. 맞습니다. 헌터와 관련된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유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기억의 조각들이 범람하는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헌터는 뭐고, 그들의 생태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
잠시 생각을 정리한 유현이 남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그걸 먼저 설명해 드렸어야 했는데.”
남자가 옆에 있던 카메라를 가리켰다.
“혹시 저희랑 영상 하나 찍어보실래요?”
김현식은 속된 말로 유튜버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크리에이터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사람 분명 컨텐츠가 된다.’
게이트 속에 열린 또 다른 게이트.
거기서 떨어진 의문의 남자.
심지어 얼굴에는 무서운 가면까지 쓰고 있다.
완벽할 정도로 신비주의적인 인물.
비록 떨어지던 그 순간까지는 촬영하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게 분명했다.
‘타이틀은 게이트의 외계인.’
김현식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보수는 충분히 드릴게요.”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영상이 찍힌다는 건 좋든 싫든 누군가에게 관심이 끌린다는 뜻. 관심은 귀찮은 일을 만든다.
마왕을 죽인 이후 벌어진 연회에서 주인공인 그가 빠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유현의 확고한 태도에 김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은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혹시 출구가 어딘지 알 수 있습니까?”
“저쪽이에요.”
“감사합니다.”
유현은 짧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는 떠났다. 김현식이 떠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
“좀 더 물어볼 걸 그랬나.”
유현이 초원을 질주하며 중얼거렸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속도.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이 누워있고 몬스터가 죽어있었다.
“그 사람들이라면 지금 지구가 대한민국이 어떤 상태인지 알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그들을 떠난 뒤였다.
다시 돌아가자니 너무 멀리 와버려서 별수 없이 출구로 향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뛰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유현은 어딘가를 이동할 때 주로 마법을 사용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점멸]이나 먼 거리를 단숨에 가는 [텔레포트] 등.
이곳에서도 그런 식으로 이동할 생각이었지만, 마나가 그의 부름에 반응하지 않았다.
‘마나의 구조가 달라.’
지구의 마나 구조와 판대륙의 마나 구조가 다르다.
그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려면 소유한 마나의 구조를 모두 지구의 마나 구조에 맞게 바꿔야 했다.
‘꽤 오래 걸리겠는데.’
마나의 양도 양이지만, 마나의 재구조화 자체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계속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일까. 한 번 재구조화를 시작하면 그 뒤로는 알아서 진행된다.
‘생각난 김에 바로 시작해야겠군.’
유현은 달리기를 멈췄다. 그를 따라 달리던 초원의 바람이 전방으로 흩어졌다.
자리에 멈춰선 유현이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심장, 단전, 머리. 세 부근에 위치한 마나의 경유 지점을 찬찬히 훑었다.
전신을 돌던 마나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느려진 마나들이 거꾸로 역류해 마나의 핵심, 마나 코어로 되돌아간다. 체내에는 더 이상 마나가 흐르지 않았다.
“됐다.”
유현은 마나코어를 닫았다.
코어에 있는 마나들은 이제 통로로 빠져나갈 수 없다. 코어에 붙들린 채 지구의 마나로 뒤바뀐다.
유현은 다시 뛰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게이트를 발견했다.
“저긴가?”
게이트 앞에는 작은 컨테이너와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게이트를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검사했다.
‘젠장, 또 떠오른다.’
멈출 수 없는 기억의 범람이 재차 시작된다.
유현은 곧 저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신분 검사.”
게이트를 들어오고 나갈 때 하는 검사로 헌터가 아닌 이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쩌지.’
마법은 사용할 수 없는 상황.
잠시 고민하던 유현은 앞으로 걸어갔다.
“신분증 제출하세요.”
“없습니다.”
“잃어버리셨구나. 그럼 헌터 아이디라도 이야기해요.”
“그것도 모르는데요.”
“장난치지 마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경찰.
국가의 민생질서를 책임지는 자들.
그들의 존재를 깨달은 유현은 곧장 머리를 굴렸다.
“불러주세요.”
경찰은 국민의 질서를 책임지는 이들이다.
목소리의 말대로 가족들이 살아있다면, 경찰을 통해 그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가족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거야.’
목소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가정 하에, 만약 천년이라는 시간이 지구에서도 그대로 흘러갔다면 밖에 나가서 뭘 보더라도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정보를 얻을 수단이 필요하고, 경찰은 거기에 적합했다.
“하아. 잠깐 기다리세요.”
여직원은 호출 버튼을 눌러 경찰을 호출했다.
곧 방탄복처럼 특수한 복장의 특수 경찰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이 사람이요.”
경찰들은 수갑을 쓴다.
그 사실을 기억한 유현은 경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당당한 태도에 경찰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안 채워요?”
“허, 참.”
어처구니 없어 하던 경찰이 유현의 손에 특수 쇠고랑을 채웠다.
마나의 흐름이 막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방해하는 수갑 같았다.
“갑시다.”
유현은 순순히 경찰의 손에 끌려나갔다.
곧 고향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유현의 가슴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어떻게 되었을까.’
많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유현은 경찰들과 함께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어라.’
게이트를 나온 직후, 유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가 낯익은 도시의 모습.
그 풍경이 유현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윽!”
유현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기억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어어, 뭐야? 괜찮아?!”
경찰들이 급히 유현을 부축했다.
유현은 고개를 숙인 채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곧 고통이 사라졌다.
유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빌딩 전광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짜야.”
자신이 기억하던 세계 그대로의 모습.
천 년이 지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기억 속의 풍경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지금 정확히 몇 년이에요?”
“어? 뭐라고?”
“지금 몇...”
그때, 유현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돌아갔다.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익숙한 뉴스. 그 구석에 표시된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2023년 5월 12일]
자신이 사라졌던 그 날로부터, 고작 1년이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