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차원 게이트를 벗어나자, 용암지대였다.
이번에는 로도스로 통하는 공간을 개방했다.
공간으로 진입 후, 밖으로 벗어났다.
로도스였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것이다.
내가 돌아오자, 샤론 군주와 위로그 총관이 버선발로 달려왔다.
“태리 경!!!”
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만에 하나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특히, 샤론 군주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
샤론 군주가 저녁 만찬에 초대했다.
비프스테이크를 비롯한 온갖 요리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내 비서인 린도 초대되었다.
린은 내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 수발을 들 예정이었다.
“그동안 별일 없었죠?”
“아뇨, 있었어요.”
“네?”
“그것도 아주 큰 일요.”
샤론 군주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주 큰일이라니···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나쁜 일은 아닌듯했다.
“무슨 일일까요?”
“태리 경이 구해준 수천 명의 프로미아인들요.”
“네.”
“그들 중에서,”
샤론 군주가 방긋 웃었다.
“핀들레이님의 축복을 받은 인재가 두 명이나 나왔답니다.”
“핀들레이님의 축복이라면···”
언젠가 한번 들어본 적 있었다.
핀들레이의 축복.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샤론 군주였다.
샤론 군주는 핀들레이의 축복을 받아,
단번에 엘레멘탈 마스터가 될 수 있었다.
머지않아 봉인이 완전히 풀리게 되면,
드래곤으로 진화할 거라고 했다.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들었다.
핀들레이의 마지막 예언에 따르면,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심장이 다시 뛰게 되는 날,
그날이 되면, 아흔일곱의 드래곤이 다시 세상에 강림할 것이라 했다.
아흔일곱의 드래곤이란,
암흑룡 길가메시와 악룡 바하뮤트를 제외한 드래곤의 수였다.
핀들레이의 예언에 따라,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이었다.
샤론 군주가 핀들레이의 축복을 받은 날이었다.
당시만 해도 핀들레이의 예언이 모두 현실이 될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만 명의 백성들 중, 오직 샤론 군주만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또 다른 축복자들이 출현한 것이다.
“예언이 현실이 되는 건가요?”
“그럼요! 머지않아, 아흔일곱의 드래곤이 다시 부활하는 거죠!”
샤론 군주가 여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오직 저만이 핀들레이님의 축복을 받았어요. 그래서 악마들을 물리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여겼죠. 혼자는 역시 무리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저 혼자가 아닌, 여럿이라면··· 아니, 정말로 아흔일곱의 드래곤이 모두 탄생한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악마들을 물리치는 것이···”
샤론 군주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악마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그녀의 열정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총사령관 다비온 경이 있었다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했으리라~
***
“어라? 그러고 보니, 다비온 경이 안 보이네요.”
“다비온 경은 지금 북부에 있네.”
위로그 총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뜬금없이 웬 북부란 말인가.
그러다,
“아,”
북부를 탈환하겠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던 것이 떠올랐다.
북부의 영토는 다비온 경의 뿌리이자, 조상들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여 년 전, 로서의 반란으로 인해 북부를 빼앗겨 버렸다.
그 당시, 다비온 경은 피눈물을 삼켰다고 한다.
글로디악 총사령관으로서 영지의 몰락을 지켜만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 후, 다비온 경은 북부 탈환만을 노렸다.
“북부라면 마몬입니까?”
“네, 마몬이라는 악마예요. 흔히들 마몬족이라 부르죠."
“태리 경, 자네가 구해준 프로미아인들 중에서 축복받은 인재가 두 명이나 나왔잖은가. 다비온 경도 이대로 있을 수 없다며 군대를 일으킨 거지. 북방의 프로미아인들을 반드시 구해내겠다면서···”
“다비온 경이 출전하신 지 얼마나 지났죠?”
“오늘로 5일째네.”
“저도 출전하겠습니다.”
“자네도 말인가?”
“총사령관이 출전했는데 사령관이 빠질 수야 없죠.”
“하지만, 자네에게는 아직 7 기사단뿐이잖은가. 병력을 증가하려면···”
“7 기사단이면 충분합니다. 디폴트 기사장에게 출전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흠, 자네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태리 경, 내일 당장 출전하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내일, 축복받은 이들을 함께 만나보려 했는데···”
“축복받은 이들요? 저기 군주님.”
“네?”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말입니다.”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샤론 군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웁쓰~’
토끼 같은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을 만큼 말이다.
“그 많은 프로미아인들 중에서, 두 사람이 축복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죠?”
“음··· 문신요.”
“네?”
내가 의문을 표하자, 샤론 군주가 자신의 상의를 내렸다.
그녀의 윗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헉!”
살짝 당황했지만, 가슴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에 감탄했다.
“축복받은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문양이 있어요. 그러니 금방 알 수 있죠.”
“아,”
샤론 군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축복받은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글로디악에 있어요. 핀들레이님의 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죠.”
“그분들을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요? 글로디악까지 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텐데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공간을 개방했다.
글로디악으로 연결된 공간이었다.
“허허~ 군주님, 태리 경이 공간 능력자라는 것을 깜빡하셨나 봅니다.”
“아,”
“식사 끝나고, 다 함께 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샤론 군주가 힘차게 대답했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무척 활기찬 모습이었다.
***
샤론 군주, 위로그 총관 그리고 린과 함께 글로디악에 도착했다.
“공간 이동은 정말 놀라운 능력이에요.”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백작님, 대단하세요.”
린이 엄지척을 하며 추켜세웠다.
그때, 글로디악 수비병들이 달려왔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우리를 보며 기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샤론 군주와 위로그 총관을 보자,
황급히 예를 갖췄다.
“군주님을 뵙습니다!!!”
우리는 수비병들을 지나쳐, 요새의 심장부로 향했다.
심장부에 가까워질수록 경비가 더욱 삼엄해졌다.
곧이어, 요새의 심장부에 도착했다.
중앙의 석문이 열리고,
수백 평이 넘는 거대한 광장이 나왔다.
광장의 중심에는 5m 크기의 크리스탈이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지면과 약, 30cm 정도 떨어진 높이였다.
크리스탈.
저것이 바로, 핀들레이의 심장을 품고 있는 크리스탈이었다.
크리스탈 옆에는 두 명의 여인이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그녀들 모두가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든 모습이었다.
헌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알몸 상태라는 것이다.
그녀들 몸 주위로 에메랄드빛 아우라가 일렁였다.
사실, 알몸이라서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샤론 군주를 비롯한 일행들의 담담한 모습에,
금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핀들레이님의 꿈을 꾸는듯해요. 우리가 시간을 잘못 맞춰왔나 봐요.”
“군주님, 언제쯤 깨어날까요?”
“지금 당장이 될지, 며칠 후가 될지 장담할 수 없어요.”
샤론 군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담, 어쩔 수 없죠.”
이왕지사 이리된 거, 크리스탈이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크리스탈은 정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
그때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난생처음 보는 크리스탈이었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크리스탈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크리스탈이 날 부르고 있었다.
내게 더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에메랄드빛 아우라가 황홀한 빛으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나도 모르게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갔다.
크리스탈 속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심장이었다.
핀들레이의 심장이, 힘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 쿵! 쿵!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내 귓가를 가득 채웠다.
그와 동시에, 신비한 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영상은 점점 확대되더니 내 몸을 삼켜버렸다.
***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푸른빛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풍요로운 대지.
악마들이 침략하기 전 프로미아의 모습이었다.
언제가 보았던 낯익은 모습.
아슬란 자라의 기억 속 모습이기도 했다.
한 여인이 등장했다.
그녀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여신, 그 자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의 얼굴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마음이 다 아련해질 정도였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인연을 맺는다면 너는 불행해질 것이라고···”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그녀가 허공을 향해 애처롭게 불렀다.
“떠나거라, 어서 이곳을 떠나거라.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드래곤이 소멸될 것이다.”
“아버지, 제발···”
그녀가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너무나도 슬픈 장면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리도 슬피 우는 것일까.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돕고 싶었다.
“울지 마세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 손을 잡아요.”
무릎 꿇은 그녀를 일으켜 주고 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말이다.
하지만, 절절한 내 마음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내 목소리는 그녀가 들을 수 없었고,
내 손은 그녀가 잡을 수 없었으니까.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영체일 뿐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향해 한없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누구냐!”
허공에서 들리는 고함 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이놈, 썩 꺼지지 못할까!”
고함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내 몸이 산산조각 났다.
“아,”
내가 현실로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나도 모르게 털썩~ 쓰러졌다.
“태리 경!”
“백작님!”
샤론 군주를 비롯한 일행들이 달려왔다.
“괘, 괜찮습니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리 경,”
“백작님, 대체···”
“무슨 일인가! 갑자기 왜 쓰러진 거야!”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면서,
잠깐 어지러움을 느꼈을 뿐이라고만 답했다.
“이제, 로도스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괜찮겠어요? 괜히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여기서 쉬는 게 어떤가. 차원 이동이라는 게 보통 일도 아니고··· 아무래도 꽤, 무리한 듯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에요.”
나는 웃으며, 로도스와 연결된 공간을 개방했다.
***
로도스로 돌아왔다.
샤론 군주가 서재로 데려가더니, 힐 샤워를 퍼부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였다.
힐 샤워가 끝나자, 그녀와 함께 차를 마셨다.
위로그 총관과 린도 함께였다.
한창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군주님, 급한 전갈입니다.”
근위병이 들어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윽고,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40대 초반의 기사였는데 피와 땀으로 범벅된 갑옷을 착용 중이었다.
다비온 경의 전령인듯했다.
“군주님,”
기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읊조렸다.
꽤나 비통한 표정이었다.
“초, 총사령관님께서···”
“그대는 침착하게 말하세요. 총사령관, 다비온 경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그게···”
전령이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적에게 사로잡히셨습니다.”
서재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전령의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