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내가 얼마만큼 강해진지 모르겠다.
힘, 스피드, 체력, 모든 면에서 말이다.
──── 쾅! 쾅! 쾅! 쾅! 쾅!...
하이퍼 스피릿 2단계,
울트라와 엘레멘탈 마스터의 합공이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내가 압도적으로 밀려야 했다.
그것이 상식이었고,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 쾅! 쾅! 쾅! 쾅! 쾅!...
일방적인 대결.
오히려, 내가 압도했다.
- 폭룡 진노.
언제, 어디서든 오백 자루의 검이 생성됐고,
- 폭사.
언제, 어디서든 천 자루의 창이 생성됐다.
능력을 발휘하자,
──────── 콰콰콰콰콰콰콰...
거대한 황성이 파괴되었다.
로서와 테사다르가 잔해에 깔리는 것은 덤이었다.
“이익!”
놈들이 잔해를 뚫고 나왔다.
무척이나 분노한 표정.
“이놈!”
“죽어!”
로서와 테사다르가 미친 듯이 공격했다.
하지만, 너무 느렸다.
내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 퍽! 팍! 콰직! 쿵! 쾅! 퍼억!...
그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을 뿐이다.
놈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특히, 로서는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꽤나 고통스러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죽어라.”
로서의 뒤를 점한 후, 가차 없이 목을 베었다.
확실히, 마법사라 그런지 방어가 취약했다.
로서의 목이 툭~ 하고 땅에 떨어졌다.
명성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테사다르가 로서의 죽음을 공포스럽게 바라봤다.
놈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다가갈수록 놈이 벌벌 떨었다.
공간 능력자지만, 달아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공간을 개방한 순간 그 즉시, 목이 달아날 테니 말이다.
내가 지척까지 다가서자, 놈이 털썩~ 주저앉았다.
“너, 넌··· 날 죽일 수 없다. 아니, 죽여서는 안 된다,”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로서를 처리한 후였다.
놈 역시도 단숨에 처리할 작정이었다.
“고통 없이 단칼에 보내주마.”
“자, 잠깐!”
테사다르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라면,”
“아니, 그게 아니라···”
“천하의 발록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그게 아니라, 내 말 좀 들어다오,”
“말했지? 나는 악마를 부정한다고.”
테사다르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깔끔하게 죽어라.”
“죽이면 안 된다고! 진짜 안 된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테사다르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악마 새끼가 더럽게 질질 짜네. 그러다 울겠다, 새꺄.”
“제발 부탁이다. 날 죽이지 말아다오.”
“하,”
“날 죽이면··· 로서가 폭주할 거다.”
“뭐?”
테사다르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로서는 이미 죽어버린 상태.
그런데 폭주한다니···
장난을 치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이런 개새끼가!”
분노한 나는,
──── 퍽! 팍! 콰직! 쿵! 쾅! 퍼억!...
테사다르를 무참히 패버렸다.
놈의 면상이 완전 묵사발이 되었다.
“지, 진짜라고··· 로서가 폭주한다고···”
“이 새끼가 아직도!”
“잠깐만! 내가 다 설명할게! 내가 다 설명한다고!”
테사다르의 말은 이랬다.
공허의 공간에서 산산조작 난 길가메시.
놈의 상념으로 부활시킨 것이 바로 로서였다.
쉽게 말해, 애초부터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로서를 부활시켰지만,
놈을 컨트롤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놈의 힘을 봉인시킨 채, 조종해왔던 것이다.
크리스탈을 얻어 놈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봉인을 풀 생각이었다.
“내가 죽으면 봉인은 자동으로 풀린다. 넌 폭주한 로서를 절대, 이길 수 없어!”
“응, 안 이겨.”
나는 가차 없이, 테사다르의 목을 베었다.
- 공간의 잼을 획득하셨습니다.(2/3)
“새끼 더럽게 진지하네.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다.”
죽은 놈이 되살아나서, 폭주를 한다니···
신박한 개소리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기다려봤다.
뭔가 자그마한 변화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 변화는 있었다.
로서의 저주에 걸렸던 다크 드래고니안들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외쳤다.
‘이제 남은 건 보물뿐인가···’
나는 파괴된 황성을 바라봤다.
“큭,”
저 수많은 잔해들 속에,
10대 보물 중 마지막 한 개가 깔려있었다.
누군가 보물을, 황성 어딘가에 숨겨놓았던 모양이었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때,
- 드드드드드드드...
땅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파된 잔해 속에서 뭔가가 부풀어 올랐다.
황급히 하늘 위로 비상했을 때,
거대한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
‘맙소사···’
100m가 훌쩍 넘는 어마무시한 크기.
공포스러운 모습에,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테사다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암흑룡 길가메시,
고대의 드래곤이었다.
일반적으로 드래곤은,
날개와 꼬리가 달린 네 발 달린 마수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암흑룡 길가메시는 달랐다.
날개와 꼬리가 달린, 인간형 마물이었다.
놈이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날개의 펄럭임만으로 거대한 폭풍을 생성시켰다.
‘이건 못 잡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나는, 순간이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
‘헉!’
마나가 동결됐는지, 순간이동이 되지 않았다.
이미 지역 전체가 암흑룡 길가메시의 통제하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해야 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폭룡이 솟구쳤다.
폭룡은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화되었다.
불길이 활활 치솟는 거대한 검이었다.
“죽어!”
온 힘을 다해, 일도양단했다.
──── 콰아앙!
폭발 소리와 함께, 폭룡이 산산조각 났다.
그 충격에 피 분수를 뿌리며 튕겨 날아갔다.
단순한 반탄력만으로 내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쾅! 소리와 함께 지상에 추락했다.
땅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렸다.
“커헉!”
울컥하고 한 움큼의 핏물을 내뱉었을 때,
거대한 주먹이 날아왔다.
──── 콰아앙!
폭발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놈의 손에 붙잡힌 채로 100m 상공까지 떠올랐다.
시뻘건 놈의 눈빛이 내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그랬다.
이건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자포자기한 순간, 주마등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작은 물처럼 솟아난 기억은 엄청난 쓰나미가 되어 내 정신을 강타했다.
▣ 하이퍼 스피릿 폭룡 : 혼돈 저항, 화염 저항, 빙하 저항, 뇌전 저항, 물리 저항, 마력 저항, 정신 저항. 저주 저항, 환영 저항.
정신 저항 능력이 없었다면 벌써, 미쳐버렸을 것이다.
내 뇌리에서 되살아난 것은 아슬란 자라의 기억이었다.
그가 유체이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허공에 둥실 떠오른 그가, 암흑룡 길가메시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그림자 공작, 아슬란 자라는 암흑룡 길가메시와 정령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아슬란 자라의 기억은 이랬다.
암흑룡 길가메시가 악마들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다.
악룡, 바하뮤트가 악마들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길가메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아내지 못했다.
악신 레메게돈이 정령의 여왕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흔아홉 마리의 드래곤이 악마들에게 희생되었다 알려졌지만,
사실상 아흔여덟 마리였다.
이것은 온전히 악룡, 바하뮤트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암흑룡 길가메시가 저지른 일로 기록되었다.
악마들이 뒤에서 농간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드래곤, 핀들레이가 나타났을 때는 그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
정령의 여왕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공헌의 균열에 갇혀 억겁의 세월 동안 고통받았다.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 스토리였다.
(봉인이 풀렸지만, 크리스탈이 없는 한 아버지는 곧 소멸될 거야. 하지만 너 하나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영체 상태인 아슬란 자라가 다가왔다.
(니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바하뮤트를 없애고, 악신에게 붙잡혀있는 어머니를 구해줘. 비록 난 실패했지만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아는 너라면 말이야.)
(태민, 니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아버지와 함께 소멸하겠어.)
(너무 이기적이다고 생각하지 마. 어차피 너는 악마와 싸워야 할 운명이었어. 악마들이 곧, 지구를 침공할 테니까.)
(시간이 없어. 빨리 선택해야 해. 넌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야.)
악룡 바하뮤트를 없애고, 악신에게 붙잡힌 여왕을 구하라니···
굉장히 불합리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단 무조건 살아야 했다.
의식 속에서 소리쳤다.
살겠다고···
- 맹약이 성사되었습니다.
- 인과율에 따라 맹약은 목숨을 담보합니다.
- 정령의 여왕을 구하라.
- 악룡 바하뮤트 없애라.
- 악마군의 침공까지 3년 남았습니다.
***
“정신이 좀 드세요?”
눈을 떴을 때, 샤론 군주의 얼굴이 보였다.
“여긴···”
“임시 천막이에요. 황성이 무너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모셨어요.”
“황성···”
다크 드래고니안들의 저주가 풀리자, 로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샤론 군주가 모든 병력을 이끌고 로도스로 향했다.
그녀가 로도스에 도착했을 때, 내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힐 샤워를 퍼부었다.
보름이 넘도록 말이다.
다행히 차도가 있어서, 이제서야 겨우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태리 단장님. 당신은 드래고니안들의 영웅이세요. 저, 샤론 테일러는 당신에게 영웅의 칭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
“축하합니다, 태리 단장님. 로도스 왕국의 총관으로서 영웅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위로그 총관이 가슴에 손을 얹히며 예를 표했다.
“총사령관 다비온 크레일. 영웅, 태리 단장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오.”
테일러 경마저도 가슴에 손을 얹히며 예를 표했다.
조금 머쓱한 상황이었지만,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묵묵히 인사를 받았다.
“영웅님, 저희는 여기서 안주할 생각이 없어요. 로서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부터 우리 로도스는 악마들과 결연히 맞서 싸워왔어요. 이제 다시 하나가 된 만큼, 선조들의 뜻을 받들어 악마들과 다시 싸울 것입니다. 프로미아 행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샤론 군주의 말을 듣던 중 불현듯, 10대 보물이 떠올랐다.
마지막 남은 1개였다.
“무너진 황성의 잔해들은 다 치웠습니까?”
“지금 치우고 있는 중이에요.”
“이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리 단장님, 아직 움직이시면 안 돼요!”
“괜찮아요. 움직일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아니, 그래도···”
황급히,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황성이 무너진 자리에 도착했을 때,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잔해 속에서 10대 보물이 느껴졌던 것이다.
‘소환.’
그림자 병력을 소환했다.
그림자 기사(78,125), 그림자 투사(390,625), 그림자 전사(1,953,125), 그림자 병사(9,765,625).
1천2백만에 달하는 엄청난 병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소환되었다.
(잔해를 치워라.)
(예, 주인님!!!)
그림자 병력이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30분도 안 돼, 반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인님!)
병사 하나가 반지를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