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지난 2차전 때, 들은 소문인데요. 로서가 군단장들에게 10대 보물을 나눠줬다고 해요.”
“뭐!”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10대 보물을 나눠줬다니···
만약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특급 정보였다.
“설마, 그래도 10대 보물인데···”
“10대 보물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핀들레이의 뼈와 살로 만들어졌다는 게 중요하지. 로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핀들레이의 뼈와 살이거든요. 10대 보물이 아무리 대단해도, 소용없다는 거예요. 핀들레이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테니까.”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고통스러운 곳이 바로 공허의 균열이었다.
핀들레이에 의해 공허의 균열에 갇혀버린 암흑룡 길가메시.
로서로 다시 부활했지만, 그의 본신은 어디까지나 암흑룡 길가메시였다.
그에게 있어서 핀들레이는 두려움이자 고통 그 자체였다.
“10대 보물을 봉인할 수 없고, 소유할 수도 없어요. 그의 능력으로는.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군단장들에게 맡겼다고 해요. 그들의 힘이라면 10대 보물쯤은 충분히 수호할 테니까요.”
“흐음,”
꽤나 흥미로운 얘기였다.
“글로디악의 다비온님께 한번 찾아가세요. 2차전 때, 10대 보물 중 하나를 손에 넣으셨다고 하니까.”
“정말?”
“고위급 다크 드래고니안에게서 얻었다고 하는데 그가 군단장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우리도 이틀 후면 출발하니까, 그때 가서 한번 여쭤보세요.”
린이 꽤나 유용한 정보를 전해 주었다.
쏠쏠한 정보에 골드바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녀가 깜짝 놀랐지만,
“땡큐~”
나는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과해요.”
“아니, 과하지 않아. 나한텐 오히려 부족하지.”
‘고위급 다크 드래고니안이라···’
로서의 저주에 오염된 존재.
그들이 바로, 다크 드래고니안이었다.
핀들레이의 반지가 고위급 군단장들에게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핀들레이의 반지만큼은 반드시 손에 넣는다.’
용암지대를 기준으로 어둠의 숲까지는 진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어둠의 숲 너머의 황야의 들판이었다.
그곳의 수문장 비홀더 킹을 돌파해야 했다.
놈을 넘어서야지만, 시체의 강과 죽음의 언덕을 넘어,
리치 평야에 도달할 수 있었다.
리치 평야에 존재하는 고위급 악마를 잡는 것.
놈에게서 발록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내 목표였다.
“날이 벌써 어두워졌군. 린, 내가 쉴만한 곳이 있을까?”
어느새 시간이 지나,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저택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저택?”
“네, 저택요.”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가지. 조금 피곤해서 말이야.”
“네, 단장님.”
린을 따라 성 밖으로 나갔다.
성 밖에는 사두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린과 함께 마차를 타고, 성 밖을 돌았다.
잠시 후, 저 멀리서 한적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성과는 조금 떨어졌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후,
거대한 저택으로 향했다.
넓은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이곳이 바로, 단장님 저택이에요.”
“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혼자서 지내기에는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그저 방 하나면 충분했는데,
꽤나 과하게 준비한듯했다.
“명색이 테일러 성의 기사 단장님이세요. 귀족으로서 품격이란 게 있다고요.”
“귀족?”
“아, 아직 안 드렸구나. 잠시만요.”
린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금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명패와 고급스러운 양피지였다.
“신분증과 귀족 증서예요.”
린이 신분증과 귀족 증서를 건네주었다.
“귀족이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히며 예를 표했다.
그러자,
“축하드립니다, 남작님!!”
정원에 있던 10여 명의 드래고니안들도 예를 표했다.
그들의 복장은 누가 봐도 메이드 복장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귀족 운운하는 것이,
확실히 중세 시대와 비슷한, 판타지 세상이었다.
***
글로디악에서 시작된 핀들레이의 보호막은 좌로는 테일러 성 전체를,
우로는 베스 제국 전체를 보호 중이었다.
베스 제국의 황제가 된 로서는 자신의 본체인 암흑룡 길가메시로 진화해야 했다.
따라서, 핀들레이의 심장이 반드시 필요했다.
핀들레이의 심장은 글로디악 요새, 크리스탈 속에 잠들어있었다.
“심장을 찾아라!”
로서가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이 바로, 베스 제국과 글로디악의 1차 전쟁이었다.
1차 전쟁의 결과, 베스 제국은 대패했다.
글로디악 요새는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는 다비온까지 있었다.
로도스 왕국, 최강의 전사 다비온.
그는 무려, 하이퍼 스피릿 2단계의 전사였다.
일명, 하이퍼 스피릿 울트라.
패배를 당한 로서는 눈물을 머금고 철수해야 했다.
세월이 지나, 좀 더 힘을 회복한 로서는 다시금 2차 전쟁을 일으켰다.
이번엔 5개 군단을 앞세웠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병력.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 제국은 또다시 대패했다.
5개 군단으로는 글로디악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로서는 다시금 병력을 일으켰다.
이미 모든 힘을 회복한 로서는 이번에야말로 글로디악을 점령할 작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 무려, 12개의 군단을 모집했다.
베스 제국의 12군단.
이 정도 병력이라면 글로디악뿐 아니라,
헬바인 성도 점령할 수 있었다.
***
테사다르는 현재 드래고니안 몸속에 빙의 중이었다.
암흑룡 길가메시의 화신,
로서를 부활시키기 위해, 보호막 속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드래고니안 몸속에 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만약, 발록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있었다면,
글로디악쯤은 벌써 점령했을 터였다.
“멈춰라.”
광활한 베스 제국, 서쪽 끝.
크리스탈 보호막이 펼쳐진 끝자락이었다.
마차를 세운 테사다르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
저 멀리서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무려 10m가 넘는 거대한 마수였다.
엄청난 크기의 동체,
놀랍게도 뼈로 만들어진 스켈레톤 드래건이었다.
테사다르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스켈레톤 드래건 위로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스켈레톤이되 스켈레톤이 아닌듯한 악마.
에이션트 리치 아마테라스의 종이자 모든 리치의 스승인 엘더 리치였다.
스켈레톤 드래건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보호막까지 날아왔다.
엘더 리치가 시익~ 하고 웃으며, 땅 위로 내려섰다.
“이런 이런~ 영광스러운 발록의 일족께서 꼴이 우습게 되셨군요. 고작 드래고니안이 되시다니···.”
“쓸데없는 소리! 용건부터 말하라!”
“예의~ 예의~ 용건부터 말하라 하시면 말씀드리죠. 테사다르 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로서의 힘이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로서가 심장을 획득할 겁니다. 정말 암흑룡 길가메시로 진화시킬 작정입니까?”
“····· 물론이다.”
“테사다르 님!”
“무슨 상관인가!”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암흑룡 길가메시는 그 자체가 재앙인 놈입니다. 고위급 악마들도 놈을 막을 수 없다고요!”
“그건 어디까지나 네놈들 사정이고, 내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큭,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그렇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다라···”
테사다르가 보호막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왜? 날 죽이기라도 하시게?”
“못 죽일 것도 없죠.”
“흥, 그렇게 죽이고 싶다면 얼마든지 죽여라~ 단, 이 보호막을 먼저 뚫어야겠지만···”
“절 비웃는군요.”
“글쎄··· 비웃는다고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유감이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야.”
“테사다르 님을 보니, 헬바인 님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감히, 너 따위가 헬바인 님을 언급하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인가!”
“로서가 여왕의 일을 알고도 헬바인 님을 도울지 의문이네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닥쳐라!”
“그냥 앉아서 넋 놓고 당하지 않겠습니다.”
“····· 이봐, 론. 진정하라고. 헬바인 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아고라르의 잡종들이니까.”
!!
“설마.”
테사다르의 말에 엘더 리치가 경악했다.
“헬바인 님께서 약속의 언질을 줄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고 썩~ 꺼져라.”
“그 말씀이면, 저희가 큰 실례를 범한듯하군요. 그럼 이만··· 아 참!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깜빡했네요.”
“·····.”
“며칠 전, 발록의 일족인 카마쉬 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카마쉬!”
엘더 리치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관이 튀어나왔다.
관 속에는 카마쉬가 잠들어있었다.
“카마쉬, 이 멍청한 놈··· 그런데, 처음 보는 생명체로군.”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체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지요. 카마쉬 님은 인간의 몸속에 빙의한 상태였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지구로 가는 행성 통로를 발견했다고 하시더군요. 군대를 빌려준다면 지구를 점령하겠다고 말씀하셨고요.”
“·····.”
“그런데 어제, 용암지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카마쉬 님께서 개방하셨던 통로는 이미 닫혀버린 상태였고요.”
“큭.”
발록의 일족 중 가장 약했던 놈이었다.
워낙 약했던 놈이라 일족의 놀림감이 되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발록의 일족이었다.
수십 년 전 갑자기 사라진 놈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울분이 치솟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테사다르 님과 적대할 의도는 없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의 통로만 열어주시죠. 카마쉬 님의 복수는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 지구를 갖겠다는 소리군.”
“어찌 감히, 저희는 그저 소소한 재미를 보려는 것뿐입니다.”
“네놈의 말을 어떻게 믿지?”
“일단, 카마쉬 님부터 부활시키죠.”
엘더 리치가 손을 뻗자, 카마쉬의 뼈들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윽고, 눈 깜짝할 사이에 스켈레톤으로 부활되었다.
“보여라!”
엘더 리치의 말에, 하나의 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카마쉬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지구인··· 이··· 태민···.”
지구인으로 보이는 한 인물이 카마쉬를 죽이는 장면이었다.
테사다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한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절한다.”
엘더 리치의 요청을 단숨에 거절했다.
“에이션트 리치, 아마테라스 님께 맹세합니다. 그래도 안 되겠습니까?”
“내가 의심이 많아서 말이야. 그리고 카마쉬의 복수는 내가 직접 할 것이다.”
“·····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네요. 다른 발록 님께 부탁할 수밖에··· 그럼.”
엘더 리치가 스켈레톤 드래건 위로 몸을 날렸다.
이윽고, 스켈레톤 드래건이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가소로운 놈···’
테사다르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산산조각 난 암흑룡 길가메시의 파편들···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상념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평생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겨우 로서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로서를 키우며, 자신만의 로서를 만들었다.
이제 곧 있으면 로서가 암흑룡 길가메시로 진화할 것이다.
암흑룡 길가메시.
그 괴물이 탄생한 순간,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프로미아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말이다.
로서가 암흑룡 길가메시가 되는 날,
제일 먼저 리치 평야를 지울 것이라 다짐했다.
그 후, 헬바인에게서 발록의 일족을 해방시킬 작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고라르의 잡종들까지도···
‘헬바인, 기다려라.’
발록 일족의 해방.
그리고 프로미아를 비롯한 모든 행성의 주인···
그 모든 영광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