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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인류 최강-84화 (84/110)

84화

나는 가차 없이 놈의 손목을 꺾었다.

“이 새끼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 짜악!

애꾸눈 대머리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컥!”

피 분수를 뿜으며, 힘없이 무너졌다.

순간, 바닥을 박찼다.

- 쉬익!

바람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 퍼퍼퍼퍼퍽!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애꾸눈 패거리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원샷원킬!

한 방에 한 놈씩, 순식간에 잠재운 것이다.

“으힉!”

쓰러져있던 애꾸눈이,

눈을 부릅떴다.

“사, 살려주세요.”

공포에 질려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 모습에, 면상을 걷어차 버렸다.

“켁!”

단말마의 비명이 터지고···

기절했는지,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

쓰러진 놈들을 뒤로하고,

린의 잡화점으로 향했다.

***

“어서 오세요.”

뜻밖에도, 린이 반갑게 맞았다.

생각지도 못한 환대였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녀가 테이블로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는 향긋한 차가 놓여 있었다.

“팬트예요.”

“팬트?”

“전 아침마다 팬트를 즐긴답니다.”

자리에 앉자, 그녀가 팬트란 이름의 차를 따랐다.

“신분증은?”

“차부터 드세요.”

그녀의 말에, 팬트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것이, 마치 홍차 같았다.

“신분증부터.”

또다시 말하자,

“성격이 급하시네요.”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미적거리는 건 딱 질색이라서,”

“그것보다, 먼저 가볼 데가 있어요.”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장난질은 사양인데.”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았다.

“장난질이 아니에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세요.”

그녀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보고 싶어 하는 분이라니···

어이없는 소리였다.

표정을 보니, 뭔가 숨기고 있는듯했다.

“하.”

코웃음 치며, 단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목에 가느다란 실선을 그었다.

“한 번 더 말하지. 장난질은 사양이다.”

“자, 장난질이 아니에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세요.”

날카로운 단검을 또다시 휘둘렀다.

그녀의 목덜미에 갖다 대자,

핏물이 흘렀다.

“전, 보안요원이에요. 적들을 색출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적들?”

“베스 제국 놈들이요.”

“무슨 소리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잘 들어요. 보름 전, 베스 제국 놈들이 전쟁을 일으켰어요.”

전쟁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놈들은 지금, 최후의 요새 글로디악으로 진격 중이에요.”

“글로디악?”

“글로디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성이에요. 그곳에 크리스탈이 있어요. 보호막을 유지하는 마력 장치예요. 크리스탈이 파괴된다면 이곳은 물론이고, 드래고니안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멸종할 거예요.”

모든 생명체의 멸종.

꽤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저는 베스 제국의 스파이들을 강도 높게 조사 중이었어요.”

목에 겨눴던, 단검을 거뒀다.

그녀가 피를 닦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로브를 착용한 자가 배회 중이라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로브는 마법사들의 전용 의복이에요. 마법사들은 꽤 희귀한 존재들이죠.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로브를 걸치고 얼굴까지 가렸다? 누가 봐도 수상쩍게 보일 수밖에요.”

차를 한 모금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은 가렸지만, 눈매를 보니 알겠더군요. 숲에서 마주쳤던··· 아, 지구인에서 왔다고 했나요?”

그녀가 품에서 골드바를 꺼냈다.

“로브를 팔던 가게에 있었어요. 왜 그랬죠? 당신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냥 가져가도 무방하잖아요.”

“왜 도둑질을 안 했냐고 묻는 건가?”

“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됐고. 그래서 신분증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드릴게요. 대신, 절 따라오셔야 해요.”

“·····귀찮게 구는군.”

심드렁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전쟁이 터질 거예요. 우리 쪽 상황이 꽤 불리해요. 만약, 당신이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날 더러 전쟁에 참여하라?”

“기사단의 단장을 맡아주세요.”

갑작스러운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뜬금없이 기사 단장이라니···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대체 날, 뭘 믿고?”

“가게에 골드를 놓고 갔다는 것은, 양심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게다가, 당신은 디폴트 기사장도 이겼어요.”

“그건.”

“대가는 충분히 지불할게요.”

“아니, 그게···”

“어차피 당신도, 이곳에 머물러야 하잖아요.”

“·····내키지 않는다니까.”

“당신, 발록을 찾고 있죠?”

발록이라는 말에, 그녀를 바라봤다.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

“고위급 악마부터 찾겠죠. 리치 평야로 가는 길은 알아냈나요?”

“큭.”

“리치 평야는 이곳에서 굉장히 멀어요. 그곳으로 가려면, 보호막을 벗어나야 해요.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죠.”

“지도?”

“리치 평야가 그려진 지도요. 매우 희귀한 지도죠. 당신이 원한다면 지도를 구해줄 수 있어요.”

“·····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

“만나 뵐 분이 계세요.”

“누구?”

“어제 숲에서 만나신 분··· 위로그 님이라고, 테일러성의 총관님이세요.”

위로그라면 은신을 간파했던, 드래고니안이었다.

“보호막 밖은 악마들로 가득해요. 혼자서는 절대 돌아다닐 수 없죠. 당신이 그분을 만난다면, 기사들을 지원해 주실 거예요. 어때요? 이제야 관심이 좀 가나요?”

그녀의 말에 살짝 고민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지도만큼은 꼭 필요했다.

내가 고민에 빠지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자가 발록일지도 모른다. 총관님께서 한 말씀이세요.”

“무슨 소리지?”

“저도 몰라요. 총관님께 가셔서 직접 여쭤보세요.”

린이 방긋 미소 지었다.

‘발록일지도 모른다고?’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외통수에 빠진듯했다.

‘어쩔 수 없나.’

잠시 후, 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놀랍게도 고급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타세요.”

그녀와 함께 마차를 타고,

내성으로 향했다.

***

멀리서 바라본 내성은, 아름답고도 웅장했다.

마치, 심혈을 기울인 예술 작품 같았다.

“아.”

그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잠시 후 내성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렸다.

린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고풍스러운 가구는 물론, 황홀한 그림과 섬세한 조각품.

금과 은으로 도배된 장식품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보석들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다.

특히, 천장의 샹들리에는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듯했다.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

복도를 지나 안내된 곳은,

위로그의 집무실이었다.

“어서 오게.”

위로그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제, 그를 함부로 대했지만,

오늘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쉬운 것은 나였고,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위로그가 집무실에 마련된,

원탁 테이블로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는 이름 모를 음료와 과일, 비스킷 등이 놓여 있었다.

“들지.”

그가 음료를 따라주었다.

“발록일지도 모른다니··· 무슨 뜻입니까?”

“앉자마자, 바로 본론인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자네가 처음, 발록의 위치를 물었을 때, 고위급 악마들만 떠올렸다네. 그래서 리치 평야를 알려줬던 거고.”

“그랬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정보가 더 있더군. 드래고니안이면서 악마의 악취를 풍기던 자. 어쩌면 발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 ····· 발록은 공간 능력과 기생 능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 발록이 드래고니안 몸속에 기생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야.”

위로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발록 일족의 카마쉬도 인간의 몸속에 기생했기 때문이다.

위로그가 음료를 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베스 제국이라고 들어봤는가?”

“그들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들었습니다만.”

위로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스 제국은 본래, 일론 테일러 님께서 세운 드래고니안 왕국이었다네.”

위로그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곧이어, 그가 다시 눈을 떴다.

“이런, 나도 모르게 상념에 빠졌군. 미안하네.”

“별말씀을요.”

“흐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 베스 제국까지 했었지. 베스 제국의 황제 로서에게는 걸출한 기사가 한 명 있다네. 그의 이름은 테사다르. 일명 살육의 기사라 불리는 자지.”

“테사다르,”

“나는 로서가 암흑룡 길가메시의 전생이라 확신한다네.”

“무슨.”

“아, 자네는 우리의 역사를 모르겠군. 꽤 긴 얘기이니, 나중에 린에게 한번 물어보게나.”

위로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암흑룡 길가메시는 악마를 소환한 죄로, 차원에 갇히는 형벌을 받았네. 영원토록 말이야. 그런데 누군가 놈을 현세에 불러냈지. ····· 과연, 누가 불러냈을까?”

“·····.”

“공간 능력을 가진 발록 일족뿐일세. 놈이 암흑룡의 유물을 찾아내, 끝끝내 소환한 것이 분명해. 나는 테사다르가 발록일 거라 강력히 의심 중이네. 앞서 말했다시피, 놈의 몸에서 악마의 악취가 났으니 말이야.”

살육의 기사, 테사다르가 발록일지도 모른다?

꽤나 놀라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믿지는 않았다.

어쩌면, 날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명분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네. 당연히 의심되겠지. 나라도 그럴 테니까.”

“·····.”

“하지만 염치없게도 부탁하겠네. 부디, 제7 기사단의 단장을 맡아주시게.”

“대체 뭘 믿고, 기사단을 맡기려는 겁니까?”

“말했잖은가. 금덩이를 두고 갈 정도의 양심이라면, 최소한 믿을 수 있다고···”

위로그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리치 평야가 그려진 지도네. 신분증은 린이 발급해 줄 걸세. 그리고 자네가 원한다면 머물 수 있는 집도 구해주겠네. 물론, 기사단장이 된다면 저택도 내어줄 걸세.”

“·····”

“뭐, 내키지 않는다면 거절해도 좋네. 굳이 자네를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세상에 공짜는 없죠. 누군가가 호의를 베푼다면 반드시 의심해라. 이것이 바로 제 생각입니다만.”

“내가 자네에게 해코지라도 한다는 말인가? 디폴트 기사장을 손쉽게 제압한 자네를?”

“지도도 주시고, 신분증도 주시고, 살 집도 구해주시고··· 당연히 의심이 되죠.”

“걱정하지 말게. 호의를 베푸는 것뿐일세. 이제 남은 시간도 얼마 없으니 말이야.”

“무슨 뜻입니까?”

“지금, 상황이 몹시도 어렵네. 글로디악으로 진격한 병력만 무려 12개 군단이 넘어. 지난 10년간 2번의 전쟁을 치렀지만, 이번처럼 엄청난 병력은 처음이야. ····· 하,”

위로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만큼, 로서의 힘이 강해졌다는 방증이겠지.”

“다른, 지원군은 없습니까?”

“돔족과 수인족이 있지만, 그들이 도와줘도 어렵다네.”

돔족은 목과 허리가 없는, 딴딴 체형의 드워프들이었고,

수인족은 아누비스형, 하토르형, 크눔형, 바스테드형, 호루스형 등 동물형 인간을 뜻했다.

“앞으로 10일 후면, 적들이 진용을 갖출 걸세. 최소한 그때까지는 병력을 집결시켜야겠지. 다행히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라, 병력을 증원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네. ·····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네에게도 무운을 빌지.”

위로그가 가슴에 손을 대며, 예의를 표했다.

“크리스탈이 파괴되면 보호막이 사라진다고요? 그렇게 되면, 생명체가 모두 멸종한다고요?”

“베스 제국뿐 아니라, 악마들까지 몰려들 테니까. 멸종은 기정사실이네.”

외통수였다.

지구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기사단장, 제가 맡죠.”

“뭐, 정말인가!”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마는, 크리스탈이 파괴되면 생명체가 멸종한다는데, 보고만 있을 순 없죠.”

“무슨 소리! 디폴트 기사장을 이긴 자네라면 큰 도움이 될 걸세.”

위로그가 크게 기뻐하며 소리쳤다.

곧이어, 그를 따라 연무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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