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뭐냐 이것들은.’
엘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험상궂은 면상들.
사선으로 그어진 칼자국은 기본,
온갖 상처들로 가득했다.
더군다나, 덩치는 또 얼마나 큰지,
우락부락한 헬창들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마물과 비슷한 수인족도 있다는 것이다.
짐승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들···
그들의 면면은 이랬다.
소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가진 하토르형 수인.
양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가진 크눔형 수인.
고양이 얼굴에 인간의 몸을 가진 바스테드형 수인.
자칼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가진 아누비스형 수인.
매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가진 호루스형 수인 등.
종류도 갖가지였다.
‘젠장.’
얼굴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수인족에 비하면 튀는 것도 아니었다.
후드와 마스크는 왜 썼는지···
당장이라도 이것들을 벗고 싶었다.
“이봐 추워! 빨리 문 닫아!”
그때, 웬 덩치가 소리쳤다.
‘헉!’
그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하던 드워프였다.
키는 170~180 사이로 제법 컸는데,
목과 허리가 없는 전형적인 딴딴 체형이었다.
엘프와 수인족에 이어,
드워프까지 등장했다.
황당함에 기가 막혀왔다.
“뭐 하는 거야! 내 말 안 들려!”
딴딴이가 재차 소리쳤다.
그제서야 안으로 들어갔다.
“못 보던 놈인데?”
“전방 요새에서 온 놈인가.”
“확실히, 우리 부대 놈은 아냐.”
“용병 같은데.”
“어이 애송아, 너 어디 출신이냐?”
애꾸눈을 한 대머리와 패거리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조용히, 빈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손님, 뭘로 드릴까요?”
‘헐···’
종업원인지 주인인지 모르겠다.
2m가 넘는 키에, 어마 무시한 떡대였다.
초대형 자판기, 강 선배가 떠오를 정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심지어, 분위기마저 비슷했다.
“주인이세요?”
“예. 제가 주인입니다.”
“식사하고 싶은데요.”
가게 주인이 장작불을 가리켰다.
바비큐가 올려져 있었다.
무슨 소스를 발랐는지, 향이 기가 막혔다.
“바비큐도 좋습니다만, 비프스테이크를 추천드립니다. 고기의 연한 부위로만, 특제 소스를 발랐거든요. 아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뭐야, 이 가게 ···’
범죄 소굴에서,
품격과 매너가 느껴졌다.
제법 격식 있는 가계였다.
“비프스테이크로 하죠.”
“술은 와인과 맥주가 있습니다만.”
“맥주가 좋겠네요.”
“흑맥주로 드릴까요?”
“아뇨, 그냥 밀맥주로 주세요.”
“시원하게 드라이해 드릴까요? 아이스 마법이 가능합니다만.”
‘마법?’
가게 주인의 말에 눈만 깜빡였다.
시원한 맥주가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이런 세상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 손님?”
“아, 예. 시원한 맥주로 주세요.”
“예.”
“참! 바비큐도 1인분 주세요. 맛만 보게요.”
“예, 알겠습니다. ····· 모두 합쳐 2실버 7쿠퍼 되겠습니다.”
“네.”
“·····”
“·····”
“흠흠, 저희 가계는 선불입니다만···”
“아.”
아공간에서 골드바를 꺼냈다.
골드바를 건네자, 주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이 정도 금이면 환전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수수료가 얼마죠?”
“금액의 1%입니다. 10골드니까, 1실버쯤 되겠군요.”
“아.”
“환전하시겠습니까?”
“예, 해주세요.”
주인이 골드바를 가지고 들어갔다.
“애송아, 너 그거 어디서 났냐?”
“키키~ 돈도 많은데, 우리도 좀 나눠 쓰자.”
“귀족 도련님~ 같이 좀 써요~”
“밤길 조심해라, 꼬마야.”
“부자 양반~ 한 잔씩 돌리라고~”
“꼬맹아, 우리가 보호해 줄게. 2골드 어때?”
“2골드면 꿀이지.”
“사건 되기 전에 잘 생각하라고.”
“크크크~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다음 날이면 싸늘한 시체가 돼 있을걸?”
“크하하하~”
“아하하하~”
“와하하하~”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하.”
그 모습에 코웃음 쳤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이 자식이,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코웃음 쳐!”
애꾸눈 대머리가 소리쳤다.
놈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때였다.
“그만!”
주방에서 가게 주인이 나왔다.
그가 서슬 퍼런 눈으로 노려봤다.
애꾸눈 대머리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여기 있습니다, 손님.”
주인이 다가오더니,
환전한 돈을 건네주었다.
잠시 후,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마스크와 후드를 벗었다.
비프스테이크 한 점을 베어 먹었다.
맛있었다.
입안에서 육즙이 터지며, 황홀경을 선사했다.
뭉클한 감동이랄까.
지금까지 먹은 음식 중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그렇게 한창,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진돗개 얼굴을 가진 아누비스형 수인족이었다.
체형을 보니 암컷, 아니 여성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수컷은 아니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가령, 이곳의 정보라든지, 마수나 악마의 위치라든지.”
갑작스러운 말에, 살짝 뜨끔했다.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머, 맞구나. 맞죠? 당신 표정만 봐도 알겠네요.”
그녀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당최, 무슨 표정이라는 건지···
“당신, 이곳 출신이 아니죠?”
“·····”
“맞죠?”
“·····”
“시치미떼도 소용없어요. 증거가 있으니까.”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첫째, 당신의 외모요. 이를테면 귀랑 피부랄까.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금방 알아볼걸요.”
“하.”
“둘째, 당신이 이곳 출신이라면, 절대 금을 꺼내지 않았을 거예요. 최소한 저들이 보는 앞에서는요.”
그녀가 주변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들이 강도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봐요, 당신은 저들의 정체도 모르잖아요.”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아니요, 알아야 할걸요? 저들이 바로 경비병들이니까.”
경비병이라는 말에 살짝 놀랐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경비병한테 금을 보인 게 잘못이다? 그게 왜 잘못이지?”
“저들은 당신이 가게를 나가는 즉시, 불심검문을 할 테니까요.”
“재미없군.”
“자신감 뿜뿜이군요. 저들이 무섭지도 않나요?”
“됐고, 다음도 있나?”
“그럼요. 셋째, 당신 말투예요.”
말투란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우리말을 꽤 잘하세요. 하지만, 토박이들은 금방 눈치챌걸요. 드래고니안과 다르다는 것을요.”
“드래고니안?”
“풋! 봐요. 금방 티가 나잖아요. 당신 드래고니안이 뭔지도 모르죠?”
“·····.”
“자, 어떡할래요? 난,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을 어떻게 믿지?”
“어머! 지금 절 못 믿겠다는 건가요?”
“당연한 거 아닌가.”
“너무하네요. 전 당신을 위해서, 저들의 정체도 알려줬는데···.”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여자의 말을 들었을 텐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서로 아는 사이란 뜻이었다.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요, 안 붙잡을 거예요? 떠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
“진짜 가요?”
“·····.”
“참! 당신 신분증 없죠? 난, 당신의 신분증도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녀가 허리에 손을 척 얹혔다.
“잘 들어요. 이곳은 신분증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요. 내 말 듣고 있어요? 나 진짜 가요?”
그녀가 몸을 돌렸다.
‘신분증이라···’
신분증이 있어서 나쁠 건 없을듯했다.
귀찮은 일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앉지.”
그리고 무엇보다, 드래고니안이 궁금했다.
진실 유무를 떠나서 말이다.
“원하는 게 뭐지?”
“돈요. 일종의 정보료랄까.”
“얼마지?”
“3실버만 주세요. 거기에, 맥주도 사주시고요.”
그녀에게 3실버를 주었다.
“이봐요, 판치! 시원한 맥주 한 잔 주세요.”
그녀가 주문하자,
가게 주인이 맥주를 갖다 줬다.
“7쿠퍼다, 린.”
가게 주인이 익숙하게 이름을 불렀다.
“잔돈은 됐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1실버를 건넸다.
린이 맥주를 마셨다.
“아, 시원하다. 판치~ 한 잔 더!”
그녀가 원샷을 때린 후, 또다시 맥주를 주문했다.
나는 탁자 위에 1실버를 올렸다.
“드래고니안이 뭐지?”
“저 사람들요.”
그녀가 턱짓으로 주변 사람들을 가리켰다.
“엘프들 말인가?”
“엘프? 그게 뭐죠?”
“····· 말이 헛나왔군. 그러니까, 저들이 바로 드래고니안이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고니안은 용족의 후손으로,
드래건과 인간이 결합한 돌연변이 개체였다.
엘프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용족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드래고니안이라··· 그럼, 드래건도 실존하나?”
스켈레톤 드래건은 뼈다귀로 급조된 드래건이었다.
실제 드래건을 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보고 싶었다.
“아니요. 오래전에 이미 멸종했어요. 그것보다, 당신 얘기도 좀 해주세요. 당신은 누구죠? 어디서 왔나요?”
린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피, 재미없네.”
“·····.”
“나한테 물어볼 게 더 있나요?”
발록의 위치를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녀가 알고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이제부터, 잘 들으세요. 신분증 얘기니까요.”
“·····.”
“이곳, 테일러 성은 신분증이 필수예요. 신분증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요. 오늘 밤은 이곳에서 지내세요. 딴 데 가지 마시고요. 판치가 있는 곳은 안심해도 좋아요.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린의 잡화점으로 오세요. 판치에게 물어보면 길을 가르쳐 줄 거예요. 그곳에서 당신 신분증을 만들어줄게요.”
“····· 왜 날 돕는 거지?”
“당신을 돕는 게 아니에요. 난 장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신분증 값은 5골드예요. 잊지 마세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 잘 마셨어요. 내일 봐요.”
그녀가 가게를 나섰다.
‘재미있는 여자로군.’
식사를 마친 후, 이곳에서 방을 잡았다.
그녀의 말대로 하룻밤 묵기로 했다.
***
다음 날, 해가 뜨자 주인을 찾았다.
린의 잡화점 위치를 물어본 후, 가게를 나섰다.
신분증 따위가 필요할까 싶지만,
그냥 맞추기로 했다.
‘귀찮지만, 조금만 참자···.’
프로미아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발록을 잡은 후,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부지런히 정보를 모아야 했다.
잡화점을 찾는 건, 그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린의 잡화점이 보였다.
그런데 그때,
“어이!”
어제 보았던 애꾸눈 대머리였다.
린의 말대로 경비병이었다.
놈이 실실 쪼개며 다가왔다.
“린의 잡화점에 가나?”
놈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듯했다.
“같이 좀 먹고살자고. 많이는 필요 없어. 그냥 통행료만 내라고.”
“····· 얼마나?”
“5골드면 좋을 것 같은데,”
“크크크~ 대장, 5골드라니. 너무 많이 봐주는 거 아냐?”
“야! 5골드면 깔끔하지, 뭘 그래.”
“에이~ 5골드는 좀 그렇지. 그거 가지고 누구 코에 붙여.”
“맞아. 8골드는 받아야지.”
“야 이, 자식들아! 우리가 강도야! 사람이 상도덕이 있어야지!”
“앗, 그건 또 그렇네.”
“킥킥킥~”
놈의 패거리들이 낄낄거렸다.
“이봐, 너 신분증 없지? 그러니까 린의 잡화점에 가는 거잖아. 불심검문에 걸려서 감옥에 갈래? 아님 그냥 갈래?”
“·····.”
“크크크~ 감옥은 좀 아니지?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 서로 상부상조하자고. 응?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안 그래? 악!”
나는 가차 없이 놈의 손목을 꺾었다.
“이 새끼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 짜악!
애꾸눈 대머리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