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어떡하지···’
하필이면 지금 눈치를 채다니,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사용했다.
(폭룡, 3일 주마.)
예전에 딱 하루,
김하늬 선배한테 맡긴 적이 있었다.
그때 폭룡은 예쁜 검으로 변신했었다.
김하늬 선배가 감탄할 정도.
그날 밤, 김하늬 선배와 함께 지냈다.
다음 날 폭룡이 돌아왔다.
아공간에 집어넣었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엄청나게 착해졌던 것이다.
그랬던 녀석이 오늘,
갑자기 반항했다.
김하늬 선배가 보고 싶은 것이다.
엄청난 미녀를 목격한 것이,
영향을 끼친듯했다.
(일주일.)
폭룡이 두 배를 불렀다.
(콜!)
(····· 이번 일이 끝나는 즉시다.)
(콜!)
나는 두말없이, 콜을 외쳤다.
혹시라도 거절할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언제쯤 지구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
공수표쯤이야, 얼마든지 남발할 수 있었다.
(약속했다?)
(물론.)
(주인 일언!)
(중천금!)
폭룡이 눈치채기 전에, 얼른 도장을 찍었다.
(주인 최고!)
‘크크, 순진한 녀석.’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싸우자, 주인!)
기분이 좋은지, 씩씩하게 말했다.
폭룡의 머리를 가볍게 움켜잡았다.
순간, 마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그와 함께, 두려움이 사라졌다.
전신에서 검붉은 아우라가 치솟았고,
주체 못 할 힘에, 용기가 샘솟았다.
폭룡을 들자,
“헉!”
“뭐, 뭐야!”
“아공간!”
“서, 설마···”
놀란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위로그만 흠칫거렸다.
“마법사인가?”
위로그가 물었다.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하는 마법사라니,
우스운 질문이었다.
“헌터다.”
“헌터?”
위로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 우리와 좀 다르구나. 이계인인가?”
“····· 나는 지구인이다.”
위로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말을 어떻게 아는 거지? 이곳은 어떻게 왔고? 결계는 어떻게 통과했지? 또···”
“그만!”
질문 공세를 퍼붓자 손을 들었다.
“한 번에 하나씩!”
검지를 펴서, 숫자 1을 가리켰다.
“좋다, 하나씩만 묻지.”
위로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우리말을 어떻게 아는 거지?”
“나도 모른다.”
“응?”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뿐이다.”
입 안에서는 우리말,
입 밖에서는, 외계어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나도 몹시 궁금할 뿐이다.
위로그가 인상을 썼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당신이 어떻게 이해될까. 그러나, 내 말은 진실이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 마음이지만. 그리고,”
주변의 기사들을 가리켰다.
“무기 정도는 내려줬으면 좋겠군. 우리 서로 대화 중이잖아.”
위로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이 무기를 내렸다.
그러나, 포위를 풀지는 않았다.
“이곳은 어떻게 왔지?”
“이곳?”
“그래, 이곳··· 프로미아 말이다.”
“프로미아!”
프로미아란 말에 깜짝 놀랐다.
흑 공작의 행성이 바로, 프로미야였던 것이다.
“우리 세계를 알고 있군.”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곳이 바로 마계이고, 차원 균열의 원천지라는 것 정도?”
혹시 몰라, 흑 공작 얘기는 하지 않았다.
“차원 균열의 원천지라고!”
위로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도, 차원 균열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원 균열의 원천지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더구나, 이계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오랜 옛날, 마도시대 때부터 마계라 불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마도시대는 이미 멸망한 지 오래. 그 후로, 마계라 부르지 않았다. 오직, 저주받은 것들만 마계라 부를 뿐.”
위로그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저주받은 것들이라···’
“니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차원 균열이 연결됐다는 소리. 그렇다면 너는 공간 능력자인가?”
“아니.”
“어떻게 차원을 이동한 거지?”
“공간 능력자는 내가 아니라,”
마귀에 대해서 설명했다.
놈의 정체가 발록의 카마쉬라는 것도 말이다.
“발록!”
위로그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정말, 발록을 죽였나!”
“말했다시피, 정상적인 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놈을 죽인 건 사실이다.”
“큭.”
위로그가 침음을 삼켰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 결계는 어떻게 통과했지?”
“결계?”
투명한 막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것을 말하는듯싶었다.
“투명한 막이라면··· 그냥 통과했는데?”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였다,
“위로그, 이계인이 비록 잘못했지만, 죽을죄는 아니에요. 그를 풀어주도록 하세요.”
“군주님, 그는 은신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를 염탐한 겁니다. 의도의 불순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풀어주는 건, 온당치 못합니다.”
“하지만,”
“기사의 신념을 명하겠습니다.”
“위로그.”
“스스로 발록을 잡았다 했습니다. 최소한 그 정도는 증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로그가 몸을 숙였다.
“····· 알겠어요.”
군주가 한 걸음 물러났다.
“디폴트!”
“예!”
디폴트는 2m가 넘는 기사였다.
“너에게 기사의 신념을 명하겠다.”
“예, 각하!”
기사가 검을 뽑았다.
얼핏 봐도, 싸우려는 모습이었다.
“지구인아, 스스로 증명하거라.”
‘당최 뭘 증명하라는 건지···’
어쨌든, 폭룡을 꺼내든 상태.
싸움을 회피할 이유는 없었다.
‘굳이 덤비겠다면,’
자세를 잡았다.
“나는 디폴트. 프로미아 저항군의 기사장이다.”
디폴트가 검과 방패를 치켜들었다.
“응, 나는 지구인.”
“이 자식이!”
디폴트가 갑자기 화를 냈다.
“기사의 신념은 신성한 것이다. 감히, 어디서 장난질이냐!”
“내가 뭘?”
“내가 뭘? 그래도 이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이냐!”
“어이, 아저씨. 진정 좀 하라고.”
“이익! 넌, 기사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죽어도 날, 원망하지 말아라.”
당최 뭘 먹칠했다는 건지···
온통 아리송한 말들뿐이었다.
‘기사의 신념? 고리타분하기는···’
결투하는 데,
신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기고 지는 것.
삶과 죽음.
그것이 전부였다.
“받앗!”
디폴트가 바닥을 박찼다.
놈이 빗살처럼 달려들었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하압!”
디폴트가 검을 찔렀다.
검날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꽤나 매서운 공격이었다.
‘제법.’
하지만, 거기까지.
놈의 속도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한 걸음 혹은 두 걸음이면 충분했다.
‘느려.’
동에 번쩍, 서에 번쩍거렸다.
놈의 실력은 슈페리얼 급.
끽해야, 로열 등급이었다.
‘겨우 그 정도로···’
그 정도 실력으로는,
내 털끝도 건드릴 수 없었다.
“놈!”
디폴트가 가열차게 도약했다.
공중에서 강기 다발을 날렸다.
‘실드’
그림자 실드를 발현했다.
──── 쾅! 쾅! 쾅! 쾅! 쾅!...
강기 다발을 가볍게 막았다.
“죽어!”
디폴트가 짓쳐들었다.
──── 콰앙!
그림자 실드로 또다시 막았다.
공격이 연속으로 막히자,
“이야압!”
분노한 놈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했다.
──── 쾅! 쾅! 쾅! 쾅! 쾅!...
그림자 실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실드’
──── 쾅!
‘실드’
──── 쾅!
‘실드’
──── 쾅!
실드가 계속해서 막아내자,
놈이 점점 밀려났다.
압도적인 마력에 완전히 발려버린 것이다.
디폴트가 헥헥거렸다.
마력을 모두 소진한 듯,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땀으로 목욕한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 이···”
혼자서 뭐라 중얼대더니,
철퍼덕~ 쓰러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회피하거나 방어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철퍼덕~ 쓰러지다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주변의 기사들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들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위로그를 보았다.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굳어있었다.
내가 계속 쳐다보자, 결국 입을 열었다.
“····· 가도 좋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었다.
“하나만 묻자. 발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지?”
내 말에, 위로그가 피식 웃었다.
“지금, 발록의 위치를 물은 거냐?”
“그래.”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나는 꼭 알아야 한다. 부탁한다. 제발 알려다오.”
“하, 굳이 죽고 싶다면야. 잘 들어라. 고위급 악마의 위치는 고위급 악마만이 아는 법. 내가 알고 있는 고위급 악마는 리치 평야의 엘더 리치뿐이다.”
‘리치 평야의 엘더 리치···’
위로그의 말을 머릿속에 새겼다.
“고맙다.”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언제 또다시 외계인들을 만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700m쯤 떨어진 곳에서,
동태를 살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자,
조심스럽게 쫓아갔다.
***
저녁노을이 질 때쯤 도착한 곳은 거대한 성이었다.
분명, 프로미아 저항군이라 했었다.
저항군은 보통 열악한 환경에서 게릴라 전을 펼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거대한 성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이, 공손히 예를 갖췄다.
누가 봐도 저 성이 본거지로 보였다.
중세 시대의 왕성만큼 멋지고, 거대한 성.
저항군이라더니, 왕국군 못지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은신.’
은신 상태로 들어가려던 찰나,
(멈춰라, 주인.)
폭룡이었다.
(바닥을 봐라.)
폭룡의 말에, 입구 바닥을 살폈다.
(마법진?)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디텍트 마법진 같다.)
(어쩐지··· 뭔가 찝찝하더니,)
사실, 묘한 기운이 느껴지던 차였다.
폭룡이 아니었다면, 골치 아플 뻔했다.
(잘했다, 폭룡.)
폭룡을 치하했다.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손을 대었다.
반경 1km 이내가 훤히 보였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성안, 후미진 골목이었다.
‘은신.’
은신을 다시 사용했다.
골목길을 나서, 성안을 둘러봤다.
아름다운 건물과 깔끔한 거리.
중세 시대보다 앞선 문명이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로 들어섰다.
무슨 놈의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지···
기가 질릴 정도였다.
사람들의 모습을 살폈다.
다행히, 이곳에서도 금과 은 그리고 보석이 거래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길을 걷다 보니, 옷 가게가 눈에 띄었다.
옷 가게의 옷들을 살폈다.
회색빛 로브가 맘에 들었다.
꽤 고급스러우면서도 따뜻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체를 감출 수 있었다.
회색빛 로브를 사기로 했다.
가계로 들어갔다.
문소리가 딸랑! 거렸다.
“누구요?”
책을 보고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허 참.”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노인이 다시 책을 읽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회색빛 로브를 챙겼다.
그런 후, 아공간을 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이면 얼마 전, 돈 되는 것들을 싹 다 정리한 상태.
100g짜리 골드바 3개가 전부였다.
‘젠장.’
로브의 가격이 얼마인지 모른다.
골드바 하나면 충분할듯했다.
‘큭, 이제 두 개 남았나.’
인적이 드문 장소로 순간이동했다.
로브를 착용했다.
그러고도 찝찝해,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눈만 빼고 모조리 가렸다.
‘이 정도면···’
은신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어느새, 어둑해진 저녁.
사람들이 급속도로 줄고 있었다.
가계 불들이 하나둘씩 켜졌다.
전기가 없어도, 대낮처럼 밝았다.
등불의 밝기가 전등보다 더 밝았기 때문이었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세상이었다.
어디선가 바비큐 냄새가 솔솔 났다.
군침이 돌았다.
냄새를 따라 이동했다.
황혼의 집이라는 술집이었다.
“으하하하!”
“와하하!”
“크하하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들어가자!’
나는 지금 발록을 찾아야 했다.
발록을 찾아 공간의 잼, 2개를 획득해야 했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보가 필요했다.
발록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비큐는 못 참지.’
바비큐 냄새가 황홀했다.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따뜻한 공기가 훅~ 불었지만,
분위기는 얼음장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