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멸망 직전의 일본.
거의 아포칼립스에 준하는 상태였다.
바다 건너의 홋카이도만 빼면 말이다.
일본 전역의 피난민들이 홋카이도로 몰려들었다.
그 덕분에, 홋카이도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아비규환.
홋카이도의 모든 도시가 약육강식, 무법천지가 되었다.
아포칼립스의 전 단계인, 아마겟돈이 된 것이다.
***
미국 정보에 의하면, 홋카이도를 지배하는 단체는 두 곳이었다.
신도맹과 라이젠.
신도맹은 8대 천왕 시절, 우리를 악질적으로 괴롭혔던 이자카와 재단의 화신,
일본 극단주의자들의 결합체였다.
그들의 슬로건은 단 하나,
약육강식이었다.
그들은 일본 헌터들의 우월성만 강조했다.
반면, 라이젠은 평범한 헌터들이 창설한 단체였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마물의 침략을 막는 것뿐이었다.
- 마물로부터 일본을 지키자!
일본의 빌런들도 다수 포함됐지만,
그들의 슬로건은 정의였다.
우습게도 말이다.
***
[일본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으음,]
단호한 내 말에, 제퍼슨이 침음을 삼켰다.
[일본이 얼마나 악랄한 짓을 저질러왔는지, 잘 아시죠?]
[물론입니다.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일본에 가신다면, 없는 것보다야 낮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심드렁한 내 말에, 제퍼슨이 머쓱해했다.
[이태민 헌터님의 방일 소식에, 라이젠이 목숨 바쳐 보필하겠다고 합니다. 일본을 구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하겠다고 합니다. 한 번, 기회를 주시지요.]
[·····]
[이태민 님을 모시겠다는 그들의 다짐··· 일본인치고는 기특하지 않습니까.]
[하,]
제퍼슨 말에, 코웃음 쳤다.
일본인들의 다짐이라니···
개도 안 물어갈 소리였다.
허나, 제퍼슨의 강권은 계속되었다.
순간이동 능력자라도, 일본에 혼자 가는 건,
걱정되는 것이다.
스켈레톤 드래곤도 처리해 줘야 하는데 말이다.
제퍼슨의 걱정에, 마지못해 승낙했다.
[카가와 신지라는 자입니다.]
그가 소개해 준 자는 라이젠 소속의 카가와 신지였다.
제퍼슨과 통화가 끝나고 30분 후,
카가와 신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가와 신지입니다.]
[이태민입니다.]
[일본을 살려주십시오.]
시작부터 살려달라는 말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저희 들을··· 저희 일본을··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가 한탄을 했다.
얼마나 절절한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저희가 지은 죄, 반드시 보상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저희 일본이 다시 살아난다면, 그 또한 반드시 보상하겠습니다.]
[·····]
[뿐만 아니라, 귀국에게 해를 끼친 자들도 모조리 처단하겠습니다. 또한, 귀국에 적대적인 각료들도 모두 사형시키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야···]
[아닙니다, 저희가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어차피 나로서는 마귀를 처단해야 했다.
일본 다음의 타깃은, 우리나라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을듯했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뒀다.
[하코다테 공황으로 오시면 됩니다.]
[하코다테 공황이라···]
[그곳에 유노카와 항만이 있습니다. 배를 준비하겠습니다. 아오모리현 오마마치로 가는데, 1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신지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침투 루트까지 준비해 줬다.
[오마마치요?]
[예. 오마마치에서 요코하마마치로. 거기서 노헤지마치까지 갔다가, 히라나이마치로 가시면 됩니다. 히라나이마치에서 아오모리시로 침투하면 적의 본거지가 나옵니다.]
신지의 말에 피식 웃었다.
침투 루트가 제법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적의 수뇌부가 있는 곳까지,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감히 누구를 코치한단 말인가.
상당히 가소로웠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
마감청 전용기를 타고, 하코다테 공황으로 향했다.
“태민아. 신지라는 자, 말이다. 설마, 믿는 건 아니겠지?”
“물론이죠.”
최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놈들은 믿을 족속들이 못 돼. 지난 세월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그들은 항상 거짓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니,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확신에 찬 내 말에, 최 대장이 어깨를 다독였다.
***
<하코다테 공황>
마물의 침략 후, 출항기는 있어도 입항기는 없었다.
가끔씩 각국에서 보내오는,
화물기를 제하면 말이다.
하코다테 공황이 텅텅 비어있었다.
마감청 전용기가 착륙하자,
차량들이 몰려왔다.
- 끼이익!
차량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한눈에 봐도, 일본인 헌터들이었다.
“대장님, 가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해라 태민아.”
“예.”
최 대장과 인사 후, 비행기에서 내렸다.
40대 초반의 사내가 다가왔다.
“카가와 신지입니다. 일본을 방문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타시지요.”
신지가 리무진 뒷문을 열었다.
리무진에 올라탔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신지가 문을 닫았다.
‘윽!’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마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나입니다.”
20대 초반의 미녀들이,
맞은편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속옷만 입은 채 말이다.
신지의 쓸데없는 배려에,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
비행장을 나와, 도심에 들어섰다.
“제발, 도와주세요!”
“누가 먹을 것 좀···”
“아빠가 아프세요!”
“부탁드려요, 물 좀 주세요.”
“살려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거리에는 온갖 난민들로 바글거렸다.
마물이 덮친 지 불과 5일.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충은 짐작했지만, 실제로 보니 몹시도 참혹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이태민 헌터님, 호텔로 모실까요?”
리무진에 장착된 가림막이 열리더니, 신지가 말했다.
“아뇨, 배로 가죠.”
“네? 바로 가시게요?”
신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가 여자들을 바라봤다.
“혹,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면···”
“제가 좀 바빠서요.”
“아··· 예, 알겠습니다.”
리무진의 가림막이 다시 닫혔다.
***
잠시 후, 유노카와 항만에 도착했다.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난민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식량이 많이 부족한가 보군요.”
“구호품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하아,”
신지가 탄식을 했다.
“우리도 구호품을 보낼 수 있도록, 건의해 보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지가 연신 몸을 숙였다.
‘ㅉㅉ~’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과거, 일본이 어려울 때마다 최선을 다해 도왔던 건,
우리 국민들이었다.
이웃사촌이라는 명목하에,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모금한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직, 미국과 유럽에게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조센징 따위에게 도움받는 것이, 수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른 채,
일본을 이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일본인 헌터들에게 침략까지 당한 것이다.
- 일본을 돕지 말라.
마감청 곽 청장이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만약, 일본을 돕는 자가 있다면,
국가 반역죄로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 후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을 돕지 않았다.
일본이야, 입이 천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신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아악!”
어디선가 비명성이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웬 사내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다.
슈트를 착용한 것이, 얼핏 봐도 헌터였다.
‘도깨비 문양이라···’
슈트에 새겨진 문양이, 무척이나 흉측했다.
“사, 살려주세요!”
“이년이 어디서!”
“아악!”
사내가 여자의 상의를 가차 없이 찢었다.
여자의 상체가 훤히 다 드러났다.
“죽고 싶지 않으면, 잠자코 따라와!”
사내가 여자를 질질~ 끌고 갔다.
‘큭,’
그 모습에 기가 막혀왔다.
아무리 아마겟돈이라지만,
벌건 대낮에 납치라니···
‘미친···’
놈을 쫓으려 하자,
“신도맹입니다.”
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일본인다웠다.
“하,”
코웃음 친 후, 놈의 뒤를 쫓았다.
***
잠시 후, 도착한 곳은 허름한 창고였다.
사내의 동료로 보이는 자들이 모여있었다.
얼핏 봐도 30명이 훌쩍 넘었다.
헌데,
“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창고 한편에,
수십 명의 여자들이 꽁꽁 묶여 있었다.
그 모습에 분노가 솟구쳤다.
여자들을 개, 돼지처럼 천장에 묶어두다니···
누가 봐도 평범한, 일반 여성들이었다.
“대환장 파티네 크크크~”
“요즘, 이쁜 년들 찾기가 왜 이리 힘드냐.”
“그러게~”
“말도 마라. 각 팀별로, 이쁜 년들 찾는다고 난리도 아니다.”
“하긴···”
“씨벌, 고생은 우리가 하는데, 먹는 건 딴 놈들이 먹으니···”
“야, 말조심해! 윗분들이 들으면··· 알지?”
사내가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라~”
털보 사내가 노래를 부르며,
여자들 곁으로 다가갔다.
“먹지는 못해도, 만질 수는 있다고~”
그가 여자들 신체를 마구잡이로 더듬었다.
“킥킥~ 우리도 만져볼까?”
“깍꿍~”
“쪼물딱, 쪼물딱~”
“요년들!”
“어흥! 잡아먹어 버릴까 보다!”
지켜보던 사내들도, 여자들 곁으로 다가갔다.
“어이!”
소리치자, 놈들이 뒤돌아봤다.
“칙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뱁새눈의 사내가 달려들었다.
턱을 당긴 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수십 년간 우리를 괴롭혀온 이자카와 재단.
놈들에 대한 원한이 깊었지만,
이번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다.
지금은 마귀를 잡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내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자카와 재단이 눈에 띄었다.
신도맹이란 탈을 쓰고 말이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귀찮더래도 놈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룬.)
룬을 부르자, 그림자 속에서 룬이 솟구쳤다.
(모조리 죽여라.)
눈앞의 신도맹 놈들을 가리켰다.
룬이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신도맹 놈들을 향해, 짓쳐 들었다.
룬의 도끼가 번쩍였다.
- 쉬쉬쉭!
룬을 공격하던 자들의 머리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룬이 또다시 바닥을 박찼다.
“어, 어···”
얼빠진 표정으로 룬을 바라보던 자들.
압도적의 룬의 모습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어, 어, 거렸을 뿐이다.
룬의 도끼가 또다시 번쩍였다.
20여 명의 모가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 그림자 부활 : 죽은 자를 즉시 부활시킨다.(6/12)
시체를 향해, 팔을 뻗었다.
‘부활.’
순간, 시체의 그림자가 쩌억~ 하고 늘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자 전봉민이 되었다.
전봉민의 기억이 공유됐다.
신도맹의 위치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코다테시에 있는 신도맹 놈들을 모조리 척살하기로 마음먹었다.
(룬, 모조리 처단해라.)
(예, 주인님.)
명령을 내리자, 룬이 자신의 부하들을 소환했다.
그림자 속에서, 2만의 병력이 솟구쳤다.
“헉!”
너무나도 압도적인 모습···
카가와 신지를 비롯한, 라이젠 헌터들이 벌벌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