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그림자 속에서 솟구친 수많은 병력들.
- 척! 척! 척! 척! 척…!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맙소사….’
압도적인 위엄.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난 그들은,
단순한 소환물이 아니었다.
모두가 생명체였고 모두가 각성자였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중세 시대의 기사들.
그들이 출현하자 모든 것이 쓸려나갔다.
특히 다섯 명의 기사들은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대한민국 최강이라는 이태민 헌터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강력했다.
눈부실 만큼 화려한 무구,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
‘아….’
강석은 점점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갖고 싶다….’
최첨단 슈트가 아닌 그들이 착용한 풀 플레이트 갑옷.
그것을 착용한 채 적과 맞서 싸우는 자신의 모습.
‘큭.’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관님…]
[…강 교관…]
[…조, 조심…]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려던 그때,
- 퍽!
뭔가 묵직한 것이 안면을 강타했다.
“켁!”
충격을 받아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날아갔을까.
“컥!”
땅에 처박힌 순간 또다시 충격을 받아야 했다.
[막아!]
[오래는 못 버텨!]
[조금만 더 버텨봐!]
[알았어 한번 해볼게!]
[한나야 조심해!]
[아직은 괜찮아!]
[공격해!]
귀청을 때리는 다급한 소리들.
‘아차!’
충격을 받고 쓰러졌던 강석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젠장.”
힘겹게 일어선 그는,
“카악 퉤!”
입에 고여있던 핏물을 내뱉었다.
“윽 X나 아퍼.”
충격을 받은 안면을 어루만졌다.
눈물이 핑~ 돌만큼 고통스러웠다.
[강 교관 왜 저래!]
[몰라 들어올 때부터 상태가 안 좋았어.]
[강 교관 실망이야.]
[그러게. 생긴 건 멀쩡한데 실력이 영…]
[챔피언이라더니 베테랑 같아,]
[미안 우리 오빠가 좀 그래.]
[한나야. 너랑은 완전 딴판이다.]
“이익.”
뒷담 까는 소리에 무전을 켰다.
[이것들이 다 들리거든!]
[강석 빨리 와! 너 때문에 진영이 다 무너졌잖아!]
[가, 강석? 강한나, 너 진짜!]
6개월 전 발생한 봉황 길드 사태와 일본의 침략.
마감청 청룡 백호 등 꽤 많은 단체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 때문일까.
강석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죽하면 뉴비들과 2등급 게이트까지 들어왔을까.
방금 전에도 너무 지겨웠던 나머지,
상념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다 네임드에게 한 방 맞았던 것이고.
- 키에엑!
캉스칸이 괴성을 질렀다.
이곳의 네임드인 놈은,
체고 2m의 늑대 인간이었다.
[이런 X 새끼가,]
- 파츠츳!
강석의 양손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뇌전.
그가 가진 특수 능력이었다.
***
캉스칸을 잡은 후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아함~”
강한나가 하품을 했다.
“빠져가지고 집합!”
강석의 말에 뉴비들이 집합했다.
“강한나 김소리 유성희 정민정 안도희!”
“네!!!”
“니들은 기본이 안 됐어. 감히 하늘보다 높으신 교관님께 뭐? 강석? 왜 저래? 들어올 때부터 상태가 안 좋았어?”
강석이 도끼눈을 뜨자 뉴비들이 시선을 돌렸다.
“게이트 안에서 교관은 신이라 그랬지!”
“오빠가 잘못했잖아.”
“맞아요. 오빠 잘못이에요.”
“시끄러! 교관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꼬박꼬박 말대꾸야.”
“오빠가 잘못.”
“교관님이라니까!”
“교관님이 잘못했잖아!”
“됐고! 각오 단단히들 해라. 오늘부터 강행군이다.”
“힝~”
“지금 즉시 압구정으로 이동한다 실시!”
“그런 법이 어딨어! 점심시간인데.”
“씁!”
강석이 인상 쓰자,
강한나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그때,
━━━ 쿠궁!
갑작스러운 폭음에 지축이 진동했다.
강석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오빠.”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다들 길드로 복귀한다.”
“오빠!”
“어서!”
강석이 소리쳤을 때였다.
━━━━━━ 쿠궁!
방금 전보다 더욱 큰 폭음이 들려왔다.
“큭.”
등골이 서늘해졌다.
황급히 폭발의 진원지를 찾았다.
도로를 따라 800m 전방.
시뻘건 빛이 생성되고 있었다.
‘젠장.’
역시나 게이트 브레이크였다.
그것도 생성 즉시 폭발한다는 즉발성 게이트.
‘큭.’
강석의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800m 거리에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진 것이다.
얼핏 봐도 상당한 크기의 즉발성 게이트였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삼성동 도심 한복판.
이런 곳에서 게이트가 터진다면,
건물 몇 채는 그냥 날아갈 것이다.
‘사람들부터 살린다.’
마음을 굳힌 강석,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바람과 사물이 휙휙~ 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눈 깜작할 사이에 800m를 주파한 그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20m 크기의 초대형 게이트.
‘헐.’
거대 게이트가 점점 빨갛게 물들어갔다.
‘미친.’
올해 초 즉발성 게이트가 처음 생성됐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푹 빠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태민 헌터가 아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그때의 일이 워낙에 화제가 됐던 탓일까.
“꺄악!”
“피해!”
“도망쳐!”
“악!”
“브레이크다!”
“꺅!”
다행히 사람들 모두가 도망치고 있었다.
“어서 피해요 어서!”
강석은 소리치며 사람들을 독려했다.
그는 도로뿐만 아니라,
건물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대피시켰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했을까.
━━━━━━━━━ 콰콰콰콰쾅!
드디어 게이트가 폭발했다.
그 충격에 주변 건물은 물론,
아스팔트 바닥도 무너져 내렸다.
“크윽.”
충격파에 날아간 강석.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주변을 살폈다.
- 쿵! 쿵! 쿵! 쿵! 쿵…!
게이트 속에서 쿵 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음을 삼키며 긴장하는 것도 잠시,
[사 살려줘…]
무전이 들려왔다.
[어딥니까!]
[여 여기…]
주위를 살폈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돌덩이가 들썩거렸다.
헌터가 매몰된듯했다.
황급히 콘크리트 잔해를 치웠다.
잠시 후 매몰되었던 헌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 크르릉~
!!
오싹한 울음소리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소름 끼칠 만큼의 공포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연일까?
때마침 게이트 속에서 뭔가가 스윽~ 고개를 내밀었다.
시뻘건 눈빛.
흉포한 얼굴.
날카로운 이빨.
그것을 마주한 강석은 전신을 벌벌 떨어야 했다.
- 마계 수문장 LD. 레비아탄이 출현하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 음성이 들렸지만,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었다.
공황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 크르르~
레비아탄이 으르렁거렸다.
- 쿵! 쿵! 쿵! 쿵!
게이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놈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10m가 넘는 거대한 크기.
사자 얼굴에 뱀의 꼬리.
- 커헝!
레비아탄의 몸에서 시뻘건 아우라가 치솟았다.
몸서리칠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었다.
- 크아앙!
괴성과 함께 강맹한 기파가 터져나갔다.
피어!
공포에 질린 강석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아.”
강석은 깜짝 놀랐다.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일까.
웬 사내가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넓은 등 뒤로,
금빛 독수리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
최 대장에게 전화를 받은 시각은 오전 11시 48분.
- 태민아 거대 게이트다. 위치는 삼성동 부근,
최 대장 말에 깜짝 놀랐다.
거대 게이트가 삼성동이라니.
본래는 강원도 원주에 생성됐어야 했다.
‘미래가 완전히 변했구나.’
달라진 미래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이동.’
삼성동으로 순간이동했다.
***
삼성동에 있었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게이트가,
- 공군 제19 비행단과 K-FX 비행 편대를 투입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 거대 게이트라 그런지 정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냐.
- 저 혼자면 충분합니다. 투입할 필요 없다고 전해주세요.
- 그래, 알았다.
- 대장님, 삼성동 일대 좀 통제해야겠는데요.
- 안 그래도 지금 금빛 독수리랑 가는 중이다. 금방 도착할 거다.
- 알겠습니다.
거대 게이트.
그것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 마계 수문장 LD. 레비아탄이 출현하였습니다.
시스템 음성과 함께 재앙급 마수가 걸어 나왔다.
시뻘건 눈을 번득이며,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625)
‘그림자 투사.’
그림자 투사 625명을 소환했다.
(엘리시움 창을 들어라.)
내 말에 그림자 투사가 엘리시움 창을 들었다.
얼마 전 나는 그림자 투사에게 엘리시움 창을 나눠줬었다.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1진 발사!)
내 말에 그림 투사 200명이 레비아탄을 향해 창을 날렸다.
***
거대 게이트.
그것은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됐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오사카 미나토구에도 거대 게이트가 생성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귀가 미소 지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게이트야말로 마계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지난 30년간 오직 이 게이트만을 기다려 왔었다.
‘이태민.’
놈을 떠올리자 분노가 솟구쳤다.
혼신의 힘을 다해 흑색 게이트를 열었고,
악마의 기사까지 소환했다.
허나 그런데도 패배해 버렸다.
놈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참담함에 모두 포기하려던 찰나,
거대 게이트가 생성된 것이다.
마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다.
‘돌아간다.’
마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마계에는 엄청난 강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에 비하면 이태민 따위는 조족지혈.
‘기다려라 이태민. 지구를 정복할 괴물을 데려올 테니까.’
게이트 속으로 진입했다.
순간 눈앞이 번쩍이고,
게이트 속으로 들어온 마귀는 환희를 느꼈다.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미줄처럼 쩌억~ 금이 간 땅에는
용암이 흘러넘쳤다.
뜨거운 유황 냄새가 코끝을 마비시킬 정도.
‘아 좋다.’
처음 지구에 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아드리안느와 마주쳐 소멸 직전까지 갔었고,
인간의 배신 덕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 후 지금까지 인간의 몸에 기생하면서,
힘을 되찾을 방법만 연구했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마계로 돌아온 지금 힘을 되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이곳은 에이션트 리치의 성.
에이션트 리치는 자신과 친분이 있었다.
‘가자.’
마귀는 리치의 성으로 향했다.
용암지대를 벗어나 어두운 숲에 들어섰을 때,
마법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치의 성으로 직행할 수 있는 순간이동 장치였다.
“######.”
마귀가 주문을 외우자,
눈 깜짝할 사이에 리치의 성으로 전송되었다.
마법진에서 벗어났다.
때마침 다크 템플러들이 보였다.
성문을 지키던 문지기 녀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