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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인류 최강-64화 (64/110)

64화

뜻밖이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곳

그곳에 안경을 쓴 20대 초반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마치 내가 지켜보고 있음을 알기라도 하듯

빈 공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귀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마귀임을 직감했다.

너무나도 젊은 모습에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마귀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제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마귀는 말없이 1악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볼 것도 없었다.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검을 횡으로 그었다.

시뻘건 적강기가 허공에 궤적을 그었다.

그때였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마귀의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놀랍게도 공간 능력자였던 것이다.

“잠깐!”

마귀가 손을 들었다.

“이봐 난 싸울 생각이 없다고.”

놈이 싱글벙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이유는 몰랐다.

다만 한 가지.

놈에게서 마물의 악취가 느껴졌다.

짐승의 누린내랄까.

하여튼 썩은 악취였다.

본능적으로 인간이 아님을 직감했다.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한번 들어보겠나? 꽤 괜찮은 제안인데 말이야.”

“너 인간이 아니구나.”

순간 마귀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훗 봤나 보군. 하긴 인간으로서 할 짓은 아니지. 특히 어린아이들한테는 말이야.”

“물론.”

나는 놈에게 성큼 다가섰다.

“니가 한 짓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 하지만 지금 내 말은 네 본모습을 말하는 거다. 너 인간이 아니지? 너 대체 뭐냐.”

내 말에 마귀의 표정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

놈은 곧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거 참 아쉽군.”

그 말을 끝으로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황급히 공작성을 뒤졌다.

200개가 넘는 방을 샅샅이 뒤졌다.

없었다.

감쪽같이 증발한 후였다.

‘젠장.’

놈을 급습하려던 찰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욕설이 절로 나왔다.

***

이번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잔혹한 생체 실험을 당한 뒤 무참히 살해되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마감청 청장은 그 즉시 1악과 마귀에 대한 척살령을 내렸다.

또한 이에 동조한 봉황 길드에 대해서도 무장해제를 지시했다.

사실 1악은 이미 죽었지만 보고하지 않았다.

괜히 구설수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악의 사체를 마물들에게 던져준 뒤 그 흔적을 지웠다.

***

봉황 길드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

3일 안에 무장을 해제하지 않으면

마감청에서 직접 단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봉황 길드가 불같이 반발했다.

자신들은 1악과 관계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허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작성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혔기 때문이었다.

아베 타쿠마도 문제였지만

공작성에서 나오는 모습은 빼박이었다.

이틀 후

봉황 길드가 무장해제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끝까지 항쟁하겠다는 뜻이었다.

바야흐로 마감청 VS 봉황 길드의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로써 대규모 유혈 사태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무장해제 하루 전

- 속보입니다. 서울의 청룡 길드가 마감청 편에서 참전을 결정하였습니다.

- 속보입니다. 경기도의 백호 길드가 마감청 편에서 참전을 결정하였습니다.

- 속보입니다. 경남의 신화 클랜이 마감청 편에서 참전을 결정하였습니다.

- 방금 전 들어온 소식입니다. 광주의 현무 길드가 중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앞으로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씨발.”

봉황 명왕이 욕설을 내뱉자 이대호가 TV를 껐다.

우려하던 대로 마감청 청룡 백호 신화가 연합해 버렸다.

봉황 길드만 고립된 것이다.

길드원들의 탈퇴도 가속화될 것이다.

지금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자들이 고작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8봉은?”

“저와 대호를 비롯해 여섯이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김두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베 타쿠마는?”

“아직.”

“이런 X새끼들.”

봉황 명왕이 욕설을 내뱉었다.

S급 게이트 때문에 마감청과 알력이 생기자

자신들을 지원하겠다며 찾아온 것이 아베 타쿠마였다.

헌데 위기에 몰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혼란을 틈타 마츠모토 타카토를 탈출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마츠모토 타카토는 현재 각성자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각성자 감옥은 마감청 8군이 지키는 곳으로

웬만한 빌런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각성자 감옥을 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여튼 이 쥐새끼들.”

“애초부터 믿을 만한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봉황 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왔으면 튀어나올 것이지 왜 거기 숨어 있어!”

봉황 명왕이 허공에 대고 말하자

아무것도 없던 빈 공간이 쩌억~ 하고 갈라졌다.

그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숨어 있다니요. 섭섭한 말씀을. 방금 전에 도착했습니다만.”

마귀가 시익 웃으며 봉황 명왕에게 다가왔다.

“멈춰!”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을 뽑아 든 김두식이 마귀의 앞을 막아섰다.

“전해드릴 게 있습니다만.”

봉황 명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두식이 물러났다.

마귀가 품에서 보석 상자 2개를 꺼냈다.

“제가 형님을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아시겠죠?”

“겨우 2개?”

봉황 명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겨우 2개라니요. 혈석 하나를 만드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혈석 두 개면 제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흠.”

봉황 명왕이 침음을 삼켰다.

“그리고 이건 형님께 드리는 제 특별 선물입니다.”

마귀가 보석 상자를 하나 더 꺼냈다.

“이건!”

봉황 명왕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실줄 알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아드리안느의 사념입니다.”

“뭣이!”

봉황 명왕이 책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섰다.

마귀가 보석함을 열어 검은 구슬을 꺼냈다.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드리안느의 사념은 1악의 몸속에 있었을 텐데.”

“……1악은 죽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실입니다. 아드리안느의 사념이 제 손에 있지 않습니까.”

마귀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대한민국에서 1악을 죽일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아무도 없었다.

1악이야말로 자신과 더불어 최강의 헌터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형님. 이태민이라는 애송이에게 당했습니다.”

마귀의 말에 봉황 명왕은 말문이 막혀왔다.

‘이태민? 말도 안 돼.’

이태민이라면 자신도 알고 있었다.

30세 이하 청년부 최강의 헌터로

세계 랭커에 등록된 친구였다.

허나 아무리 강해도 그렇지

1악을 죽였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8봉을 죽였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림자의 힘을 얻었습니다.”

마귀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1악이 얼마나 그림자의 힘을 얻고 싶어 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의 힘을 얻었다?”

“생각보다 그 힘이 대단했었나 봅니다. 저도 1악을 이길 줄은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마귀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잘 생각하세요. 이태민은 마감청 소속입니다.”

“하지만 아드리안느의 사념은.”

“형님께서는 이미 한계치까지 혈석을 흡수하셨습니다. 이 이상 혈석을 흡수한다면 이성을 잃은 마물이 되겠지요.”

“큭.”

“아드리안느의 사념을 흡수한다면 로열 등급에 오르실 겁니다. 어쨌든 1악을 그랜드에 올린 건 아드리안느의 사념이니까 말입니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이 따릅니다만.”

“나도 1악처럼 악의만 남겠지?”

“아마도요.”

마귀가 손짓하자 공간이 개방됐다.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죠.”

마귀가 몸을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그리고는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아드리안느의 사념이라니.”

아드리안느의 사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1악에게서 이미 들었던 것이다.

인간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저주의 물질이었다.

오죽하면 1악이 현세의 마왕이 됐을까.

문득 30년 전 일이 떠올랐다.

챔피언 등급에 대한 개념이 막 정립될 시기.

게이트 하나가 변이를 일으켰다.

마력 측정 불가.

지금으로 따지면 S급을 초월한 EX급 게이트였다.

EX급이 터지면 그야말로 핵폭탄급 위력이었다.

이에 정부는 최강의 헌터들만 모아 100인의 결사대를 조직했다.

100인의 결사대에는 자신을 포함한 1악 마감청 청장 사방신 길드장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

EX급 게이트에 들어간 결사대는 진정한 공포를 맛봐야 했다.

악마형 마물과 마수들이 득실거렸던 것이다.

특히 네임드 발록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100인의 결사대는 끝까지 싸웠다.

그 결과 몇몇만 남기고 모두 다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1악과 마감청 청장 그리고 사방신 길드장들뿐이었다.

허나 그들도 이제 곧 있으면 발록에게 죽을 위기였다.

모두가 마지막임을 직감했을 때 한 인물이 나타났다.

그녀는 놀랍게도 지구인이 아니었다.

외계인이었다.

자신을 아드리안느라 소개한 그녀가 말했다.

발록이 지구에 강림한 순간 마계의 문이 열릴 거라고

그렇게 되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발록과 싸웠다.

이를 지켜보던 마감청 청장과 사방신 길드장 그리고 1악은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천외천.

감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그녀가 발록을 잡았지만 큰 부상을 당했다.

결과적으로 양패구상한 것이다.

그녀의 상처는 엘릭서로도 치료가 되지 않았다.

일단 응급조치를 취한 후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그때 그녀가 착용 중이던 유물이 눈에 띄었다.

유물의 위력을 직접 목격했다.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는 천고의 보물이었다.

욕심이 났다.

그래서 그녀를 죽였다.

“무슨 짓이야!”

모두가 난리 쳤지만 그녀에게서 나오는 유물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1악은 망령의 팔찌를

마감청 청장은 중력의 목걸이를

청룡 길드장은 드래곤의 팔찌를

백호 길드장은 샤벨 타이거의 반지를

현무 길드장은 방호의 팔찌를

그리고 자신은 피닉스의 귀걸이를 가지기로 했다.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것들. 욕심 때문에 너희를 구해준 나를 죽이다니. 내 너희를 죽어서라도 저주할 것이다.”

“모두 피해!”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1악이 몸을 던져 막았다.

모두를 대신해서 아드리안느의 사념을 맞은 것이다.

***

10년 전 1악이 찾아왔다.

그의 부탁을 거절치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처음 아이들이 죽어갈 때는 큰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혈석을 먹은 뒤 강해지면서 양심도 점점 무뎌졌다.

‘이제 와서 죽을 수 없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봉황 명왕은 혈석을 김두식과 이대호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아드리안느의 사념은 자신이 챙겼다.

이왕지사 이리된 거 마감청을 엎어버리고

세상을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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