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장년인들의 면면은 이랬다.
대한민국 육명왕이자 봉황 길드 마스터인 제갈길.
8봉의 1인이자 그들의 수장인 섬광검 김두식.
마츠모토 세이초의 오른팔 아베 타쿠마.
아베 타쿠마는 아스다 미치히로와 오하시 마사히로의 기억 속에 있던 인물이었다.
이자카와 재단은 8귀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들과 많은 거래를 했고 왕래도 잦았다.
그런 이자카와 재단의 핵심 인물이 봉황 길드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왜?’라는 이유도 필요 없었다.
봉황 길드의 검은 속내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최소한 내 판단은 그랬다.
이자카와 재단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최고급 유물과 막대한 자금으로
우리나라 빌런 단체들을 무한정 지원했다.
그 덕에 1악과 8귀의 영향력이 수직상승했고
마감청과 극단적인 대척점에 설 수 있었다.
‘웃.’
그때였다.
봉황 명왕이 내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왜 그러십니까 마스터.”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예민했던 모양이군.”
그가 돌아선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맙소사.’
그랜드에 오른 지금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마주친 그는 거대한 벽이었다.
육명왕중 최약체로 알려진 그가
마감청 청장보다도 막대한 마력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놀라울 뿐이었다.
물론 강함에 있어서 마력이 전부는 아니었다.
육체적인 능력과 이능력이 더욱 중요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문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부인 못 할 사실이었다.
‘휴.’
다행히 걸리지 않았다.
그에게 촉각을 곤두세웠던 덕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은신이 들켰을 것이다.
잠시 후 봉황 명왕이 게이트 출구로 향했다.
길드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그제서야 혼자가 된 나는 봉황 명왕이 나왔던 빙벽 쪽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환각 마법?’
빙벽에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아귀 따위는 엄두도 못 낼 굉장한 수준의 마법이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 정도의 능력자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없었다.
그 말인즉슨 인간이 펼친 마법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빙벽에 손을 대자 스르르~ 자연스럽게 통과가 됐다.
마치 게이트를 통과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과감히 안으로 진입했다.
!!
‘맙소사.’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흑색 게이트가 존재했던 것이다.
얼마 전 변이 게이트에서 봤던 바로 그 흑색 게이트였다.
게이트 높이만 무려 3m.
그때만큼 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은 크기도 아니었다.
‘흑색 게이트라니.’
다크 템플러와 레비아탄이 떠올랐다.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들도 함께 말이다.
‘헉?’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흑색 게이트인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때의 흑색 게이트는 어둠 공포 절망 고통 비탄 등 어두운 느낌이 강했었다.
헌데 지금의 게이트는 뭔가 모를 애틋함 그리움 평온함 등만 느껴졌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둡고 공포스러운 흑색 게이트에서 애틋함 그리움 평온함 등이 느껴지다니
황당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쩐다….’
흑색 게이트에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했다.
어찌 됐건 아이들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진입하자.’
어쨌든 나로서는 목숨을 건 도박.
막말로 지옥과 연결될 수도 있었다.
‘설마.’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폭룡.)
(주인 대체 뭐가 두려운 건가. 설마 흑색 게이트라서 그런 건가? 고작 그런 이유로 외면하겠다는 건가? 저토록 애타게 주인을 찾고 있는데도?)
!!
폭룡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애타게 날 찾고 있다니
(무슨 소리지?)
(소리는 듣지 못해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저 녀석은 지금 주인이 들어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설마)
폭룡이 헛소리할 녀석은 아니었다.
(주인! 말했잖은가.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히 서 있기만 할 건가.)
(이 자식이)
꽤나 건방진 소리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들어간다.)
흑색 게이트 내부로 과감히 진입했다.
순간 눈앞이 암전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아.’
이곳은 한마디로 말해서 충격 그 자체였다.
중세 시대의 왕성? 아님 귀족의 성?
황금빛으로 수놓아진 아름다운 복도.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각종 조각상들과 조각품들.
이름 모를 보석으로 장식된 가구와 각종 장식품들.
금으로 도배된 샹들리에와 이름 모를 조명석들.
게다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마도 문명의 그림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허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유물들이었다.
지금 당장 가지고 나가도 상당한 값에 팔 수 있었다.
단언컨대 이곳의 유물만 팔아도 세계 제일의 갑부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특히나 그림.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마도 문명의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들이 공개된다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그림을 살폈다.
그림 속 인물들 모두가 귀가 뾰족한 모습이었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엘프족이랄까.
귀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인간과 완전 흡사했다.
‘가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순간
- 마계 공작 아슬란 자라의 무덤에 입장하셨습니다.
!!
놀랍게도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마계 공작의 무덤?’
이렇게 깨끗한 곳이 무덤이라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림자 주인의 영역입니다.
- 불완전한 그림자의 힘이 감지되었습니다.
- 불완전한 그림자의 힘이 봉인되었습니다.
!!
‘설마.’
황급히 그림자의 힘을 발현했다.
사용할 수 없었다.
은신 능력을 비롯한 순간 이동 능력 그리고 소환 능력까지도 봉인돼 버렸다.
패스파인더와 변환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윽.’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막막해졌다.
그래도 일단 미로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복도를 지나쳐 이동했다.
잠시 후
‘젠장.’
아니나 다를까 여러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곳 역시도 미로였던 것이다.
‘어라.’
그런데 좀 이상했다.
뭔가 상당히 익숙한 느낌.
나도 모르게 발을 내디뎠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이다.
‘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
난생처음 보는 길인데 익숙하다니.
심지어 10개의 갈림길도 문제없었다.
나오는 족족 길을 선택했다.
‘이게 대체.’
더욱 놀라운 것은 함정이나 마법진 그리고 장애물까지도
손쉽게 헤쳐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윽 어떻게 돌아가지.’
내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방금 전 길도 이미 까먹은 상태.
남은 선택지는 오로지 전진뿐이었다.
‘젠장.’
어쩔 수 없이 계속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쯤 이동했을까.
수십 개의 문과 복도가 있는 거대한 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의 많은 문과 복도가 어디로 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젠장 대체 왜 이리 익숙한 거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17번째 길을 선택했다.
잠시 후
‘헐.’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건물이 나왔다.
언젠가 한 번 무너졌는지 비석이 박살 나 있었다.
그나마 건물은 꽤 많이 복구된 모습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헐.’
에메랄드빛 휘황찬란한 공간이 나왔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질렀다.
황금빛 투명한 막에 둘러싸인 제단 위
그곳에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스윽~ 하고 솟아났다.
‘헉.’
그것은 어둠이었다.
키가 무려 5m에 달하는 거대한 어둠.
넝마가 된 사제복을 입은 채 후드를 깊게 눌러쓴 모습이었다.
거대한 낫을 들었고 허공 위를 둥둥 떠다녔다.
처음 마주하는 괴물이었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놈이었다.
“리 리퍼.”
나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대한민국에서 오직 1악만이 부린다는 죽음의 사신 리퍼였다.
그것도 무려 두 마리씩이나 소환된 상태.
5m가 넘는 놈들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폭룡.)
(흥! 드디어 이 몸인가.)
아귀와의 일전 후 아공간에 넣어뒀었다.
녀석이 또다시 난리 쳤지만 하늬 선배 핑계로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슬쩍 한번 물어봤었다.
아공간이 답답하지 않냐고
(흥! 하늬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아 주마.)
그 후로 마음 편히 아공간에 넣고 다닐 수 있었다.
아공간에서 폭룡을 쥐었다.
순간 마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그와 함께 두려움이 사라졌다.
전신에 검붉은 아우라가 번쩍였고
주체 못 할 힘에 용기가 치솟았다.
이곳에 리퍼가 있다는 것은
내가 제대로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헉!’
’X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은 좋은데 1악과 싸울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싸울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마주치면 무조건 피해야 했다.
놈은 그랜드 오브 그랜드.
우리나라에서 로열에 가장 가까운 자였다.
그에 반해 나는 그랜드 초보였다.
세상 누가 봐도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일단 리퍼를 처리한 후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가자!)
폭룡의 몸에서 적강기가 솟구쳤다.
리퍼를 향해 적강기를 날렸다.
━━━ 쾅!
리퍼의 몸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 키에엑!
그때 다른 놈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낫이 날아왔다.
나는 낫을 피하면 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적강기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폭룡으로
놈의 몸을 난도질했다.
“죽어!”
번개 같은 속도로 놈의 몸을 계속해서 베었다.
그런 후
“폭룡.”
말과 함께 폭룡이 10m 크기의 초대형 검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리퍼의 몸을 일도양단했다.
- 키에엑!
고통에 찬 울부짖음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과연 그랜드라는 건가.’
확실히 달랐다.
보는 시야도 달랐고.
끓어오르는 마력과 순간적인 파워도 달랐다.
강력하기로 소문난 리퍼를 일거에 소멸한 것이다.
‘다음은 너다.’
나는 남아있는 리퍼를 향해 폭룡을 휘둘렀다.
“폭룡.”
순간 폭룡이 20m 크기의 초대형 검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리퍼의 허리를 횡으로 베었다.
- 키에엑!
허리가 양분되자 놈이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그때였다.
“누구냐 넌.”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는 음성.
나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