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이번 일도 그 아이 작품이라며?”
“제가 가서 모든 것을 바로잡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 무슨 기회?”
“어차피 마감청이나 사방신은 절대 개입 못 합니다. 서로 암묵적 합의가 있으니까요. 제가 직접 이태민을 잡겠습니다.”
“흥! 자네 조카인 혈귀가 죽고 백귀가 당했네. 알아보니 적귀도 행방불명이더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적귀의 실종도 필시 관련이 있을 걸세. 헌데 그런 녀석을 단독으로 잡겠다고?”
“그, 그건….”
“이봐 독귀. 무리이지 않은가. 아무리 자네라도 말일세.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으나 두 번 세 번은 절대 우연이 아니지. 이태민은 만만한 아이가 아니야.”
“……동료들과 함께하겠습니다.”
“동료? 동료라고 해봤자 넷밖에 없지 않나.”
“냉귀와 지귀면 됩니다. 그들이라면 이태민 정도는 단번에…!”
“흐음…….”
마츠모토 세이초가 고개를 저었다.
“난 확실한 게 좋네. 실패하고 싶어도 절대 실패할 수 없을 만큼 확신한 것.”
마츠모토 세이초가 눈을 감았다.
“아스다 미치히로.”
“하이!”
문밖에서 누군가 들어왔다.
40대 초반의 장년인이었다.
“오하시 마사히로.”
“하이!”
문밖에서 또다시 누군가 들어왔다.
이 사내 역시 40대 초반의 장년인이었다.
“미치히로와 마사히로다. 이들이 자넬 도울 것이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말에 독귀가 침음을 삼켰다.
미치히로와 마사히로.
쉽게 말해 자신을 못 믿겠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감시를 붙이겠다는 뜻이었고.
단박에 거절하고팠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마츠모토 세이초가 살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독귀가 눈을 질끈 감고 더욱 몸을 낮췄다.
그제서야 살기가 사라졌다.
“요즘 1악은 뭘 하고 있나?”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독귀.”
“예.”
“요즘 1악은 뭘 하고 있는지 물었다!”
마츠모토 세이초가 소리쳤다.
또다시 살기가 느껴졌다.
입을 닫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 연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뿐인가?”
“그것 외에는 저도 모릅니다. 진짭니다. 믿어주십시오.”
독귀의 말에 마츠모토 세이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도 않는 괴물 같으니라고. 대체 얼마나 더 살려고 저렇게 발버둥 치는지. 정말 추잡한 늙은이야. 넌덜머리가 난다고.”
마츠모토 세이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 가보게.”
“예.”
자리에서 일어난 독귀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였다.
“10일. 앞으로 10일일세. 이태민을 처리하고 내 아들을 데려오게.”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오싹한 살기에 독귀가 황급히 대답했다.
***
“판석, 하늬, 형돈, 정도, 그리고 오늘부터 함께할 뉴페이스 태민이까지. 금빛 독수리들, 반갑다. 최강욱 대장이다.”
최 대장이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지금부터 S급 게이트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하겠다.”
“대장님, 유 선배가 아직 안 왔습니다.”
“유 선배 성격 알잖아? 부산에서 합류하실 거다.”
최 대장 말에 강판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브리핑 내용은 이랬다.
S급 게이트는 기존의 게이트와 차원이 달랐다.
난이도는 물론이거니와 소멸시키는 방식도 달랐다.
기존의 게이트는 모든 마물을 처리해야지만 자동 소멸됐다.
하지만 S급 게이트는 그렇지 않았다.
킹을 잡아야지만 소멸시킬 수 있었다.
S급 보스인 킹은 일반적 네임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네임드 오브 네임드였다.
S급부터는 아주 특별한 유물도 나왔다.
그중에는 마력 전도율이 무려 45~50%에 달하는 에픽 유물도 존재했다.
물론 나야 폭룡 때문에 별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현재 국내에 생성된 S급 게이트는 모두 여섯 곳.
그중 다섯 곳을 사방신 길드가 관리 중이었다.
마감청은 S급 게이트를 최대한 빨리 소멸시키기를 바랐다.
브레이크가 터진다면 그 자체로 대형 사고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S급 게이트가 딱 한 번 터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마감청 청장을 비롯한 육명왕 덕분에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그 후 마감청은 S급 게이트 최단기간 소멸을 목표로 해왔다.
허나 사방신은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주 천천히 S급 게이트를 소멸시켰다.
그곳에서 뽑을 수 있는 것은 다 뽑고 말이다.
이에 마감청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이크가 터질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특히나 근래에 들어, S급 게이트에 대한 지분이 몽땅 넘어가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랐다.
이제부터는 마감청 주도하에 S급 공략이 가능해졌다.
마감청의 목표는 단 하나.
국내에 생성된 모든 S 급 게이트를 최단 시간 안에 소멸시키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부산에 생성된 S급 게이트는 던전형 게이트다. 출현 마물은 A급 로바 오크를 시작으로 S급 실리엔 나이트 등이 있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반에 위치한 마물일 뿐이다. 그 안에 뭐가 더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던전형이면 보조 탱커라도 있어야 하는 부분 아닙니까?”
“있잖아.”
“예?”
최 대장이 날 가리켰다.
“태민이요? …하긴, 태민이라면.”
강판석이 뭔가 납득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챔피언 헌터와 마스터 헌터는 차원이 달랐다.
그 파괴력 면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었다.
챔피언 헌터야 많으면 많을수록 게이트 공략에 용이했지만, 마스터 헌터는 달랐다.
그 파괴력을 생각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팀을 짜야 했다.
탱커1 격수2 원딜1 힐1 패스파인더1 디멘션1 힐러1 아공간1이었다.
그리고 그 외 보조 탱커1이 있었다.
아공간은 엘릭서를 비롯한 비상식량과 비상 물품을 챙기는 역할로 강 선배가 맡았고, 패스파인더, 디멘션 힐러를 보호할 보조 탱커는 내가 맡았다.
“태민이 역할은 3가지다. 패스파인더와 격수, 그리고 보조 탱커다.”
최 대장이 내게 시선을 던졌다.
지난번 최 대장이 내게 요청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흔쾌히 수락했고 그 대가로 3배의 몸값을 받기로 했었다.
S급 게이트당 무려 3억의 수당을 말이다.
“그렇지, 태민?”
“예.”
내 대답에 최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질문 있는 사람?”
“없습니다.”
“좋아. 깔끔해서 좋군. 바로 부산으로 출발하지.”
최 대장 말에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 APEC 나루공원.
- 오늘 S급 게이트에 금빛 독수리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금빛 독수리가 다시 날개를 펼치는 게 근 5년 만이죠?
- 그렇습니다. 마감청 패스파인더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렸으니까요. 그 후로 정확히 5년 만입니다.
- 금빛 독수리들 감회가 새롭겠어요.
-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부산 시민들 같은 마음인지, 지금 현장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응원 나와계십니다.
- 추운 날씨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나오셨어요. 아, 선생님. 혹시 금빛 독수리 중에서 누굴 응원하러 오셨을까요?
- 금빛 독수리에 이태민 헌터가 있다죠? 마감청 소속은 아니지만, 패스파인더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 이태민 같은 랭커가 패스파인더 역할만 한다고요? 글쎄요. 납득이 안 되는데요.
- 설마요. 패스파인더뿐만 아니라 보조 탱커 격수의 역할도 겸할 것이라 합니다.
- 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오해할 뻔했네요.
- 이태민 헌터도 대단하지만, 금빛 독수리에 소속된 나머지 분들도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죠?
- 물론입니다. 마감청 최고의 격수 최강욱 대장을 비롯, 시즈탱커 강판석, 버서커 유숙희, 에스퍼 김하늬 등. 뭐 이름만 들어도 벌써부터 심장이 떨리네요.
- 최소 우리나라만큼은 S급 게이트를 모조리 소멸시키겠다! 마감청의 단호한 의지 아니겠습니까?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동안 우리 국민들 얼마나 전전긍긍했습니까? S급 게이트가 터질까 봐서요.
- 어휴, 그 부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방신 길드들 왜 빨리 소멸시키지 않나 몰라요. 자신들 책임하에 운용한다고는 하지만, 지켜보는 국민들 입장에선 애타는 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제라도 마감청이 나섰으니 됐습니다만.
-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제서야 우리 국민들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실 수 있을듯합니다.
아직 S급 게이트에 입장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난리가 나 있었다.
게이트 상공에선 수십 대의 드론이 날아다니며 현장을 찍고 있었고,
메이저 언론을 비롯한 뮤투버, 소셜 미디어 등 수많은 매체들도 나와 있었다.
최 대장을 비롯한 우린 어안이 벙벙했다.
게이트 앞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수많은 현수막과 플래카드들.
‘최연소 월드 랭커’부터 시작해,
이태민 환영해요.
이태민 사랑해요.
대한민국의 영웅.
부산을 지켜줘요 등등등….
심지어는 ‘오빠 날 그림자로 만들어 주세요’라는 문구까지 걸려있었다.
“쳇! 부산 사람들 전부 다 태민이 팬이네.”
강 선배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최 대장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아닌데? 저기 김하늬 팬들도 있는데?”
유 선배가 고갯짓을 했다.
김하늬 사랑해요.
에스퍼 김하늬.
우윳빛깔 김하늬.
내 사랑 하늬.
너만 보이게 하늬.
오직 하늬 등.
현수막과 플래카드가 제법 걸려있었다.
“호호호호~”
그 광경에 김 선배가 활짝 웃었다.
잠시 후 차에서 내리자,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기백이 넘는 기자단이 눈 뜨기 힘들 정도로 찍어댔기 때문이었다.
“비키세요. 다칩니다.”
“뒤로 나오세요.”
“기자분들 물러나세요!”
“뒤로 가세요. 뒤로.”
“다칩니다. 다쳐요.”
마감청 요원들이 달려 나와 황급히 우릴 경호했다.
현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와아!”
“격파하라 S급 게이트!”
“금빛 독수리!”
“게이트 박살 내러 가즈아!”
“멋지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이태민!”
“이태민!”
“이태민!”
“이태민!”
“이태민!”
그와 동시에 이태민이란 이름을 외쳤다.
마치 슈퍼스타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이트까지 어떻게 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게이트에 입장하고 나서야 겨우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때였다.
!!
‘뭐지!’
뭔가가 느껴졌다.
지난번 A급 게이트에서 느꼈던 아득한 어둠이 아니었다.
뭔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날 끌어당기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