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헌터 살해 후 심장을 채취한 빌런 조직이 검거되었습니다. 블루문이란 빌런 조직이 채취한 심장을 일본에 팔아넘긴 것인데요. 그런 그들을 일망타진한 건 이태민 헌터였습니다. 김종성 기자, 나와주세요.
- 예, 김종성입니다.
- 블루문이 일망타진되었다고요?
- 예. 강남에 적을 둔 블루문이 어제부로 일망타진되었습니다.
- 심장을 밀매했다는데, 이제 그들은 어떻게 처벌받는 겁니까?
- 블루문은 헌터를 살해 후 심장을 채취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러 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얻은 심장을 일본에 팔아넘기기까지 했습니다. 현행법상 각성자가 장기를 밀매할 경우 최고형을 받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적용한 빌런 처벌법인데요. 만약 반항하거나 도망친다면 즉결 처형도 가능한 강력한 법입니다.
- 그렇군요. 그들이 저지른 또다른 범죄는 없습니까?
- 물론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마약 매춘 사채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악행을 일삼아 왔습니다. 당국에서도 그들을 단속해왔지만, 점조직으로 이뤄진 조직 체계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민 헌터가 조직 명부를 입수했고, 그 덕분에 일망타진할 수 있었습니다.
- 이태민 헌터는 이미 북벌 클랜을 멸문시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블루문을 일망타진했군요.
- 네, 이번에도 이태민 헌터였습니다. 과거 백귀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이태민 헌터가 그를 지속적으로 추적했고, 오늘에서야 일망타진하게 된 겁니다.
- 정말 국민적인 영웅이 아닐 수 없군요. 참! 세계 헌터 협회가 이태민 헌터와 관련한 공식 발표를 했다고요?
- 네, 그렇습니다. 세계 헌터 협회가 이태민 헌터를 월드 랭커에 등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1악과 6왕에 이은 여덟 번째 월드 랭커가 탄생하였습니다.
- 자랑스럽네요! 이태민 헌터. 올해 나이가 스물넷이던가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에 이어 최연소 랭커가 됐네요.
- 네, 그렇습니다. 미래가 가장 기대되는 헌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 김종성 기자. 마지막으로 헌터들의 심장이 일본에 팔리게 된 경위를 한번 짚어주시죠.
- 현재로선 그에 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당국은 독귀를 주목하고 있다고만 밝혀왔습니다.
- 또 8귀군요. 알겠습니다. 김종성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 예. 와이티비 김종….
TV를 껐다.
역시 예상대로 이자카와 재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본에 있는 독귀만 언급됐다.
조금 씁쓸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마감청과 8귀는 서로 암묵적 합의가 돼 있었다.
8귀가 불특정 시민들에게 테러를 저지르지 않는 한, 마감청을 비롯한 사방신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
그것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최 대장을 비롯한 8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최 대장은 항상 이 점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난 별로 개의치 않는데도 말이다.
어차피 8귀와의 싸움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그들이 먼저 날 죽이려 했고, 난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이다.
놈들에게 순순히 당할 순 없었다.
실패는 한 번이면 족했다.
그래서 지금도 놈들을 처리할 궁리만 가득했다.
물론 마감청에서 발 벗고 나서준다면야 고맙겠지만, 그건 결국 내 욕심일 것이다.
1악이 개입할 경우, 마감청 청장이 돕겠다는 약속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이제 슬슬 가 볼까나.’
드디어 금빛 독수리들이 모이는 첫날이었다.
오늘은 S급 게이트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고, 신입답게 조금 일찍 가기로 했다.
***
건물 밖에 세워진 적토마에 탑승했다.
- 두두두…!
시동을 켜자 적토마가 울었다.
- 부우웅~
액셀을 당기자 웅장한 바이크 소리와 함께 몸이 뒤로 쏠렸다.
- 부아아앙-!
사물이 금세 휙휙~ 스쳐 지나갔다.
빠른 속도감.
온몸이 짜릿해지더니 머리가 쭈뼛거릴 정도로 전율이 일었다.
***
마감청 브리핑 룸.
지금 시각은 오전 8시 30분.
약속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했다.
헌데 브리핑 룸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20대 초반에서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헐.’
단언컨대 김소진 선배를 제하고 이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은 처음이었다.
무슨 연예인이나 모델을 보는듯했다.
‘누구지…?’
8군이라 하기엔 너무 젊었다.
마감청에서 마스터 등급에 오른 최연소 헌터는 김하늬로, 35세 전후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8군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웠다.
알려진 건 우리나라 최초의 염동력자이자 최연소 마스터 헌터로, 에스퍼 김하늬로 불렸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지금은 내가 최연소 마스터 헌터지만 말이다.
‘힐러? 아님 디멘션? 그것도 아니면 아공간 보유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빤히 쳐다봤다.
당황스러워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조금 갸우뚱했지만 일단 자리에 앉았다.
- 뚜벅뚜벅….
그녀가 다가왔다.
“실제로 보니 너무 잘생겼네. 반가워. 김하늬야.”
!!
김하늬란 말에 깜짝 놀랐다.
그녀가 바로 에스퍼 김하늬였던 것이다.
“아, 반갑습니다. 이….”
“알아. 이태민이지? 손.”
“네?”
그녀가 아래를 가리켰다.
“……아.”
그녀가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악수를 나눈 후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꺅! 어떡해! 나 이태민이랑 손잡았어. 꺄-!”
그녀가 호들갑을 떨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뭐지…?’
김하늬가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건지.
‘내가 그렇게 유명했었나?’
고개를 저으며 잠깐 생각에 잠긴 그때,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여어,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그를 처음 본 순간 침음을 삼켜야 했다.
2m가 넘는 압도적인 덩치.
마치 대형 자판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강판석.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탱커이자 마감청 공식 탱커.
현무의 8갑도 혀를 내두른다는 시즈탱커 강판석이었다.
“뭐야, 이태민이 와 있었구나!”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곧장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이태민입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자 그가 내 어깨를 짚었다.
“태민아.”
“예, 선배님.”
“초면에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하자.”
“에? 무슨…….”
강판석이 종이와 펜을 꺼냈다.
“우리 조카가 네 팬이다. 찐팬.”
“아, 하하…….”
“무슨 말인지 알지?”
초면에 확실히 당황스러운 얘기였다.
- 톡! 톡!
강판석이 종이를 가리켰다.
“사인.”
얼떨결에 사인해 줬다.
“고맙다.”
그가 솥뚜껑만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곤 전화를 걸었다.
“은비야, 삼촌이야. 고럼 당연하지. 사인 한두 장이 뭐가 어렵겠어. ……뭐? 이태민 헌터랑 통화를 하고 싶다고……?”
바로 앞에서 통화하고 있었다.
통화 소리가 안 들릴 수가 없었다.
강판석이 땀을 삐죽 흘렸다.
나 역시도 땀을 삐죽 흘렸다.
“……으, 은비야.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꼭 통화시켜줄게. 그래, 약속! 삼촌이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아이고 착하다, 우리 은비. 그럼 이따 봐요~ 은비 빠빠~”
전화 통화를 끝낸 강판석,
“흠흠….”
“………….”
강판석이 헛기침을 하더니 날 지그시 바라봤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뭔가 굉장히 어색했다.
어색함에 눌린 강판석이 고개를 돌렸다.
“하늬 오랜만.”
“선배, 우리 안 본 지 3일밖에 안 됐거든요. 오랜만은 아니지 않나.”
“그… 그런가. 요즘 은비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라서. 하하하!”
강판석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
.
.
어색한 상태로 시간만 흘렀다.
- 드르륵~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안녕하십니까! 디멘션 이정도라고 합니다.”
키 170 정도, 왜소한 체격의 청년이 나타났다.
그가 김판석과 이하늬에게 인사하더니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형님. 올해 20살 이정도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 예. 이태민입니다.”
“형님은 제 우상이십니다. 그러니 맘 편히 정도라 불러주십시오.”
구김살 없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형돈이 형님! 여기요!”
이정도가 30대 초반의 사내에게 손을 흔들었다.
“정도 하이~”
새롭게 나타난 사내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강판석 쪽을 바라봤다.
“판석이 형님, 하늬 누님 하이요~”
“오랜만이다 형돈.”
“형돈 하이~”
인사를 나눈 그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요즘 최고로 핫하신 이태민 헌터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힐러 나형돈입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이태민입니다.”
“제가 아공간도 맡고 있습니다. 필요한 물품은 저한테 찾으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나형돈은 힐러이자 아공간 보유자였다.
꽤나 놀라웠지만,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며 최 대장이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된 것이다.
***
이자카와 재단 후쿠오카 지부.
독귀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후쿠오카 지부를 방문했다.
마츠모토 타카토가 마감청에 연행됐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달려온 것이다.
이 일이 잘못되면, 호아킨 피닉스는 물론 자신의 목숨조차 위험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부장님 계신가?”
“잠시만 기다리시죠.”
비서가 지부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들어가시죠.”
비서의 말에 지부장실로 들어갔다.
마츠모토 세이초.
곧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4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정정했다.
“아침부터 웬일인가??”
독귀가 무릎을 꿇었다.
“도련님 일로 심려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사죄라…. 그래. 어떻게 사죄할 텐가?”
“그. 그게…….”
“마감청이 내 아들을 잡아갔다지?”
“걱정 마십시오. 도련님 신상엔 털끝만큼도 문제없을 겁니다.”
“당연한 소리! 누가 감히 내 아들에게 손을 댄단 말인가.”
“무… 물론입니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반응에 독귀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태민에 관한 얘기만큼은 막아야 했다.
고작 24살짜리에게 당했다면 대체 뭐라고 변명한단 말인가.
“어떻게 할 텐가?”
“제, 제가 입국을…….”
“입국을?”
“마감청과 쇼부 보겠습니다.”
“쇼부를 본다? 헌데 문제는 마감청이 아니잖은가.”
“무슨 말씀이신지…….”
“칙쇼! 누굴 바보로 아는가! 이태민 말이야, 이태민!”
“아……!”
순간 독귀는 할 말을 잊었다.
그토록 염려했던 이태민이 언급된 것이다.
“고작 20살짜리 아이한테 모두가 당했다지?”
“그, 그게.”
독귀가 비 오듯 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