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언니! 흑흑흑……!”
게이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소진 선배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가슴이 아릿했다.
짝사랑이지만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였다.
그런 사람이 눈물을 흘리니 나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빨리 병원으로.”
게이트 밖에서 대기 중이던 구급차에 김 교관을 태웠다.
“……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대체 정체가 뭐지.”
다크 템플러.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잔혹한 악마들.
놈들을 떠올리자 분노가 솟구쳤다.
‘…일단 재앙급 마수부터 처리해야 해. 그게 먼저다.’
마음먹은 후 최 대장에게 갔다.
“게이트에 누구도 진입해서는 안 된다.”
“예, 대장님.”
“그리고…. 음, 태민이 왔구나.”
최 대장이 요원들에게 게이트 통제를 지시하던 중, 다가오는 나를 알아차리고는 말을 걸었다.
“명성 사람들하고 얘기 좀 해야겠다. 너도 가자.”
“아뇨. 전 할 일이 있어서요.”
“할 일?”
최 대장이 궁금해했지만 무슨 일인지 캐묻지는 않았다.
“알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예, 대장님.”
나는 최 대장과 헤어진 후 곧장 경기도 일산으로 향했다.
경기도 일산에 제작 공방이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 보관 중인 엘리시움 창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엘리시움 창만 있다면 레비아탄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것이었다.
***
택시를 타고 1시간쯤 이동해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진영 공방에 도착했다.
“무명 클랜에서 왔습니다.”
“어? 담당자분이 아니시네요.”
“황 과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황 과장과 한번 통화해 보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30대 초반의 공방 직원이 황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대표님이시군요. 이쪽으로 오세요.”
내 신분을 확인한 공방 직원이 창고로 안내했다.
- 드르득!
창고에 있었다.
길이 2m,
무게 50kg으로 제작된 엘리시움 창이.
“현재까지 총 몇 개나 제작되었습니까?”
“한 3백 개 정도 됩니다.”
3백 개면 엘리시움 양만 15톤이었다.
“아웃 칼리는 충분합니까?”
“충분합니다. 지금도 계속 공급받고 있고요.”
순조롭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공방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예, 대표님.”
이어 엘리시움 창을 살폈다.
굴곡 없이 야무지게 잘 나온듯했다.
“완성품들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화물차를 수배할까요?”
“아니요. 제가 알아서 가져가겠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내 말에 공방 직원이 어리둥절해했다.
당최 저 무거운 창들을 어떻게 가져간다는 것인지,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토를 달거나 질문하지는 않았다.
그저 알았다며 창고를 나갔을 뿐이었다.
직원이 나가자 아공간을 개방해 창들을 집어넣었다.
( 주인. 그 창은 뭔가? )
( 엘리시움 창이다. )
( 뭔가 독특하군. )
( 이 창만 있다면 레비아탄도 사냥할 수 있다. )
( 그게 정말인가? )
( 두고 봐라. 곧 보여줄 테니까. )
각오를 다지며 창을 챙긴 후 다시 함박산으로 향했다.
***
게이트가 푸른색으로 변해있었다.
겨우 3시간 만에 게이트가 클리어된 것이다.
게이트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색으로 변해 버렸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하….’
황당함을 뒤로하고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이동.’
‘이동.’
‘이동.’
계속해서 순간 이동을 사용했다.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흑색 게이트도 없었고 재앙급 마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하…. 어이가 없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시체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최 대장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게이트도 마수도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마물의 짓이라고 하기엔 너무 터무니없잖아.”
최 대장 말에 나도 공감했다.
만약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존재가 개입됐다면,
그들이 어떤 악의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을 살해하고 있다면,
이것은 인류에 대한 도전이자 명백한 침략 행위였다.
따라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봐야 했다.
“태민아. 마감청으로 가자.”
“예 대장님.”
대강 상황을 정리한 후, 최 대장과 함께 마감청으로 향했다.
곽 부장에게 오늘 일을 상세히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밤 마감청 수뇌부에 비상이 걸릴듯했다.
***
다음 날 김 교관이 입원한 병실을 찾았다.
김 교관은 혼수상태로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곳에서 생긴 일들이 미스터리로 남았다.
김 교관이 눈뜰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김소진 선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선배, 기운 내세요.”
“…아, 태민 씨.”
무척이나 초췌한 모습.
“금방 깨어나실 겁니다.”
“……고마워요.”
지금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그저 조심히 다독였을 뿐이었다.
흑색 게이트, 다크 템플러, 재앙급 마수, 최태식 교관의 죽음, 혼수상태에 빠진 김소영 교관 등,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설마 차원 균열 때문인가?’
차원 균열이 발생하면, 게이트 변이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이 발생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쨌든 하나는 확실해. 내가 알던 미래가 완전히 변했다는 것.’
그동안 미래 지식을 활용하여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어떤 알 수 없는 사건이 들이닥칠지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25/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3125)
머리가 복잡할 때는 사냥이 최고였다.
이미 내 능력은 모두 다 공개된 상태.
더 이상 눈치 볼 것이 없었다.
황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게이트를 닥치는 대로 섭외토록 했다.
***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25/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25/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6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2920/3125)
일주일에 걸쳐 그림자 병력을 채웠다.
이 정도 채우는 데 하루면 충분했지만, 게이트 배정을 받아야 했기에 오래 걸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냥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백귀의 위치도 함께 파악했다.
전무치가 알고 있던 백귀의 아지트부터, 놈이 갈만한 장소들을 빠짐없이 수색했다.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놈의 부하들에게 그림자 병력을 심어두었다.
백귀의 소식이 들리는 즉시 내게 보고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
다음 날 마감청에서 연락이 왔다.
S급 게이트가 생성됐다고 했다.
기존에 있던 S급들은 사방신 길드가 모두 독식 중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S급이 생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부산에 생성된 게이트가 S급으로 판명되었고, 브리핑을 위해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전화를 끊고, 일단은 눈앞에 있는 게이트에 입장했다.
이곳은 삼성동 대로변 근처에 생성된 1등급 게이트였다.
오늘 여기서 그림자 병사를 풀로 채울 생각이었다.
***
1등급 게이트를 순식간에 쓸어 버렸다.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25/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25/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6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3125/3125)
그림자 병력을 한계까지 만들어냈다.
물론 그림자 남작은 제외하고 말이다.
기분 좋게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뭔가 모를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 주인, 살기다. )
( 알고 있다. )
무척이나 절제된 살기.
그림자의 권능이 아니라면 느낄 수조차 없을 만큼 미약했다.
누가 살기를 품고 있는 것일까.
이곳에서의 살기라면 100% 날 향한 살기였다.
‘감히 날? 재밌네.’
나는 더 이상 뉴비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공식 랭커.
1악 6왕 48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1군이었다.
그런 내게 도전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설사 상대가 8귀도 마찬가지.
나는 공식적인 전무치 살해자였다.
그런 내게 도전한다? 그것도 혼자서?
미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 마귀라면 모를까.’
랭킹 1위인 마귀라면 혼자서도 덤빌 수 있었다.
그는 그만큼이나 강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1악과 함께 잠적 중이었다.
‘…설마.’
뭔가 모를 익숙한 모습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공간의 일그러짐 현상이 눈에 띈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굴곡져 보였다.
언젠가 한 번 보았던 현상이었다.
내 눈은 특별했다.
어둠 속을 환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은신도 간파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찾아다녀도 없더니 여기 있었구나.’
누군가 그랬다.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라고.
오늘따라 그 말이 가슴에 확 와닿았다.
이제 겨우 24살.
아카데미를 졸업한 신출내기 뉴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자신에 비해 어리디어린 내가 전무치를 살해하고,
북벌을 완전히 멸문시켰다는 사실을.
잠시 후 내 예상이 현실이 되었다.
***
전무치가 당했다는 소식을 믿지 않았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고 뉴스에 연일 보도가 돼도 말이다.
이태민.
겨우 24살이었다.
그런 꼬꼬마에게 8귀 중 하나가 당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마감청의 농간이 틀림없었다.
1악이 잠적한 지금이 8귀를 처리할 절호의 기회라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놈을 내세워 연막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건방진 놈….’
매운맛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녀석의 얼굴이 낯익어 보였다.
게이트에서 한 번 마주쳤던 녀석이었다.
‘하 살아있었나? 어이가 없군.’
백귀는 사실 헌터들의 심장을 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헌터들을 죽였던 것이다.
게이트에서 헌터를 죽이면 부하들이 와서 심장을 수거해 갔다.
이렇게 채취한 심장은 일본에서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헌데 그날은 녀석 때문에 일을 망쳐버렸다.
백귀는 녀석의 공격 덕에 얼굴에 상처가 생겼고, 응징을 위해 백색 광선을 사용했다.
덕분에 시체가 모두 녹아버렸고,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다.
당시 녀석도 함께 녹은 줄 알고 기억에서 지워버렸었다.
‘순간 이동 능력자라 이거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군.’
생각해 보니 매운맛 정도는 부족했다.
아주 고통스럽게 죽이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녀석의 자료입니다.”
자신의 수족 독사가 이태민의 자료를 건네줬다.
이태민.
1군, 그림자 네크로맨서, 순간 이동 능력자이자 마감청 패스파인더.
다양한 호칭들을 가지고 있었다.
다재다능한 능력자란 소리였다.
마감청에서 그토록 물고 빠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료를 살펴본 결과 녀석에게 더욱 흥미가 생겼다.
아울러 녀석의 힘을 빼앗고 싶다는 욕망도 생겼다.
“심장을 먹어야겠다.”
녀석의 심장을 먹을 수 있다면 힘을 빼앗을 수 있었다.
기대감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애들 준비시킬까요?”
“아니. 녀석의 위치만 파악해라. 나 혼자서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형배에게 물건들 차질 없게 준비시켜라.”
“예.”
“일본에 있는 독귀가 신신당부하더군. 이번 일 꽤 중요하다고.”
“명심하겠습니다.”
백귀의 말에 독사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