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중세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크 나이트나 스켈레톤 나이트는 아니었다. 심지어 로바 오크도 아니었다.
마물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가슴팍에는 검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거북한 느낌을 주었다.
정체를 단정 지을 수 없는 매우 특이한 마물이었다.
마물은 마물인데 마물이 아닌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들어가 보자.”
최 대장 말에 장 선배가 움직였다.
입구가 거대한 석문에 막혀 있었는데, 던전 입구치고는 매우 독특한 구조였다.
장 선배가 힘을 주자, 드드득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람이 들어갈 만큼 석문이 개방되었다.
***
던전 안은 어둡지 않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야명석들이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앗!”
유 선배가 소리를 냈다.
놀랍게도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확인해 보니 이미 죽어있는 시체였다.
“명성 사람이에요.”
슈트에는 명성의 엠블럼이 새겨져 있었다.
“검상이네.”
상처를 보니 검에 당한 듯했다.
“일단 들어가 보자고.”
최 대장 말에 우린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한 100m쯤 이동했을까.
“…태민아, 미로다.”
입구에서 시작된 통로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모두가 날 쳐다봤다.
“이쪽입니다.”
나는 지체 없이 길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날 패스파인더로 여기지만, 난 단순한 패스파인더가 아니었다.
반경 1km 이내를 손바닥처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자였다.
“이번엔 이쪽이네요.”
갈림길마다 거침없이 길을 선택했다.
막힘없는 내 선택에 팀원들이 놀라워했다.
아무리 패스파인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300m쯤 이동했을 때였다.
사람의 사체가 또 발견되었다.
“명성이에요.”
이번에도 명성의 엠블럼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명성은 김 교관과 함께 들어간 클랜이었다.
사람들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가자.”
최 대장 말에 우린 또다시 안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대략 200m쯤 이동했을까.
“또… 시체네요.”
다섯 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이 사람들도 명성이에요.”
역시나 명성 사람들.
시체를 확인하니 검상에 의한 사망이었다.
“이곳에 총 몇 명이 들어왔지?”
“14명요. 명성만 12명이구요.”
“지금까지 발견된 시체가 일곱 구니까, 일곱이 남았군.”
“살아있어야 할 텐데….”
유 선배 말에 모두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가자.”
최 대장 말에 우린 또다시 몸을 움직였다.
“…조심하세요.”
“무슨 뜻이지?”
“느낌이 안 좋아요.”
내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던전을 파악하고 있음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태민이가 허튼소리 할 리가 없다. 그러니 다들 조심해라.”
최 대장이 내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정체가 오묘한 무엇이 300m 전방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주의를 준 것이다.
***
잠시 후, 300m쯤 이동했더니 광장이 나왔다.
광장은 시커먼 무언가가 지키고 있었다.
그림자로 보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검은 십자가가 새겨진 알 수 없는 존재들.
마물 같으면서도 마물이 아닌 듯한 요상한 존재들.
[ ####### ]
우리를 발견한 그것이 괴성을 질렀다.
헌데 자세히 들어보면 괴성이 아니었다.
어떤 외계어 같았다.
놈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 다크 템플러가 출현하였습니다.
!!
갑작스러운 음성에 깜짝 놀랐다.
마물의 이름을 알려줄 정도로 친절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대체 왜….’
의문이 들었지만, 놈들의 모습부터 캐치했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투구 안에는 얼굴이 없었다.
그저 시뻘건 눈빛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마물의 본류인 다크 나이트.
다만 육체가 없는 놈들과 달리
생생한 육체가 있다는 것이 달랐다.
“마스터다.”
유 선배가 앞으로 치고 나가며 소리쳤다.
템플러의 검에서 녹강기가 솟구쳤던 것이다.
“피해!”
최 대장이 소리쳤지만, 이미 템플러가 장 선배를 덮친 후였다.
장 선배가 실드를 발현했다.
- 쾅!
폭발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실드가 산산이 조각나며 장 선배가 튕겨져 날아갔다.
나는 황급히 장 선배 앞을 막았다.
다크 템플러가 또다시 짓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 실드!’
그림자 실드를 발현했다.
- 쾅!
폭발이 일었지만, 실드가 버텨주어 끄덕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내 말에 장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검.’
나는 폭룡으로 장검을 만들어낸 후, 지체 없이 템플러를 향해 뛰어들었다.
- 쾅! 쾅! 쾅!
녹강기와 녹강기의 충돌이었지만, 파괴력 면에서 폭룡이 훨씬 더 월등했다.
충격을 받은 놈이 연신 뒤로 물러섰다.
허나 나는 계속해서 압박했다.
- 쾅! 쾅! 쾅…!
그러다 기회를 포착
( 장창. )
순식간에 늘어난 장창으로 놈을 찌를 수 있었다.
그때였다.
털썩 쓰러진 놈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무슨….’
황당했던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놈을 그림자 병력으로 만들려던 내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장 선배가 놀란 듯 쳐다봤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동.’
나는 유 선배와 싸우던 다크 템플러의 뒤를 점한 후 놈을 습격했다.
- 쾅!
깜짝 놀란 놈이 폭룡을 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계속해서 짓쳐드는 유 선배의 참격에 놈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처음 보는 녀석들인데….”
어느새 마물을 처리했는지 최 대장이 다가왔다.
“다크 템플러라고 하던데?”
유 선배 말에 최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음성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들었던 것이다.
“S급인데 처음 보는 마물. 게다가 친절히 이름까지 알려준다? 뭔가 상당히 찝찝한데….”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요상한 놈들이다.”
“이 이상 들어가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빡빡하진 않아. 이 정도면 S급 하위 레벨이고.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데.”
유 선배가 최 대장을 보았다.
“최 대장, 당신 생각은 어때?”
“저도 괜찮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장태산, 너는?”
“이 정도면 버틸 만합니다.”
최 대장이 굳이 장 선배를 언급한 이유는 방금 전 실드가 박살 났기 때문이었다.
“정말 괜찮겠나?”
“방심했을 뿐입니다. 전력을 다한다면 못 막을 정도는 아닙니다.”
장 선배 말에 최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린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결정했다.
***
잠시 후 광장에 들어선 우린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광장에는 여러 개의 석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헌데 석상에는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참혹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마물과 마수는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놈들은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며 죽였다.
마치 보란 듯이 매달아 두기까지 했다.
이것들은 마물과 마수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악마였다.
‘맙소사….’
석상에 매달려 있던 시체는 모두 여섯.
그중에는 최태식 교관도 있었다.
유일하게 없는 것이 김소영 교관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최태식 교관을 내렸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교관님. 크흑.”
장 선배가 눈물을 흘렸다.
‘나 입술 터진 거 안 보이냐? 집에 가면 엄마가 걱정한다고. 그러니 이 정도로 봐줘라.’
‘한방 더 맞아도 될 것 같은데요?’
‘태민아 나도 교관으로서 가오가 있다. 제자한테 얻어맞는 건 상당한 충격이라고.’
최태식 교관이 떠올랐다.
“크윽…….”
가슴이 아파 한참을 괴로워했다.
마물과 마수가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여겼다.
짐승의 본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토록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는 짓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다크 템플러.
이것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정말 악마란 말인가.
“정신 차려라. 김소영 교관이 아직 남았다.”
최 대장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체는 나중에 수습한다. 모두 이동.”
최 대장 말에 우린 다시 이동하려고 했다.
“잠깐만요.”
나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200m 전방에서 다크 템플러가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합쳐 십여 마리나 되었다.
‘젠장.’
십여 마리면 아무리 우리라도 버거운 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미 타이밍을 놓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준비하세요. 템플러가 떼로 몰려옵니다.”
“뭐?”
깜짝 놀란 사람들이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벌써 놈들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1/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17/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25/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3125)
어쩔 수 없었다.
내 힘을 전부 동원하기로 했다.
‘소환.’
그림자 남작과 그림자 기사를 소환했다.
“놀라지 마세요. 제 소환물들이니까.”
“헐.”
전무치를 비롯한 그림자 기사를 본 동료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림자 병력을 보는 건 그들로서도 처음인 것이다.
‘쳐라!’
그림자 기사를 움직였다.
17마리의 그림자 기사들이 템플러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림자 기사들이 템플러의 시선을 끌었다.
한결 자유로워진 우린 놈들의 뒤를 습격했다.
최 대장, 나, 유 선배, 그리고 전무치까지.
생각보다 놈들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25/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3125)
하지만 그 대가로 전무치를 비롯한 그림자 기사들이 모두 소멸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거… 전무치 아니냐?”
최 대장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 괜히 1인 군단이 아니구나.”
“진짜 괴물은 따로 있었네.”
사람들이 그림자 기사들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장내를 정리한 후, 다시 던전 속으로 진입했다.
막 다크 템플러들을 모두 정리한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찝찝했다.
무언가 있었다.
장막에 가려진 어두운 무언가가.
***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
“씨발!”
욕설이 튀어나왔다.
김소영 교관이 발가벗겨진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얼핏 봐도 고문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얼마나 심하게 고문했는지,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직 살아있어!”
유 선배 말에 황급히 엘릭서를 건네주었다.
“있는 대로 다 줘!”
한 병을 먹인 후 한 병은 전신에 뿌렸다.
그리고 또다시 엘릭서를 한 병 더 꺼내 상처에 집중적으로 뿌렸다.
유 선배가 자신의 슈트를 벗은 후 김 교관에게 착용시켰다.
모두가 김 교관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맙소사!’
기절초풍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 이곳에 거대한 흑색 게이트가 생성돼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