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그림자 남작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내 앞에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었다.
( 주인님께 인사 올립니다. )
방금 전까지 싸우던 전무치가 무릎을 꿇었다.
상당히 찝찝했지만, 고개를 끄덕여줬다.
어찌 되었건, 그림자 남작인 것이다.
각성창을 개방했다.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1/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17/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25/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3125)
소멸한 놈들을 제하고, 최종적으로 얻게 된 그림자 병력이었다.
전무치를 얻게 된 것은 커다란 수확.
일단 전무치만 남기고 그림자 병력을 소환 해제했다.
( 전무치, 1악과 8귀에 대해 말해다오. )
( 예, 주인님. )
머릿속으로 수많은 정보들이 들어왔다.
전무치와 기억이 공유된 것이다.
기억을 살펴본 결과, 깜짝 놀랐다.
1악과 8귀.
이것들은 정말 죽일 놈들이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였다.
참담함을 뒤로하고,
놈들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살폈다.
놈들은 유물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호아킨 피닉스.
바로, 아칸 대공의 유물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마도 문명의 절대 유산 중 하나.
훗날, 신의 유물인 크리스탈 코어를 찾는 단초가 되는 유물이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이었다.
중력을 거스르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힘.
극소수의 염동력자들을 제하면, 하늘을 날 수 있는 헌터는 전무.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하는 유물이었다.
현재, 8귀는 호아킨 피닉스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고등급 게이트에 자주 출몰하는 것도 그 때문인듯했다.
호아킨 피닉스에 대해 알게 된 지금, 마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비행 능력은 그 자체로 대단한 능력.
폭룡과 만난다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것이다.
그야말로 고공 폭격이 이뤄지는 것이다.
최소 2배 이상의 전력 상승은 불 보듯 뻔했다.
호아킨 피닉스를 스틸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놈들과 나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스틸 하는 게 맞았다.
전무치를 소환 해제했다.
현장을 떠나려다가 마감청 요원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CCTV를 비롯한 각종 카메라에 다 찍혀버린 상황.
내가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마감청 요원들이 도착했다.
도착한 요원들 중에는 최강욱 대장도 있었다.
“휴, 결국 대형 사고를 쳤구나.”
최강욱 대장이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한탄을 했다.
백양 빌딩 앞이 초토화가 돼 있었다.
“설마 전무치를 이길 줄이야. 이게 말이나 되는 건지…. 이제 갓 졸업한 뉴비가 혈귀를 이기다니.”
최 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똥도 못 싸고 급하게 달려온 것이 민망할 정도다.”
최 대장 말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을 일이 아니다, 이 대표. 전무치가 누군지 알기나 하고 제거한 건가?”
“북벌 클랜의 전무이사 아닙니까?”
“북벌 클랜의 전무이사지. 그럼, 북벌 클랜의 대표 이사는?”
전봉식이었다.
전봉식은 전무치 덕분에 알게 된 자로.
어둠 속에 숨어있던 독귀였다.
“8귀의 이인자이자 실질적인 리더. 독귀, 전봉식이 바로 대표이사다. 전무치의 막내 삼촌이지.”
최 대장이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북벌 클랜이 어둠과 손을 맞잡은 건 이미 알려진 사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건드릴 순 없었다. 8귀와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했거든.”
최 대장이 주위를 살폈다.
“전무치, 전무진 형제를 비롯, 혈검과 혈검대까지 모조리 다 처리했구나. 뇌관을 아주 제대로 건드렸어.”
최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일본에 있는 전봉식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야. 8귀와 자네는 완전한 적이야.”
최 대장이 내 어깨를 다독었다.
“이 대표. 감당할 수 있겠나?”
전봉식은 지금, 아칸 대공의 유물 때문에 일본에 가 있었다.
놈이 돌아온다면 8귀와의 전면전은 불가피했다.
긴장됐는지, 나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설마 마감청에서 보고만 있진 않겠죠?”
“당연하지.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를 보호할 것이다. 청장님께서도 이미 지시를 내렸고.”
“청장님께서요?”
최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를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필요하다면 8귀는 물론, 자신이 직접 1악과 싸우겠다는 말씀도 하셨고.”
1악과 마감청 청장이 싸운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청장님이 나설 정도로 제가 그렇게 가치가 높습니까?”
직설적인 물음에, 최 대장이 머쓱해 했다.
“흠흠. 가치라.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사실 게이트 변이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이런 시국에 패스파인더의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최 대장이 날 주시했다.
“모두가 알면서도 외면했던 일.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용기 내지 못했던 일. 그 일을, 지금 자네가 하고 있다. 이미 늦었지만, 자네의 대의에 뒤늦게라도 합류한다는 의미다.”
최 대장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쨌든 날 지지한다는 소리였으니까.
“청장님께서 1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걱정 마라. 청장님께서 나서신다면, 사방신 길드장들도 함께 나설 테니까.”
“아.”
최 대장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1악 vs. 육명왕의 구도라면 크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볼케이노란 존재가 있었지만, 대세에 큰 영향은 없을 듯했다.
“사회를 좀먹던 대형 종기가 드디어 터졌다. 전씨 일가가 오너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이젠 시간문제겠지.”
최 대장 말에 깜짝 놀랐다.
“혈귀와 독귀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더욱이 진상 그룹은 그들의 모체입니다.”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독귀가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 그는 독을 다루는 자. 대놓고 전씨 일가를 처벌한다면 필시 그에 상응하는 테러를 저지를 거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보류하자는 소리다.”
“그 말씀은, 독귀만 처리한다면 전씨 일가도 처벌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소리. 빌런 단체를 지원했으니 응당 책임을 물어야지.”
최 대장 말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 펴라 이 대표. 뒷감당은 마감청에서 해줄 테니까.”
최 대장이 내 어깨를 다독였다.
최 대장과 헤어진 후 집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로 복잡했지만 그래도 속은 시원했다.
지금에서야 독귀에 대해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렵거나 무섭진 않았다.
마스터 등급의 전무치가 내 그림자 병력이 되었다.
또한 이제 곧 있으면 마스터 등급의 마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마스터 등급만 다섯 마리였다.
살아있는 8귀가 여섯.
랭킹 1위인 마귀는 1악과 함께 잠수를 탔으니 제외.
8귀라고 해봤자 고작 다섯뿐이었다.
게다가 마감청이 날 지원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연 누가 유리할까?
더욱이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난 마스터 중에서도 거의 압도적으로 강했다.
공포에 떨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8귀였다.
지금은 그들이 사냥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종국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왕지사 이리된 거 타깃을 정했다.
첫 번째는 백귀였다.
전무치의 기억 속에 놈의 은신처가 남아 있었다.
사실 8귀중 누구라도 좋았다.
놈들의 위치만 알 수 있다면 100%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백귀.’
얼마 전 백귀가 저지른 짓들이 떠올랐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백귀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 날 난리가 났다.
북벌 클랜이 하루아침에 멸문한 것이다.
불과 몇 시간 뒤
북벌 클랜의 과거 행적들이 낱낱이 밝혀졌다.
- 속보) 한밤의 혈투. 이태민. 또다시 무쌍 찍다?
- 속보) 북벌 클랜의 실체. 백일하에 드러나다.
- 단독) 사회악 빌런들이 설립한 북벌 클랜. 마감청 왜 그동안 묵인했나.
- 속보) 이태민. 혈귀를 잡다.
- 단독) 납치 살해 협박 강간 등 온갖 범죄에 연루된 북벌 클랜. 국민적 공분.
- 속보) 진상 그룹 전씨 일가. 그룹 오너에서 일괄 사퇴.
등등.
북벌 클랜과 관련된 기사만 수천 개가 넘게 쏟아졌다.
기사의 요지는 북벌 클랜의 전무치가 내 여동생을 납치 사주했고
내가 납치범들을 모두 제압 후 북벌 클랜에 쳐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이 와중에 8귀중 한 명인 혈귀를 사살했고
수백 명의 빌런들까지도 혼자서 처리해 버렸다는 스토리였다.
- 불세출의 영웅 탄생.
뜬금없이 하룻밤 만에 불세출의 영웅이 되었다.
거기다 1군이라는 새로운 칭호도 생겼다.
1군.
즉 1인 군단이라는 뜻이었다.
‘하, 당분간 또 피곤하겠군.’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은 무조건 마감청에 가야 했다.
비단 어제일 뿐만 아니라 곽 부장에게 꼭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최 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게이트 변이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최 대장 말을 무심코 넘길 수 없는 것이, 지금 현재도 차원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게이트 변이 속도였다.
변이 속도가 나날이 빨라진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라도 재앙급 마수에 관한 정보를 풀어야 했다.
아울러 엘리시움에 관해서도 말이다.
클랜 사무실에 들러 아웃 칼리와 관련된 자료들을 챙겼다.
“대표님. 여기 있습니다.”
“수고했어요. 주하 씨.”
김주하가 아웃 칼리와 관련된 자료들을 건네줬다.
올해 안에 반드시 붉은 게이트가 생성될 것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했다.
자료를 챙긴 후 마감청으로 향했다.
***
마감청 앞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기자들을 피해 순간 이동을 사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감찰과로 진입했다.
그런데 그때
“태민아!”
누군가 날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안봉안이 서 있었다.
“어? 네가 웬일이냐?”
“어제 전화했는데 전화기가 꺼졌더라. 그래서 클랜 사무실로 갈까 하다가 마감청으로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봉안의 말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마감청에 오는 건 어떻게 알고?”
“아는 분께 들었다. 그보다 태민아. 네가 꼭 만났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뜬금없는 안봉안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 녀석을 따라 접견실로 향했다.
!!
접견실에는 정영미 김소진 선배, 장태산 선배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8군인 유숙희 헌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