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이은영.
올해 나이 20살.
아주 파릇파릇한 나이였다.
쌍대가 그녀를 잡아 올 것이다.
그럼, 애들이 발가벗긴 채 공중에 매달아 둘 것이다.
내일이면 그녀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벌써부터 흥분되기 시작했다.
“…크윽.”
독한 위스키를 삼켰다.
이은영을 떠올리자, 맨정신으로 있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룰루루~ 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때,
- ♬♩♪♬♪~
전화가 걸려왔다.
최철민이었다.
“뭐야?”
“이사님. 이태민이 쳐들어 왔답니다.”
“뭐…?”
뜬금없는 소리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이태민이 쳐들어왔답니다.”
이태민이란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이태민이라면 이미 적귀가 처리했을 터였다.
“이태민이 어떻게 쳐들어 와? 무슨 헛소리야!”
“이태민이 혈검 숙소를 공격하고 있답니다.”
기가 막혔다.
“진짜 그놈이 확실해?”
“예. 확실하답니다.”
“살아서 돌아왔다고? 적귀의 손에서?”
“아무래도….”
“적귀는 뭐래?”
“연락해 봤는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하.”
너무나 황당해서 또다시 코웃음 쳤다.
“한 번 더 연락해 볼까요?”
“…됐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숙소에 애들이 몇인데, 애송이 하날 처리 못해?”
“시체를 자꾸 부활시킨답니다.”
“부활? 무슨 소리야?”
“그림자 네크로맨서잖습니까. 시체를 부활시키는.”
“…에효, 됐다.”
최철민의 대답은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녀석도 현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철민아. 차라리 잘 됐다.”
“예?”
“이참에 그놈 여동생이랑 같이 파묻어 버리자.”
“아,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혈검대를 집합시켜라. 이태민. 놈은 우리가 잡는다.”
“예, 이사님.”
전화를 끊은 전무치가 피식 웃었다.
‘가소로운 놈.’
생각해 보니, 오히려 잘 된듯했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슈트를 착용했다.
***
지하 3층에서 지하 6층까지 혈검 놈들을 싸그리 다 정리했다.
이곳에 있던 혈검 놈들만 약 2백여 명.
놈들을 다 정리했더니, 그림자 병력만 증가했다.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18/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14/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3125)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건물 밖에서 일단의 병력들이 포착되었다.
반경 1km 이내의 750곳이 통제하에 들어온 상태.
지하 6층에서도 지상 1층을 훤히 느낄 수 있었다.
전무치였다.
전무치를 중심으로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얼핏 보건대 북벌 클랜의 혈검대 같았다.
혈검대는 전무치 개인의 무력 부대였다.
‘전무치.’
놈의 위치가 확인된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림자 병력을 해제한 후, 전무치가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
전무치와 최철민을 필두로 혈검대 100여 명이 도열해 있었다.
◈ 그림자 남작 : 마스터 등급의 그림자 남작(5),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18/2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114/1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6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3125)
‘소환.’
나 역시도 그림자 병력을 소환했다.
그림자 기사 18마리와 그림자 투사 114마리가 소환됐다.
“그림자 네크로맨서라더니. 아주 재미난 능력이구나. 하긴, 그쯤 되니까, 적귀가 그 난리를 쳤겠지.”
전무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귀한테서 어떻게 빠져나왔지? 우리 하 선배가 그렇게 널널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하 선배는 모르겠고. X새끼 하무일이라면 내가 좀 알지.”
내 말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감히!”
최철민이 나서자,
“됐다.”
전무치가 그를 제지시켰다.
“우리 하 선배가 뭔가 실수라도 했나 보구나. 그 양반, 그렇게 쉽게 실수하는 사람이 아닌데 말야.”
“실수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 말에 전무치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지?”
“네놈들 특징이 그래.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일단 깔보고 시작하거든.”
“그래서?”
“그래서라니? 어리다고 방심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러다, 진짜 큰코다칠 수 있다는 소리고.”
“큭, 무진이를 죽였다길래 조금 특별히 봤더니. 아주 당돌한 녀석이구나.”
“무진이 따윈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말야. 네놈 새끼가 내 동생에게 쌍대를 보냈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몹시도 화가 났다는 거고.”
“미친 새끼가….”
“각오해라, 지금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니까.”
“큭, 크크크… 크하하하. 각오해라, 지금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니까. 크크크크. 이 새끼, 완전 코미디언이네. 하하하하!”
“실컷 웃어라, 이 잡노무 새끼야.”
● 폭사 : 상공에서 100개의 창이 생성된다.
놈을 향해 우측 팔을 뻗었다.
‘폭사.’
순간, 상공에서 100개의 창이 생성되더니, 빛살 같은 속도로 지상에 떨어졌다.
- 콰콰콰콰콰콰콰…!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백양 빌딩 앞이 초토화가 되었다.
심장이 멈출 만큼 경악했다.
그저 선공의 의미로 능력을 발휘했을 뿐이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의 파괴력이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 했었다.
전무치 진영이 초토화가 되었다.
생존한 인원은 전무치를 포함한 불과 여섯뿐.
봉두난발이 된 전무치가 정신이 나간 듯 서 있었고,
최철민과 혈검대 몇몇이 피를 토하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 겨우 그 정도에 놀라다니, 실망이다. )
( 뭐? )
( 마력 전도율 100%, 마력 증폭률 200%다. 주인. 날 뭘로 본 건가. 더욱이, 폭사는 내 필살기. 이 정도 파괴력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 )
( 그, 그런 건가…. )
( 주인. 주인은 날 너무도 무시하는 군. )
( 무… 무시라니. 딱히 그럴 의도는…. )
마검 폭룡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녀석의 놀라운 스펙에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미쳐 생각도 못 했다.
나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 주인. 정신 차려라. 언제까지 멍만 때리고 있을 텐가? )
마검 폭룡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무치가 방심한 상태에서 필살기가 제대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황금 같은 기회.
이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 없었다.
‘쳐라.’
명령을 내리자, 그림자 병력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최철민을 비롯한 혈검대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림자 병력이 출격하자, 나 역시도 전무치를 향해 순간 이동했다.
‘단검.’
양손에 단검이 생성되었다.
전무치의 뒤를 점한 후, 폭풍처럼 짓쳐 들었다.
전무치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 순간,
‘장검.’
폭룡이 장검으로 변하며 전무치를 압박했다.
강기 다발이 뭉텅이로 쏟아졌다.
녹강기였다.
- 쾅!
충격을 받은 전무치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놈과의 거리가 더 벌어지자,
‘대검.’
10m가 넘는 거대한 대검으로 변했다.
대검을 머리에 치켜든 후, 전무치를 향해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 콰앙!
폭음이 터지고,
충격을 받은 전무치가 또다시 주르륵 밀려났다.
“씨발!”
폭룡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놈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창.’
폭룡이 5m 크기의 거대한 창으로 변했다.
나는 밀려난 전무치에게 창을 쏘아냈다.
거대한 창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전무치가 경악했다.
시작부터 계속되는 맹공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쉽게 말해, 핵 펀치를 몇 방 맞고 시작하는듯했다.
- 콰앙!
폭발과 함께 전무치가 튕겨져 날아갔다.
나는 다시금 놈에게 짓쳐 들었다.
단 한 순간도 놈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단창.’
창에 이어 단창까지 생성해 날려보냈다.
- 쾅! 쾅!
‘단창.’
나는 계속해서 단창을 만들어내 던졌다.
- 쾅! 쾅!
- 쾅! 쾅!
- 쾅! 쾅!
전무치의 표졍이 어느덧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때였다.
“으아악! 씨바아알-!”
계속되는 맹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전무치,
“블러드 블레이드.”
그가 드디어 능력을 발현했다.
그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시체 속에서 핏방울들이 솟구쳤다.
상공에 떠오른 핏방울들이 한점에서 뭉치더니 시뻘건 검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X새끼야!”
전무치가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당한 게 억울한지, 한 맺힌 음성이었다.
“죽어!”
그가 블러드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순간, 거대한 피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그림자 실드.’
나는 침착하게 그림자 실드를 발현했다.
방어막이 형성되고,
- 콰콰콰콰….
폭발이 연속해서 터지는 중에도 약간의 충격만 받았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전무치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필살기가 조금도 먹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씨익 웃었다.
놈의 곁으로 순간 이동했다.
또다시 쉴 틈 없이 압박할 차례였다.
거의 일방적인 대결.
전무치의 얼굴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빨이 부서졌고, 코뼈가 내려앉았다.
아래턱이 무너졌고, 광대뼈가 박살 났다.
급기야 안면에 금이 가더니 놈이 털썩하며 무릎을 꿇었다.
설마하니 이토록 일방적으로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토록 일방적으로 이길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었다.
“우웩!”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는지 전무치가 피를 토했다.
거의 그로기 상태.
나는 또다시 놈의 안면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크악-!”
놈이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아직이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가족을 건드린 대가였다.
‘검.’
폭룡이 검으로 변했다.
나는 즉시 검을 휘둘렀다.
전무치의 머리가 순식간에 분리되었다.
혈귀의 명성치고는 매우 허망한 모습이었다.
놈이 방심하지 않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폭룡이지만, 이토록 쉽게 이기진 못했을 것이다.
싸움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한 인영이 눈에 띄었다.
‘최철민.’
혼자 살아남아서 악착같이 싸우고 있었다.
‘단창.’
손에서 단창이 생성되었다.
나는 지체 없이 단창을 날렸다.
쏜살같이 날아간 단창이 최철민의 몸을 뚫었다.
“컥!”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놈이 쓰러졌다.
놈 역시도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최후를 맞았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빌런이 된다는 건 죽음과 손을 맞잡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애도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윽고, 전무치, 최철민을 비롯한 혈검대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일어나라.’
시체의 그림자가 쭈욱 늘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자 병력이 생성되었다.
- 그림자 남작이 생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