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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인류 최강-32화 (32/110)

32화

청강기는 챔피언 등급의 상징.

보통의 강기와는 전혀 다른 힘이었다.

시퍼런 아우라가 검날을 타고 불꽃처럼 타올랐다.

‘이동.’

놈들 중 좌측 놈을 먼저 공격했다.

- 쾅!

청강기와 청강기가 맞부딪쳤다.

섬찟한 살기에 좌측 놈이 도끼를 휘두른 것이다.

내가 한 걸음 물러서자, 순식간에 놈들이 짓쳐 들었다.

강력한 힘과 체력.

덩치에 맞지 않는 빠른 스피드.

뛰어난 무기술.

그리고 폭발적인 마력까지.

오크의 장점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점은 합공을 잘한다는 점이었다.

서릿발 같은 청강기가 내 전신을 옥죄여 왔다.

3:1의 싸움은 일방적으로 밀리는 형국.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좌측으로 실드를 생성하자, 자동 방어가 되었다.

그 즉시 순간 이동.

오크의 뒤를 점한 후, 단칼에 목을 베었다.

그리고 또다시 순간 이동.

내가 좌측으로 빠지니, 오크 두 놈이 미친 듯이 짓쳐 들었다.

놈들의 앞에서 실드.

- 쾅! 쾅!

실드로 공격을 막은 후, 그 즉시 순간 이동.

우측 놈 곁으로 이동했다.

우측 놈이 화들짝 놀라며 방어했지만, 이미 놈의 심장을 찌른 후였다.

등 뒤에서 마지막 오크놈이 달려들었다.

나는 즉시 순간 이동.

놈의 뒤를 점한 후, 단번에 목을 베었다.

“휴~”

확실히 격차가 컸다.

엘리트와 챔피언의 격차가.

순간 이동 하나로 엘리트에서 무쌍을 찍었다면, 챔피언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파워, 스피드, 모든 면에서 레벨이 달랐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이 정도 적이면 두려움을 느껴야 하건만, 왜 이렇게 즐겁고 신나는지 모르겠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저 기쁠 뿐이다.

‘생성.’

오크 그림자가 쭈욱 늘어나더니, 그림자 기사가 생성됐다.

‘가자.’

그림자 기사들을 데리고 천천히 이동했다.

때마침, 전방에서 오크 여섯 마리가 몰려왔다.

6 vs 4의 대결.

뭔가 좀 흥분되기 시작했다.

***

당최 얼마나 사냥했는지 모르겠다.

주위엔 온통 오크 사체들뿐이다.

적게 잡아도 수십 마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모양이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사냥한 적은 단연코 처음.

이토록 흥분되고 짜릿한 이유를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 사냥하고 싶었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에 묻은 녹색 피를 털었다.

( 태민. 피 냄새다. )

( 뭐? )

갑작스러운 요물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 사람의 피 냄새라고. )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

( 날 믿어라 태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피 냄새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는다. )

( 지럴. 마물과 함께 살았으니, 사람 피 냄새가 그리운 거겠지. 어련하시겠냐. )

( 농담 아니다, 태민. 제발, 날 믿어라. )

요물의 거듭된 요청에 할 수 없이 주위를 살폈다.

이미 반경 1km 이내의 625곳이 통제하에 들어온 상태.

한쪽 무릎을 꿇고, 한쪽 손바닥을 땅바닥에 대었다.

변환된 그림자 병사들이 영상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800m쯤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나는 사람들을 살폈다.

세 명 다 숨이 끊긴 상태.

단칼에 멱이 따여 있었다.

‘대체 누가….’

떨리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때,

눈앞에 투명한 공간이 일렁거렸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형상이 굴곡지게 움직이고 있었다.

‘은신?’

공간을 주시하자, 섬찟함이 밀려왔다.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그것을 주시했다.

그때였다.

공간이 주욱 갈라지더니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날 정확히 주시하다니. 디텍트 능력자인가.”

“당신 짓입니까?”

내가 시체를 가리키자, 백색 가면이 코웃음 쳤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들을 죽인 겁니까?”

“크크크… 크하하하!”

놈이 대소를 터트렸다.

“뭐가 웃깁니까!”

“큭, 무슨 이유라니. 웃기잖아. 사람 죽이는데 이유를 묻다니.”

“…뭐?”

“사람 죽이는데 이유 따윈 없다고 말하는 거다. 애송이.”

“이익!”

순간 화가 치솟은 나는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검에 청강기를 주입했다.

검날에 새파란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백색 가면을 향해,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팔, 다리, 목, 가슴, 머리 등 전신을 압박했다.

“흥!”

백색 가면이 코웃음 치며 몸을 움직였다.

그의 전신에서 녹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

녹강기를 확인한 나는 황급히 공격을 중단했다.

내가 공격을 멈추자, 백색 가면이 반격을 시작했다.

“죽어라!”

놈의 검에서 녹강기가 뭉텅이로 쏟아졌다.

- 쾅! 쾅! 쾅! 쾅! 쾅!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어마어마한 공격이 가해졌다.

다행히 난 뒤로 물러선 후였다.

녹강기를 정면에서 받아본 느낌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백색 가면은 마스터 헌터답게 압도적으로 강했다.

힘, 스피드, 체력, 마력 등 모든 면에서 말이다.

백색 가면이 순식간에 짓쳐 들었다.

“죽어!”

놈은 마치 거대한 쓰나미 같았다.

녹강기를 뿜으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백색 가면이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내가 젊기에 놈은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강자의 숙명 같은 저주였다.

‘실드.’

놈을 향해 실드를 펼쳤다.

- 쾅!

실드가 박살 나며, 내 모습이 가려졌다.

그리고 그때,

놈의 곁으로 순간 이동했다.

놈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두 눈을 부릅떴다.

이미 내 검은, 놈의 모가지로 날아가고 있었다.

파노라마 필름처럼 세상 모든 게 느려졌다.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었다.

검이 닿기 전, 놈의 몸이 스르륵 밀려났다.

그 때문일까.

놈의 얼굴에 가느다란 실선만 남겼다.

실패였다.

완벽한 대실패.

분노에 찬 놈이 얼굴을 붉혔다.

“이노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엄청난 마력을 뿜기 시작했다.

“하압!”

새하얀 광선이 내가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 콰앙!

폭발이 일었다.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완전히 소멸되었다.

***

엄청난 마력을 느낀 순간, 1km 밖으로 순간 이동했다.

백색 광선.

8귀 중 하나인 백귀의 필살기였다.

그림자 기사를 채우러 왔다가 뜬금없이 거물급 빌런을 만난 것이다.

더욱이, 놈의 얼굴에 상처까지 낸 상황.

한마디로 말해, X 된 것이다.

놈이 복수하러 오기 전에 대비를 해야 했다.

‘큭, 어떻게 대비하지.’

보통의 헌터라면 두려움에 벌벌 떨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놈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싸울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 백귀와 싸우고 싶다.

- 백귀와 싸우고 싶다.

- 백귀와 싸우고 싶다.

백귀를 떠올리자, 내 안의 야수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 백귀와 싸워라!

- 백귀와 싸워라!

- 백귀와 싸워라!

백귀와 싸우라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어지간히 해라.’

아무런 대책 없는 야수는 패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무엇보다 신고가 우선이었다.

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실장님. 이태민입니다.”

“예, 대표님.”

“성남 시청 옆, 4등급 게이트에 백귀가 나타났습니다. 현재, 3명의 헌터가 살해당했고요.”

“배, 백귀요?! 화,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아, 워낙 중대한 문제라. 알겠습니다.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강 실장과 통화 후, 10여 분쯤 지났을까.

가디언 차량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8군이 도착할 때까지 입구를 철저히 봉쇄해!”

수십 명의 가디언들이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백귀는 은신이 가능하다. 따라서, 입구만 막아선 안 돼. 디텍트 섭외는 어떻게 됐나?”

“20분 후에 도착한답니다.”

“8군이 도착하면 디텍트와 함께 움직인다.”

“예!”

나는 한쪽에 서서 가디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

“니가 이태민이냐?”

40대 초반의 사내가 다가왔다.

숨 막힐듯한 기도.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포스.

더군다나, 은빛 독수리가 새겨진 보통의 가디언들과 다르게 그의 가슴팍에는 금빛 독수리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아.”

가까이서 보니, 내가 아는 인물이었다.

최강욱 대장.

마감청의 전설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격수.

마감청 8군의 1인이며, 8군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알려진 자.

차세대 마감청 청장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S급 게이트를 수차례 격파한 살아있는 게이트 오버.

이처럼 화려한 스펙도 그를 다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반갑다. 최강욱이다.”

“이태민입니다.”

“그래, 백귀를 만났다며?”

“예.”

“현장에 한번 가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내 대답에 최강욱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씩씩한 친구군.”

나는 최강욱 대장과 함께 게이트 내부로 진입했다.

***

현장에 도착한 최강욱 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커다란 구덩이 때문이었다.

“용케도 살아남았군.”

“운이 좋았습니다.”

“하, 백귀의 백색 광선 앞에서 운이라….”

최강욱 대장이 날 주시했다.

“순간 이동 덕분이겠지.”

!!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놀랄 것 없다. 카페에서 순간 이동한 모습이 CCTV에 찍힌 것뿐이니까.”

“…아.”

카페에서 딸기 라떼를 받다가 순간 이동을 했었다.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CCTV 영상이 우투버에 퍼지고 있다. 최대한 막고 있지만, 오래는 못 막을 거야.”

“….”

“기자들 엠바고도 곧 풀릴 거고.”

“제가 아니라고 하면….”

“아직 말 안 했나? 화질이 너무 선명해서 말이야.”

“큭….”

“바이크 헬멧을 썼지만, 빼박으로 찍혔더라. 발뺌은 무리야.”

“영상을 삭제할 방법은 없을까요?”

“없어. 이미 퍼질 대로 다 퍼졌는데. 이제 곧 기사도 나갈 거다.”

최강욱 대장이 핸드폰을 열어 기사를 보여줬다.

“이틀 후에 나갈 기사다.”

- 속보) 월드컵 경기장 히어로 탄생. 크리처 무리와 크리처 로드를 단칼에 베다? 그의 정체는 바로

“으윽.”

세상에 맙소사.

히어로라니.

기사 제목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월드컵 경기장 사태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히어로를 원하고 있어.”

“큭.”

“그 히어로가 젊고 잘생기고 유능하며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대한민국 차세대 헌터라면? … 말할 필요도 없겠지.”

“….”

“청장님 지시다. 이왕지사 이리된 거. 히어로 역할, 니가 맡아야겠다.”

“우욱.”

결국, 헛구역질이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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