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눈을 떠라. ]
[ 떠라. ]
[ 인간들을 죽여라. ]
[ 죽여라. ]
[ 인간들은 너희들의 적이다. ]
[ 너희들의 적이다. ]
[ 적이다. ]
[ 그러니,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다 죽여라. ]
[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다 죽여라. ]
[ 모두 다 죽여라. ]
[ 죽여라. ]
[ 죽여라. ]
[ 죽여라. ]
[ 죽여라. ]
[ 죽여라. ]
[ 죽여라. ]
[ 죽여라. ]
인간에 대한 증오, 원한, 복수 그리고 피의 목마름과 배고픔들이 마구 떠올랐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크리처 로드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적색 빛이 눈앞에서 번쩍였다.
사람의 머리통만 한 적색 빛이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빛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 크르르릉~
크리처 로드가 적색 빛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빛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러나, 적색 빛은 아랑곳없이 크리처 로드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적색 아우라가 번쩍이고
크리처 로드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뿌드득거리며 팔, 다리가 굵어지고 체구가 거대해졌다.
이빨과 손톱 그리고 발톱 등이 자라났다.
6개의 꼬리가 무려, 12개로 늘어났다.
마물이 각성한 것이다.
차원 법칙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곧이어,
- 쾅!!!
- 콰앙!!!
알 수 없는 폭발과 함께 게이트가 개방됐다.
크리처 로드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것을.
- 크아아앙-!
크리처 로드가 우렁찬 하울링을 터트렸다.
- 크아악!
- 크아아악-!
잠들어있던, 크리처들이 하울링으로 화답했다.
크리처 로드가 몸을 움직이자, 크리처 무리가 따라 움직였다.
게이트 밖으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잠시 후,
- 키에엑!
게이트를 나온 크리처 로드가 괴성을 질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감지한 것이다.
자신이 훨씬 더 강해졌음을 말이다.
그때였다.
인간을 향한 주체 못 할 분노가, 끝도 없이 솟구쳤다.
인간에 대한 분노, 원망, 피의 향기, 배고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제, 인간을 죽이는 것이 크리처 로드의 생존 목적이 되었다.
[ 인간을 죽여라. ]
[ 인간을 죽여라. ]
[ 인간을 죽여라. ]
[ 인간을 죽여라. ]
[ 인간을 죽여라. ]
[ 인간을 죽여라. ]
본능이 계속해서 속삭였다.
인간을 죽이라고.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죽이라고.
- 키에엑!
크리처 로드가 인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무차별적 학살이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달아나고, 현장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월드컵 경기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피바다로 변했다.
***
마감청 요원들이 현장에 출동한 건 저녁 6시가 넘어서였다.
최선을 다해 달려왔지만, 현장은 벌써 아수라장이 된 후였다.
월드컵 경기장 지하에 생성된 게이트가 터져버린 것이다.
무려 3등급짜리 게이트였다.
이에, 마감청은 물론 마파실 전체가 뒤집어졌다.
이곳을 빨리 소멸시켰어야 했다.
불안정한 마력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사고가 터진 것이다.
***
게이트 브레이크가 감지된 순간 즉시 마감청 요원들이 출동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과 군 병력까지 요청한 상태였다.
게이트 브레이크는 마감청 청장에게 직보되는 사안이었다.
소식을 접한 마감청 청장은 가디언 4개 팀을 출동시켰다.
마파실의 안일한 대처에 크게 분노했으나, 그건 나중에 문책할 일.
우선은 브레이크부터 막아야 했다.
가디언은 그 존재 자체가 극비인 부대.
그들의 수가 몇인지, 그들의 무력이 어느 정돈지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었다.
그저 가디언의 역량이 챔피언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이다.
***
크리처를 피해 도망쳐 나온 시민들.
그들을 신속하면서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했다.
[ 시민 여러분. 현재 마감청이 출동한 상태입니다. 군과 경찰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
[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마감청이 출동한 상태입니다. 군과 경찰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
마감청 마포지부 게이트 1과, 이석기 팀장은 마감청 요원들이 출동했음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우선 급한 대로 경찰 버스에 설치된 스피커를 사용했다.
시민들이 당황하지 않고, 얼마나 차분히 움직이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때였다.
- 끼에엑!
괴성과 함께,
- 콰앙!
폭발이 일어났다.
- 쿠웅!
그리고, 폭발과 함께 거대한 것이 튀어나왔다.
- 크르르르….
거대한 것은 크리처였다.
체고가 무려, 5m에 달하는 거대한 크리처.
“꺄악!”
“사, 살려줘!”
“도망쳐!”
“피해!”
출구로 대피 중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어마무시한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괴물의 모습에,
“마, 맙소사.”
이석기 팀장을 비롯한 마감청 요원들이 사색이 되었다.
그들의 등급은 엘리트.
일반 크리처라면 몰라도, 크리처 로드는 그들의 능력 밖이었다.
더군다나, 체고가 5m에 달하는 크리처 로드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꺄악!”
“켁!”
“커헉…!”
크리처 로드가 12개의 꼬리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빨리 죽이는지, 눈 깜빡할 사이에 피바다로 변했다.
처참하고 참혹한 모습이었다.
참다못한 요원들이 몸을 던졌다.
“아, 안 돼. 멈춰!”
이석기 팀장이 황급히 말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12개의 꼬리가 빛살처럼 날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m나 늘어난 꼬리가 요원들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다.
“컥-!”
“허억!”
꼬리에 관통당한 요원들.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 케에엑!
괴성을 지른 크리처 로드가 살아남은 요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 도망쳐!”
이석기 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크리처 로드가 마감청 요원들을 학살했다.
“커헉!”
“컥!”
“허억!”
“크악!”
“아악!”
또다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이석기 팀장이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엘리트 등급인 그조차도 사지가 떨릴 정도.
하물며, 뱅가드 이하의 요원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였다.
- 끼이익!
- 끼이익!
승합차 두 대가 연이어 정차하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슈트를 착용한 헌터들.
그들의 가슴팍에는 은빛 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크리처 로드가 뒤로 물러났다.
“가디언!”
“가디언이다!”
“가디언이 왔다!”
“마감청 가디언이다!”
그들을 본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감청 최강의 부대, 가디언이 도착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20명이나 말이다.
“가디언이라니!”
“살았다, 살았어!”
“가디언이 왔다고!”
“가디언, 만세!”
“가디언이다!”
“가디언!”
사람들의 끝없는 환호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디언들의 표정은 심각했다.
눈앞의 크리처 로드는 그들이 알던 크리처 로드가 아니었다.
꼬리의 개수도 배나 많았고, 덩치도 훨씬 더 크고 거대했다.
이 정도 크기면 크리처 로드가 맞나 의심부터 할 정도.
그들로서도 난생처음 본 괴물이었다.
[ 준비해. ]
팀장의 말에, 가디언들이 신속히 움직였다.
크리처 로드를 중심으로, 주위를 둘러싸며 퇴로부터 차단했다.
[ 가디언 팀장, 이명수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마감청 요원들은 즉시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
[ …마, 마감청 마포지부… 게이트 1과, 이석기 팀장입니다. 저희들은, 시민들부터 대피시키겠습니다. ]
[ 괴롭고 힘드시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명수 팀장이 싸늘한 주검이 된 마감청 요원들을 보며 비통하게 말했다.
[ 라져. ]
이석기 팀장의 대답에 무전을 종료했다.
이명수 팀장이 목과 어깨 등 신체 부위를 가볍게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눈앞의 크리처 로드는 한눈에 봐도 보통 놈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늘 애 좀 먹을듯싶었다.
[ 떡대가 제법인데요? ]
[ 제깟 게 커봤자지. 안 그래? ]
[ 크크크, 그럼요. ]
[ 부피가 커서 때릴 때는 많겠네요. ]
[ 후다닥 조지죠. ]
[ 그럴까?]
팀원들 말이 맞았다.
놈이 아무리 커도, 크리처 로드였다.
챔피언 등급인 크리처 로드.
지금 이곳엔 가디언만 스무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려 4개 팀이었다.
고작 크리처 로드 때문에 물러설 사이즈가 아니었다.
[ 이 새끼, 대갈빡 굴리네요. 우리 오니까 완전 얌전한데요? ]
[ 본능적으로 느꼈겠지. 이 몸의 힘을. ]
[ 형, 또 자뻑하시네. ]
[ 자뻑이라니. 위엄이라고 하는 거다. ]
[ 팀장님. 빨리 조지죠. ]
[ 민아. 방심하지 마. 딱 봐도 쉬운 놈이 아냐. ]
[ 우리 형님은 조심성이 너무 많으셔. ]
[ 조용. ]
이명수 팀장이 팀원들을 주의를 환기시켰다.
[ 지금부터 동, 서, 남, 북. 네 방위를 점하고, 팀별로 포지션을 잡는다. 실시. ]
팀장의 지시에 각 팀마다 다섯 명씩, 4개 팀이 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검방 전사가 맨 앞에, 그 뒤에 격수, 맨 끝에 원거리 딜러가 포진했다.
팀별로 자리를 잡자, 이명수 팀장이 입을 열었다.
[ 눈이 있다면 놈이 한 짓을 봐라. ]
장내가 온통 피바다였다.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참상.
팀원 모두가 외면했지만, 현실은 이토록 참혹했다.
[ 최대한 고통스럽게 그리고 잔인하게 죽여라. 인간의 무서움을 대갈통에 확실히 때려 박아라. 알겠나! ]
[ 예!!! ]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대답했다.
[ 죽여! ]
팀장의 지시에,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물, 불, 바람, 땅, 금속 등 5대 원소를 시작으로 번개, 중력, 염동력 등 각종 이능력에 궁수들의 화살까지.
크리처 로드를 향해 일점사되었다.
- 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 격수! ]
팀장이 소리치자, 격수들이 달려 나갔다.
보나 마나 작살이 났을, 크리처 로드의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웬일,
[ 피해! ]
격수 중 한 명이 다급히 외쳤다.
[ 으악! ]
[ 켁! ]
격수들의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 무슨 일이야! ]
팀장이 물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잠시 후,
[ 마, 맙소사. ]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이명수 팀장이 아연실색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것이 현실이라니.
7명의 격수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크리처 로드가 멀쩡하다는 것이다.
아니, 멀쩡할 뿐인가.
놈의 전신에서 녹색 아우라가 치솟고 있었다.
녹색 아우라.
바로 녹강기의 일종이었다.
청강기도 아닌 녹강기라니….
녹강기는 마스터의 전유물.
그 말인즉슨, 크리처 로드가 마스터 등급이라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