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집에 있는 당근, 파, 양파를 송송 썰었다.
그리고 계란을 톡!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그 위에 케첩도 뿌렸다.
계란말이가 완성되자, 스팸이 생각났다.
찬장에서 스팸을 꺼냈다.
이왕 먹는 거, 스팸도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김치와 오이소박이를 꺼내 식탁에 올렸다.
콩나물무침과 각종 나물, 그리고 멸치볶음도 식탁 위에 올렸다.
야채도 깨끗이 씻어 준비했다.
‘맛있겠다.’
마지막으로 밥과 북엇국도 올렸다.
‘먹어볼까나.’
어머니께서 끓여놓고 가신 북엇국.
“캬~”
북엇국을 먹으니 속이 개운해졌다.
여윽시, 우리 어머니 요리 솜씨는 끝내줬다.
식사 후 간단히 씻고 부모님 댁을 나섰다.
오늘 목표는 압구정동에 위치한 소형 게이트.
적토마를 타고, 압구정으로 향했다.
***
게이트에 도착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에 진입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변하더니,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주위를 살폈더니 파푸조가 포착됐다.
파푸조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하급 마물로.
1m 크기에 통나무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제 딴엔 마물이라고 꽤 사납고 난폭했는데.
뒤뚱거릴 땐 영락없이 핑거스톤이었다.
◈ 그림자 준남작 :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2/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1/1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625)
최하급 마물쯤이야 사냥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소환.’
그림자 전사 11마리를 소환했다.
이 녀석들의 대장은 김득구와 박상도였다.
‘가라.’
명령을 내리자, 그림자 전사들이 바닥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게이트를 처음 독식할 땐 30분 정도 걸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쉬엄쉬엄해도 5분 컷이다.
‘오호.’
김득구와 박상도의 움직임을 보니, 오늘은 그마저도 단축될듯싶었다.
기꺼운 마음에 절로 흥이 돋았다.
그러다 문득 유물이 떠올랐다.
바로 권왕의 유물과 아공간이었다.
1년에 단 하루만 얻을 수 있는 유물들.
2030년 12월 31일과 2031년 1월 1일이었다.
만약 이날을 놓친다면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고로, 이 기회에 반드시 얻어야 했다.
12월 31일에 아공간을 구하고, 1월 1일에 권왕의 유물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계획한 플랜이었다.
유물을 얻는 곳이 비록 1등급 게이트였지만,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특히, 아공간은 그 자체가 진귀한 유물.
입수 난이도가 높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했다.
아공간 다음은 권왕의 유물이었다.
권왕의 유물은 권웅이 10년간 도전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으로, 권웅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었다.
그 당시 스토리가 공개되어 알려진 것이다.
참고로, 권웅은 엘리트 등급.
그는 끝내 이것을 획득하지 못했다.
1등급이지만 1등급이 아닌 곳.
사람들은 관문 혹은 데스 스테이지라 불렀다.
죽고 싶으면 들어와라.
뭐, 이런 뜻이랄까.
어쨌든, 유물을 얻기 위해서라도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하루빨리 챔피언이 돼야지.’
내가 또래에 비해 약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강하다고 봐도 좋았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의 젊은 강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불과 스물셋에 엘리트 등급에 올랐다.
내 존재 자체가 이레귤러.
게다가 난, 그림자라는 권능까지 지니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런 사실이 공개된다면 전 세계가 날 주목할 것이다.
어느새 사냥이 끝났는지, 그림자 전사들이 다가왔다.
김득구가 마정석을 건네줬다.
‘수고했다.’
김득구의 어깨를 다독인 후, 시간을 확인했다.
3분 57초 컷.
기록 경신이었다.
***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가 보여 들어갔다.
20대 중반의 여성이 카페 라운지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그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핏 봐도 카페 주인인듯했다.
“딸기 라떼 한 잔 주세요.”
“5천 원입니다.”
카드를 건넸다.
“어머, 벌써 처리하셨네요?”
카페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네?”
“게이트요.”
그녀가 창문을 가리켰다.
게이트가 생성된 장소였다.
“게이트가 파랗게 변했잖아요.”
“아.”
“실력이 좋으신가 봐요. 10분도 안 된 거 같은데.”
“하하, 그, 그런가요.”
“아까 혼자서 들어가실 때는 걱정했거든요.”
“아, 네….”
“실례지만, 어디 클랜이세요?”
“무명요.”
무명이라는 말에, 그녀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바로잡았다.
“…유명하지 않으면 어때요. 헌터가 실력만 뛰어나면 되죠.”
이름 그대로 무명(이름이 없다)인데, 무명(유명하지 않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여기, 딸기 라떼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딸기 라떼를 건네받으려 할 때였다.
여동생을 지키던 그림자에게서 영상이 들어왔다.
!!
‘맙소사!’
우리 은영이가 지금,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말도 안 돼.’
분명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뉴 키스 ON THE 블루의 콘서트는 성황리에 종료된 콘서트.
지금과 같은 사달은 발생하지 않았었다.
‘게이트 브레이크라니.’
그야말로 기함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내가 알던 과거가 아니었다.
앞으로의 미래가 완전히 변한 것이다.
미래가 변한 것은 심각한 문제.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딴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동생이 지금, 위험했다.
‘이동.’
동생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림자의 권능이 대단한 것이.
거리에 상관없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 속에 그림자만 주입됐다면 말이다.
순간 이동이 끝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변했다.
이곳은 월드컵 경기장.
동생이 있는 곳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한 여학생 머리 위로 크리처의 아가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감히!’
검에 강기를 주입해 빛살처럼 휘둘렀다.
- 가가각!
크리처의 머리가 단번에 날아갔다.
확실히 엘리트급 마물이라 그런지, 목을 베는데도 반탄력이 상당했다.
그만큼이나 놈들의 뼈와 살이 단단하다는 방증.
유물급 무기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귀엽고 통통하게 생긴 여학생을 안았다.
그녀를 데리고 동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눈을 감고,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셀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숫자만 세면 돼. 반복해서.”
“…오빠?”
눈치 하나는 귀신인 내 동생.
바이크 헬멧을 쓰고 있는데도 단번에 알아봤다.
헬멧은 본래 황 과장에게 맡기고 게이트에 입장했었다.
그런데 오늘 부득이하게 황 과장이 자리를 비웠다.
마감청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오늘은 헬멧을 들고 게이트에 들어가야 했고.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쉿! 지금부터 숫자를 세야 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 눈을 뜨면 안 돼. 알았지?”
여동생과 여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은 마치 경건한 기도를 올리듯 두 손을 맞잡고 숫자를 세었다.
그 모습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변환.’
그림자 병사들을 전송석으로 변환시키자, 반경 1km 이내의 625곳이 통제하에 들어왔다.
한쪽 무릎을 꿇고, 한쪽 손바닥을 땅바닥에 대었다.
느껴졌다.
반경 1km 이내의 모든 상황이.
‘소환.’
크리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그림자 투사인 곽동수와 박대출뿐.
나머지 그림자 전사들은 시간 끌기 용이었다.
곽동수랑 박대출은 이곳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그림자 전사들은 크리처의 시선을 끌게 했다.
그림자 전사들이 모두 흩어지자, 나도 움직였다.
잠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동.’
우선 급한 곳부터 순간 이동했다.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던 놈.
사람들을 씹어 먹고 있던 놈.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쩝쩝대던 놈.
사람들의 피를 핥아먹고 있던 놈.
사람들을 쫓고 있던 놈.
숨어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던 놈.
그림자 전사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놈 등.
단번에 찾아내, 모두 다 목을 날렸다.
크리처와 싸우는 방법은 간단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뒤를 점해서, 습격하면 끝.
뒤에서 목을 쳐버리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놈들이 픽픽 쓰러졌다.
만약 순간 이동이 없었다면, 그래서, 정면 대결을 해야 했다면 꽤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이동.’
나는 쉼 없이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생각보다 경기장이 넓었다.
더욱이 크리처가 도달한 곳은 경기장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저곳 구석구석 다 들어가 있었다.
그림자의 권능이 없었다면 일일이 찾기도 힘들었을 정도.
그래서 더욱 부지런히 놈들을 찾았고, 더욱 부지런히 놈들의 목을 날렸다.
크리처의 목을 벨 때마다, 반탄력이 증가했다.
내가 아무리 강해도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체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확실히 엘리트급 마물이라 그런지, 마력 소모도 상당했다.
‘아깝네.’
만약 청강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냥 쓸어버렸을 텐데.
무척이나 아쉬웠다.
크리처를 죽이면서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도저히 살릴 수 없는 사람들까지 함께 죽였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
죽기 전까지 엄청난 고통을 받게 할 순 없었다.
그들도 그것을 원했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우측 팔을 뻗고, 손바닥을 펼쳤다.
‘일어나라.’
손의 움직임에 따라 반경 1km 이내의 크리처가 되살아났다.
◈ 그림자 준남작 :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25/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7/1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625)
그림자 투사가 풀로 찼다.
크리처의 수는 스물셋.
곽동수와 박대출까지 합치면 내가 쓸 수 있는 최대치의 그림자 투사들이었다.
반면, 이 와중에 그림자 전사들은 소멸당했다.
크리처와 싸우는 건 역시 무리인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전부가 소멸당해도 좋았다.
지금은 한 명이라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동.’
다시 순간 이동을 사용했다.
이제 겨우 시작.
힘이 점점 빠지고 지쳐갔지만, 악착같이 놈들을 죽였다.
오늘, 이곳에 나타난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작살 낼 작정이었다.
그것이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