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로 인류 최강-26화 (26/110)

26화

가족들과 레스토랑에 간 후, 아버지와 단둘이서 술을 마셨다.

밤늦도록 과음했던 터라,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나갔다.

“오빠.”

“응?”

여동생이 불렀다.

“요즘 운동해?”

“아니.”

“아닌 게 아닌데….”

여동생이 내 상체를 가리켰다.

상체는 알몸.

그러고 보니, 상의를 탈의한 채 청바지만 입고 잔 것이다.

“오빠. …우리 오빠 맞아?”

“무슨 소리야.”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는데. 오빠, 잠깐만.”

여동생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키를 재기 시작했다.

“훌쩍 컸네, 우리 오빠.”

“실없긴.”

“나보다 조금 컸는데. …남자는 스물이 넘어도 큰다더니, 진짜가 보네.”

여동생의 말에 그냥 웃었다.

“우리 오빠, 모델 해도 되겠다.”

“자꾸 헛소리할래?”

“피~ 헛소리 아닌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빠, 다녀올게요~”

여동생이 단화를 신더니, 티켓을 흔들며 인사했다.

“오냐. 조심히 다녀와.”

“네~”

뉴 키스 ON THE 블루 콘서트에 가는 듯했다.

당최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런 후, 거울 앞에 섰다.

여동생 말대로 체격이 커진 건 사실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무진을 없앤 후 내면 각성을 해버렸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잠자던 야수가 깨어난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신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172에 머물던 키가 훌쩍 자라 180을 넘겼다.

전신에 울근불근한 근육도 붙었다.

몸에 탄력이 생기고, 활력이 넘쳐흘렀다.

체력 또한 강인해졌다.

게다가, 마력 또한 일시적으로 증폭됐다.

엘리트의 정점을 찍었다고나 할까.

야수가 떠오르자,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하지만 그전에, 어머니가 끓여놓으신 북엇국부터 먹기로 했다.

***

“은영아!”

“보경아!”

자신을 보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보경.

은영은 그런 보경을 보며, 자지러질듯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꺄악!”

“꺅!”

갑작스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우습게도, 여자 둘이서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꺄악! 얼마 만이야!”

“꺅! 어쩜 좋아.”

“은영아~”

“보경아~”

“그만해, 이것들아!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하는 줄 알겠네. 졸업한 지 일주일도 안 됐거든!”

참다못한 주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리, 내 사랑 주리~”

미모의 보경이 통통하고 귀여운 주리를 껴안으려 했다.

“징그러, 저리 가!”

“아잉, 내 사랑 주리~”

“기집애가 진짜. 저리 가라구.”

주리가 보경을 밀쳐냈다.

뒤로 밀려난 보경이 미소를 지으며 주리를 다시 껴안았다.

***

서울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 경기장.

월드컵 경기장 앞은 수많은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들어찬 상황.

대체 이 많은 젊은이들이 왜 이곳에 모인 걸까?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 모인, 스폐셜한 이유가.

뉴 키스 ON THE 블루.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휩쓸어버린 최고의 아이돌 그룹.

그 초대형 그룹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이름하여,

- GOOD BYE 2030 CONCERT [ LAST DANCE ]

뉴 키스 ON THE 블루의 콘서트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수많은 팬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일찌감치 티켓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2030년 12월 20일, 오후 5시.

티켓 예매일인 어제.

온라인 예매 사이트 인터마크에 티켓이 오픈됨과 동시에 2만 석에 달하는 좌석이 전량 매진되었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불과 1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국내 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뉴 키스 ON THE 블루의 팬들이 티켓을 휩쓸어 간 것.

이에 난리가 난 주최 측이 부랴부랴 500석의 특별 좌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1분 만에 전량 매진되었다.

오늘, 콘서트장에 몰려든 인파만 무려, 10만여 명.

서울 도심이 거의 마비될 수준이었다.

이 많은 인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주최 측과 서울시가 골머리를 앓았다.

***

“은영아, 들어가자.”

보경과 주리가 티켓을 흔들어댔다.

VIP 티켓도 아닌, VVIP 티켓이었다.

번쩍이는 황금빛 자태에, 사람들이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곧이어 핸섬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VVIP 전용 매니저였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길을 안내했다.

이런 게 바로 VVIP 대우.

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UP됨을 느꼈다.

***

[ 여러분~ MERRY CHRISTMAS~ ]

[ MERRY CHRISTMAS!!!~ ]

[ 다들 행복한 시간, 보내고 계시나요? ]

[ 아레! 아레! 아레! 아레! 아레…!]

[ 모두들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시나요? ]

[ 아레! 아레! 아레! 아레! 아레…!]

[ 저희도 여러분과 함께해서 너무 행복하고, 너무 즐거운….]

그때였다.

- 쿠궁!

어디선가 땅이 주저앉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뭐지?’

처음엔 놀랐다.

하지만,

[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

[ 여러분~ 사랑합니다! ]

[ 사랑해요! ]

[ 알럽! ]

[ 하트 뿅! 뿅! ]

금세 이어지는 뉴 키스 ON THE 블루의 목소리에 조용히 묻혀갔다.

- 쿠궁!

또다시 땅울림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아레! 아레! 아레! 아레! 아레…!]

뉴 키스 ON THE 블루의 응원 소리에 또다시 묻혀갔다.

- 쾅!!!

이번엔 뭔가 폭발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환호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겨버렸다.

폭발 소리가 너무나 생생했던 것이다.

잠시 후,

- 콰앙!!!

눈앞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경기장 한 축이 완전히 무너졌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매몰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다.

모두가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다.

땅 꺼짐 현상.

일명, 싱크홀.

하지만, 이것은 싱크홀 현상이 아니었다.

“…저, 저건!”

“미친!”

“맙소사.”

“말도 안 돼.”

매몰된 땅에서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기어 나왔다.

처음엔 한 마리, 그리고 두 마리.

조금 있으니, 수십 마리가 우르르~ 기어 나왔다.

마치 벌레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꺄악!”

“사람 살려!”

“으아악!”

“도망쳐!”

“피해!”

기어 나온 괴물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인정사정없었다.

사람의 몸을 산 채로 물고 뜯고 씹었다.

피가 튀고, 살이 난무했다.

머리와 팔, 다리 등 온갖 것들이 허공을 날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다 죽였다.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주저앉은 소녀.

공포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여자.

기절한 채 쓰러져 있거나 오줌을 지린 사람.

피투성이가 된 채 울면서 도망치는 사람.

울고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

그야말로 현실판 지옥의 아비규환이었다.

이런 현실은 은영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도 공포에 질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특히 보경은 기절까지 한 상황.

그런 보경을 챙긴 건 주리였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보경을 데리고 도망쳤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

그러나, 주리는 아랑곳없이 보경을 데리고 도망쳤다.

“…려! …구!”

주리가 은영에게 소리쳤다.

매우 다급한 모습.

은영은 주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공포에 질려 공황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주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어떡해서든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래야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영아! …려!”

“….”

“…영아! 제발!”

“….”

“은영아!”

입술을 깨물었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주리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은영아, 제발!”

“…으, 응.”

“어서!”

주리의 목소리가 확실히 들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주리와 함께 보경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도망가!”

“뭐!”

그제서야 주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도망가, 제발!”

“싫어!”

“도망가라고, 이 바보야! 다 같이 죽을 셈이야!”

공포에 질린 주리가 버럭 소리쳤다.

주리의 말은 도와달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도망치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더욱 도망칠 수 없었다.

자신이 도망친다면 주리와 보경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쪽이야!”

“바보야!”

“빨리!”

“하….”

막무가내로 보경의 어깨에 손을 집어넣었다.

주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보경의 다리를 붙잡았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가면….”

그때, 뭔가가 데구루루 굴러왔다.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는 소녀의 머리였다.

목에는 척추뼈가 붙어있었다.

상상도 못 할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아연실색한 은영과 주리가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기함했다.

“아악!”

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하체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나왔지만 느낄 수 없었다.

너무나 공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사지가 덜덜 떨려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가!”

“….”

“도망가라고!”

“….”

“어서…!”

눈앞에서 3m에 달하는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발로 서서 다니는 괴물이었다.

광택이 나는 검은 피부.

둥그스름한 머리통.

낙타처럼 긴 팔과 다리.

송곳처럼 예리한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다란 꼬리.

꼬리 끝에는 뾰족한 침이 솟아 있었다.

TV에서 봤던 에일리언을 닮은 괴물.

크리처였다.

- 끼에에엑!~

놈이 괴성을 지르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악!”

어느새 주리의 뒤를 점하더니, 시커먼 아가리를 쫘악~ 하고 벌렸다.

공포에 질린 주리.

머리 위에서 점액질이 뚝뚝 떨어졌지만, 온몸이 마비됐는지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주리의 눈에서 눈물만 흘러내렸다.

순간, 세상이 멈춰버렸다.

이런 것이 바로 주마등일까.

은영의 머릿속에서 주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주리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

“이거 먹을래?”

조막만 한 손에는 초콜릿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먹어도 돼?”

“응.”

“…고마워.”

“너, 이름이 뭐야?”

“나? 은영.”

“은영? 나는 주리. 나주리. 코끼리 반이야.”

통통한 볼살을 가진 귀여운 아이가 방긋~ 하고 해맑게 웃었다.

***

어느새, 은영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안돼, 주리야….’

안타깝게도, 크리처의 거대한 입이 주리의 머리를 삼키고 있었다.

‘안 돼….’

그때였다.

뭔가가 번쩍하더니, 크리처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그와 동시에, 크리처의 목에서 녹색 피가 솟구쳤다.

- 쿵!

크리처가 쓰러지자,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이크 헬멧을 착용한 남자였다.

그는 슈트를 착용한 채 검을 들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헌터로 보였다.

“주리!”

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주리는 헌터의 품에 안겨있었다.

주리가 놀란 눈으로 헌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헌터가 다가오더니 품 안에 있던 주리를 내려놓았다.

“눈을 감고,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셀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숫자만 세면 돼. 반복해서.”

“…오빠?”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 오빠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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