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무슨 일인데?
- 게이트 하나가 갑자기 이중 게이트로 변했답니다.”
- 이중 게이트?
- 예. 그래서, 팀 하나가 고립된 것 같습니다.
이중 게이트에 팀 하나가 고립됐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 마감청 애들은 뭐하고?
- 아시잖습니까. 몸값 비싼 애들이 벌써 움직이겠습니까? 등급이 측정돼야 움직이겠지요.
게이트가 생긴 지 어언 70년.
세상은 이처럼 냉혹했다.
특히 최하급 헌터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 씁, 알았다. 주소 보내라.
- 예.
잠시 후, 황 과장이 주소를 보내왔다.
주소를 확인한 나는 황급히 적토마를 당겼다.
강북에서 신림동까지 거의 20km를 달렸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적토마를 타고 40분 만에 주파해 버렸다.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새들 어린이 공원에 도착하자, 황 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황 과장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여기, 마감청 요원 한대수 대리님. 그리고 이쪽은, 저희 무명 클랜 대표님이신 이태민 대표님.”
황 과장이 소개한 한대수 대리는 20대 후반의 다부진 사내였다.
“안녕하십니까. 마감청 감찰 3과, 한대수 대리라고 합니다.”
“아, 네. 이태민입니다.”
한 대리와 악수를 나눴다.
“대표님이 이렇게 젊으실 줄 미처 몰랐습니다.”
“별말씀을요.”
“시간이 없어서, 브리핑만 간단히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9시경. 프리랜서 팀 하나가 게이트 공략에 나섰습니다. 2시간 후, 마감청 레이더망에 이상 변이가 감지됐고요. 마력 파장을 측정해 본 결과, 이중 게이트로 판별됐습니다.”
“그럼,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계속 방치해뒀다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인력이 딸려서요.”
한 대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변이 게이트만 열 군데 넘게 터졌습니다. 상황을 대처하다 보니, 저도 한숨도 못 잤습니다.”
김 대리가 몸을 돌리더니 게이트 쪽을 가리켰다.
“밤새도록 지원 요청한 결과가 바로 프리랜서 여덟 분입니다. 그리고 지원에 응해주신 클랜은… 무명 클랜이 최초고요. 뭐, 대표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만.”
“….”
“저도 답답합니다. 하지만… 이게 프리랜서의 현실인 걸 어떡합니까. 안타깝지만,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한 대리의 푸념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저들이 프리랜서가 아니라 클랜 소속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방치할 수 있었을까.
“과연 몇이나 살았을지….”
암울한 현실에 한 대리가 말끝을 흐렸다.
“저분들은 안 들어가고, 왜 저렇게 서 있는 겁니까?”
“이중 게이트라서요. 변이가 일어났는데 무턱대고 들어갈 수 있나요. 고등급 헌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죠.”
“고등급 헌터만 목 빠지게 기다린다?”
“네.”
“고등급 헌터는 언제 옵니까?”
“그게 아직….”
“하.”
나오느니 한숨이요, 꺼지느니 빵구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한 대리를 뒤로하고, 게이트 쪽으로 걸어갔다.
“어, 어.”
“이, 이봐!”
한 대리를 비롯한 프리랜서들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1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게이트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뭐야, 저 사람? …이봐 한 대리. 저 사람 누구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떡대가 한 대리를 보며 물었다.
“누군데 혼자서 들어가고 그래?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뭐야!”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한 대리. 당신이 증인이야. 알았지?”
한 대리가 벙찐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네. 정말 겁도 없이.”
“애새끼가 개념이 없어서 그래. 대체 왜 저러는데!”
“이봐 한 대리~ 저 사람 누구냐니까!”
한 대리가 고개를 돌려 황 과장을 쳐다봤다.
우습게도, 황 과장 역시도 당황했는지 벙찐 표정이었다.
“클랜 분인데…….”
“클랜? 어디 클랜?”
“…무명 클랜이라고.”
“무. 명. 클. 랜?”
무명 클랜이라는 말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푸하하하!”
“크하하하-!”
클랜 이름에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클랜인데 슈트에 마크도 없어. 크크…!”
“클랜 이름이 무명이라잖아. 무명.”
“내 살다 살다 무명 클랜은 또 첨이네.”
“이름이 무명이 뭐야, 무명이.”
“젊은 친구가 고생이 많아. 푸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개념 없다. 자기 혼자 쳐들어가면 어쩌자는 건데.”
“요즘엔 개나 소나 다 클랜이니. 내 참 더러워서.”
“큭, 정말 거지 같은 클랜이네요.”
사람들 비웃음에, 한 과장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끝내 숨지 않았다.
‘대표님이라면….’
자신이 아는 대표라면 분명 뭔가가 있었다.
그는 혼자서도 1등급 게이트를 쓸어버리는 존재.
그런 그가 이중 게이트 따위에 무너질 리가 없었다.
‘그래, 우리 대표님이라면….’
마음을 굳힌 황 과장은 결심했다.
대표가 나올 때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
이중 게이트.
쉽게 말하면, 게이트 내부에 또 다른 게이트가 생성되는 경우였다.
이게 왜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게이트가 동시에 생성되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게이트로 진입하니, 차가운 바람이 부는 삭막한 들판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 뜨기 힘들 정도로 흙먼지가 불어닥쳤다.
군데군데 피어난 잡초와 뾰족한 바위, 그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각성창을 개방했다.
◈ 그림자 준남작 :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2/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1/1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625)
지난 시간 동안 그림자 병사들을 모두 다 모았다.
컴퓨터로 치자면 586컴퓨터에서 최신형 컴퓨터로 단숨에 업그레이드했다고나 할까.
‘변환.’
그림자 병사들을 전송석으로 변환시키자, 반경 1km 이내의 625곳이 통제하에 들어왔다.
그림자 병사들이 영상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1등급 마수인 헬독 무리가 보였다.
까다로운 놈들이지만, 그렇게 빡빡한 놈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놈들부터 처리할까 하다가 나중으로 미뤄뒀다.
여기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생존자들부터 찾아야 했다.
‘조심해서 움직여야겠군.’
마수는 마물보다 청각과 후각이 훨씬 더 예민했다.
자칫 잘못하면 마수 무리가 떼로 몰려올 수 있었다.
‘이동.’
순간 이동을 사용해 1km씩 6번 연속 이동하자, 투명한 막에 둘러싸인 차원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쪽은 아니고….’
차원 경계를 기준으로 다시 1km씩 이동했다.
연속으로 두 번 더 이동하자, 차원 경계와 차원 경계가 겹쳐진 지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중 게이트의 중심.
즉, 게이트와 게이트가 연결된 차원 통로였다.
차원 통로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아마 이 근방에 있다가 게이트 병목현상 때 프리랜서 팀이 고립이 된 듯했다.
차원 통로를 지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헐….’
높이가 무려 30m가 훌쩍 넘는 거대한 석벽들.
그런 석벽들이 무수히 많이 세워진 곳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미로라니.’
소위 말하는 필드형 미로였다.
게이트 속에 생성된 미로는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됐다.
그 첫 번째가 지금과 같은 필드형 미로였고, 두 번째가 던전에서 만들어진 던전형 미로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거대한 탑 속에 만들어진 탑형 미로였다.
필드형 미로는 1등급에서 고등급까지 모든 곳에서 다 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과거에 나도 미로 때문에 거의 죽다가 살아났었다.
그래서 공포감이랄까…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이제 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큭.”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확실히 천양지차였다.
‘변환.’
재차 그림자 병사들을 전송석으로 변환시켰고, 그림자 병사들이 영상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미로 속에서 핑거스톤 무리가 떼지어 보였다.
핑거스톤.
놈들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버섯돌 괴물이었다.
버섯 모자에 일자형 몸통.
근육으로 똘똘 뭉쳐진 두꺼운 팔과 다리.
체고는 2m에 달했으며, 눈과 입이 일자형 몸통에 달려있었다.
즉, 이곳이 2등급 게이트와 연결됐다는 소리였다.
‘이동.’
핑거스톤 무리가 없는 장소로 순간이동했다.
그렇게 연속으로 3번 정도 이동하자, 생존자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
갑작스럽게 차원이 연결되면서, 경천동지할 일들이 벌어졌다.
하늘과 땅.
그야말로 사람만 빼고 모든 것들이 다 바뀌어버렸다.
1등급 마수인 헬독이 눈앞에서 사라졌고, 2등급 마물인 핑거스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까마득한 높이의 거대한 석벽들이 무수히 솟아올랐다.
재빨리 핑거스톤이 없는 곳으로 피하긴 했지만, 이곳이 언제까지 안전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초긴장 상태에서 사람들 체력까지 급속히 떨어지고 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더욱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계속 머물 순 없었다.
팀의 리더인 김상헌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모여봐. 이래선 안 되겠어. 마감청만 믿고 기다렸다가는 우리가 먼저 죽겠어. 이대로 넋 놓고 있을 바에야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
“솔직히 말해서, 마감청이 우릴 구해줄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
“하지만, 이곳은 핑거스톤 구역이라고요. 자칫 잘못하다간 한순간에….”
“핑거스톤을 너무 겁낼 필요는 없어. 우린 여섯이라고. 핑거스톤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다, 핑거스톤이 떼로 몰리….”
“그러니까 조심해서 잡아야지. 이봐. 나한텐 활이 있다고. 댁들도 알잖아. 내 활 솜씨가 어떤지.”
“활 솜씨가 뛰어나면요? 핑거스톤한텐 먹히지도 않잖아요.”
“누가 활로 잡겠데? 우리한텐 박 형이 있잖아. 박 형의 능력이라면 핑거스톤쯤은 충분히 녹여버릴 거야. 안 그래, 박 형?”
박 형이라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우리 김 형이 얼마나 버텨주냐인데.”
“뭐, 한 마리 정도야….”
김 형의 말에 김상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잘들 생각해. 어차피 이곳에 머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방금도 봤지? 핑거스톤 무리가 여기까지 몰려온 거? 녀석들은 지금도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김상헌의 말에 사람들 얼굴에서 두려움이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