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전무진의 양 볼이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그 때문일까.
놈의 두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 나… 진, 진상 그룹 로열패밀리야. 우, 우리 할아버지가 바로, 진상 그룹 회장님이시라구!”
“그래서?”
“…뭐? 아, 아니. 그래서라니….”
“그래서 어쩌라고 새꺄!”
전무진의 팔을 낚아챈 후 순식간에 360도 돌려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
뿌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오른팔이 어깨부터 뽑혀 나왔다.
“무진아. 내가 왜 너한테 얼굴을 깠겠냐?”
“아아악!”
“놀라지 마.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전무진의 왼팔을 붙잡았다.
“사, 살려… 끄어억… 주, 주세요….”
“비명은 마음껏 질러도 돼. 그 정도는 내가 허락해 줄게.”
“제, 제발… 도도돈… 돈 드릴… 게요….”
“아 참! 참고로, 죽는다고 끝이 아니야. 그러니, 편히 잠들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끄흑… 제, 제발요… 제, 제발….”
“친구들 있지? 너도 개들처럼 그림자로 만들어 버릴 거다. 죽어서도 날 섬길 수 있게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놈의 반대쪽 팔도 360도 돌려버렸다.
게스윙에 전무진을 실은 후 백마도 인근, 강물에다가 빠뜨려 버렸다.
당연히 차를 빠트리는 건 이창훈과 강성범을 시켰고.
차량 블랙박스도 제거한 후였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전무진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모습….
이제서야 깨달았다.
내 몸속 깊은 곳에, 포식자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포식자가 전무진을 죽임으로써 눈을 떴다는 사실을.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오늘의 이 기분을 마음껏 만끽했다.
***
“아우 씨발!”
오늘도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중년 여자와 울고 있는 소녀, 그리고 아이들이 꿈속에서 나왔다.
어제부터 꾸기 시작한 꿈이지만, 오늘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아마 내일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김주성 나와.’
김주성을 소환하자 녀석이 나타났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녀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무덤덤했다.
‘하긴, 네가 반응할 수 있을 리 없지.’
김주성은 그림자 병사다.
끽해봐야 최하급 베테랑.
나와 확실한 교감을 나누려면 최소한 그림자 투사는 돼야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김주성이 좀 괘씸하게 느껴졌다.
어찌 됐건 범죄에 동참한 것이 아닌가.
순진한 뉴비를 꼬셔서, 강원도 산골 오지에 팔아넘기는.
그 일에 앞장섰던 장본인이 아닌가 말이다.
자기 가족이 소중하다면 남의 가족도 소중한 법이다.
이기적이다.
상당히 이기적이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김주성을 보니,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나 괘씸했지만, 상대적으로 뭔가 측은해 보였다.
마치, 자기 자신은 지옥에 가도 좋으니 제발 가족들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심이 아니고서야 이런 느낌이 전해질 리 없었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 듯싶었다.
‘…알았다, 자식아.’
김주성을 소환 해제했다.
강원도 뉴비 작전을 감행한 지 오늘로 11일째.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곽동수, 박대출의 금고에서 나온 현금만 무려 17억.
각종 보석과 골드바 그리고 엘릭서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은 상황이었다.
부모님께 그 돈을 전해드릴까 했지만, 아무래도 검은돈이라 전해드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부모님 성정상 그런 돈을 받지도 않으실 테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사냥한 돈만 부모님께 전해 드렸다.
약, 8천7백50만 원.
지난 10일 동안 총 8개의 게이트를 소멸시켰다.
클랜 세금 30%를 제하고, 마정석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약 5천6백만 원.
거기다 총 9개의 게이트에서 나온 마석 값이 약 3천1백50만 원.
부모님이 깜짝 놀라셨다.
헌터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기는 해도, 이 정도로 많이 벌 줄은 모르셨던 것이다.
당연했다.
본래라면 팀 단위로 사냥했어야 했다.
거기다, 매일같이 사냥하는 건 불가능했다.
또한 장비도 수리해야 하고, 다치면 엘릭서도 마셔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타 경비며 등등등….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게이트를 혼자서 독식했다.
거의 매일같이 사냥해도 체력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어차피 내가 사냥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또한 직접적으로 사냥하지 않으니, 장비를 수리할 필요도 없었고 다칠 일도 없었다.
그저, 기타 경비만 지출하면 끝이었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은 부모님께 드리고, 나는 빌런들의 돈을 썼다.
강남 변두리지만, 그럴듯한 클랜 사무실부터 오픈했다.
10층 건물의 7층이었다.
이름하여, 무명 클랜.
클랜 간판도 멋들어지게 붙이고, 사무실 집기도 최고급으로 완비했다.
본래 신축 건물에 사무실로 쓰던 곳이라 크게 손볼 곳이 없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곳만 손 보고, 입주 청소를 한 뒤 오픈해 버렸다.
현재 직원은 둘.
나와 만배뿐이다.
그런데, 클랜 사무실은 무려 100평이 넘었다.
둘이 쓰기엔 좀 많이 컸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돈도 많은데 말이다.
건물 10층에 내 숙소도 마련했다.
어차피 나도 스물셋이니, 슬슬 자립할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독립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부터 어엿한 클랜 마스터이자, 클랜의 대표였다.
그에 걸맞은 부하직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배에게 과장 자리와 월 1천만 원이라는 금액을 제시했다.
녀석은 로스쿨을 바로 때려치우고, 무명 클랜에 뼈를 묻겠다고 답했다.
만배가 무명 클랜의 과장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가 게이트를 낙찰받는 일이었다.
지금은 신규 클랜이라 어쩔 수 없지만, 조만간 경력이 쌓이면 하루에 2개 혹은 2등급 게이트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게이트를 많이 낙찰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에겐 이득이었다.
그래서 지금, 사활을 걸고 게이트 입찰에 매달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미래의 엘리시움, 즉, 아웃 칼리를 구매하는 일이었다.
아웃 칼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만 약 3kg~ 10kg 정도가 매일 나왔다.
그만큼이나 희귀한 물질이지만, 금속 공예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가격대가 1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금속 공예에서도 별 인기가 없었다.
특색이 아무것도 없는 금속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냥 폐기시켜 버리는 업체들도 상당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쌓여 있던 아웃 칼리는 약 12톤.
용광로에 들어가기 전, 폐기물 업체들까지 싹 다 긁어모은 양이었다.
이것들을 전량 쓸어 담았다.
또한, 일본 업체에 전화해 아웃 칼리를 8톤이나 수입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일본이 한 짓을 생각하면 싸그리 다 쓸어 담고 싶지만, 죄 없는 일본 사람들도 있으니 이 정도 선에서 그친 것이다.
불과 1년 후, 일본은 재앙급 마수가 가장 많이 나오는 나라가 될 것이고, 엘리시움 때문에 똥줄이 타는 나라가 될 것이다.
어디 그때도 우리나라를 무시할 수 있는지, 한 번 두고 볼 일이다.
지금까지 구매한 엘리시움은 바로 냉병기 공방 업체로 보냈다.
냉병기 공방 업체에서 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창의 길이는 2m, 무게는 50kg 정도로 세팅했다.
재앙급 마수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와 무게였다.
‘이제 슬슬 가볼까.’
지금 시각은 오전 6시.
오늘은 조금 일찍 나가봐야 했다.
당연히 김주성 때문이었다.
‘큭, 이 자식….’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입은 후, 유닉 슈트를 착용했다.
과연 유닉이라 그런지, 뭔가 모르게 뽀대가 반짝거렸다.
좌측 허리에는 박대출이 쓰던 검을 착용했다.
솔직히 검보다는 대검이 마음에 들었지만, 대검을 착용하면 적토마를 탈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검을 착용한 것이다.
쇼핑백에 현금 5억과 중급 엘릭서, 그리고 하급 엘릭서를 한 병씩 넣었다.
하급 엘릭서는 비상용으로 넣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주성 보냄이라는 메모도 써 놓았다.
쇼핑백을 백팩에 담은 후 등에 메었다.
‘강북이라고 했지.’
김주성 집이 강북 어디라고 했는데, 꿈에서 봐서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미성 슈퍼란 곳만 기억에 남아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강북에 위치한 미성 슈퍼는 딱 한 군데뿐이었다.
‘달동네구만.’
집을 나선 후, 헬멧을 쓰고 적토마에 올랐다.
- 부르릉- 부웅- 부웅-
적토마가 울자, 액셀을 당겼다.
- 부우우웅~
김주성이 살던, 강북구 삼양동으로 출발했다.
역시, 산만득이는 위대했다.
미성 슈퍼는 미아 체육공원을 지나, 산만득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었다.
‘웬만하면 걸으려고 했더니.’
할 수 없이 CCTV가 없는 곳으로 향했다.
‘변환.’
그림자 병사들을 전송석으로 변환시키자, 반경 1km 이내의 625곳이 통제하에 들어왔다.
그림자 병사들이 영상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녹색 집이 눈에 띄었다.
꿈에서 본, 김주성의 집이었다.
‘찾았다.’
김주성의 방으로 순간 이동했다.
얼마 전, 김주성의 죽음이 알려진 후 장례를 치렀는지,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백팩에서 쇼핑백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런 후, 밖으로 순간 이동했다.
‘이런….’
해야 할 일 중 한 가지를 깜빡하고 놓쳤다.
또다시 방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김주성의 여동생이 학생이라, 곧 등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밖으로 나왔다.
꿈에서 봤던 김주성의 여동생이었다.
‘김주하라고 했던가.’
김주하가 스쳐 지나갈 때쯤, 김주성을 그녀의 그림자로 보내주었다.
꿈에서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김주성을 보면서, 녀석을 풀어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김주성을 모친에게 보내주기보다는, 집안의 가장인 여동생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그래야 무슨 일이 생기면 김주성이 보호하고, 내게 도움도 요청할 것이 아니겠는가.
대충 일이 끝나자, 적토마가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 ♪♬♬♪♪….
적토마에 올라탄 후, 시동을 걸려고 할 때였다.
황 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대표님. 아침부터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마감청에서 지원 요청이 와서요.
- 지원 요청?
- 예. 급하게 좀 와달라고 하네요.
뜬금없는 마감청의 지원 요청에, 어안이 벙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