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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인류 최강-12화 (12/110)

12화

‘반짝반짝하네.’

그동안 헌터 자격증이 없어 마정석을 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갑을 열어 헌터 자격증을 확인한 후 백팩을 등에 메었다.

오늘 목적지는 마석 협회 노원 지부, 마감청 산하기관으로서 마석을 매입, 판매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마정석 매매도 병행하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석 협회, 노원 지부로 가주세요.”

“예.”

택시를 타고 마석 협회, 노원 지부로 향했다.

노원 지부는 노원역 근처, 노원 구청 옆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노원 지부로 들어갔다.

동네 동사무소와 비슷한 느낌.

번호표를 뽑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72번 고객님.”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마정석 좀 팔려고요.”

“아, 네. 마정석요. 헌터 자격증과 마정석을 주시겠어요?”

지갑에서 헌터 자격증을 꺼낸 후, 백팩에서 마정석을 꺼내주었다.

“어머! 백호 아카데미 출신이시네요?”

시큰둥했던 여성 접수원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과연, 백호 아카데미가 명문은 명문인듯했다.

“…네.”

“마정석은 총 4개고요.”

“네.”

“혹시, 길드나 클랜에 소속된 곳이 있으신가요?”

“아직요.”

“아, 네.”

유명 길드나 클랜 소속이 아니어서 뭔가 살짝 실망한 듯한 표정.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개인이면… 프리랜서로 활동하시나 봐요? 프리랜서는 세금이 40%예요. 길드나 클랜 소속이면 20~ 30% 선이고요. 지금 판매하시면 프리랜서 비율로 처리가 되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1등급 마정석은 별도로 마력 측정을 하지 않습니다. 일괄적으로 1천만 원에 매입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세금을 제한 마정석 4개. 가격은 2,400만 원입니다. 계좌로 이체해 드릴까요?”

“아뇨. 전액 현금으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객님.”

안내원이 오만 원권 지폐로 2,400만 원을 건네주었다.

“수고하세요.”

“네, 고객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볼일을 마친 후, 노원 지부를 나왔다.

‘아 참!’

핸드폰을 열어 마감청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라이센스를 등록했다.

- 띠링! 띠링! 띠링…!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마감청에서 보내는 게이트 현황과 팀원 모집 글들이 실시간으로 업뎃되는 소리였다.

- 1등급 검방 구합니다.

- 3등급 마력계 프리랜서 한 분 구합니다.

- 1등급 격수 구합니다.

- 2등급 원소계 한 분 구합니다.

- 1등급 극딜 구합니다. 쌍검 계열 환영.

- 3등급 달방~ 뇌전대 출신 극딜 대기 중….

- 1등급 무대뽀 중딜러 구합니다.

- 3등급 이능계 한 분 구합니다. 극진히 모실게요~

모집 글들을 모두 다 음소거로 돌렸다.

애초부터 프리랜서로 일할 생각이 없었다.

프리랜서로 일할 바에야 백호 길드에 입단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뭐… 아주 가끔, 알바로 뛰는 거라면 몰라도.’

마감청 사이트에 가입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게이트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등록은 됐고, 휴~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앞으로 할 일이 엄청 많았다.

‘우선, 소형 클랜부터 창설하자.’

소형 클랜을 창설하기 위해선, 1천만 원의 창설 비용과 최소 다섯 이상의 헌터가 필요했다.

‘다 방법이 있지.’

나는 헌터들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택시~”

그래서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강북 문화원요.”

택시를 타고 강북 문화원으로 향했다.

헌터가 살면서 재각성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 로또 당첨보다 수십, 수백 배는 확률이 낮을 것이다.

이런 확률에도 불구하고, 재각성에 매달려 평생을 비루하게 보내는 헌터들이 있었다.

나도 그랬다.

사람이 도박에 빠지면 미치는 것처럼.

마약에 중독되면 미치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미쳐있었다.

반면, 재각성의 꿈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사는 사람과, 부상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은퇴한 사람도 있었다.

내가 아는 황보성 아저씨는 부상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은퇴한 케이스였다.

‘황보성 아저씨.’

헌터로서 최소한의 장비를 갖추기 위해선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들었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냉혹한 세계에선 반푼이란 개, 돼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일할 곳이 없어 매번 쫄쫄 굶을 때마다, 찾아갔던 곳이 바로 아저씨네 가게였다.

“꼴을 보아하니 넌 죽어도 헌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릴 거다. 넌 절대로 정신을 못 차릴 거야. 나처럼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는 한 말이다.”

아저씨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따듯한 밥을 주셨고, 마석 채굴 일을 시켜 주셨다.

혹시라도 일이 없으면 노가다 자리라도 소개해 주셨다.

본래 마석 일이라는 게 일할 사람은 많고, 일할 곳은 적은 게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그냥 내쫓지 않으셨다.

“널 보고 있으면 과거의 미련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나만큼은 반드시 재각성할 거라는 믿음. 우린 그걸 재각성 병이라 부르지. 그거… 죽기 전까지는 못 고쳐. 죽다가 겨우 살아나야 고칠 수 있는 병이야. 그러니까 발버둥 치지 마. 애써 발버둥 쳐봤자 너만 힘들어. 하루하루 비참하게 살아. 그러다 보면 알아서 죽음이 찾아올 테니까. 만약 죽음에서 살아난다면 넌 인간이 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죽는 거지 뭐.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항상, 차갑게 말씀하셨지만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갔다.

그 후, 20년.

아저씨네 가게가 폐업할 때까지, 그분은 항상 내게 도움을 주셨다.

“문화원입니다.”

강북 문화원에 도착했다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차에서 내렸다.

강북 문화원 건물 앞.

이곳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자, ‘만배상사’란 간판이 보였다.

아주 자그마한 가게.

황보성 아저씨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어서 오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20대 초반의 앳된 친구가 날 반겼다.

‘만배구나.’

황보성 아저씨의 아들이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만배는 앞으로 8년 후 로스쿨을 졸업하게 된다.

아마 지금은, 학비가 없어서 로스쿨을 쉬고 있을 시기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석 채취 때문에 왔습니다.”

“마석 채취요?”

“네.”

“아버지가 지금 자리에 안 계시거든요. 곧 돌아오실 때가 되긴 했는데… 일단, 여기 앉아서 좀 기다려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만배가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차는 없고, 믹스 커피밖에 없네요. 괜찮으시다면 믹스 커피라도….”

“좋죠.”

만배가 믹스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요즘, 일이 많은가 봐요?”

“아뇨, 그닥…. 마석 일이란 게 있을 땐 좀 있고, 없을 땐 아예 씨가 마르니까요.”

“네에.”

“혹시,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중에, 사장님 오시면 그때 얘기할게요.”

“아, 넵.”

만배가 믹스 커피를 내밀었다.

“커피는 믹스죠.”

“하하~ 저랑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믹스는 만인의 커피니까요.”

만배랑 잠깐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가게 앞으로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은 황보성 아저씨였다.

“누구?”

“마석 채취 때문에 오셨다는데요.”

“마석 채취?”

아들의 말에 황보성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쇼?”

“안녕하세요. 이태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마석 채취를 맡기고 싶어서요.”

“마석 채취라. 갑자기?”

황보성 아저씨가 조금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마석 일이라는 게 연줄이 없으면 잡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뜸 마석 일을 주겠다고 찾아왔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신생 클랜입니다. 마석 업체를 찾고 있습니다.”

신생 클랜이라는 말에 황보성 아저씨의 눈이 반짝였다.

신생 클랜이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제법 신빙성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생 클랜이면… 1등급 게이트로군. 그래, 비율은 어떻게? 우린 9:1로는 절대 받을 수 없으니 그리 아시오. 적어도 8:2는 돼야 합니다.”

마석을 채취하는데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마석 채취에 필요한 인부는 대략 열 명 정도.

8:2라면 최소 200은 맞춰달라는 소리다.

그래야 장비값이랑 운영비를 제하고, 인부들에게 10만 원씩은 챙겨줄 수 있었다.

“5:5로 해드리죠. 대신….”

5:5라는 소리에 황보성 아저씨가 크게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릴 정도.

“라이센스를 좀 빌려야겠습니다.”

자격증을 빌려달라는 소리에, 황보성 아저씨가 인상을 팍~ 구겼다.

“라이센스를 빌려야겠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입니다.”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군.”

“소형 클랜을 창설할 생각입니다. 라이센스 4개만 빌려주시면 됩니다.”

“이 양반이 지금 실성했나. 아침부터 찾아와서 무슨 헛소리야. 장난질 치려거든 당장 꺼져!”

“장난이 아닙니다.”

“당장 꺼지라고! 마감청 요원을 불러야 정신을 차릴 텐가!”

황보성 아저씨가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백팩에서 오만 원권 현금다발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장난치는 거 아닙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라이센스를 빌려서 클랜을 창설한다는 게 다소 황당하게 들리시겠지요.”

“황당하다 뿐인가!”

“공짜로 빌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라이센스를 빌려주시면 비용을 지불할 생각입니다.”

“크흠….”

“라이센스 비용으로 1인당 250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오만 원권 두 뭉치를 황보성 아저씨 쪽으로 밀어 넣었다.

“또한 라이센스 비용으로 매달 백만 원씩 지급할 생각입니다.”

“흠흠. 마석 계약은…….”

“당연히, 5:5로 할 생각입니다.”

“…….”

“그리고 이건, 클랜 창설 비용입니다.”

다시 오만 원권 두 뭉치를 황보성 아저씨 쪽으로 밀어 넣었다.

“라, 라이센스를 빌려서 클랜을 창설하겠다니, 이 무슨 해괴한 소린지…. 라이센스를 빌렸다고 칩시다. 어차피 그 사람들 전부 우리 직원들인데,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요? 말이 안 되는 소리지.”

“직원이든 뭐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뭐, 뭐요?”

“만배상사 직원이라고 해서 클랜을 창설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그야….”

황보승 아저씨가 고개를 돌리더니, 황만배를 쳐다보았다.

아들이 로스쿨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만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클랜을 창설하는 게 불법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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