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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인류 최강-10화 (10/110)

10화

“격투기를 그렇게 잘한다며? 학장님이 천재라고 했다지?”

“…미, 미안해.”

“미안? 하, 시바 새끼가. 검기도 못 쓰는 반푼이 새끼가. 너 따위가 감히, 천재라고?”

17살 당시, 전무진이 보여준 검기에 내 모든 것들이 다 무너졌다.

검기가 없었기에 검기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놈만 없었다면 난, 격투기에 모든 것을 걸었을지도 몰랐다.

“무릎 꿇어! 무릎 꿇고, 내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라!”

놈의 검기가 내 목에 닿는 순간, 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무릎을 꿇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준 적 없던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잘못을 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무진과 놈의 패거리들은 한참이나 날 비웃으며 농락했다.

개처럼 맞고 노예처럼 용서를 빌었다.

참담함에 가슴이 무너졌지만, 공포에 질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반푼이와 빵셔틀로 점쳐진 내 지옥 같은 아카데미 생활이.

‘…크윽.’

그동안 잊고 살았다.

아니, 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기억을 봉인한 채 말이다.

그러나 놈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솟구치는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눌러야 했다.

지금, 분노를 억누르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태민아. 갑자기 왜 그래? 괜찮은 거야?”

“…으, 응.”

“뭐야… 어디 아픈 거 아냐? 정말 괜찮은 거야?”

“…괘, 괜찮아.”

안봉안의 물음에 겨우 대답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기억 속에 있는 전무진을 떨쳐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피바다로 만들지 몰랐다.

“어? 정영미 선배랑 강봉식 선배다.”

“이번 기수 최고의 수재들이 그냥 다 나오네.”

“특무대는 올해도 물 건너갔구나.”

“벌써 몇 년째야? 특무대로 진출 못 한 게.”

“전무진 선배가 마지막이었으니까. 올해로 딱, 3년째네.”

“와~ 특무대가 높기는 높구나.”

“특무대가 괜히 특무대겠냐. 천재 중의 천재들만 가는 곳이니 특무대지.”

“저 선배들 말야. 특무대는 못 들어가도 백호는 들어가겠지?”

“그거야 모르지. 특무대는 논외로 치더라도 백호 길드도 최상위 수재들만 들어가는 곳이니.”

“하긴, 백호에 들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지.”

귓가에 이런저런 소리들이 막 들려왔다.

오히려 좋았다.

저런 소리 덕분에, 전무진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태민~”

그때, 누군가 날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영미였다.

“교관실로 좀 오래.”

“…나?”

정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실은 지금 백호 길드가 사용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수재들을 스카웃 하는 장소로 말이다.

방금 전, 정영미를 비롯한 몇몇이 들렀다가 나온 곳이기도 했다.

“어서 가봐~ 김소영 교관님도 계시니까.”

“농담이지?”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이니?”

정영미가 도끼눈을 떴다.

그제서야 진담임을 직감했다.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불렀다고 하니,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교관실로 향했다.

***

“어? 너는… 빵. 셔. 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던가.

하필이면 교관실 앞에서 놈과 마주쳐 버렸다.

‘젠장.’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푸하하하~ 빵셔틀. 너 설마, 아직도 여길 다녔던 거냐? 하하하하~ 이 새끼 진짜… 아주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전무진이 배꼽을 잡으며 낄낄거렸다.

“어휴~ 이 반푼이 새끼. 하여튼… 크크크~ 아 씨발, 너무 웃겨서 눈물이 다 나오네.”

눈물을 훔치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근데, 어디 가는 길이냐?”

“손 치워.”

“응?”

“손 치우라고, 새꺄.”

“….”

“….”

“…방금, 뭔가 잘못 들었나. 너 방금, 뭐라고 그랬냐?”

“귓구녕에 X 박았냐? 안 들려?”

“…이런 미친 새끼가.”

딥빡쳤는지, 녀석이 내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몇 년 안 봤더니 그새 다 잊었나 본데. 기억나게 해줘? 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앙!”

“….”

“반푼이 새끼가. 좋게 좋게 대해주니까 내가 친구로 보이지? 정신 안 차려!”

“….”

“큭~ 좃맹구 새끼가. 이제서야 기억났나 보네.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

“꿇어. 당장 무릎 꿇어!”

“기억 속에 묻어두려고 했다. 그런데 넌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이 새끼가 감히… 내 앞에서 또박또박 할 말 다 하네. 너, 너무 오만방자해졌구나.”

“넌, 선을 넘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 그전에 날 아는 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넌 지금, 지옥의 문을 연 거다.”

그림자 병사 한 마리를 놈의 그림자 속으로 집어넣었다.

“뭐라는 거야, 씨발이! 이나 꽉 깨물어!”

놈이 우측 팔을 한껏 젖히며, 싸닥션을 날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무슨 짓이야!”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아하하~ 팀장님.”

전무진이 다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장난친 겁니다. 우린 깐부거든요.”

“깐부? 깐분데 머리채 잡고 뺨을 갈기나!”

“그게 아니라.”

“전. 무. 진.”

“…예, 팀장님!”

“특무대, 다섯 번째 신조가 뭐지?”

“…….”

“대답해!”

“마물과 마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며 약자를 보호하고 명예와 신의를 지킨다.”

“장태산 부관.”

“예, 팀장님!”

2m가 넘는 거한이 대답했다.

“전무진 대원은 앞으로 일주일간 특훈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따라와!”

“티, 팀장님.”

울상이 된 전무진.

하지만 장태산은 가차 없었다.

단숨에 전무진을 낚아채더니 질질 끌고 가버렸다.

“팀장님~ 팀장님~”

전무진의 절규가 교관실 복도를 가득 채웠다.

***

“이태민 교육생. 축하해요~”

아카데미 최고의 인싸이자 미녀 교관인 김소영 교관이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김소영 교관이 직접 축하해 주다니.

꽤나 놀라운 일이나,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지금 눈앞에 김소진 선배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몰랐다.

백호 특무대 팀장이 아카데미 3년 선배인 김소진 선배일 줄은.

또한, 전무진을 데려간 거한이 아카데미 2년 선배인 장태산 선배일 줄은.

아카데미에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김소진이란 이름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만큼이나 유명했기 때문이다.

백호 아카데미 4학년, 최고의 수재이자 천재 중의 천재.

교관들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는 아카데미 최고의 실력자.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유명했던 이유는 아름다운 미모 때문이었다.

고운 아미에 오뚝한 코.

앵두 같은 입술.

눈꽃 같은 피부에 작은 얼굴.

모델 뺨치는 서구적인 몸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상의 비주얼이었다.

그런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언감생심,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조금만 다가가도 큰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마치, 아름다운 작품을 구경하듯이 말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나와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정성재 군을 병원에 입원시켰다고요?”

“…아, 뭐….”

봉알이 터진 정성재 얘기에 땀이 삐죽 흘러내렸다.

“본래라면 성재 군에게 돌아갈 자리지만, 알다시피… 뭐, 그렇게 됐으니. 이번만큼은 특별히 이태민 교육생에게 기회를 주려고 해요.”

“…무슨.”

“이태민 교육생은 검기가 없죠. 그런데도 영미와 성재 군을 이겼어요. 최소한 저는, 이태민 교육생의 격투 능력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래서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원하신다면 백호에 입단할 수 있는 기회를요.”

!!

뜬금없는 제안에 깜짝 놀랐다.

‘맙소사, 백호라니.’

백호가 어딘가.

대한민국 최강의 사방신 길드 중 하나가 아닌가.

백호에 입단하는 것은 인생의 실크로드가 쫘악 펼쳐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거 참.’

살짝 난감했다.

백호의 입단 제의는 꿈에도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사냥 한 번에 삼백입니다. 이태민 교육생 몸값이에요. 최상급 대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낮은 대우는 아닙니다. 여기, 계약서예요. 보시다시피 여러 가지 보험과 각종 혜택은 물론, 사냥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입니다. 고급 차량과 품위 유지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은 기본이고요. 이만한 조건, 절대 흔치 않은 거 아시죠? 그쪽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김소진 팀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검기도 못 쓰는 반쪽짜리 교육생에게 사냥 한 번에 삼백을 준다는 건 거의 파격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설명하자면, 1등급 게이트는 소형 게이트와 중형 게이트로 나뉜다.

소형 게이트는 보스만 존재하고 중형 게이트는 네임드와 보스가 존재한다.

며칠 전, 실전 훈련을 한 게이트가 바로 중형 게이트였다.

소형 게이트를 소멸시키면 마정석 1개.

중형 게이트를 소멸시키면 마정석 2개를 얻을 수 있다.

끽해야 1천에서 2천 정도의 수입이다.

1등급 게이트는 보통 4~ 6명이 팀을 꾸려서 사냥한다.

몸값 300은 결코, 낮은 대우가 아니라는 소리다.

게다가, 백호 길드에서 주는 각종 혜택들.

예를 들어, 고급 승용차와 품위 유지비 등.

각종 보험을 비롯한 여러 가지 치료 서비스 등.

최신형 장비와 최신형 슈트는 기본, 억대가 넘어가는 유물급 무기 등.

그 외 등등등… 이런저런 서비스만 따져도 몸값을 훌쩍 넘긴다.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누구나 다 고민할 것이다.

나도 그렇고.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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